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마이걸의 노래 <다섯 번째 계절(SSFWL)>을 들으며 이 리뷰를 썼다. 처음 이 소설을 읽을 때는 서술이 슬프다고만 생각했다. 노래를 들으며 천천히 다시 읽다 보면 따뜻한 아름다움이 보였다. 반복해서 읽을 수록 더 아름다웠다. 다른 독자분들도 노래 <다섯 번째 계절(SSFWL)>을 들으며 작품과 리뷰를 읽어보길 권한다. 필자의 해석이 상세하게 들어있으니 소설 <다섯 번째 계절>을 반드시 먼저 감상하고 이 리뷰를 읽어주면 좋겠다.
“나는 신을 해고했어. / 신이 무용했기 때문이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에 가깝다.” 해고는 계약 관계를 끝내는 것이다. 계약은 서로 주고 받는 것을 규정하는 것이다. ‘나’는 신을 해고했다. 신은 전능하기에 사랑을 계약으로 주고받을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신이 ‘나’를 사랑할 적에 신은 ‘나’가 유혹을 이겨내는 것을 해냈기 때문에 신이 상을 준다고 했다. 그 사랑은 죄를 만드는 사랑이다. ‘나’는 신을 해고했다. 더 이상 이 계약관계의 사랑을 구하지 않는다. 사랑을 서로 떠나보내기 위해 신은 스스로 죽었다.
‘나’는 ‘당신’을 만나고 찾은 사랑에 대해 생각한다. 그리고 ‘당신’은 ‘당신’만의 방법으로 악조건 속에서 사랑과 행복을 찾는다. 이 소설은 ‘나’가 ‘당신’과의 이야기를 생각하면서 진행된다. 추운 겨울에도 사랑으로 그 다음 계절을 생각하는 이야기.
너인 듯해 내 맘에 새하얀 꽃잎을 마구 흩날리는 건
너인 듯해 발끝에 소복하게 쌓여가 또 쌓여가
그리고 넌 작은 싹을 틔워 금세 자라난 아름드리
짙은 초록의 색깔로 넌 내 하늘을 채우고
그리고 넌 작은 나의 맘의 지각변동은 너로부터
난 달라진 것만 같애
걸그룹의 무대 동선을 생각한다. 일상과 비일상의 경계를 노니며 좋아하는 춤을 추는 것은 쉽지 않다. ‘나’는 몸을 통제하는 데 능숙하지 못해 춤을 출 때 백스텝을 밟게 된다. 게다가 춤은 오직 독무라고 할 수 없다. 독무 뿐인 춤은 불쌍한 발레리나 오르골일 뿐이다. 타인과 함께 춤을 추다보면 타인과 자꾸만 부딛힌다. “그 모든 일에도 불구하고 어쩔 수 없이 그러하게 되는 일”로 인해 사고가 발생한다. 여기서 “제대로 된” 사람이라면 아름다운 춤을 이어나갈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당신’의 악조건은 살아가는 지반에 수렁을 만든다. 이는 더욱 돌이킬 수 없는 죽음과 병증의 조건을 만든다. ‘당신’은 너무나 조용한 곳에 혼자 서있고 곁엔 쉴 수 있는 공간이 없다. 여기에서 ‘당신’이 자신을 구성하고 행복을 찾는 것은 가능할까?
