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귀신을 위한 변명 공모(감상) 브릿G추천

대상작품: 혐오스러운 방관자 (작가: 임가비, 작품정보)
리뷰어: 루주아, 20년 6월, 조회 84

잘 봤습니다. 재밌게 잘 쓰여진 소설이었어요.

TV속 프로파일러의 인터뷰를 통해 연쇄살인마의 특징을 언급하여 긴장감을 조성하고 마지막에 회수하는 것이 인상적이었습니다.

배경을 잘 활용했다고 말해도 좋을까요? 첫 문장에서부터 색채감이 넘치는 글이어서 더 몰입해 읽었습니다.

시맨트-살구색 피부-피-검푸른 안개

첫 문단에서 시각적 요소들만 뽑아 봤는데요.

단순하게는 회색과 생기 죽음의 요소가 대비되어서 좋았고, 소설의 전체적인 구성과 함께 생각해 보면 이 도시가 회색조의 단조로운 시멘트 건물들 사이에서 생기를 가진 살구색 피부를 가진 사람이 너무나도 쉽게 깨지고 닮아서 피범벅이 되어 검푸른 안개로 들어갈거 같은 그 느낌이 압축적으로 들어가 있어서 좋았어요.

그렇지만 소설에 하나 빠진게 있는거 같은데, 가해자는 어디에 있을까요?

물론 이 작품은 방관자에 대한 이야기니 가해자에 대해 묘사하는 것이 집중을 흐트릴 여지가 있지요. 그렇기 때문에 소설에서 가해자가 나오지 않는것이 이상하단 생각이 들지는 않아요. 그렇지만 소설을 다 읽고 나니 방관자를 이렇게나 부각시키는게 오히려 가해자를 가리는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드네요.

기본적으로 가해자가 있어야 피해자가 생기고 방관자가 생기는게 아닐까요.

작품은 방관자의 최후를 묘사하지만 이를 통해 가해자를 성공적으로 지워냅니다. 심지어 피해자도 일부 지워내는거 같아요.

주인공은 총 세번의 방관을 하지요. 마지막 방관이 자신에게 돌아오는 구조고요. 그 세번의 사건에서 가해자는 어디에 있을까요?

우리는 학창시절 가해자에 대해서 정보를 얻을 수 없어요. 의사는 면허가 정지되었다고 짧게 언급됩니다. 하지만 그것도 의사에 대한 단죄보다는 그 집단에 대한 단죄처럼 느껴져요. 공익제보자 조차 손가락질 받았다고 하니까요. 선미의 일상이 부셔진건 말할 것도 없고요

물론 의사가 잘못했죠. 그렇지만 이렇게 쓰이면 간호조무사가 잘못한건가? 하는 생각이 들어요. 권선징악 인과응보 사필귀정 보다는 그런데 정말 간호조무사가 공익제보를 하지 않았다면 그냥… 그대로 가는건가? 하는 생각이 드네요.

심지어 마지막 연쇄살인마는 마치 단죄자인 것처럼 묘사되요. 작품 내내 선미를 단순한 방관자가 아니라 혐오스러운 방관자로 그려냈고, 이 작업이 대단히 성공적이었으니까요. 그렇지 않아도 어떤 초자연적 재해처럼 느껴지네요. 물론 가해자를 정당화 하는 서사가 있었다면 더 불쾌했겠지만, 그게 그렇게나 자연스러운 어떤 현상인가요.

민수는 주인공이 이기적이라 비난하네요. 물론 선미가 영주의 눈 앞에 있으니까요. 심지어 그때 손을 내밀어준 고마운 친구인데 배신한거잖아요.

주인공이 가지는 혐오스러움에 대해 생각해 봤는데 물귀신에 가까울거 같아요. 자신을 위해 손을 뻗어준 고마운 친구를 자신이 있을 자리에 쳐박고 탈출한 물귀신. 아마 성형외과에서도 공익제보자가 없었다면 자기 자리에 또다른 희생자를 박아두고 탈출했겠죠.

하지만 그때 가해자일 사람들은 어디에 있을까요? 아니 그 사람들은 대체 누구일까요. 알 수 없네요.

단순히 주인공이 약해서 그런가 하는 생각도 해 봐요. 공익제보를 하고 방관 대신에 고발하고 그런 강함을 말하는게 아니라 권력이나 근력같은 그런 강함과 약함이요. 가해자보다 주인공이 약하니까 가해자를 비난하는 대신에 주인공을 비난하는게 아닌가. 범죄를 저지르는 의사보다야 내부고발을 강행하는 간호조무사가 훨씬 더 강한 인간이죠. 하지만 사회적 지위 등을 생각해 보면 의사보다 간호조무사가 약자일 수밖에 없고, 그래서 자연스럽게 간호조무사를 비난하게 되는거 아닌가.

그러니 당연히 가해자일 학창시절의 왕따 주도자보다, 성폭행 의사보다, 연쇄 살인마 보다 거기서 가만히 있었던 주인공을 비난하는게 아닌가. 그들의 가해는 자연스러운 것인데 왜 방관은 비난받아야 하는 걸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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