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호의 꽃’ 표지 디자인 작업기

2018.9.14

오랜만에 브릿G 연재작이 단행본으로 새로이 출간되었습니다! 버터칼 작가님의 『묵호의 꽃』 출간을 기념해, 캘리그라피 대회 개최 아이디어부터 표지 디자인까지 진행한 담당 디자이너와 함께 이야기 나누었는데요. 캘리를 메인으로 쓰게 된 과정과 보이지 않는 요소들의 숨은 디자인 작업들까지, 다희 님과 함께한 풍성한 비하인드 스토리를 만나 보세요.

 

캘리그라피 리뷰 대회의 시작?!

『묵호의 꽃』이 가상 역사 로맨스이고 설정이 특이하다 보니 줄거리에 맞는 그림을 찾는 건 쉽지 않았어요. 그래서 내용에 맞춰서 표지 그림을 발주하려고 했고, 염두에 둔 그림 작가 분도 있었습니다. 세련된 사극 느낌으로 그림 발주 방향을 고민하던 중 최정원 작가님께 의견을 구했더니 표지에 주인공 얼굴이 나오지 않았으면 하셨지요. 아무래도 그림이 들어가면 고정된 이미지에 갇히게 되어 걱정을 하셨던 것 같아요. 글을 쓴 작가님 의견도 중요하기에 그림을 쓰지 않는 방향으로 하려고 했는데, 막상 수묵화나 호랑이, 부채, 꽃 같은 것처럼 쓸 수 있는 소품들이 뻔했어요. 올드하지 않으면서 세련된 느낌을 주고 싶어서 그 사이에서 고민을 했습니다. 그러던 차에 그림이나 이미지 대신 캘리로 분위기를 내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 거죠.

↑ 캘리그라피를 표지에 활용한 다채로운 책들 

처음에는 담당 편집자와 캘리를 발주하는 작업에 대해 이야기를 했었어요. 그러던 중에 최근에 『오버 더 초이스』 출간 기념으로 마케팅부에서 진행했던 캘리그라피 이벤트가 생각이 났어요. 다양하고 좋은 작품들이 해시태그로 많이 올라왔었거든요. 그래서 『내가 죽기 일주일 전』 캘리그라피 리뷰 등 이벤트 응모작들을 다시 찾아 봤더니, 괜찮은 작품들이 많았고 관심 있으신 분들이라면 많이들 참여해 주실 것 같았습니다. 또 브릿G에서도 마침 리뷰 페이지에 ‘팬아트&캘리’ 분류가 새로 생기기도 했고요. 검증된 작가와 작업을 하는 것이 안정적이긴 하겠지만, 사전에 작품 홍보도 하고 다양한 분들과 진행하는 과정에서 남다른 재미가 있을 듯 하여 브릿G 팀과 상의하여 급하게 이벤트 페이지와 배너를 만들어서 오픈하게 됐죠.

제한 없이 진행되는 이벤트인 터라 다른 브릿G 작가분들도 많이 응모해 주시고, 디지털 손글씨로도 응모해 주셨는데요. 다양한 느낌들 속에서 여러 가지 가능성을 엿볼 수 있었습니다. 나중에는 페이스북 캘리 관련 그룹에 이벤트 소식이 올라가고 난 뒤 평소에 캘리를 쓰시는 분들이 많이 응모를 해주신 것 같은데요. 아무래도 책 표지로 사용을 하려다 보니 캘리그라피를 취미이자 특기로 즐기시는 분들 작품을 고르게 된 것 같습니다.

 

 

열린 방향으로 다양하게 선정한 캘리

올려 주시는 캘리들을 보면서 염두에 두었던 부분이 있습니다. 힘이 느껴지는 캘리들이 주로 한국 영화 포스터에 많이 쓰이는데, 그런 강렬하고 두꺼운 획의 캘리와는 다른 노선을 타야할 것 같았거든요.

↑거칠고 강한 느낌의 캘리를 쓴 영화 포스터

그래서 스타일이 다른 작품들 중에 완성도가 있는 작품을 선정하게 되었어요. 올려 주신 수많은 캘리그라피 중 열 가지 정도를 출력하여 미술부와 편집부, 마케팅부가 1인 2표씩 마음에 드는 작품에 투표하는 방식으로 작품을 추렸습니다. 가장 많이 득표한 세 작품을 최종적으로 선택했고요.