‘나’는 연인인 ‘당신’ 앞에서 가면을 잡고 웃어보인다. ‘나’는 가면 무도회를 좋아하지 않는다. ‘나’는 걸그룹의 무대 동선을 생각한다. 서툴지만 타인과 함께 몸을 통제하고 평소에는 그럴 리 없는 방식으로 몸짓하는 것을 좋아한다. 그러나 ‘당신’을 위해 ‘나’는 영원히 구경꾼밖에 될 수 없는 가면 무도회, 부르주아지의 가면 무도회를 따라한다. ‘당신’은 사람들 속에서 몸짓하는 것에 이미 실패했기에. ‘당신’은 인간과 인간을 이어대는 실타래를 본다. 포함되지 않고 관조할 뿐이다. 하지만 ‘당신’과의 연결에 애쓰는 ‘나’도 사실 실타래를 볼 줄 안다. ‘나’ 역시 실타래의 연합에 속하지는 못했다. 그렇지만 ‘당신’은 오만하고 ‘나’는 ‘당신’에게 이를 지적하지 않는다. ‘당신’은 연인인 ‘나’가 미약한 실타래로 엮여 있음을 지나치게 슬퍼하며 거기서 위안을 얻는 듯 하다. 모든 걸 보고 있다고 믿고 있지만 사실 중요한 것을 하나도 보지 못한다. ‘당신’은 그래도 회복을 원한다. ‘당신’이 스스로 나사와 볼트를 조이고 눈에 인공 윤활제를 떨어뜨리며 연인인 ‘나’에게 웃어보인다. 애쓰고 있지만 이 시간은 밖에서는 찰나이다. ‘당신’의 단절의 시공에서 서로 웃어보이는 건 지반이 무너진 ‘당신’이 살아가기 위해 ‘나’가 준비한 가면 무도 단막극일 뿐이다.
정갈한 휴식을 보장하며 작별하고 ‘당신’은 연인의 부재를 알게 된다. 무용을 하는 연인과 떨어져 홀로 남은 ‘당신’에게는 춤이 아닌 어릴적 구령대의 목소리만 남는다. 상황은 급격히 악화된다. 마음 속 집착과 정념이 그의 연인을 인질 삼아 유발하는 위협적인 군집체, 흔하디 흔한 이야기들에서 나올 듯한 구형 군집체가 ‘당신’을 집어삼킬 듯 하다. 여기서 ‘당신’은 연인인 ‘나’가 ‘당신’ 스스로의 취약함이고 트리거라고 생각한다. ‘당신’의 고난은 ‘당신’이 모를 뿐 그렇게 단순한 문제가 아니다. ‘당신’은, 아름다움을 가지고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고 있는데도, 너무나 경도가 높은 다이아몬드여서 살갗에 은칠하려는 사람을 견디지 못한다.
무대에서 ‘나’는 가감없는 가벼운 몸직으로 남성의 발레복을 입은 ‘당신’에게 다가간다. ‘당신’의 검은 토슈즈가 핏물을 흘리고 있는데도 망설임이 없다. 그렇지만 오필리어를 추억하며 햄릿의 단도를 만지작거리는 걸 본 순간에는 ‘나’는 흰자위의 실핏줄이 터지며 달려가 그만두라고 외친다. ‘당신’은 자신의 곤란에 빠져 주변의 마음을 둘러보지 못한다. 뜨거운 눈물을 왈칵 쏟으며 말리는 연인에 “과장된 모습이 우습다, 라고 당신은 생각”한다. 잔혹한 상황이다. ‘당신’은 악의 없이 ‘나’를 기만한다. 곤란에서 도망치기 위해 도우려 하는 연인에 책임을 넘긴다. “당신은 말한다. 제발 나의 고통을 부풀리려는 모든 시도를 그만둬!” ‘나’도 여기서는 기만에 대해 참지 않는다. “너야말로! 아뿔싸, 진심으로 당신은 그 모든 것이 아무렇지 않다고 생각하는 건가?” 악조건, 악조건, 더 심한 악조건이 계속 이어진다. 이렇게 ‘당신’과 ‘나’ 사이에 순간, 단지 ‘나’가 ‘당신’을 일방적으로 받아내기를 처음으로 거부했다는 이유만으로, 일어난 균열을 우주는 비웃는다. 이를 느낀 ‘당신’은 무대의 연단과 함께 박살이 난다. 애써 나사와 볼트로 수복하던 신체, 완전히 무너지고 볼트 몇개가 굴러온다. ‘당신’을 그리워하고 세계의 불합리함과 그 일부인 ‘당신’을 슬퍼하며 ‘나’는 눈을 감는다.
