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작품은 제목과 같이 서울이라는 대도시에서 대조적인 삶을 사는
A와 S 두 사람의 모습이 그려진 이야기입니다.
작품 분류에 호러라고도 쓰여 있었지만 무섭다기보다는 지금 시대를 사는
도시인들에게 익숙하고 담담한 이야기였습니다.
회사원 A는 효율적이면서 소모적이지 않은, 도시인에게 익숙한 삶을
보여줍니다. 일견 정 없고 무감각해 보이지만 자기 유지를 위해 활동과
외부에서 받을 자극을 최소한으로 줄여 들어갈 체력을 절약하는 거죠.
사회에서 쏟아져 들어오는 정보들을 최대한 선별해 받아들이는 A는
상호나 음식 이름을 잘 기억하지 못하고 사람을 전봇대라고 생각합니다.
쉬는 날은 맥주를 마시고 유튜브를 보고 누워서 귀차니즘을 즐기는
나름대로 익숙하고 소소한 직장인들의 스트레스 해소법으로 보내고요.
극단적이지만 익숙하고 이해할수 있는 삶의 모습이라고 생각합니다.
밴드에서 베이스를 연주하는 다른 등장인물 S는 주위에 관심이 많고 활동적
입니다. 부지런히 돌아다니며 많은 것을 보고 느끼려고 하고 타인의 말과 시선에
신경쓰며 집요하게 보일 만큼 모든 사람과 교류하려고 하는 붙임성과 도전정신,
탐험심이 넘치는 사람입니다.
쉬는 날에는 넘치는 활력으로 종일 ‘임의로 정한 아무 곳’으로 떠나는 여행과
탐험을 즐기는, 친구에게도 이상하다고 불리는 취미를 가지고 있어요.
A가 [극단적인 아싸] 라면 S는 ‘왜 그런 행동을 하지?’ 싶은 [슈퍼 인싸] 일까요.
A는 필요 이상으로 움직이지 않고 세상에 기대하지 않는 사람이라면 S는 모든 것에
의미를 부여하고 연결되려는 사람인데 둘의 유형이 다르다 보니 S의 행동이 A에게
부담 주는 것을 넘어 다소 위협적으로 보이는 부분이 있어 불편하기도 했습니다.
현대인이 만남과 접촉을 줄이는 이유 중 하나가 안전을 위해서이기도 하니까요.
읽는 도중은 S가 어떤 사람인지 정확히 알 수 없고 작품분류에 호러라고 적혀 있어
그가 지도로 탐험한 곳들, 인왕산 같은 곳에 신체 일부를 묻고 다니는 붙임성 좋은
살인자일지 모른다는 반전을 약간 기대했었는데 그냥 인싸였네요.
현대사회를 살기 위해서 필요하고 적응하기 좋은 생활 방식은 A의 것이라고
생각했었습니다.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니 둘의 성격이 달라 생활 방식의
차이가 두드러진 것이지 S의 생활도 나름대로 나쁘지 않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사람 많은 대도시에서 많은 사람의 세파에 시달리며 몇 번의 시행착오를 거듭하고
자신에게 맞는 효율적인 태도와 방식을 찾아가는 일은 적응이고 성장일겁니다.
사회성 떨어져 보이는 A의 생활방식 역시 자신에게 맞는 최적의 태도 선택한 것이겠죠.
S도 세상과 부딪쳐서 점점 부서지고 아파하면서 마모되는 과정을 겪으며 A와 다르지만
자신에게는 알맞는 생활방식을 계속해서 찾아내리라 생각이 듭니다.
짐짓 멈춰 보이는 두 사람이지만 환경에 맞춰 계속 바뀌고 변화해 갈 거라고요.
100명의 사람이 있다면 100개의 다른 삶이 있고 모두 분리된 존재입니다.
비관적인 엔딩으로 보이지만 실제로 사람들은 다른 사람에게 대해 별로 관심이 없고
성장은 원래 아픈 것이라니까 이것이 아마 현실적인 모습이고 한 단면이겠지요.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