독자는 작가의 수고를 모른다 비평

대상작품: 사랑손님과 나 (작가: 이나경, 작품정보)
리뷰어: BornWriter, 17년 7월, 조회 171

작품을 읽기 전에 내가 확인하는 것이 하나 있다. 바로 분량이다. 모르는 사람을 위해 알려주자면, 작품소개 탭 등록방식 / 분량에 나와있다. 사랑손님과 나는 154매에 육박하는 단편이었다. 글자수로 따지면 공백포함 3만자 정도. 두려워할 만한 분량은 아니지만, 이 분량을 모니터로 읽는다는 사실은 두려워해도 괜찮지 않을까. 물론 이러한 걱정은 모두 기우에 불과했다. 너무 재미있어서 순식간에 읽어내려갔으니까.

 

 

작가님의 문체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읽는 내내 머릿속에서 위와 같은 이미지가 막 떠올랐다. 발랑까졌다는 게 아니라 레트로하다는 뜻이다.

이 글을 읽으면서, 너무 쉽게 읽히는 문장 때문에 ‘작가님께서는 한 호흡에 이 문장들을 다 썼을 것이다’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와 동시에 ‘한 호흡에 읽힐 수 있도록 작가님께서는 어느정도의 수고를 들였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정말 한 호흡만에 쭉 써내려갔으면 대단하지만, 보통의 글쟁이들은 그렇지 않다. 충분한 시간을 들여 퇴고에 수고를 들여 명문을 뽑아낸다. 그렇지만 독자는 작가의 수고를 모른다. 3년에 걸쳐 쓴 소설도 사흘이면 천천히 읽은 셈이다.

읽다가 그런 생각도 들었다. 나는 내 문장에 대단한 수고를 들인다. 그러나 얼마의 수고를 들여도 문장은 마음처럼 되지 않는다. 그래서 나는 더욱 문장에 몰두한다. 단어의 위치를 바꿔보거나, 같은 의미에 뉘앙스가 다른 단어를 대입해본다거나, 문장의 위치를 바꿔본다거나, 문단의 형태를 수정해본다거나…. 뭐, 그렇게 해도 능력 외의 문장을 써내지는 못한다. 나는 여전히 잉여로운 채다. 그렇지만 내가 이 글을 단번에 읽어내려가는 것처럼, 누군가는 내 서툰 문장을 그렇게 읽어내려가줄까. 그렇다면 고마울텐데, 아무래도 그런 사람이 있을 거 같지 않다. 재미있게 읽다가 갑자기 우울해져서 마음이 괴로웠다. 그래서 생각을 접고 다시 읽기 시작했다.

다만 한 꼭지, 내가 선생을 일본 순사에게 꼰지르는 장면은 조금 애석했다. 훨씬 더 나은 방법이 있지 않았을까 싶다. 아무리 그래도 일제 치하의 상황에서 독립투사(라고 생각되어지는) 사람을 그렇게 쉽게 꼰지를까? 옥희가 납치당했다고 추측하는 것에서부터 꼰지르기까지 너무 빠르게 진행된다. 그 부분 빼고는 다 좋았다.

경성 탐정 이상도 이렇게 나를 흠뻑 행복하게 만들지 않았다. 이런 반짝이는 아이디어는 늘 나를 기분좋게 한다. 이때 나는 독자가 아니라 글쟁이로서의 나다. 세상에 나보다 멋진 글쟁이가 수두룩하다는 사실을 깨닫는 것은 늘 고통스럽지만, 어쩌겠나, 그들의 글을 읽는 건 재미있는데.

쓰다보니 다시 우울해진다. 다 큰 사내가 징징 짜기 전에 서둘러 리뷰를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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