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작가님. 작품은 잘 읽었습니다. 전반적으로 무난한 좀비물이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다만 이야기를 전개하는 측면에서 개인적으로 아쉬운 요소들이 있었고, 작가님이 자유게시판에 쓰셨던 글을 보면 특히나 그러한 부분들에 관한 의견을 구하고 싶어하셨던 것 같기에, 그와 관련된 대목에 집중하면서 감상문을 하나 써보았습니다. 제가 호러를 주로 다루기 때문에 작가님이 쓰신 작품 중 가장 긴 호러였던 이 작품을 골랐는데, 아무래도 초기작이다 보니까 제가 지금부터 말씀드릴 요소들이 이후 작품들에서는 이미 극복된 상태이거나 오히려 작가님의 고유한 스타일로서 승화되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은 듭니다. 그럼에도 제가 후속 작품들까지 전부 검토할 여력이 부족했기에, 오로지 해당 작품에만 집중해서 분석하였다는 점 먼저 말씀 드립니다.
일단 전술했듯이 스토리가 전반적으로 너무 무난하다는 인상입니다. 가까운 사람의 죽음, 가까운 사람의 좀비화, 좀비 스탬피드, 좀비로 가득 찬 도심, 잠입과 탈출, 생존자와 부상자 구출, 가까운 사람이 좀비화될 위기에 처하는 상황, 군인들, 미친 연구원, 좀비가 아닌 다른 종류의 괴물 등등 있을 건 다 있지만 너무 있을 것만 있습니다. 좀비물로서 이 작품만의 고유한 요소가 부족한 것 같습니다. 예를 들어 <부산행>은 좀비로 가득 찬 도심을 좀비로 가득 찬 KTX로, 총으로 좀비 잡는 군인들을 맨손으로 좀비 때려잡는 마동석으로 바꿔서 나름대로의 변별성을 확보하였고, <데드 얼라이브>는 좀비 아포칼립스의 규모를 한 집안의 일상으로 축소하고 슬랩스틱 코미디에 집중해서 변별성을 확보했습니다. 우리나라에서 나온 좀비 소설인 <대학로 좀비습격사건>만 봐도 이 작품에서 나온 요소 대부분을 가지고 있고요. 이 작품만의 고유한 요소는 무엇일까요? 로맨스…는 조금 아닌 것 같고, 진화와 관련된 설정이 그나마 눈에 띄는데 그것도 <바이오 하자드(게임)>에 나오는 타이런트의 설정과 유사합니다. 이 작품과 달리 진화가 아니라 생물병기를 만들기 위한 목적에서 탄생한 존재이고, 그렇게 만들어진 성공작이 인간에게 전혀 우호적이지 않다는 점은 다르지만 수많은 인간 중 성공작이 딱 한 명 나온다는 건 유사하게 느껴집니다. 표절이라는 이야기가 아니라 아주 고유하게 느껴지지는 않는다는 말입니다. 그래도 뇌의 열손상 설정은 나름 신선했습니다. 곰팡이를 바이러스로 변화시켰다는 부분은 무리수로 느껴졌고요. 그러나 좀비물을 즐기는 사람들 중에 좀비가 만들어지는 설정을 그렇게까지 진지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있을까, 하고 좀비 만들어지는 설정을 파고들기 좋아하는 저도 가끔 회의감을 느끼곤 합니다.
그리고… 인물들의 성격이나 행동동기가 다소 이입하기 힘겨웠습니다. 이 부분은 저도 많이 저지르는 실수이기는 한데, 그래도 부연해보자면, 일단 부모님이 호상으로 돌아가셔도 3일장을 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주인공은 자기 손으로 부모님을 죽여놓고 갑자기 몇 단락 후에 창수에 대한 연심을 떠올리고 있습니다. 부모님을 죽인 것도 직접적으로 공격을 받아서 어쩔 수 없이 죽인 게 아니라 공격을 ‘받을 것 같았기에’ 논리적으로(?) 자신을 방호하기 위해 얼른 죽인 것이고요. 당장 도시가 좀비 판이 되었는데 부모님이 계신 집으로 가지 않고 주인공을 따라다니기로 결심하는 창수라던가, 방금 전에 고백해놓고 엘리베이터에서 주인공이 재빠르게 대응 못했다는 이유로 갑자기 주인공에게 짜증을 내는 창수라던가도 그렇고, 백 중사는 왜 생전 모르는 주인공 일행들에게 그렇게까지 이타적인 걸까요? 왜 창수가 금방이라도 좀비가 될 수 있다는 걸 알면서도 생존자가 남아있을 수 있는 주거구역에 풀어놓았던 걸까요? 왜 연구소와 관련된 군사비밀을 면식도 없는 사람에게 말해주었던 걸까요? 창수와 주인공을 통해 병윤이라는 사람을 데려온다는 계획이 논리적으로 올바른 걸까요? 주인공 동생이 병윤이와 있다는 사실을 중사가 정확히 알았나요? 왜 군인들은 병윤이의 부모 앞에서 병윤이에게 마취총을 쏜다는 말을 미리 안 해주고 쏜 다음 말해주는 것일까요? 병윤이는 묶여있는데 왜 굳이? 물론 이들이 상황에 따라 실제로 존재할 수도 있는 인물상이라는 것은 인정합니다. 작품에서도 나름대로 그 부분에 대한 서술을 집어 넣고 있기도 하고요, 하지만 제 개인적으로는 이 정도로는 아직 설득력이 부족하다고 생각됩니다. 이러면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보이는 인물들이 이 세계관에서는 ‘자연스러운’ 것처럼 느껴지기 때문에 결국 세계 전체가 이질적으로 보여질 수밖에 없는 것 같습니다. 그 외에도 자기 계획을 친절하게 설명하는 악당은 너무너무 너무너무 흔해서 조심스럽게 사용해야 하죠…
