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정(妖精). 본래 ‘요사스러운 정령’이라는 의미를 지닌 이 단어는 그 기원과 달리 근래에 동화적 가공을 거쳐 ‘아름답고도 신비로운 존재’를 가리키는 명사가 되었다. 대중적인 페어리, 엘프, 님프의 이미지를 포함하여 넓게는 트롤, 드워프, 고블린을 포함하는 요정의 범위는 상상 속 존재를 대부분 포함한다고 보아도 과언이 아니다. 사람을 홀릴 만큼 신비한 정령들. 애초에 인간의 모습으로 만들어진 것부터 본래 괴이한 동물의 모습을 합성한 것까지 외형의 종류도 다양하다. 그들은 마법을 사용한다. 인간의 현실 능력을 넘어서는 기운을 자유자재로 활용해 사람을 돕거나 위협한다. 판타지, 특히 정통 판타지에서는 곧잘 요정이 등장하니 그들이 환상 소설 내에서 차지하는 위치는 대단히 중요하다고도 볼 수 있다.
그중 국내에 대중적으로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굉장히 익숙하고도 독특한 요정이 하나 있다. 주로 켈트계 국가에서 전설처럼 전해 내려오는 바다표범 요정 셀키다. 수중에서는 바다표범의 모습을 한 이들은 육지에 올라오면 인간의 모습으로 변하는데 이 환상적인 외형의 변화는 수많은 전설과 민담을 낳았다. 셀키의 전설은 세계의 이야기들이 그러하듯 국내의 몇몇 설화와 매우 유사하다. 본래 바다표범인 셀키는 인간으로 변하면서 두르고 있던 가죽을 옷처럼 입는다. 이 옷을 인간에게 빼앗기면 그는 다시 바다표범의 모습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옷을 빼앗은 자와 결혼해야 한다. 서사의 흐름이 국내의 선녀와 나무꾼 설화와 매우 유사한 것으로 보아 인간에게는 예로부터 환상의 존재를 붙잡아두려는 재미있지만 한편으로 잔인한 욕망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셀키의 외형이 동물에서 인간으로 변한다는 것은 호랑이나 여우가 사람으로 변해 인간을 홀리는 옛이야기들을 떠오르게 한다. 하지만 셀키는 ‘바다’에서 올라온 동물이며 온순하다는 특징이 있다. 땅 위에서 살다가 외형만 인간의 모습을 하는 설화 속 여러 동물과 달리 셀키는 바다에 사는 요정이다. 그들이 육지로 올라오면 ‘서식지’ 또한 바뀐다. 셀키는 땅과 물의 ‘경계’를 넘는다. 인어나 세이렌에게 있는 바다 생물만의 신비로움이 셀키에게도 깃드는 것이다.
이 신비로움이 그대로 환상과 결합해 쓰인 애달픈 사랑 이야기가 있다. ‘얼어붙은 바닷가’의 어느 작은 마을, 언덕 위에 마녀의 집이 있다는 소문이 그곳에 돈다. 하지만 여느 마녀들의 소문이 그러하듯, 그 여자는 변두리에 사는 보통의 노파다. 단지 마을 사람들과의 교류가 적다는 이유로 마녀가 된 그녀는 어느 날, 작살이 몸에 박힌 청년을 발견한다. 보통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듯, 청년은 순수한 흰색 그 자체다. 무해한 그에게 작살이 꽂힐 이유는 하나뿐이다. 그는 신비로운 흰색 가죽으로 마을에 삽시간에 사냥을 유행시킨 바다표범 요정 셀키가 분명하다. 마녀는 인간이 아닌 존재를 구해준 사람들에게 닥친 재액을 알면서도 청년의 생명을 살리기로 한다.
그 결심에 자신이 어떤 위험한 사랑의 여정을 떠날지 모르는 채로.
마녀, 바다, 그리고 셀키
이아람 작가의 단편소설 〈눈의 셀키〉는 신화에서 기원한 정통 판타지의 기본 구조를 충실히 따라 선인(주동자)과 악인(반동자), 그들의 욕망을 갈등하고 충돌하게끔 만드는 신비의 존재를 소설 안에 분명히 설정한 이야기다. 짧은 분량의 서사임에도 처음과 끝, 선과 악을 명확히 드러내며 매끄럽게 진행되는 단편의 촘촘함이 예사롭지 않다. 먼저 주동자인 마녀의 사정을 살펴보자. 이 소설에서 주동자는 마녀로 지목되는 노파로 마을 사람들은 그녀를 계속 피한다. 그녀를 향해 단단한 눈덩이를 던지거나 직접적인 멸시를 표하기도 한다. 마녀는 남편 또는 아들을 기다리고 있으며 “남자들에게 끔찍한 주술을 걸고 있다”고 한다. 그러나 그것을 실제로 본 사람은 아무도 없다.
