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호의 꽃

  • 장르: 로맨스, 역사 | 태그: #가상역사 #조선 #로맨스
  • 평점×5454 | 분량: 78회, 2,432매 | 성향:
  • 가격: 68 10화 무료
  • 소개: 오랑캐의 무리가 북방을 잿더미로 만든지 3년. 한양에선 밤거리를 떠도는 저승사자의 소문이 파다하다. 남모를 비밀을 간직한 소녀 이솔, 잔치 준비를 돕던 그녀는 한밤중이 되어서야 귀... 더보기
작가

默湖의 꽃과 로맨스와 갈등 감상 브릿G추천

리뷰어: 주렁주렁, 17년 9월, 조회 215

버터칼 작가의 [묵호의 꽃]을 42화까지 다 읽은 첫 인상은 굉장히 부지런하고 능숙한 소설이란 점이었다. 사건을 단계적으로 계속 배치해 소설이 지루할 틈이 없다. 또 그 과정에서 가상역사(조선이 배경이긴 하다) 동양풍 로설에서 나타나기 쉬운 단점 – 동양풍 분위기를 강조하기 위해 오만가지 단어에 한자(漢字) 병기 – 이 거의 드러나지 않고 있다. 배테랑인가 싶을 정도로 때로는 과감하게 중요치 않은 단어 한자 병기를 안 하고 진짜 중요한 사람 이름, 단체 이름 등만 한자 병기 함으로써 독자의 시선을 분산시키지 않을 뿐 아니라 나아가 독자에게 이 소설에서 진짜 중요한 키워드가 무엇인지를 각인시키기 까지 한다. 이 부분이 혀를 내두를 정도로 능숙하다.

 

사건이 부지런히 벌어진다는 점에서 히트 로설인 [성균관 유생들의 나날]이 떠올랐다. 그 정도로 [묵호의 꽃]은 부지런하다. 단계별로 사건이 발생하고 캐릭터 수도 천천히 늘어난다. 촘촘하고 우왕자왕하지 않는다. 또 양반 자제인 남주가 변장해서는 밤마다 악의 무리 진상을 파헤치려는 부분에서는 얼마전 히트한 드라마 [구르미 그린 달빛]이 떠오르기도 했다. 사건을 진행하는 방식에선 전자가, 캐릭터 설정에선 후자가 연상됐다. 차이가 있다면 두 작품은 남장여주 설정인 반면 [묵호의 꽃] 여주 ‘솔이’는 시종 여자로 등장한다는 점이다.  그녀는 능력을 증명하기 위해 가면을 쓸 이유가 없다. 왜냐면 솔이는 보통 인간에게는 들리지 않는 소리를 듣는 초능력을 태어날 때부터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녀의 능력을 알아본 사람들에게 그녀는 중요한 도움을 줄 수 있기에 남의 구원을 바라는 수동적인 캐릭터로도 전락하지 않는다. 솔의 고유한 ‘능력’은 계속해서 소설에 생기를 불어넣는다.

 

로맨스 소설의 특징으로 흔히 꼽히는 점이 ‘해피엔딩’ 결말이다. 두 주인공은 서로의 사랑을 확인하고 두 사람의 사랑에 방해물을 제거하고 맺어지고 행복하게 잘 살았다. 로맨스 소설, 특히 한국 로설에서 반드시 지켜야 하는 철칙은 ‘두 주인공’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일부일처제’이다. 장르로서의 로설에서는 일처다부제나 일부다처제가 존재할 수 없다. 반드시 일부일처제로 결론이 나야하고 그렇지 않다면 그 로설은 성립될 수 없다. (물론 배테랑 작가가 쓴 로설 중 이 일부일처제란 제한을 부숴버린 책이 있긴 하다만 워낙에 특수하고 충격적인 예라 논외로 한다.) 때문에 [묵호의 꽃]에는 또 하나의 갈등이 자연스럽게 생긴다. 가상 역사이긴 하나 우리가 아는 조선이 배경인 한, 천민인 솔과 양반인 남주 사이에는 절대 이루어질 수 없는 신분 차이가 존재한다. 이게 현실이라면 솔이 첩으로 들어가면 되나, 앞서 말했듯 로설 철칙인 ‘일부일처제’에서 이 결론은 불가능하다.

