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레가 우글대는 이 곳은 – 지옥도 감상 브릿G추천

대상작품: (후안 유니버스) – 지옥도 (작가: 엄성용, 작품정보)
리뷰어: dorothy, 17년 4월, 조회 199

. 지극히 주관적인 리뷰입니다.

 

부장의 부정(不正)은 주인공의 부정(否定)적 태도로, 또 부정적 상황으로 치닫게 된다. 부정이 탄로난 부장은 괜히 부하직원에게 폭언을-월급 도둑, 회사를 좀먹는 좀벌레라며– 퍼붓는다. 그로 인해 하루종일 기분이 나빠있던 부하직원은 사소한 일에도 짜증을 표출한다. 지하철 계단 앞을 막아서는 여자에서부터, 구걸하며 바짓가랑이를 잡고 늘어지는 노숙자에게까지. 그는 자신이 당한 폭언에 폭행까지 얹어 애꿎은 사람에게 되돌린다.

되로 주고, 말로 받는다. 좀 큰 –구둣발만한-됫박이긴 했지만서도, 불 꺼진 역사의 화장실에서 노숙자들에게 둘러싸인 채 쪽가위로 찔리며 협박받으리라고는 생각지도 못했을 것이다. 그것도 ‘내’가 보기엔 한없이 하찮아보이는, 사회를 좀먹는 좀벌레들에게.

이 작품의 제목은 「지옥도」지만, 내용은 벌레가 우글대는 벌레판이다. 회사 사람들은 이과장의 불륜 소문에 대해 수군댄다. 필시 ‘벌레 같은 자식’이 되었을 것이다. 벌레가 된 이과장은 주인공을, 주인공은 노숙자를 제 멋대로 벌레로 만든다. 노숙자 무리는 주인공을 다시금 벌레로 정의한다. 순찰하던 역무원에겐 스스로가 벌레같이 산다, 한 번만 봐달라 애걸한다. 먹이사슬은 없다. 단지 모두가 벌레일 뿐.

 좀이라는 벌레를 직접 본 적은 없지만 무척 기분 나쁜 어감의 곤충이라는 건 안다.

(중략)

그런데 평범한 삶을 영위하는 지극히 보통 사람인 내가, 왜 이들과 동급 취급을 당해야 하지? 엿 같은 이 과장은 나를 좀으로 취급했다. 그도 어차피 더 위에서 내려다보면 한낱 보잘 것 없는 존재일 뿐인데.

(중략)

사실 진정한 벌레 같은 존재들은 길바닥에 눌러 붙은 거지새끼들과 노숙자 무리 아닌가. 적어도 내 생각은 그래.

(중략)

내가 잘못한 것은, 벌레 하나를 밟은 것 밖에 없는데.

필시 독자 가운데에서는 주인공에게 공감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폭행을 했다 뿐이지, 딱히 틀린 말은 아니잖아?’ 라고 생각할 지도 모르겠다. 주인공은 단지 운이 없었을 뿐이고, 이건 소설이니까. 이어지는 상황 역시,

 협박과
상해까지 더해져 저들은 구제 불능이다, 라는 인식을 준다. 그래, 작가는 독자로 하여금, 다시금 그들을 <벌레>로 보게 만든다. 맞다. 소설 속이 되었든 현실이 되었든, 누군가를 벌레로 비유한다는 점에선 지옥도가 따로 없다.

나비 효과. 베이징에서 나비가 날갯짓 한 번 하면 뉴욕엔 태풍이 몰아친다는 그 이론이 뜬금없이 생각나는 것은 주인공의 백일몽 탓일 것이다. 이과장이 불륜을 하지 않았더라면,  주인공을 벌레취급하지 않았다면… 꼬리에 꼬리를 무는 일련의 사건들은 발생하지 않았을 터였다. 하지만 작가는 무자비하게 말을 건넨다. -만약은 없어.-

벌레가 판치는 이 지옥도에서 살아남는 사람은 누구인가 싶지만 아무도 없다. 그도 그럴것이, ‘사람’은 단지 백일몽 속에만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 피로 얼룩진 결말을 맞은 이 작품엔, 단지 바닥을 기는 좀벌레만이 있을 뿐이다. 입맛이 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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