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문단이 무척 유려하다고 생각해 읽게 되었는데, 제겐 좋은 소설은 아니었습니다. 성적인 긴장이 빈번히 발생하는 데에 비해 이에 뒤따르는 윤리적 갈등은 약했다 생각합니다. 여학생의 몸에 떠오른 멍자국이 암시하는 비극보다, 그 퇴폐미에 더 주목한 듯한 서사에 공감하기 어려웠습니다.
초임 선생과 문제아 사이에서 일어나는 사건. 이는 집단적 합의 사이에서 묵살되거나 당연시 되던 것들이, 그 합의에 영향을 받지 않은 외부의 관점에 의해 수면 위에 드러나게 되는 서사 방향성을 띈다고 생각합니다. 이 소설에서도 화자가 효연에게 유난히 관심을 가진 것은, 주변의 지나친 무관심에 반발하는 의미가 적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이는 독자에게 한 가지 의문을 남깁니다. 효연이 품은 문제 근본적인 원인에 학교라는 공동체는 얼마나 관여하고 있었는가? 학교는 효연이 겪고 있는 가정폭력의 공모자도, 그렇다고 방관자도 되지 못한 듯 보입니다. 작중 효연이 겪는 가정폭력의 스케일을 생각하면, 학교가 이 정도로 효연과 무관한 위치에 놓여있는 것은 작품의 핍진성을 흔든다고 생각합니다. 이 간극으로 인해, 효연은 가정 성폭력을 당하는 상황에서 주변과 큰 갈등을 빚지 않는, 납득하기 힘든 규모의 미지를 내재한 여학생이 됩니다.
한편 출결 상황이 나쁘고 친구와 어울리지 않을 뿐, 정서적으로 안정된 느낌을 주는 효연에게 큰 관심을 보이는 화자의 모습이 그리 부자연스럽게 느껴지지 않는 이유는, 효연이 선생으로서 화자에게 문제의식을 느끼게 하는 학생이라서가 아니라 피부에 비친 멍자국을 보인 여학생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여기서 이 소설은 줄곧 해소되지 않는 긴장을 남깁니다. 효연은 화자를 분명히 이성으로 의식하며 호감을 표시하고자 합니다. 이러한 의존성은 그녀가 품고 있는 문제를 재차 내비치고 강조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화자는 무언가 뚜렷하지 않은 스탠스를 취하고 있습니다. 서술하는 바를 보면 학생과의 불순한 관계는 생각지도 않는 상식인으로 보이는데, 그런가 하면 시선은 쭉 효연의 살갗, 비극적인 분위기에 머물러 있습니다. 만약에 이러한 서술과 더불어 화자가 내적으로 갈등하는 모습이 보여졌다면 모를까, 그런 모습도 보이지 않습니다.
장면 하나를 예시로 들어보자면, 비가 오는 날 흠뻑 젖은 여학생을 챙겨주는 전개는 전개로서 문제가 없습니다. 허나 그 과정에서 여학생의 바뀐 머리모양에 우선 눈길이 가는 것은 커다란 윤리적 문제가 있습니다. 그리고 거기서 발생해야 마땅한 긴장감을 묵살하고, 당연하다는 듯 멍자국으로 서술이 넘어가는 것은 구조적인 문제가 있습니다.
결말부에 효연의 내재하고 있던 비극이 화자에게 전달될 때, 그럼에도 불구하고 화자가 어떠한 큰 책임 없이 안전해보이는 것, 효연과 무관한 위치에 있는 듯 느껴지는 것은, 애초에 화자는 효연을 성적 대상화한 렌즈로 비추고 있으면서 조금도 저항감을 느끼지 않는 인물이었기 때문이라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렇게 된 것은 화자가 실제로 그런 인물이기 때문이 아니라, 작중에서 효연이 가진 비극적 사연과 성적인 어필 사이 구분이 너무 약했기 때문이라 생각합니다.
연민의 대상이 곧 애욕을 불러일으키는 사실 자체를 부정할 수는 없습니다. 효연의 젖은 머리카락, 살갗에 비치는 멍 같은 것에 눈길이 갈 수는 있지만, 이는 반드시 커다란 저항과 동반되어야만 한다고 생각합니다. 결과적으로 화자는 효연이 겪은 비극을 파도에 휩쓸리듯 그저 들을 수밖에 없었고, 해소가 없는 채로 그저 존재하기만 했던 비극, 또 앞서 그것이 암시되었던 효연과 바다의 이미지를 끝으로 작품이 마무리됩니다.
비록 그 이미지들의 존재의의에는 동의하지 않지만, 이미지 자체는 대단히 섬세하고 매력적이었다는 감상을 끝으로 평을 마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