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을 읽으면서 뭔가 익숙한 단어와 인물들이 등장한다 했더니 일전에 감상을 남긴 바 있었던 아 빛이여 빛이여와 세계관을 공유하는 글이었습니다. 유월회, 보헤미안, 지설하…
덕분에 이야기에 대한 이해는 좀 더 쉬웠고 이야기에 대한 접근성은 좀 더 좋았습니다. 익숙함 속에서 읽어내려간 글은 그 시대 치열하게 살아간 사람들의 이야기이자, 그들의 사랑이야기입니다. 잘난 두 사람. 평범한 한 사람. 지켜 볼 수 밖에 없는, 그러나 그 무대 위 조명 아래에 한 번쯤 같이 서보고 싶은 마음.
그들의 사랑이야기는 어찌보면 매우 흔한 이야기입니다. 어쩌면 누구나 한 번쯤 거쳐갔을 그런 이야기일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그들이 살아가는 시대는 흔하지 않고, 그래서 익숙한 것의 낯선 변화가 이야기를 좀 더 이채롭게 만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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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해보면 어찌보면 그녀는, 상희는 그저 보다 특별해지고 싶었던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태생부터 무대 위의 주연배우와 같은 두 사람은 누가 보기에도 썩 잘 어울리는 한 쌍입니다. 반면 상희는 평범한 외모에 평범한 인생을 살아가는 그늘진 곳의 조연과 같습니다. 그저 바라보는 것이 최선. 이라고 스스로에게 몇 번이나 말하지만 이따금 그 무대에 한 번쯤은 같이 서 보고픈 마음을 지울 수 없습니다. 누구나 특별해지고 싶은 마음은 있으니까요. 호진과 재옥 사이에 다툼이 있을 때마다 복잡한 심경이 되는 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그렇기에 독립운동에 가담합니다. 그렇기에 마음을 숨기지 못합니다. 그녀가 그녀 어머니에게 했던 ‘반항’을 포함하여, 그녀는 평범을 거부하고 특별해지고자 합니다. 그녀는 좀 더 대담해지고, 가장 격렬한 순간에 일선을 넘어버립니다.
하지만 호진이 기억하는 설탕 두 스푼의 의미는 상희가 생각했던 것만큼 깊지 않았고, 그 순간 그녀는 원래의 자리로 돌아오고 맙니다. 마치 오 헨리의 단편소설 마녀의 빵에 나오는 미첨과 같이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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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번 실컷 운 뒤 상희에게 남은 건 다시 이어지는 일상입니다. 경성부청이 폭발한 그 사건은 마치 호진과 있었던 일과 같이 그렇게 흘러 지나갔고, 어제와 같은 오늘이 반복될 것이라는 것처럼 이제 다시금 혜령의 공부를 보아주어야 합니다. 하지만 그렇게 일상으로 돌아가는 상희의 베게 밑에는 여전히 그의 장갑이 남아있습니다.
과연 호진의 마음은, 설탕 두 스푼의 무게는, 상희의 마음은, 장갑에 남아있는 마음은, 어떻게 이후에 이어질까요. 글은 여기서 확실히 맺음짓지 않고 잠시 멈추어 독자들의 상상에 맡겨집니다만, 덕분에 글을 다 읽고 난 뒤의 맛이 나름 씁쓸한 커피 한 잔의 느낌과 같이 독자들에게 진한 여운을 남겨준다는 생각을 해보게 됩니다. 이상 설탕과 장갑 감상글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