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 정상의 범주를 벗어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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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고는 비원의 농업 역사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인물이다. 사실상 농사 짓기를 시작한 사자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비원에는 지렁이 외에 동물은 없지만, 각종 식물은 존재하고 있었다. 그 중 섭식이 가능한 식물들을 추려내고 경작이 가능한 방법을 구축한 인물이 바로 마고였다.

 

백여 년 전 제2차 빛의 재앙이 비원을 휩쓸고 간 이후, 사자들은 무작정 빈둥거리면 안 된다는 교훈을 얻었고, 초창기 노동활동으로 각광받은 것이 바로 농사일이었다. 기린이 과수원에서 사다리를 오르락내리락거리며 사과를 따는 동안 마고에게 들은 이야기 자체가 순서도 섞여있고 단편적이었기 때문에, 역사서처럼 내용 정리가 안 된 것은 어쩔 수 없다. 그나마 퉁명스러운 마고가 농사일에 대해서는 자랑스레 수다를 떨었기 때문에 상당히 많은 내용을 들을 수 있었다.

 

오십 년쯤 전부터는 먹기 위한 곡식이나 과일 외에 관상용 식물, 예를 들면 튤립이나 난 등을 기르는 것도 꽤 좋은 노동 활동으로 인정받기 시작했다. 선인장은 관리를 거의 필요로 하지 않았기 때문에 인기가 없었다. 그 와중에 새로운 용도가 발견된 것들이 있었는데, 사루비아는 꽃에 맺힌 액체를 달달하게 먹을 수 있었고, 봉숭아는 손톱을 물들일 수 있었다. 여기까지는 서울 토박이인 기린도 이미 알고있는 것들이었다.

 

가장 유용해서 집마다 하나씩 보유하기에 이른 것은 다름 아닌 해바라기였다.

 

“해바라기씨는 나도 먹어봤지. 야구선수들이 좋아하는 걸로 유명하기도 하고. 참, 여기도 야구가 있나?”

 

이제는 마고에게 반말을 하는 게 꽤 익숙해진 기린이었다.

 

“해바라기의 가장 중요한 덕목은 그 쟁반 모양의 꽃이 가장 밝은 곳을 향한다는 거야. 여긴 지구와 달리 해가 뜨고 지고 하질 않아서, 빛이 어느 방향에서 오는지 불확실한 경우가 많거든. 빛에 약한 우리 사자들은 해바라기의 반대 방향으로 가서 어둠을 찾는 거야.”

 

이곳에서 어둠은 빛의 부재라는 종속적인 개념이 아니라 빛과 얼굴을 맞대고 엎치락뒤치락 씨름을 하는 독립적인 존재였다. 그리고 사자들의 든든한 보호막이자 풍족한 에너지원이었다.

 

마고의 설명은 꼭 그렇지는 않았지만, 기린은 사자들의 존재가 클래식한 영화 상영 극장에서의 스크린에 비친 영상 속 인물들 같다고 이해했다. 밝은 빛에 노출되면 영상이 희미해져 잘 보이지 않고, 어두운 곳에서는 선명한 존재감을 드러내는.

 

음식을 입으로 섭취해서 소화를 통해 에너지원을 얻는 걸 당연히 여기던 기린에게 사자들의 영양 수급 방식도 신선한 충격 그 자체였다.

 

“음식을 먹지 않아도 어둠만 있으면 살 수 있다고 했지? 어떻게 그럴 수가 있는 거야?”

 

사과가 가득해서 제 몸무게 보다도 무거운 커다란 상자들을 창고 쪽으로 옮기며 기린이 물었다.

 

“우리는 피부로 암합성을 하거든.”

 

“아맙썬?”

 

기린은 공무원 시험용 책에도 그런 영단어는 없었는데, 하고 한 쪽 눈썹을 치켜 올렸다.

 

“암, 합, 성.”

 

“그게, 뭐야?”

 

“식물은 광합성을 하고, 사자는 암합성을 하는 거야. 우리는 어둠을 흡수해서 영양을 얻고 미량의 빛을 배출해.”

 

“으엑, 그런 게 가능해?”

 

또 한 번 상식의 책장이 와르르 무너졌다.

 

“지구에서 최초의 죽음이 발생한 이래 계속 그래 왔지.”

 

“그럴수가. 어둠을 흡수하고 빛을 발산한다니. 아, 그게 그래서…”

 

호랭이고, 마고고, 그 보호소 의사 가운을 입은 미로까지 다들 미녀 미남이라 했더니, 몸에서 빛이 나기 때문이었나. 평소라면 질색했을 민소매 근육남 태준도 왠지 매력있어 보였던 게 내 눈이 낮아진 탓이 아니었어. 자체 뽀샤시 효과라니 굉장한걸.

 

“뭐가 그래서야?”

 

“아, 아니야.”

 

괜히 잘생겼다는 얘기를 해서 콧대를 올려줄 필요는 없지. 특히 호랭이 녀석 귀에 들어가면 볼썽사납게 으스댈 게 뻔하니까.

 

“싱겁기는. 아무튼 우리는 적당히 에너지를 사용함으로써, 다시 말해 어느 정도의 노동 활동을 함으로써 배출되는 빛의 강도를 조절할 수 있다는 걸 알게 되었어. 이 발견은 중앙정부가 사자들의 생활 전반을 간섭할 수 있는 힘을 갖는 계기가 되어버렸지.”

 

무슨 내용인지 정확히 이해되지는 않았지만 마고가 중앙정부에 대해 좋은 감정을 갖고 있지는 않다는 것만은 확실하게 느낄 수 있었다. 기린이 살고 있던 세계의 상황을 떠올리게 했다. 환경 오염과 자원 부족 등을 빌미로 국가 차원에서 사람들의 삶을 지나치게 통제했다. 노인들은 열이면 열, 예전이 살기 좋았다고 한탄했다. 기린은 공부하느라 크게 관심을 갖지는 못했지만 반정부 시위도 종종 있었다. 하지만 일부에서는 지구대통령 미국의 통제에 따라야 하는 우리나라 정부의 입장을 이해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었다. 이곳 비원도 비슷한 상황인 듯 했다.

 

“그나저나 힘이 대단하네.”

 

기린도 일을 하는 내내 마고만큼이나 놀라는 중이었다. 평소 운동과는 담을 쌓은 삶을 살았고, 균형잡힌 식단과도 거리가 멀었기에 굳이 나누자면 기린은 튼튼하지 않은 쪽에 줄을 서야 했다. 그런 그가 장정 둘이 함께 들어야 할 정도로 커다란 상자들을 마치 검찰의 보여주기식 압수수색 상자처럼 쉽게 들어서 옮기고 있었다. 티비에서 본 헬스광인처럼 한 팔에 마고를 다른 팔에 호랭이를 매달리게 하고 스쿼트를 할 수도 있을 것 같은 기분이었다. 왜 이렇게 갑자기 천하장사처럼 힘이 쎄졌을까. 어젯밤에 매트릭스 공중제비를 돌았던 장면도 떠올랐다. 이곳의 중력이 약한 걸까.

 

“근데 마고도 들 수 있으니까 이만한 상자를 사용하는 거 아니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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