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리뷰는 ‘좀비보호구역’의 일부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지금까지 나온 좀비를 소재로 한 무수히 많은 소설, 영화, 만화들의 공통점을 하나 꼽아보라면 바로 ‘식량’이 가장 중요하다는 것일 겁니다. 사실 이 이야기는 정말로 당연한 소리인 것이, 인간은 물이 없으면 일주일을 못 버티고 에너지를 낼 수 있는 수준의 열량이 보장된 식사가 없으면 한달을 못 버티도록 설계된 존재입니다. 내구도가 연료 떨어지면 그대로 바닥을 치게 만들어진 생명체니 식량의 주기적인 보급은 자연스레 중요한 문제로 떠올랐습니다. 예시로 집 밖에 나갈 수 없을 정도로 큰 자연재해가 다가오고 있다는 예보가 나오면 대형 마트의 식료품 코너가 싹쓸이되는 것도 바로 이 맥락이라 생각합니다. 그리고 이 연장선으로 아무리 좀비 아포칼립스가 픽션에 (아마도) 일어날 일 없을 대재앙이라 쳐도 어쩌면 거의 유일무의하게 현실에 기반하고 있는 사항이 바로 식량에 관한 일입니다.
작품 상의 배경은 좀비 사태가 어느 정도 정리된 시점을 기반으로 전개됩니다. 백신이 개발되어 ‘좀비증’에 걸린 사람들도 치료 가능할 수준에 이르렀지만 행정 시설 복구가 3개월 전부터 진행되었을 정도로 마냥 좋다고 보기에도 애매한 상황입니다. 이 시점에서 주인공은 어느날 문득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생각하게 됩니다. 아무리 상황이 정리되고 있다 하더라도 아직 위험이 도사리는 판국에 ‘아아’는 너무 과분한 생각이라 여기려던 찰나, 주인공의 단골 카페 ‘야옹이’가 재개업을 했다는 연락이 오게 됩니다. 다시 찾아간 ‘야옹이’는 이전과 거의 비슷했습니다. 굳이 좀비 사태 이전과 다른 점을 찾아보자면 쌀 4키로와 맞먹는 가격의 값비싸진 커피, 그리고 손등에 토성 문신이 있는 남자로 주인이 바뀌었다는 정도였습니다. 불친절한 사장에 주인공은 다시 오지 않을 것이라 마음 먹지만 한달 뒤, 다시 ‘야옹이’에 방문하게 됩니다. 좀비증에 걸렸다 백신을 맞고 치료 중인 ‘트친’을 위한 커피를 사기 위해서 말입니다.
이 글은 좀비에게서 생존하는 것이 목표가 아닙니다. 오히려 작중 상황은 좀비 사태가 완벽하게는 아니어도 어느 정도 정리가 된 상황입니다. 하지만 그렇다 해서 좀비 사태에 대한 언급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초반부에 나온 재난문자, 재난지원코인 등 한국적인 상황으로 사람들이 사태에 어떻게 적응했고 어떻게 살아 나가는지를 압축적으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자칫 늘어날 수도 있는 부분에 대해 간결하게, 하지만 비슷한 상황을 겪어본 사람으로써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게 표현한 대목이 굉장히 영리하게 설정한 부분이라 생각합니다.
사실 커피는 좀비 아포칼립스 시대에 필요없는 식품 중 하나라 생각합니다. 일단 이뇨증상을 유발하는 것도 그렇고 충분한 체력 보충을 위해서는 양질의 잠이 필요한데 커피는 그것을 가로막는 요인이기 때문입니다. 주인공이 그런 것을 모르지는 않을 것입니다. 어쩌면 글을 읽는 독자보다 더 잘 알 사람이라 생각합니다. 그럼에도 커피를 찾는 주인공의 심정이 이해가는 이유는 일종의 향수병 때문에 그런 것이라 생각합니다. 커피는 작업을 하면서, 일을 하면서 많은 사람들이 즐겨 마시는 음료 중 하나입니다. 그런데 그것을 하루 아침 새에 못 마시게 된다면? 그리고 오랜 시간이 흐른 후에 마실 수 있는 기회가 생긴다면? 누구든 금단현상 때문이 아니더라도 주인공처럼 카페 재개장 연락이 왔을 때 냉큼 달려갔을 거라 생각합니다. 때문에 이런 맥락으로 저는 글을 읽으면서 오랜 시간 해외에 머무르는 사람들이 고향 음식을 그리워하는 것과 비슷한 맥락이라 이해를 했습니다. 조금은 틀을 벗어났지만 ‘커피’라는 소재로 독특한 좀비 아포칼립스의 표상을 그려내신 것에 재밌었다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