마지막으로 저도 그렇고 다른 분들 습작에서도 흔히 보이는 실수인데 주인공이 조금 수동적인 듯합니다. 그저 상황에 반응만 할 뿐이고, 더 나아가서 계속 보살핌을 받고 위로를 받고 흥분하면 누가 진정시켜 주는 식으로 거의 아이 취급을 당하고 있습니다. 멋진 일은 남이 다 하고, 그나마 주차장에서는 활약하나 싶었지만 크게 실패하고요… 사실 주인공의 수동성 자체가 나쁜 것은 아니라고 봅니다. 호러 장르에서는 수동적인 주인공도 드물지 않으니까요. 하지만 좀비물처럼 인물의 행동이 주가 되는 괴수물에서는 수동적인 주인공이 환영 받기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다른 괴수물들을 보면, <에일리언 2>의 리플리는 항해사 출신이라 주변에 해병이 우글거리는 상황에서 수동적으로 굴려면 한없이 수동적일 수 있는 캐릭터인데 영화 내내 핵심적인 역할을 끝도 없이 하죠. 스필버그의 <우주전쟁>처럼 압도적인 전력차가 있는 경우라도 주인공은 뭔가를 하고요.
그 외에 중간에 갑자기 시점에 바뀌는 것은 보는 사람에게 어색한 인상을 주기 쉬운 것 같습니다. 웹소설에서는 드물지 않게 보이는데, 그것도 주로 초점을 두는 인물이 바뀔 때 그러는 것이고요. 하지만 이 작품에서는 1인칭이던 3인칭이던 초점은 혜진에게 가 있는 것 같습니다. 이후 나오는 연구원의 계획과 그 배경을 독자들에게 좀더 용이하게 제시하기 위해서 3인칭으로 전환하신 것 같은데…, 뭐 그렇습니다.
또 상대적으로 지엽적인 문제이지만 짤막한 반전들을 위해 개연성을 희생하는 부분들이 좀 눈에 걸렸습니다. 앞서 마취총이라고 말 안하고 쏴버리는 군인들도 그렇고, 좀비가 엘리베이터 버튼을 누르는 것도 행동이 제시되는 시점과 ‘좀비가 첨단 기계를 사용할 수도 있다’는 기술이 명시적으로 제시되는 시점이 너무 떨어져 있어서 꽤 오랜 시간 동안 ‘개연성이 파괴된 것처럼’ 느껴집니다. 그리고 이 개연성이 망가졌다는 느낌은 작품에 몰입하는데 부정적으로 작용하고요. 이후에 그 설정을 활용하는 부분도 없어서 해설 부분도 그냥 변명처럼 어쩔 수 없이 들어간 문장처럼 보이는 것 같습니다(창수와 같이 지능을 가진 개체가 나타날 수 있다는 복선이었을까요?). 변신 후 주인공 앞에 처음 나타난 창수가 말을 안 하다가 나중에 갑자기 말을 하는 것도 반전을 위해서 억지로 상황을 만든 것 같은 인상을 주었습니다. 그리고 신 연구원이 주인공들에게 방독면을 던져주는 부분 말인데, 결국 주인공들을 골려 주려고 그랬다는 게 나중에 드러나지만 주인공들 입장에서는 여태까지 ‘바이러스 감염이 진화라서 아주 좋은 것이다’라고 말하던 연구원이 ‘떡 하나 준다’면서 방독면을 주는 게 무언가 모순처럼 느껴지지 않았을까요? 사실 저는 그랬습니다. 이것도 제 시점에서는 앞서 엘리베이터 때의 문제처럼 ‘한 동안 개연성이 파괴된 것처럼’ 느껴졌기 때문에 굳이 숨겼다 나중에 펼쳐낼 설정은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그렇다고 미리 알려줘서 나을 것도 없었지만, 최소한 ‘이 행동에 무슨 음모가 있다’는 암시 정도는 주거나 주인공들 입에서 이 행동에 대한 의혹 정도는 제시되었어야 독자가 혼란스럽지 않았을 것 같습니다.
뭔가 이것저것 말했는데, 좀비 러쉬 부분은 긴박하게 잘 쓰였던 것 같습니다. 어쩌면 좀비물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이 아닐까 싶습니다.
진지하게 감상문을 써보기는 했지만 아무래도 주관적인 분석인 만큼 여기서 말씀 드린 제 의견이라는 것이 다 틀린 것일 수도 있으니, 잘 취사선택하셔서 이후 글 쓰시는데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