신을 해고하고 ‘나’가 신의 품을 떠났을 때 인간의 세상은 황야였다. 황야의 것들을 사랑할 수 없었지만 황야의 이들과 이어지지 않았다는 그 이유로 ‘나’에게는 에덴이 시원이 될 수도 없었다. 다만 사랑하는 것은 연인이었다. “나의 사랑하는 연인의 손을 굳게 잡”으며 드디어 연결이 생긴 ‘나’는 소설의 후반에서 ‘당신’의 에덴 정원 옆 유리 온실의 ‘이브’가 된다. 처음 연인과 악수를 나눈 순간에는 ‘나’가 열심히 발레를 추던 토슈즈가 긴 리본만 바닥에 늘어뜨리며 버려져 있었다. 연인(‘당신’)을 사랑한다는 것은 황야의 것들을 받아들인다는 뜻이었다. 그러나 ‘당신’은 단절만을 느낀다. ‘당신’의 단절은 신을 해고하고 에덴에서 추방당하지 않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단절을 참을 수 없는 ‘당신’은 에덴 정원에서 혼자 신의 놀이를 하려 했다. 엉킨 실타래를 발견하고, 이를 풀고자 했다. 아무리 척척 해내도 온전히 정리하지는 못했다. 아무리 스스로 단절된 존재라 생각한다고 해도 ‘당신’은 신이 아니다. 어쨌든 인간인 존재는 너무 길고, 많고, 복잡하고 지저분한 실타래를 완전히 정리하고 관조할 수 없었다.
그 순간을 맞춰 악이 다가왔다. “너의 연인은 너의 외로운 싸움을 실낱만큼도 알지 못하지. 과연 너의 연인이 영육을 다 하여 너를 사랑하는 것이 맞을까?” 악의 목소리는 ‘당신’이 감당해야 하고 ‘당신’이 파괴하려 하고 ‘당신’을 파괴하는 구형 군집체를 언급한다. ‘당신’의 단절을 생각하며 연인을 포기하라고 속삭인다. 그러나 ‘당신’은 악의 목소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 공동을 품고 있고 지쳐있다. “어쩌라는 것일까? 내 뇌는 비었으니 다시는 찾아오지 마.” 연인이 ‘당신’ 몫의 온갖 정념들을 대신 감당하는 것은 알지 못한 채 ‘당신’은 악을 물리쳐낸다.
한편 신의 놀이를 하며 단절로부터 쉬던 정원에 물이 부족했다. 에덴 정원은 유리 온실의 이웃집이다. 유리 온실에 인공 수도 시설이 있다. 이제 ‘당신’은 빛바랜 사진에서 한없는 물(사랑)을 뿌리던 ‘부모’를 찾지는 않는다. 지금 ‘당신’은 유리 온실에서 끌어온 인공 수도 밸브를 조절하며 능숙하게 유리 온실에 물을 뿌린다. ‘나’는 유리 온실의 ‘이브’다. ‘이브’는 만들던 뜨개옷을 풀어내기에 몰두한다. 면류관에 손을 다치는 역할이다. ‘당신’이 묻는다고 무슨 할 얘기가 있겠는가. “그 모든 일에도 불구하고 어쩔 수 없이” 기꺼이 감당하는 일인 것을. 그저 재료가 거칠어서 그럴 뿐이다. 이 와중에 신께서는 뭐 하고 있나. 신은 신성의 체계 정비에 몰두하고 있지만, 신의 죽음에서 말미암은 에너지가 ‘나’가 뜨개옷을 만들고 풀어내게 한다. 영원은 인간과 인공에서 잘 회복되어 돌아가고 있다. 신이 죽었는데도 혹은 신이 죽었기 때문에. 결국 알고리듬의 연속체다. ‘이브’는 인간은 참 안쓰럽다고 생각하며 연인을 바라본다. 빛바랜 사진에서 ‘당신’은 통각이 차단된 채 물놀이를 즐겼다. 눈물이 흐르는 순간들이었다. ‘당신’은 이 눈물이 그리운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이제 ‘당신’은 직접 인공의 윤활제를 눈에 떨어넣는다. ‘당신’도 조금씩 신을 해고하고 있는 걸까? 혹은 신의 에덴에서 자신을 기어이 구성하고 있는 걸까?
