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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상작품: 인형들 (작가: 장아미, 작품정보)
리뷰어: 0제야, 23년 8월, 조회 63

공장엔 작업등이 밤새 비추고

빨간 꽃 노란 꽃 꽃밭 가득 피어도

하얀 나비 꽃 나비 담장 위에 날아도

따스한 봄바람이 불고 또 불어도

미싱은 잘도 도네 돌아가네

 

노래를 찾는 사람들, 사계

 

사계절 동안 기계를 돌려야 하는 사람들이 있다. 꽃밭 가득 색색 꽃이 수놓이고 그 위에 나비가 앉아 꿀을 빠는 동안에도. 따스한 봄바람이 불다 그치고 무더운 여름이 와도. 낙엽이 지붕 가득 쌓이고 엄동설한에 고드름이 처마에 주렁주렁 달려도 공장에서는 사람이 돌리는 기계 소리가 끊이지 않는다.

삶이 기계와 같다는 말은 산업화 이후 시대를 막론하고 사용되었다. 공장이 세워진 초기, 조악한 장치들을 번거로이 돌리던 노동자들의 움직임은 기계와 사람을 구분할 수 없을 정도로 단조로웠다. 코미디언 찰리 채플린이 그의 영화에서 풍자했듯, 인간은 태엽의 부품 내지는 정교한 연장에 불과했다. 자동화가 아닌, 조금 속도가 빠른 수동 작업을 돕는 것에 불과했던 장치들은 다행인지 급속도로 발전했고, 지금은 생산의 전 과정이 매끄러워 보이는 최신식 공장이 이곳저곳에 앞다투어 지어지고 있다. ‘기계’라는 예스러운 말은 세련된 ‘로봇’으로 바뀌었고, 이제 비로소 인간에게는 자유가 주어지리라는 기대가 생긴다.

지금의 오락거리는 불과 한 세대 전의 사람들이 상상조차 할 수 없었을 만큼 다양하다. 그들의 생각을 총동원해도 예측조차 불가능했을 것들을 우리는 일상적으로 즐기고 있다. 생산성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 이제는 잉여 제품과 폐기물의 심각성을 걱정해야 하는 시대가 도래했다. 온 세계 사람들이 쓰고도 남음이 있는 기술과 자원, 생산 제품과 식량이 우리의 행성 곳간을 가득 채웠다. 이쯤 되면 인간의 궁극적 유토피아가 도래했다고 보아도 좋지 않을까. 노동하지 않아도 되는 세대. 비로소 자신의 이상을 실현하기 위해 ‘기계’에게 모든 생산을 맡기고 손을 떼는 인류가 탄생해야 마땅한 시점이다.

그러나 여전히, 전반적 세태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여가는 오히려 사라졌고, 빈과 부의 격차가 하늘과 땅을 넘어 벌어지고 있다. ‘독점’으로 인한 희생은 약자의 몫이고 몰이해와 몰상식이 세상을 잠식하는 중이다. 무엇보다 기술의 초고도화가 이루어진 지금, 다양한 놀잇거리의 존재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인생의 단조로움은 해소되지 않았다. 노동자가 쥐고 있는 미싱이 ‘키보드’ 내지는 ‘개개인의 업무 사정’으로 바뀌었을 뿐, 사계절 내내 같은 일상을 반복해야 한다는 점은 전혀 달라지지 않았다. ‘미싱은 잘도 도네 돌아가네’라는 서두의 인용 가사가 지금도 유효하게 느껴지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현대의 인간은 과거보다 더욱 ‘생명력’을 잃어가고 있다. ‘대체 가능성’과 맞물려 로봇, 기계, 물건, 부품 등으로 치환되는 목숨은 존엄과 배려가 없는 세상에서 쉼 없이 사그라진다. 하나의 목표를 위해 ‘단합’이라는 이름으로 동원되는 노동 인력에 계급을 매기고 생계에 필요한 최저의 임금을 주는 것이 기본이 된 지금, 노동 인력은 “개인이자 집단”이며 ‘좀비’보다도 운동성 없는 존재다. 그들의 단조로운 삶은 그 직무와 근무 환경에 관계없다.

‘우리’ 인간을 로봇이나 기계, 좀비와 맞바꾸는 것이 자존심 상한다면 귀여운 ‘인형’은 어떨까. 사람이 있는 한 인형 역시 존재해왔으니 비교적 최근 등장한 기계들보다는 친숙하지 않은가. 장아미 작가의 단편 소설 〈인형들〉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으로서 연대하는 공장의 여공들에 관한 이야기다. 그녀들은 다양한 불평등 앞에 놓여 있다. 여성과 인간으로서의 존엄이 동시에 지워지고, 남성과 권력 아래에서 무한히 미싱을 돌려야만 했던 그녀들. 아니, 그녀들은 현재에도 있다.

봉제 인형 공장에서 미싱을 열심히 굴려 “보드랍고 말랑말랑하고 폭신한” 것들을 만들어내는 여공들. 그녀들에게 ‘단단한’ 마음도 있었다는 걸 알리기 위해 한 글자 한 글자 적어 내려간 작가의 정성 어린 문장은 인형의 피부와 피부를 견고히 직조하는 실밥과도 같다. 다 같은 공산 인형 같지만, 그것을 깊이 들여다보면 모두 다른 것처럼, 공장의 사람들 역시 마찬가지다. 그들에게도 얼굴이 있고, 이름이 있고, 가족이 있고, 삶이 있다. 〈인형들〉은 모든 것을 잃고 인형이 되고 만 사람들이 아닌, 사람의 성정과 의식을 지키려는 진짜 존재들의 이야기다.

그들의 마음 역시 보드랍고 말랑말랑하고 폭신하니, 기계보다 조금 더 친숙한 ‘인형’이라고 불러도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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