 

이 신분 차를 제일 잘 알고 있는 사람이 바로 여주인공 ‘솔이’다. 그녀는 수시로 옆집 오라버니를 ‘나리’로 부르고 양반집 자제들에게 깍듯하게 호칭하고 이들과 싸워봤자 천민인 자신의 밥줄이 끊길 뿐이라고 말한다. 누구보다 솔이가 제일 잘 안다. 소설안에서 솔이가 신분을 자각하는 장면은 빈번하게 등장한다. 때문에 솔은 개인적인 비밀을 밝혀야 하고 남캐와의 사랑도 확인해야 하며 그와 동시에 이 신분 차이를 극복해야 한다.

 

[성균관 유생들의 나날]에서는 이름만 양반이더라도 어쨌든 여주도 양반이었다. 세자저하와 천민 여주의 사랑이야기인 [구르미 그린 달빛]은 둘이 여전히 사이좋게 지낸다는 열린 결말을 해결책을 삼았다. 그래서 나는 구르미 경우는 중반에 이미 죽을 고비를 넘긴 세자가 실제론 죽었고 이후 내용은 세자의 꿈이라고 해석하는 방식으로 결말을 납득포기했다.  [묵호의 꽃]이 어떤 방법으로 이를 해결할지는 모르겠다. 왕이 솔이를 면천시켜줄 수도 있겠고, 두 사람이 다 포기하고 청나라 같은 타국으로 넘어갈 수도 있겠고, 아니면 열린 결말일 수도 있겠고….이 갈등을 앞으로 어떻게 해결할지가 [묵호의 꽃] 결말의 완성도를 결정하는 열쇠라고 본다.

 

[묵호의 꽃]은 부지런하고 능숙하면서 또 경쾌한 소설이다. 이 부지런함과 능숙함이 간혹 익숙함으로 다가와 클리셰의 답습으로 느껴질지도 모르겠다. 내가 초반에 성균관과 구르미를 떠올린 것처럼. 그러나 41화에 도달하면 작가는 이 익숙함을 다시 한 번 비틀면서 반전?을 꾀한다. 궁중 로맨스의 향기가 느껴진다고나 할까. 가령 [해를 품은 달]과 같은 궁중 로설의 특징은,

  1. 남주인 왕(혹은 세자, 왕자)의 왕권이 약한 반면 반역 세력의 힘이 큼
  2. 1번 상황이 남녀주인공의 사랑 완성에 강력한 위협이 됨

물론 [묵호의 꽃] 주인공이 왕이나 세자는 아니다만 궁중 로설의 지류랄까 변주를 41화에서 느꼈다. 그래서 상당히 흥분했다.

 

현재 [묵호의 꽃]은 42화까지 올라왔고 아직 한참 연재중이며 앞으로 한참 더 가야한다. 로맨스의 향방은 일찌감치 결정났다만(로설팬이 지루하지 않게 수시로 많이 뿌려줬음) 이를 알면서도 계속 볼 수밖에 없을 정도로 이 캐릭터들과 이야기는 강력하다. 완결까지 이 강력한 힘을 계속 유지하길 기대한다.

 

*** 몇 가지 덧붙임

1) 묵호의 꽃이란 제목이 낯설다고는 느끼지 않았다. 대신 한자 병기는 하는 게 어떨까 싶다. 딴 게 아니라 네 글자 제목이 짧고 좀 허전한 느낌이다.

2) ‘묵호’라는 호가 난 많이 재밌었다. 크….호부터 야망맨이야 이런 느낌이었다.

3) 난 의식적으로라도 서브 남주한테 마음을 안 주는데 어차피 서브 남주는 서브남주이기에 맘을 줘봤자 나중에 내 마음만 아플 뿐이기 때문이다. 길거리의 돌맹이한테도 잘해주는 남자, 그 이름 서브 남주. 하지만 이 소설의 서브들에게는 마음이 많이 기운다, 당황스러울 정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