소설 속 가상의 마을에 도는 마녀의 이야기는 그야말로 소문이다. 소문은 확인되지 않은 이야기임에도 여론과 대중을 선동하는 힘이 있다. 그 소문에 따라 언덕 위에 사는 노파는 마녀가 된다. 그리고 그녀가 우연히 발견하는 셀키. 바다표범 요정 또한 이 바닷가 마을에 도는 전설의 주인공이다. 가죽이 눈처럼 희다는 바다표범의 소문에 마을 사람들은 한순간 유행처럼 사냥에 뛰어든다. 그러나 몇몇 사람들은 ‘정령을 건드리는 것이 길하지 않은 일’이라는 점 또한 알고 있다. 하나의 셀키에 대한 양면의 소문은 요정에게 신비한 이미지를 덧씌우는 동시에 그를 향한 두려움을 조성한다.
사람들은 노파와 셀키에 대해 얼마나 알고 이런 소문을 퍼뜨린 걸까. 실상 마녀로 지목된 노파는 사람들과 섞이지 못했을 뿐이다. 그녀는 처음 본 청년 셀키를 정성껏 돌보아 그에게 생명을 준다. 오히려 마을 사람들보다 다정하고 따듯한 그녀의 모습에 요정 셀키마저 바다의 노래로 마음을 연다. 사람들은 셀키에 대해서도 완전히 무지하다. 그에게 아름다운 바다표범 가죽이 있는 것은 맞다. 하지만 전설에 따라 흰 가죽을 빼앗긴 셀키는 인간들의 지상에 영원히 갇힐 수밖에 없다. 그에게는 인간에게 해를 끼칠 마음이 없다. 오히려 바다표범이 인간에게 끼치는 재앙보다 인간이 바다표범에게 끼치는 재앙이 훨씬 크다.
작가가 설정한 이 소문은 전형적으로 ‘사람’이 스스로 무지한 영역의 존재들에게 어떤 왜곡된 이미지를 덧씌울 수 있는지를 보인다. 인간은 자신과 한 테두리 안에 속하지 않은 것들에 대해 생각보다 힘써 알려고 하지 않는다. 더 나아가 때로 그들을 유해한 것으로 여기고 멀리하거나 심한 경우 멸시한다. 만약 노파가 마을에 들어와 사람들과 평범하게 어울렸다면, 셀키가 애초에 인간이었다면 그런 취급을 받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경계 밖 약자의 연대에서 보이는 사랑의 투쟁은 스스로 주류라 칭하는 사람들에게 깨달음을 준다. 거창한 계몽의 목적이 아니더라도, 어떤 이유를 불문하고 객체로서의 타자를 주체로 호명하는 일이 어떤 이야기에는 운명적으로 필요하다.
〈눈의 셀키〉는 그 운명과도 같은 두 존재의 만남을 시작하기 전에 그들의 연대지점을 먼저 설정한다. 둘에게 필요한 건 지지자다. 마녀에게는 소문에 휩쓸리지 않고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바라볼 사람이, 셀키에게는 가죽을 노리지 않고 인간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해 줄 누군가가 있어야 한다. 바다에서 올라온 바다표범 요정 셀키에게는 인간 세계의 소문이 들리지 않았다. 마녀에게 셀키는 그녀가 처음으로 만난 편견 없는 눈을 가진 사람이었을 것이다. 셀키에게 마녀 역시 마찬가지다. 어쩌면 셀키를 바다표범이 아닌 인간의 형상으로 먼저 만나 그가 작살에 찔린 상황에 연민을 느꼈을 수도 있지만, 마녀는 청년이 셀키임을 알아차린 후에도 변함없이 그를 보호한다.
이처럼 그들을 배척하고 공격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사람들 틈바구니에서, 언덕 위에 지어진 작은 집은 마녀와 셀키의 쉼터가 된다. 어쩌면 이대로 살았다면 한동안은 괜찮았을 테지만 가죽을 찾아 돌아가고자 하는 셀키의 마음은 쉽게 사그라지지 않는다. 아련하고도 가슴 아픈 사랑을 더하기 위해 작가는 인간 중에서도 가장 악하고 탐욕스러운 인물을 설정한다.