 

1차 선정작 세 작품이 워낙 다르고, 어떤 이미지를 곁들이냐에 따라 분위기가 달라지므로 딱 정해 놓고 디자인을 했다기 보다는 열린 마음으로 다양한 가능성을 염두하여 작업을 했습니다. 크게는 두 가지 방향으로 시안을 정리해 나갔어요. 첫 번째는 호랑이 느낌만 언뜻언뜻 보여주는 것, 두 번째는 꽃을 연상시키는 느낌을 주는 방향이었어요. wooyoun 님의 작품은 막상 표지 디자인에 얹어 보니 그 자체로 워낙 단단하고 귀여운 느낌이 있어서 작업에 좀 어려움이 있었어요. 글꽃 님 작품은 호랑이 느낌하고 어울려서 첫 번째 방향으로 시안을 잡아 보게 되었고요, 붓나래 님 작품은 아무래도 두 번째 방향에 좀 더 어울리는 글씨였는데 글씨 느낌에 따라 디자인을 하게 된 것 같아요.

↑ 캘리에 따라 두 가지 방향으로 디자인한 시안들 

 

트렌디한 테라조 타일을 책 표지에

컨펌 과정에서 글꽃 님의 글자가 얹혀진 호랑이 얼굴 시안이 반응이 좋았어요. 다만 『묵호의 꽃』이 판타지 로맨스인데 표지에서는 무협지 느낌이 많이 난다고 해서, 최종적으로 결정된 현재 표지 방향으로 의견이 모이게 되었죠. 반면 두 번째 방향으로 시안을 잡을 때는 꽃을 너무 강조하면 하늘하늘한 여자 주인공이 연상될 것 같았어요. 그래서 너무 전형적이지 않은 꽃의 느낌을 쓰려고 하다가, 이사를 앞두고 인테리어에 관심이 많아지다 보니 자연스럽게 요즘 빠져 있는 ‘테라조 타일’이 생각났어요.(웃음) 거친 콘크리트 조각이 바탕에 섞여 들어간 자재인데, 과거에 흔하게 쓰였던 재료를 현대적으로 해석해서 파스텔톤의 밝은 느낌으로 최근에 많이 나오더라고요.

이런 자재 하나가 공간에 활기를 불어 넣어 주는 걸 보고, 책 표지에 잘만 활용한다면 적당히 예스러우면서도 현대적인 느낌으로 캘리그라피와도 어울릴 것이라는 판단이 들었습니다. 『묵호의 꽃』은 남녀주인공이 대표되는 작품들이다 보니 두 권 색감을 다르게 썼고요, 1권은 좀 더 따뜻한 느낌을, 2권은 차가운 느낌을 주려고 했습니다. 붓나래 님의 글자 자체가 춤을 추는 듯, 바람이 부는 듯한 느낌이라 이 배경에 얹어 봤더니 또 어울리더라고요. 처음에는 1권 배경에 고동색 글자를 얹고 2권 배경에 파랑색 글자를 얹었다가 가는 제목을 더 잘보이게 하기 위해서 같은 톤에서 벗어나 각 권 글자의 색을 바꾸게 되었어요.

 

↑ 묵호의 꽃 최종 표지

글자가 워낙 가늘다 보니 후가공으로 박을 넣으면 훨씬 잘 보일 것이라는 판단을 했습니다. 제목이 잘 안 보인다는 의견이 컨펌 과정에서 계속 나왔던 터라, 디자인 하면서 글자를 조금씩 수정할 수밖에 없었어요. ‘꽃’이 ‘길’처럼 보인다는 의견이 있어서 글자 속공간과 자소 크기를 조정했어요. 모든 캘리그라피가 그렇지만 인쇄 과정을 위해 약간씩 다듬는 과정이 필수이긴 합니다. 예를 들어 종이에 먹으로 쓴다고 했을 때 튀는 자국들도 있고 지글지글한 부분들이 있어 깔끔하게 만들어 줘야 하거든요. 또 캘리를 가로로 쓸 것이냐 세로로 쓸 것이냐 두 줄로 쓸 것이냐 하는 조합에 따라 느낌이 많이 달라지기 때문에 손질하는 과정이 필요해요.

