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 – 영혼을 잃고 싀어디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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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린과 호랭이는 소각장에서 피어오르는 검은 연기의 매캐한 냄새 속에 미로와 소라가 별관 입구로 들어가는 것을 기다렸다. 기린은 소리가 들릴까 걱정되어 입을 막고 기침은 가까스로 막았는데, 금세 두 눈에서 눈물이 줄줄 흘러내렸다. 눈을 꼭 감아 눈물을 짜내고 손등으로 훔치고 옆을 보니 호랭이는 놀랍게도 별 어려움을 겪지 않는 것처럼 보였다.

 

“뭐야? 넌 안 매워?”

 

억울한 기분이 퉁명스런 말투로 튀어 나왔다.

 

“사자들은 이 정도 주변 환경 변화에는 빠르게 적응이 가능해서 괜찮아.”

 

“피도 눈물도 없는 존재인 건가.”

 

“그게 아니고 피와 눈물을 아끼는 방법이지.”

 

“흥, 별로야. 그래서 먹고 마시는 욕구가 없는 거잖아. 밝은 빛에는 그런 능력이 왜 발휘되지 않는 거야. 차라리 그쪽으로 가는 게 좋았을걸.”

 

별관 입구에는 무장한 경비가 지키고 있었는데, 호랭이와 안면이 있는 사자도 아니었기 때문에 비비고 들어갈 가능성은 낮아 보였다. 둘은 멀찍이 돌아 산과 맞닿은 뒷편으로 향했다. 하지만 후문은 밖에서 열 수도 없이 안으로 잠겨 있었고, 안을 들여다 볼 창문도 없었다.

 

“더 문제 일으키지 말고 가자니깐.”

 

호랭이가 팔을 잡아 끌어도 기린은 포기하지 않고 회색의 콘크리트 벽을 올려다 보았다. 그가 손가락으로 가리킨 곳에 창문이 있긴 했다. 문제는 그게 어림 잡아 삼십 미터 높이는 되어 보인다는 것이었다.

 

거미에게 물려 초능력을 얻기라도 하지 않는 이상 오르긴 불가능해 보였기에 호랭이는 어깻짓을 하고 걸음을 옮기려 했다. 그런데 기린이 허리를 좌우로 비틀고, 스트레칭을 하는 것이 아닌가. 그리곤 등을 내밀었다.

 

“업혀.”

 

“엥?”

 

“안 될 수도 있지만, 일단 업혀 봐.”

 

어쩔 수 없다는 듯이 등에 가슴을 대고 목에 팔을 감았는데, 키 차이 때문에 호랭이의 발이 땅에서 떨어지질 않았다. 그것은 업혔다기보다는 백허그에 가까운 자세였다. 잠깐 고민하던 기린은 허리를 살짝 숙이고 호랭이의 다리를 한 짝씩 들어 자신의 다리 앞에 포갰다. 한 차례 가볍게 뛰어 호랭이를 추켜 올렸다. 호랭이의 얼굴이 기린의 목에 밀착되었다. 조금 간지러웠다.

 

기린은 고개를 들어 창문을 보았다. 저렇게 높은 델 뛰겠다고 마음먹다니. 그것도 호랭이까지 등에 업고. 기린은 새어 나오는 헛웃음을 도로 밀어 넣고, 있는 힘껏 땅을 찼다.

 

도약은 생각보다 부드럽고 아름답게 느껴질 정도였다. 하지만 도착은 그렇지 못했다. 기린이 창틀에 발을 디뎠지만, 중심을 잡기에 충분한 너비가 아니었다. 한 덩이가 된 둘의 몸이 뒤로 기울어지자 호랭이가 황급히 위쪽 창틀을 부여잡았고, 덕분에 기린의 얼굴이 유리에 납작하게 밀착되고 말았다.

 

“옆으로 좀 가. 가뜩이나 낮은 코가 없어지겠어.”

 

“어, 미안.”

 

호랭이는 옆으로 이동하며 기린의 코가 제대로 있는지 걱정스런 표정으로 살폈다. 말이 그렇다는 거지 진짜로 없어졌겠니. 뭔 농담을 못 해.

 

창문 안쪽은 커다란 강당이었다. 희미한 조명 아래로 바닥이 조금씩 꿈틀거리고 있었다. 자세히 보니 그건 빽빽이 밀집된 채 움직이고 있는 사아들이었다. 한 눈에 봐도 전쟁포로만도 못한, 가축에 가까운 취급을 받고 있다는 인상이었다. 기린과 호랭이는 잔뜩 찌푸린 인상으로 서로를 마주봤다.

 

사아들 사이에는 미로와 소라처럼 하얀 가운을 입은 연구원들이 뭔가를 체크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들 외에 검은 로브를 입은 사자들도 눈에 띄었다. 그들은 사아들을 통제하는 역할을 하고 있었는데, 로브의 등에는 DSFL이라는 황금색 로고가 박혀 있었다. 다크 섀도 프론트라인.

 

“암영전선(暗影戰線)이 왜 여기에 있지?”

 

“검은 옷 입은 놈들? 뭐 하는 자들인데?”

 

“쟤들의 정체가 사실 자세히 알려져 있지는 않아. 종교 단체 같기도 하고, 테러 단체 같기도 하고, 그냥 놈팽이들 집합소 같기도 한데, 어쨌든 정부 기관에 있을 만한 사자들은 아니야.”

 

“그것 봐. 역시 내 말대로 수상하지? 근데 의상 때문인지 뭔가 흑마법사들처럼 보이네.”

 

“쟤들이 입는 사제복이 망나니들 전투복 보다도 성능이 좋다는 소문이 있어.”

 

“저승에서도 종교인이 공무원 보다 강한 건가.”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거야. 사아 관리에 왜 암영전선이 개입하고 있지?”

 

줄 지어 움직이는 사아들의 대열을 따라 시선을 옮기던 기린은 깜짝 놀라 손을 놓쳐서 아래로 떨어질 뻔 했다. 호랭이가 기린의 허리를 받쳐 중심을 잡게 해주고는 기린에게 충격을 준 존재를 확인했다.

 

보통 사자들 보다 다섯배는 큰 키에 앙상하고 길다란 팔다리를 하고 풍선처럼 부풀어 오른 배를 가누지 못해 바닥에 주저앉아 있으며, 타오르는 불처럼 붉은 머리카락이 흘러내려 주름진 피부를 덮고 있는 귀신. 이승에서는 아귀라는 이름으로 더 잘 알려진, 사자의 영혼까지 먹어치우는 어마어마한 식성을 자랑하는 존재. 바로 폐례다였다.

 

“저게 폐례다라고? 그냥 사자들과는 차원이 다르네?”

 

“팔부중은 사자가 아니라 귀신이야. 신에 가까운 존재지.”

 

“저 괴물이 지금 사아들을 잡아먹는 건가?”

 

줄 지어 서 있던 사아들은 암영전선의 사제들에게 이끌려 폐례다의 앞으로 향했다.

 

“먹긴 하는데, 내가 알기로는 영혼만 먹을 거야. 전에 사자가 죽는 방식이 두 가지 있다고 했잖아. 하나는 빛으로 소멸하는 광화고, 다른 하나가 영혼을 잃고 싀어디는 거야. 폐례다에게 영혼을 먹힌 사자는 싀어디게 되고, 남은 육신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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