‘당신’이 사랑(물)을 뿌리자 손에서 시작되는 실바람이 사랑스러운 ‘연인’을 향해 이어진다. ‘당신’은 이렇게 스스로의 악조건 속에서 사랑을 찾는다. ‘연인’, 즉 ‘나’는 작은 방(유리 온실)에 수천 개의 하얀 가면을 도열했다. 뇌가 비어있는 ‘당신’이 악을 물리치는 동안 ‘당신’ 몫의 정념들을 대신 느끼기 위해, 걸그룹의 무대 동선을 그리지 않고 가면 무도회를 구경하려 하는 ‘당신’을 사랑하기 위해 연인인 ‘나’에게는 수천개의 하얀 가면이 필요하다. ‘당신’은 유리 온실의 문을 닫는다. ‘이브’의 온실에서 안식하기 위함일까? 물을 뿌리고 갈 뿐 ‘당신’은 온실에 머무르지 않는 것일까? 어느 쪽이든 ‘당신’이 밤의 온실의 ‘이브’까지 볼 수 있을 것 같지는 않다.
‘나’는 밤의 온실속에서 발레를 추었다. 머무르지 않고 유리 온실의 문을 닫고 나간 ‘당신’은 믿어지지 않을 것이다. 서툰 동작을 멈추지 않고 ‘나’는 홀로 노래를 부르며 발레를 추었다. 그렇게 영원히 사랑을 모르리라 체념했던 ‘나’는 자유를 가졌다. 사랑을 이해하고 어딘가에 소속되고 스스로를 증명하려는 곳곳에서의 계약은, ‘나’가 신을 해고한 순간 사라졌다. 그리고, “신은 나를 해고했어”. 신 역시 ‘나’가 악을 이기고 오기를 원하며 상을 준비하지 않는다. 드디어 죄악을 만드는 사랑의 계약관계가 끝났다. 이제 “나는 미소지으며 신에게 안긴 채, 그에게 사랑한다고 고백”한다. 이제 ‘신’은 ‘나’에게 악을 이기기를 요구하지 않고, ‘나’는 ‘신’에게 영원한 사랑을 상으로 받으려 하지 않는다. ‘나’가 ‘신’을 해고했을 때 ‘나’는 “아직은 장마철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신’도 ‘나’를 해고했을 때 선캐쳐는 풍경의 단아한 종소리를 내고 세찬 비가 폭포처럼 쏟아진다. 소설의 끝에서는 장마철이 아닐 지도 모른다. 때에 따라 시작되었다가 끝나는 장마철은 끝났을 지도.
꼭 분명한 건
사랑이면 단번에 바로 알 수가 있대
헷갈리지 않고 반드시 알아볼 수가 있대
이제 난 그 사람이 누군지 확신했어
Lalalalalalala 네가 내게 피어나 아지랑이처럼 어지럽게
Lalalalalalala 네가 내게 밀려와 지평선 저 편에서 천천히…
‘나’는 악조건에서 사랑을 찾아냈다. ‘나’는 연인인 ‘당신’을 사랑한다. ‘나’는 뇌를 비우지 않고 ‘당신’의 정념을 감당하고 있다. 그래서 악 앞에서 ‘나’는 홀몸이다. 그렇게 ‘나’는 ‘당신’을 사랑하고 ‘당신’은 ‘나’의 사랑을 수도 밸브로 빌려 물을 에덴 정원에 뿌린다. 소설의 도입에서 너무도 조용한 곳에 서 있던 ‘당신’에게 ‘나’는 곁의 쉴 수 있는 공간이 되었다. ‘나’와 ‘당신’은 기어이 행복을 구성했다. ‘나’는 ‘신’과의 관계를 해고하고 ‘신’ 앞에서도 혼자가 되었다. 이제 황야였던 이들의 세상에는 사랑이 폭포처럼 쏟아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