 

 

캘리그라피 너머의 디자인 요소들

 

이 표지 자체가 캘리가 메인이긴 하지만, 표지 곳곳에는 정갈한 손글씨 느낌의 서체를 함께 썼어요. 아직 정식으로 출시된 건 아니고 산돌이라는 서체 회사에서 테스트 중인 ‘정체’라는 폰트예요. 정성스럽게 잘 쓴 손글씨의 느낌인데, 『묵호의 꽃』 여자 주인공이 글씨를 쓴다면 이런 느낌이지 않을까 싶었어요. 그래서 메인 카피라든지 책등, 장제목, 약표제지(도비라) 부분에 두루 활용했어요.

판형 부분은 초반에 담당 편집자와 회의를 통해 작고 가볍게 만들자고 했는데요. 다만 한 권으로 내기에는 너무 두꺼워지는 분량이라 두 권으로 분권을 하게 되었습니다. 책등 제목에는 원래 일반 서체를 써야 하지 않겠냐는 이야기가 있었는데 또 그러면 느낌이 너무 달라지는 거예요. 그래서 되도록 캘리를 쓰고 싶어서 책등에도 같이 얹었고요, 다만 책등에 올라간 캘리는 한 자 한 자의 간격이 넓어요. 그렇지 않으면 앞 표지 크기에 비해 작기도 하고 90도 돌려져 쓰기 때문에 ‘묵호의 꽃’으로 잘 읽히지 않으니까요.

그리고 1, 2권의 분량 차이가 있어서 본문 두께(책등)가 좀 다른데 후가공으로 박을 찍는 과정에서 고민해야 할 부분이 있었어요. 박을 찍으려면 판을 뜨는 동판을 먼저 만들어야 하는데, 이 동판비가 비싼 편입니다. 그래서 두 권 같은 동판을 쓰되, 각 권에 맞는 다른 색깔의 박을 쓰기로 한 거예요. 그렇게 1권에는 코발트블루 유광박이, 2권에는 브론즈 유광박이 들어가서 책이 나올 예정이에요. 다만 표지에 쓴 종이가 매직콤마라는 재생지 느낌의 티끌이 있는 종이라서 표지 전면에 사용한 테라조 타일 느낌의 배경은 차분하게 인쇄가 될 것이고 대신 박을 사용한 제목은 두드러질 예정입니다.

↑ 종이에 따라 차이나는 질감과 발색의 느낌 비교 

‘묵호의 꽃’이라는 상징적인 제목의 소설을 설명해 주기 위해 작은 판형이지만 띠지를 두르게 되었고요. 전체 2권을 묶어주는 세트 띠지도 같이 제작 중입니다.

↑ 후가공을 위한 다양한 요청 사항 메모

일단 캘리를 발주해서 작업할 때와 가장 달랐던 건, 과정 자체였어요. 브릿G에 올라오는 걸 함께 보는 재미가 있었고, 이걸 쓰면 어떤 느낌일까 하고 머릿속으로 생각해 보는 것도 있었어요. 전문적으로 발주를 하고 진행하는 것과 방식 자체는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다만 캘리그라피 공모전을 진행하다 보니 1차 선정작을 뽑기 위해 편집부, 미술부, 마케팅부 다같이 1인당 2표씩 투표를 받고 하는 과정들이 새롭고 재밌었어요. 투표 결과는 서로 공유하지 않은 채 나름 공정하게 하려고 했습니다.(웃음) 앞으로도 맞는 작품이 있다면, 종종 이런 이벤트를 해 보면 재밌을 것 같아요.


디자이너와 함께 나눈 표지 작업기, 즐거이 읽으셨나요? :)

막간 인터뷰를 진행하면서 큰 방향성을 정하고 그에 따른 부가적인 요소들을 디테일하게 조정해 나가는 과정이 무척 흥미롭게 느껴졌는데요, 더불어 종이책을 만든다는 건 여러 물성에 대해서도 관심을 두고 이해하고 있어야 한다는 생각도 들었더랬습니다.

이상으로 독자의 손에서 피어난 캘리그라피와, 그를 멋지게 담아낸 표지로 완성되기까지 『묵호의 꽃』 단행본 작업 후기를 전해드렸습니다. 다음 주부터 단행본 출간을 기념해 브릿G 연재작 구독 및 퀴즈 이벤트도 넉넉히 진행할 예정이니까요, 앞으로도 계속해 많은 관심과 참여 부탁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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