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격이 없는 줄은 알았다만 이정도로 없을 줄이야!!! 감상 브릿G추천

대상작품: 자격없는 너에게 (작가: 소금달, 작품정보)
리뷰어: Mast, 23년 1월, 조회 48

남자는 바깥에 나가 돈을 벌어오고 여자는 편안하게 집에서 애만 보면 된다.

라는 말 들어본 적 있으신가요?

오해하지 마세요! 제 생각이 아니라 저도 주위에서 들어본 말이니깐요.

한시대를 풍미했던 정제되지 않은 무지의 시대.

경제활동에 비해서 당장 돈이 되지 않는 가사일과 육아를 은연중에 얕잡아보는 인식이 지배하였던 사회에서 아이를 돌보는 여성의 사회적인 입지는 자신이 전담하는 업무에 비례하여 한없이 낮고 가벼웠을 겁니다.

그러니까 위와 같은 말을 서슴치 않고 지껄여도 수긍하고 넘어가는 분위기가 팽배했던 거겠죠.

그런데 과연 아이를 돌보는 일이 정말 위의 말대로 손쉽고 복에 겨운 일일까요?

그럴 리가 없죠.

아이를 기르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망가질대로 망가진 몸을 돌볼 겨를도 없이 붓고 욱신거리는 가슴에서 모유를 짜내는 엄마와

밤이고 낮이고 구분없이 울음을 터뜨리는 갓난쟁이.

배가 고파서, 기저귀가 축축해서, 따가워서, 가려워서, 추워서, 더워서, 그냥 심심해서 등등 온갖 이유와 핑계를 대고서 고장난 자명종 시계마냥 울어재끼는 아이를 어르고 달래가며 우쭈쭈 주쭈쭈…

돌을 맞이할 때까지 부모는 평균 30일만큼의 수면시간을 포기해야 한다는 통계치가 존재하는 만큼 육아란 포성없는 전쟁, 인간적인 욕구를 희생하여 신체과 정신을 철저히 갈아넣는 소모전입니다.

그렇다면 이 전쟁은 과연 언제서야 끝나는 걸까요?

태어나서 1살까지를 영아기, 1살에서 3살까지를 유아기, 3살부터 6살까지를 학령전기, 6~12살을 학령기 등등 성장단계별로 이름을 붙인 도표상으로 보건대 최소한 초등학교 저학년 수준은 벗어나야지만 그나마 여유랄게 생기지 않을까요? 아이를 키워본 적이 없는 입장에서 감히 추측하자면 10년은 봅니다.

10년이라… 그야말로 장엄한 대서사시가 아닐 수 없네요. 그 과정에서 벌어지는 경력단절이나 업무 배제 등등 개인적으로 겪기 마련이며 보상받지 못할 데미지는 덤이고요.

제 아무리 좋은 제품, 지원금, 세제혜택, 국가에서 고용해주는 도우미 서비스 등등을 붙여놓은들 손이득 따지기가 빠릿빠릿한 요즘 세대의 사람들에게 출산 후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육아란 불합리하기만 한 불공정 거래로 밖에 비쳐질 수 밖에 없을 겁니다.

물론 육아를 두고 이득과 손해의 개념을 첨가하는 건 여러모로 불경한 일(그렇게 생각됩니다)입니다. 하지만 본격적으로 저출산성 국가멸망 레이스를 달려나가고 있는 나라에 올라탄 국민의 입장에서 감히 입을 열자면 말이죠. 우리는 어쩌면 그 어느때보다도 철저하고 계산적으로 아이를 낳고 기름의 문제에 대해서 터놓고 이야기해야 하는지도 모릅니다.

이야기가 샜습니다. 소설에 대해서 이야기하도록 하죠.

 

소설 ‘자격없는 너에게’는 무책임적이고 이기적인 남편을 둔 주인공이 독박육아(배우자나 다른 사람의 도움 없이 혼자서 어린아이를 기르는 일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에 시달린 끝에 철저하게 흑화를 한다는 줄거리의 창작물입니다.

 

소설에서 등장하는 주인공의 남편 ‘호야 아빠’는 빈말로도 쉴드를 쳐주기가 어려운 인물입니다. 이인간은 정말로… ‘이기적이며 자기중심적이다’라는 주인공의 평가가 찬사라고 느껴질만큼 어마무시한 빌런이에요. 왜 이런 사람을 선택해서 결혼과 출산이라는 인생의 중대한 출사표를 던지게 된 건지 의아할 정도로 참담하고 찌질한 인간입니다.

이 갈아먹어도 시원치 않을 인물의 악행을 몇 가지만 나열해보자면 술마시고 노느라 진통이 와 출산을 하는 아내의 연락 안 받기, 아이가 태어나자마자 자기만 홀라당 지방으로 전근가기, 자기는 모르겠다며 100일잔치 계획 떠넘기기, 그리고 주인공의 복직을 요청하는 회사의 전화를 자기 마음대로 퇴직처리하기(무려 사장으로부터의 전화였습니다. 주인공이 꽤나 능력자인 모양이군요) 등이 있습니다.

심장을 비틀리더군요. 누군가 이 자식을 죽여줘! 하고 소설을 읽으면서 열이 뻗친 건 참 오래간만이었습니다.

주인공은 신체와 정신적으로 피폐해져갑니다. 홀로 울며 보채는 아이 달래랴, 집안일을 하랴… 잠은 사치입니다. 자기 관리는 고사하고 운동을 하지 않아도 20키로 이상이 빠져버리는 그야말로 짐승같은 삶. 그리고 어느 순간에 이르러서, 구체적으로는 퇴사처리 사건을 기점으로 주인공의 인내심은 바닥을 드러내고 분노의 온도는 임계점을 돌파해버리고 맙니다.

아내의 의사도 묻지 않고 자기 마음대로 퇴사처리를 시키는 건 정말 선을 넘었죠. 넘어도 씨게 넘었습니다(그런데 사장님은 남편 말만 듣고서 주인공을 놓아버리는 건가요? 적어도 본인의 의견은 들어봐야 하는 거 아닌가요? 복직 요청을 하기 위해서 직접 전화를 걸 정도로 주인공이 출중한 재원이라는 가정하에 약간의 의문이 드는 대목입니다).

그리하여 주인공은 모든 것을 포기합니다. 그리고 남편에게, 자격없는 무임승차자이자 그녀 인생에서 아마도 가장 강력한 대적자인 호야 아빠에게 잔인한 복수를 감행합니다.

이야기의 막판에 소소한 반전(이야기를 뒤집어 엎는 그런 종류의 반전은 아닙니다만)요소가 곁들여졌습니다만 극의 흐름을 크게 바꿀만한 요소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아니, 오히려 시선에 따라서는 빡침의 수위를 한결 끌어올린다고나 해야할까요?

그런 능력이 있었으면서 이 모든 실수와 잘못들을 저질렀다고???

라는 물음표가 백만개하고도 1천 18개를 띄울만한 능력이 호야 아빠에게는 있었으니 혹시나 이 글을 먼저 접하시고서 소설을 읽으시는 분들이 있다면 기대하시길.

재밌게 읽었습니다.

주인공의 복수가 진심으로 성공했으면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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