“그녀는 안쪽 땅 백작령의 군주였으며 국서의 사촌 동생이자 유리 궁전의 왕이 총애하는 조카로 그녀의 몸에는 근친혼으로 켜켜이 쌓인 고귀한 피가 흘렀다. 머리칼은 피처럼 붉었고 값진 모피와 비단으로 만든 옷을 입고 허리춤에는 날카로운 장검을 차고 있었다. 그녀의 얼굴은 반짝이는 홍안이었으며 잘 균형 잡힌 몸은 그 신장이 2m에 달했다. 그녀는 승마와 검술, 전략, 그리고 결투에 능했으며 젊은이 특유의 불꽃 같은 혈기에 휩싸여 있었으나 때때로 눈 깊은 곳에서는 오직 정치와 전쟁에 평생을 시달리며 살아온 늙은이들만이 보일 수 있는 교활함과, 소용돌이처럼 꼬인 가계에서 비롯된 옅은 광기가 번뜩였다.”
〈눈의 셀키〉에서 보이는 이아람 작가 문장의 특징은 섬세한 묘사다. 몽환적인 분위기가 감도는 이 판타지 소설에 걸맞게도, 그의 문체는 정교한 한편 아름답다. 셀키와 마녀, 그들을 파괴하러 온 군주의 외형뿐 아니라 성격까지 날카롭게 해부하는 작가의 문장을 매만지며 독자는 보다 분명한 상상을 할 수 있다. 작가가 등장부터 길고 정확하게 그려내는 소설 속 대표적인 반동자는 백작령의 군주다. 주동자와 반동자로서 군주와 마녀는 셀키를 가운데에 두고 갈등을 벌인다. 마녀는 자신이 생명을 구한 셀키가 그저 목숨을 건지기를 바라고, 군주는 셀키의 가죽을 인질 삼아 그를 완전히 자신의 것으로 만들려 한다.
셀키의 가죽만 가진 군주와 셀키의 몸을 가진 마녀는 상대가 가진 나머지 부분을 되찾기 위해 애쓴다. 서로 상대의 것을 빼앗으면 되는 것 같지만 둘은 전혀 다른 목적을 갖고 있다. 군주는 셀키를 완전히 소유하기 위해 마녀의 집을 수색하고 마녀는 군주가 가진 가죽을 돌려받아 셀키를 자유롭게 놓아주고자 한다. 겉보기에는 절대 권력을 가진 군주와 힘없는 노파의 싸움이지만, 그 속을 들여다 보면 둘의 힘에 큰 차이가 없다. 마녀에게는 바다의 정령 셀키가 있기 때문이다. 그녀는 바다의 말을 할 줄 안다. 그러나 군주 역시 마녀의 집에 있는 책으로 그것을 눈치챈다. 셀키는 자신의 가죽이 있는 곳을 직감적으로 안다. 군주에게 그것이 있다. 지금부터 중요한 것은 타이밍이다. 군주가 마녀의 집에 들어와 수수께끼를 내는 장면부터 군주와 마녀, 셀키의 눈치싸움이 시작된다.
마녀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셀키는 제 몸과 같은 가죽을 찾기 위해 위험을 감수했다가 군주에게 잡힌다. 그러나 모든 것이 다 끝났다고 생각했을 즈음 마녀는 뜻밖의 도움을 받는다. 마을 사람들은 군주가 셀키를 뭍으로 데려간 이후의 재앙을 두려워한다. 그들과 마녀의 목표는 출발점이 다르지만 결국은 한 곳을 가리킨다. 마을 사람들은 그토록 경멸하던 마녀에게 처음으로 도움의 손길을 내민다. 물론 마녀는 마을 사람들이 그들의 안위를 위해 돕는 것이라는 걸 알아 잠시 분노하지만, 셀키를 구하기 위해서는 그들의 도움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아 동맹한다. 마녀는 바다의 말을 할 줄 안다. 그녀의 명으로 바다 생물들은 셀키를 구할 수 있도록 군주의 배를 망가뜨린다.
마을 사람들은 마녀를 괴롭히던 이들이다. 그들에게 마녀는 멸시해도 되는 사람이자, 약자였다. 하지만 군주가 마을에 당도한 이상, 셀키가 마을에서 발견된 이상, 마을 사람들 역시 이전처럼 안전한 생활을 보장받지 못한다. 이 겹겹의 층위 변화 속에서 궁지에 몰린 마을 사람들이 마녀에게 손을 내미는 것은, 한편으로 마녀의 도움을 구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들 역시 군주에게서 셀키를 구해야만 안전한 생활을 이어갈 수 있기 때문이다. 마녀는 그들에게 치를 떨면서도 위기에 처한 그들을 돕기로 결정한다.
