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능성의 우주라고도 말할 수 있는 평행 우주는 사랑을 말하기에 얼마나 적합한 이론인가. 당신이 얼마나 사소한 확률로 나와 맺어졌는지, 내가 얼마나 미미한 가능성에 기대어 당신에게 글을 쓰고 있는지 설명하는 데는 두어 줄이면 충분하다. 이 우주에서는 내가 당신에게 글을 쓰고 있지만, 저 우주에서는 나와 당신 중 하나가 없을 수 있고, 또 다른 곳에서는 나와 당신이 모두 없을 수도 있다. 이 지구라는 곳에서도 수많은 사람이 꿈틀거리는데 하물며 나와 당신이 만날 확률은 천지의 운을 다하여야 계산이 가능하지 않을까. 스치듯 지나는 것도 인연이라지만, 마음과 마음이 맺어지는 데에는 우연보다 깊은 필연이 조금이라도 개입되어야 한다는 당신에게. 그리고 손에 쥔 그 짧은 서신의 기원과 행방을 궁금해하는 당신에게 꼭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
그 안에 쓰인 건 완전한 우연의 중첩으로 맺어진 깊고도 슬픈 사랑-이야기다. 사랑 이야기라고 가볍게 읽지 말고 사랑-이야기라고 발음해 보는 건 어떨까. 그래. 사랑을 장음(長音)으로 발음하는 거다. 이야기 앞에 사랑을 가볍게 붙이지 말자. 바람 불면 날아갈 감정으로 여기지 말자. 한때 이 지구에 범람했던 가벼운 위로라든지 짧은 단어들로 치환하지 말자. 왜냐하면 이 사랑-을 담은 편지는 불명의 수취인을 향해 우주에서 배달된 것이기 때문이다. 지구를 떠난 지 십 년도 더 지난, 유효기간 없는 사랑-이 동봉된 이 편지를 당신이 그냥 지나치지 않았으면 한다. 이 편지는 수취인 불명이다. 당신은, 안타깝게도 복잡다단한 평행우주 속에서 단 한 곳의 지구에 잘 도착했지만, 어딘지 잘못 착륙한 편지를 주운 것뿐이다. 당신에게는 어쩌면 이 편지를 누군가에게 전해줄 의무가 있다.
왜냐하면, 당신이 이 행성에 살아남은 마지막 지구인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이 세기의 마지막 우편배달부인 당신이 이 편지를 전달할 ‘가능성’을 매겨보도록 하자.
불명(不明), 분명(分明)
이름이 쓰이지 않은 이 편지는 다양한 확률을 점친다. 발신인을 ‘나’, 수신인을 ‘너’라고 할 때 ‘나’는 ‘너’를 사랑-하고 있다. 그러나 이 사랑-은 확률게임이다. 지금부터 게임을 시작해보자. 이 도박에는 ‘나’와 ‘너’가 참여한다. ‘나’와 ‘너’는 문자 그대로 표현되는 두 명이 아니다. 무한한 평행우주 속’ 생존하는/생존하지 않는’ 그 모든 ‘나’와 ‘너’가 이 게임의 참여자다. 그들 중 얼마는 일찍 죽었고, 얼마는 오래 살았다. 얼마는 사랑을 겪었고, 얼마는 사랑하지 못했다. 얼마는 땅이 있는 지구에 살고, 얼마는 땅이 없는 지구에 산다. 얼마는 지구에 살지 않고, 얼마는 지구에 산다. 얼마는 남자고, 얼마는 여자고, 대부분은 남자와 여자 모두 아니다. 얼마는 자신의 행성을 사랑하고, 얼마는 자신의 행성을 사랑하지 않는다. 얼마는 원하는 것을 이루었고, 얼마는 이루지 못했다.
