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 – 세인의 활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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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 도안이 그려진 부적이 날아들고, 그 부적을 맞은 사제들은 육중한 무게에 짓눌린 듯 주저앉거나 나동그라져서 움직이지 못했다.

 

“와, 인간문화재 최고!”

 

“최고!”

 

기린의 환호성에 무당이 메아리로 화답했다. 드디어 내 말도 따라하게 된 건가! 기린은 어쩐지 동료로 인정을 받은 것 같아 기분이 좋았다. 엄지를 치켜세우고는 호랭이를 데리고 담장으로 향했다.

 

순간 아크릴 담장에 조명이 켜졌다. 소동이 신고되어 통제실에서 조치를 취한 것이었다. 담에 걸터앉아 있던 무당은 한낮의 태양처럼 밝은 빛에 눈을 까뒤집더니 정신을 잃고 담장 밖으로 떨어졌다.

 

“무당!”

 

기린은 서둘러 호랭이를 업고 담장을 뛰어 넘었다.

 

통제가 풀린 사아들이 무질서하게 돌아다니고, 폐례다가 닥치는 대로 영혼을 빨아먹는 아수라장이 된 강당 안에서 소라가 분노에 찬 눈동자로 기린과 호랭이가 담을 넘는 모습을 노려보고 있었다.

 

땅에 쳐박히기 직전에 지면이 슬쩍 움직여 몸을 받아낸 덕분에 무당은 강력한 빛에 의한 쇼크 외에 별다른 부상을 입진 않았다. 빛에 어느 정도 내성이 있다던 호랭이도 등에 업힌 채 정신을 잃고 기린의 어깨에 머리를 떨궜다. 무당과 호랭이가 광화하기 전에 빛나는 담에서 멀어져야 했다.

 

숲속에서 긴 휘파람 소리가 들렸다. 앞뒤 생각할 여유도 없이 축 늘어진 무당을 옆구리에 끼고 소리가 난 방향으로 내달렸다. 빛의 담장으로부터 멀리, 나무 그림자들 사이로.

 

나무 뒤에서 대여섯 명의 사자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 중 거대한 덩치를 가진 남자는 기린도 아는 얼굴이었다. 팔왕과 함께 마고의 집을 찾아 왔던 서색연대 부대장 기범이다.

 

기범이 기린의 몸통만큼이나 두꺼운 팔을 휘둘러 영력을 쓰자, 땅이 꿈틀거리더니 사아 보호소로부터 쏟아지는 빛을 막아줄 작은 언덕이 만들어졌다. 그의 영력은 땅의 속성이어서, 마고가 공기를 움직이는 것과 마찬가지로 땅을 움직일 수 있었다. 무당이 담장에서 떨어질 때 지면을 움직여 부드럽게 받아낸 것도 기범이었다.

 

일행 중 양쪽 손등에 만다라 타투를 한 여자가 다가오더니 호랭이와 무당의 상태를 살폈다. 푹신한 낙엽이 깔린 바닥에 눕혔는데, 둘은 축 늘어진 채 눈을 뜨지 않았다. 기린은 절박한 심정에 정체도 모르는 사자 앞에 무릎을 꿇었다.

 

“도와주세요! 살려주세요, 제발!”

 

“너무 걱정 마. 재빨리 빠져나온 덕분에 아주 심각하진 않아.”

 

여자는 인자한 미소로 기린을 다독였다.

 

“그나저나 높임말이라니. 빛의 담장을 통과하고서도 전혀 타격을 입지 않고.”

 

아, 또 실수했네. 기린이 시선을 피하며 곤란한 표정을 짓자 여자는 깔깔 웃음을 터트렸다. 딱 장난끼 많은 막내 이모 같은 느낌이었다.

 

“괜찮아. 마고한테 다 들었어. 이름이 기린이라고? 나는 요요라고 해. 우선 이 바보들을 깨우고 얘기하자.”

 

요요의 손에서 검은 연기가 피어올랐다. 호랭이가 사아를 깨울 때의 모습과 비슷했는데, 연기가 약간 걸쭉한 느낌이었다. 마치 샴푸 거품을 머리 위에 쌓아 올리는 것처럼 검은 연기를 누워있는 호랭이와 무당의 위에 덮었다.

 

“조금 기다리면 깨어날 거야. 넌 괜찮아? 많이 놀랐지? 세인은 어떻게 치료해야 하는지 몰라서 도와줄 수가 없어. 미안.”

 

그제야 안심이 된 기린은 땅에 주저앉아 나무에 등을 기댔다.

 

“아니, 나는 괜찮아. 그런데 마고한테 듣고 우릴 도와주러 온 거야?”

 

기범이 고개를 끄덕여 허락하자 요요가 대답을 시작했다.

 

“요즘 칸자들이 시도때도 없이 출몰하는 것과 관련해서 마고가 사아보호소를 의심하고 있었어. 그래서 우리가 며칠째 예의주시하던 중에 수상한 움직임을 포착했지. 사아가 보호소 밖으로 전출되는 모습은 전혀 없고, 난데없이 암영전선 녀석들이 비밀리에 모여들더라고.”

 

둘을 덮은 검은 연기가 조금 사그라들면서 기린과 호랭이가 조금씩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오늘 뭔가 일을 벌이겠구나 싶어서 긴장하고 있던 터에 호랭이가 웬 정장 입은 여자를 데리고 여길 방문하는 게 아니겠어. 게다가 뭘 찾는지 여기저기를 들쑤시고 다니더라고. 그래서 다시 마고를 찾아가 물었더니 너희가 분명히 소동에 휘말릴 거라면서 도와주라고 하더라. 혹시 모른다며 복숭아나무 가지를 꺾어서 무당에게 쥐여 주면서 데리고 가라더니, 엄청난 능력자였네.”

 

그야 대한민국 최고의 무속인이자 인간문화재였으니까. 기린은 아무 이유 없이 뿌듯한 기분이 들었다.

 

“근데 우리가 누군지는 알고 있어?”

 

“저기 덩치 씨는 전에 마고네서 본 적 있어.”

 

“기범? 우리 부대장. 우리는 서색연대라고 해.”

 

“아… 그… 반란군…?”

 

“큭큭, 누구, 호랭이가 그래? 이 바보 녀석.”

 

요요는 호랭이를 그윽한 눈빛으로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호랭이도 원래는 우리의 일원이었어.”

 

“에엥?”

 

“사연이 있어서 지금은 기억을 못해.”

 

“어떤 사연이길래?”

 

“옛날 이야기를 할 시간이 아닌 것 같네.”

 

요요가 몸을 일으키며 허리춤에서 라이트건을 뽑아 들었다. 빛의 담장 쪽에서 그림자들이 어지러이 움직였다.

 

“요요, 라이트건은 넣어 둬. 사자들이 아니야.”

 

피부가 검은 남자가 앞으로 나서며 두 자루의 검을 빼들었다. 서색연대 검술단장 오였다. 어둠 속에서 수없이 많은 들짐승이 서로 뒤엉켜 나무 사이를 달려오는 소리가 들렸다.

 

“캬아악!”

 

바람에 실린 썩은 내를 알아차리자마자 칸자 한 마리가 기 … (계속 읽으시려면 로그인해야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