그렇기에 마녀가 셀키를 구하는 장면은 극적이다. 마녀를 돕지 않던 사람들과 인간의 영역에 발 디딘 적 멊는 바다 생물들이 힘을 합쳐 그녀를 돕는다. 그러나 이 모든 노력에도 결말은 예상 밖이다. 군주는 마녀를 찌르고 셀키는 그의 가죽을 되찾아 바다로 떠난다. 그렇다면 마녀는 완전히 패한 것일까. 그녀에게는 셀키도, 목숨도 남지 않았으니 실패로 삶을 마무리한 것일까. 군주의 말대로 셀키가 마녀를 이용했을 뿐일까. 아니다. 작가는 그 싸움에서 명확히 마녀가 승리했음을 암시한다. 마녀는 군주의 조롱에도 자신이 느낀 온기와 사랑이 실제라는 것을 확신하며 눈을 감는다. 군주의 말은 틀렸다. 셀키가 자기를 돌봐 주던 마녀의 시신을 거두러 한 차례 돌아왔기 때문이다. 눈의 셀키는 추운 겨울, 자신을 구한 노파의 사랑을 잊지 않았다.
이 소설은 ‘소외’를 주제로 하지만 그것을 직접 드러내지 않는다. 소외는 아름답지 않지만 소외와 소외의 연대는 종종 아름답다. 그 아름다움이 환상과 맞부딪혀 어느 가상 마을의 요정으로 태어난다. 셀키는 인간도 바다표범도 아니었으나 그 둘 모두의 도움을 받아 자신으로 돌아간다.
군주가 처음 마녀의 집에 쳐들어가 냈던 수수께끼도 되돌아가 보자. 그 장면은 이 소설의 메시지를 강하게 함축하고 있다.
나는 사람의 마음을 홀리고 눈을 가린다. 나를 경애하고 원하지 않는 이가 없으니 시작부터 나는 귀했으며 끝까지 귀하리라. 손에 잡으면 무겁지만 목에 걸면 가벼우며 혀에 닿으면 고귀하다. 나로 만든 사슬로 묶으면 여자든 남자든 떠나지 못한다. 나의 이름은 무엇인가?
마녀는 이 문제의 답이 황금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뒤이어 이보다 더 오래된 답변은 ‘사랑’이 아니겠느냐고 덧붙인다. 황금을 좇던 것은 군주다. 군주는 셀키의 가죽과 능력으로 자신의 황금과 권력을 늘리려 한다. 그러나 노파는 다르다. 셀키를 만나 그에게서 감지되는 사랑에 마음이 홀리고 눈이 가려졌다. 사랑을 경애하고 그것을 원하는 마음에 셀키를 귀하게 여겼다. 한없이 무겁게 느껴지는 생명을 향한 애정에 때로 휘청였지만, 그것을 목에 걸면 한없이 가벼운 따스함이 그녀를 감쌌다. 인간의 것이 아닌 사랑의 말로 대화를 나눌 때 셀키와 노파는 고귀한 황홀함을 맛봤으며, 그 둘은 마지막까지 서로를 떠나지 못했다.
작가는 그 수수께끼로 군주와 노파의 미래를 점쳤다. 황금을 따르는 자, 더 오래된 진리인 사랑에 정복될지니. 황금이 사랑을 잠시 쓰러뜨릴지 몰라도 이야기는 사랑을 기억한다. 그 마을의 전설은 인간과 요정의 진실한 마음을 오래도록 노래할 것이다. 누구의 소유도 아닌 자연을 온전히 돌볼 줄 알던 한 상냥한 여자와 불길한 요정을 범해 미쳐버린 황금의 여인에 관한 전설은 이렇게 완성된다.
전설과 소문은 오늘도 눈발 흩날리는 바닷가 마을에 찬 공기를 타고 퍼진다. 바다의 동물들도, 마을 사람도 아는 그 노래는 부드러운 사랑과 날카로운 비명을 동시에 싣고 있다. 그건 황금에 꺾이지 않는 온기와 눈물의 짧은 연대기다. 바닷마을의 전설이 포말을 타고 수평선 위로 번져 나간다.
누구도 그 멜로디의 시작과 끝을 알지 못하는 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