이쯤 되면 당신의 머리에는 ‘얼마’라는 단어만 의미를 잃은 채 동동 떠 있을 거다. 아직도 말하지 않은 ‘얼마’가 많이 남았지만, 가장 중요한 ‘얼마’의 확률을 하나만 더 말해야겠다. (사실 이 앞의 모든 ‘얼마’는 잊어도 좋다. 당신이 나를 향해 눈살을 찌푸리며 지면과 데이터를 낭비했다고 해도 할 말은 없다.) ‘나’와 ‘너’의 대부분은 서로 만나지 못했으며, 얼마는 잠시 스쳤고, 그중 얼마가 서로에게 호감을 느꼈고, 그중 얼마가 사랑-을 경험했다. 아주 진하고 분명한 사랑을.
그중 한 쌍의 ‘나’와 너’에 관한 이야기가 당신 앞으로 배달되었다. 당신은 이 편지가 한때 존재했던 로맨스 SF 소설의 일부라고 생각할는지 모른다. 하지만 이 편지는 둘의 로맨스(이것도 ‘로맨-스’라고 길게 발음해볼까)에서 전부에 해당한다. 이 시간대와 이 공간대의, 이 행성에서 5092일 떨어진 ‘나’와 이 행성에서 끝내 살아남지 못한 ‘너’가 경험한 사랑의 전부가 편지에 쓰여 있다. 둘은 얇고 가벼운 종이 위의 메시지를 통해 연결되어 있다. 그중 한 사람, 특별히 수취인이 사망했다는 걸 아는 당신에게 이 소통은 일방향적으로 보이지만 명백히 쌍방향이다. ‘나’는 편지를 보내는 행위를 통해 ‘너’에게도 있었던 사랑-을 감지하기 때문이다. 만약 ‘너’의 사랑이 없었다면 ‘나’의 사랑도 없었을 것이기에 이 편지는 완전한 쌍방향의 소통이라 할 수 있다. 그러니 당신은 이 편지의 목적지를 궁금해 할 것이다. 우편배달부에게 수취인과 주소는 생명과도 같으니까.
하지만 나는 불명확한 이야기를 좀 더 하고 싶다. ‘나’는 자신의 이름도, ‘너’의 이름도 밝히고 있지 않으니까. 애매하고 모호한 말을 쓰는 데에 몇 줄을 더 할애하고자 한다. 이 분명했던 사랑이 5092일이나 떨어져야만 했던, 그리고 ‘나’와 ‘너’가 앞으로 만나지 못하는 이유를 당신에게 설명하고 싶다. 그래야만 내 손에 들린 수취인의 이름과 주소를 건네줄 수 있을 것 같다.
이 편지의 목적지는 지구, 그리고 수취인은
생각만 해도 아파서 부를 수 없는 이름이 있다. 세상의 이별 중 어느 하나 아프지 않은 것이 있을까. 짧은 편지 속에서 ‘나’가 ‘너’의 이름을 부르지 않는 이유에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그리고 당신이 이 편지의 불명확함에 마음이 조급한 것도 알겠지만) 내 생각에는 이 편지의 사랑-에 슬픔-이 연결되어 있는 것 같다. 사랑-도 슬픔-도 감각하기에는 추상적으로 보인다면 조금은 구체적으로 말해야겠다.
‘너’의 죽음을 충분히 애도하지 못한 채로, 사실 ‘너’의 죽음이 닥치지 않은 과거에 지구를 이미 떠난 ‘나’는 평생을 다해 ‘너’를 애도할 것이다. 충분히 소화되지 못한 슬픔-이 ‘나’의 모든 문장에서 묻어나오고 있다. 그리고 끝내는 그 슬픔이 완전한 사랑-편지의 표면을 뒤덮는다. ‘너’는 폭격으로 죽었다고 했다. 지진이나, 해일이나, 운석이나, 공룡의 난동이 아닌 ‘폭격’. 폭격은 발음마저 파열하는 소리로만 이루어져 있다. 편지를 주운 당신은 ‘폭격’이 인간에게서 시작되었다는 걸 모르지 않을 것이다. 폭격이란 끔찍한 인재(人災)의 한 종류라는 것을 분명히 알 것이다.
‘너’의 부재로 인한 슬픔-은 폭격에서 비롯되었다. 어느 평행우주에서는 ‘나’와 ‘너’가 살아있으리라지만, 그 가능성과 확률로 ‘나’가 버티고 있다지만, 그리고 그 희박한 확률 속에서 사랑-을 이룬 그들은 지금도 못내 행복해하겠지만, 당신이 주운 이 편지의 세계에서는 그렇지 않다. 아무리 사랑-의 가능성이 시공간을 넘어 남아 있다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평행’한 모양이다. 그 행복이 우리의 지구를 침범하는 일은 없다. 이 우주에 살아있는 ‘나’는 아직도 슬프다. 그 슬픔은 사람이 만든 것이다. 나와 당신이 발 디딘 ‘지구’라는 행성에 사랑-이 부족했기 때문에 슬픔이 발생했다. 폭격은 다수를 죽인다. 아마 폭격을 하기로 결정한 사람은 폭발로 죽은 모두를 개인적으로 알거나 끔찍이 미워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오히려 폭격의 주체는 피해자인 그들을 전혀 모를 확률이 높다. 가해자는 부정형의 추상을 증오한 나머지, 실체의 사람들을 무참히 죽였다. 그는 나라를, 정치를, 이데올로기를, 싫어했을 수 있으나, 폭격은 그와 대부분 전혀 상관없을 사람들의 목숨을 뺏었다.
‘나’는 그 증오의 광경 안에 자신의 애인을 두었다. 그리고 우주로 떠나왔다. 우주선을 증오하는 사람은 없었으므로 ‘나’는 살아남았다. 그러나 이 생존은, 이 행운은 누구를 위한 것이었을까. ‘나’에게는 어떤 구체적인 공격도 닿지 않았지만, 그는 지구에서 발사된 응축된 증오심을 거칠게 떠안았다. 그리고 지구에서 애도하지 못한 만큼, 평생을 깎아 슬픔의 조각을 빚고 있다.
이제 당신은 이 편지의 내용이 오직 사랑-만으로 이루어진 것은 아니라고 확실히 이해했을까. 이 편지가 당신에게 닿은 것 역시 우연에 우연을 거듭한 기적의 필연이라는 걸 알아챘을까. 누구에게도 향하지 않는 듯했던 ‘나’와 ‘너’의 익명성이 사실은 모두를 향하고 있다는 걸 깨달았을까. 그렇다면 이제 5092일의 미세중력을 거쳐 날아와, 지구의 대기권 마찰에도 소멸하지 않은 이 기이하도록 견고한 편지의 목적지와 수신인을 밝혀야 할 때가 된 것 같다.
이 편지의 목적지는 지구. 그리고 수취인은 (증오하는, 증오를 견디는, 폭격을 하려는, 폭격을 견디는) 모든 ‘사람’이다. 이 편지는 사랑-이 없어 미움만 남은 지구로 날아든, 응축된 마지막 다정(多情)이다.
마치며
불명不名의 편지가 지구에 도착한 건 순전히 가능성의 확률게임이었다. 그 편지에는 수취인에 관한 어떤 정보도 쓰여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원인 불명不明의 편지를 전달해야 하는 당신은 이 편지에 어떤 내용이 쓰여 있는지 분명 봤을 테다. 그것에는 둘러싸는 봉투도, 주소도, 당연히 이름도 없기 때문에 당신은 당황했을 것이다. 그러나 황폐한 땅 위에 살아남은 모종(某種)의 생명체, 이 글을 보고 있는 당신이여. 어쩌면 불명의 수취인을 대신해 이 다정한 편지에 답장하고 싶은 당신에게, 이제 비로소 가능성의 이야기를 하고 싶다. 이것은 우주가 발생하거나 발생하지 않은 어느 평행의 시공간에서, 우연에 우연을 거듭한 확률로 지구에 닿은 정성의 마음이니. 사랑과 이별은 필연이 아닌 찰나의 가능성이 아니겠는가. 그러니 우리 한번 이 잔인한 현실을 깊이 상상해보자.
태초에 사랑이 아직 도착하지 않은 지구라는 행성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