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 벌써 먹이 줄 시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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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사자들은 영력을 갖고 있었고, 체력 보다는 영력의 차이에 의해 힘의 우위가 결정되는 편이었다. 예를 들어 호랭이보다 태준이 팔힘은 셀지언정 산파로서의 능력은 호랭이 쪽이 월등히 높았다. 영력에는 몇 가지의 종류가 있었는데, 멀리 떨어져 있는 작은 물건을 손짓으로 당겨 오는 정도의 염동력은 누구나 기본적으로 쓸 수 있었다.

 

마고의 영력은 대기의 움직임을 조종할 수 있는 능력이었다. 그래서 사람이나 사물을 공중으로 들어올려 이동시킬 수도 있고, 본인 스스로도 어느 정도의 비행 이동이 가능했지만 굳이 그럴 필요성을 느끼지는 못했다. 100미터를 10초 안에 끊을 수 있는 육상선수라 해도 평소에 그 속도로 뛰어다닐 필요는 없지 않은가. 정 급하면 자동차를 타면 될 일이다.

 

다만, 마고가 농사의 기본을 다지기 시작하는 과정에서는 그의 영력이 매우 요긴하게 쓰였고, 그가 다른 종류, 예를 들어 불을 다루는 영력의 소유자였더라면 비원의 농업 발전은 훨씬 늦어졌을 것이다. 이곳에는 지렁이를 제외하고는 동물이 없기 때문이다. 그말은 곧, 꽃향기에 홀려 이 나무 저 나무를 옮겨 다니며 수정을 도와줄 꿀벌과 나비도 없다는 말이다. 나무들은 기세 좋게 꽃을 피웠으나 대부분 열매를 맺지 못하고 힘 없이 시들어버린 꽃을 떨구고, 이듬해에 다시 꽃을 피우고를 반복했다.

 

“어느 해 사과꽃이 만발한 시점에 내가 실력을 발휘했지. 전날에 충분히 암합성을 해서 영력을 채운 다음, 밀도 높은 공기로 사과밭 주변을 감싸고 꿀벌의 날갯짓 만큼이나 섬세한 진동을 가한 거야. 그 과정에서 꽃이 많이 떨어지기도 했지만, 원래 과일이 너무 많이 열리면 솎아주는 것이 좋으니까 문제가 되진 않았어. 그해 주렁주렁 열린 사과를 구경하러 몰려온 인파가 어마어마했지.”

 

기린은 마고의 성공담도 재미있었지만, 빨리 점심을 먹은 다음 씻고 옷을 갈아입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 지금 시간이 몇 신데 도대체 왜 먹지를 않는 거야? 먹지 않아도 죽지는 않는다지만, 먹는 즐거움이 얼마나 큰데! 어제는 하루 종일 사과 두 개 먹은 게 다였고, 오늘도 여지껏 콩 한 쪽 입에 넣지를 못했다. 배는 계속 꾸르륵거렸고, 흙을 잔뜩 먹은 정장 바지는 허리를 자꾸만 끌어 내렸다. 초인적인 힘을 갖게 된 것과 농사일이 피로하고 허기진 것은 별개의 문제인 모양이었다.

 

“너는 영력은 꽝인 대신 체력이 월등하니, 활용 방법을 고민해 봐야겠어. 잘만 하면 큰 도움이 될 수 있을 거야.”

 

가만 보니 호랭이는 산파일을 하는 조수로 기린을 고용하려 하고, 마고는 농기계 대용으로 써먹으려고 하는 것 같았다. 이 사자들이, 21세 공무원 시험 합격자 엘리트를 몰라 보고! 나는 전인류의 생명을 어깨에 짊어지고 이곳에 왔는데!

 

그나저나 수시로 골드투스 연결을 시도하고 있지만 여전히 먹통이었다.

 

“임무를 완수할 결정적인 정보를 확보하거나 문제가 생기면 언제든 골드투스로 연락하세요. 우리가 곧바로 윤기린 씨를 현세로 다시 데려오겠습니다.”

 

문화재청 최숙 청장은 그렇게 말했었다. 지금 당장 돌아가야 할 정도로 위급한 상황은 아니지만, 이 상태라면 꼭 필요한 순간에도 연락할 도리가 없을 것이기 때문에 걱정이 되는 건 당연했다.

 

“만에 하나 통신에 문제가 있거나 별도의 연락이 없다면, 49일째 되는 날에 윤기린 씨의 소환을 시도하겠습니다. 신호를 보시고 소환에 응하시거나, 임무를 수행하는데 시간이 더 필요하다 생각되시면 거부하시면 됩니다. 그 이후로는 매달 보름에 소환을 시도하겠습니다.”

 

“음력인가요?”

 

“당연하지.”

 

당연할 건 뭐람. 기린은 인간문화재 무당 선생님의 단호함에 속으로 궁시렁거리며 핸드폰의 캘린더에 음력 애드온을 설치했다. 자꾸만 소환을 ‘시도’하겠다고 표현하는 것도 신경이 쓰였다. 왠지 청장이 엄마에게 전화를 걸어서 ‘최선을 다 했지만 송구스럽게도 성공하지 못했습니다’라고 말하는 장면이 보이는 것 같았다.

 

“근데 소환 신호가 어떤 건데요?”

 

“그건 보면 알아.”

 

그때 기린은 뭔가 비정상적인 게 보이면 그게 신호인 줄 알아볼 수 있겠거니 생각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막상 여기 와보니 비정상적인 게 한둘이 아니어서 무당 선생님의 신호를 못 알아차리고 지나칠 수도 있겠다는 걱정이 들었다. 게다가 앞으로 48일을 어떻게 버티란 말인가!

 

“야! 왜 멍하니 그러고 있어? 벌써 먹이 줄 시간이 된 건가?”

 

마고의 카랑카랑한 목소리에 지구에 가 있던 기린의 정신이 다시 비원으로 끌려왔다.

 

“그래. 아니, 아니, 식사 시간이 된 건 맞는데, 먹이를 주다니? 나를 소 같은 가축으로 생각하고 있는 건 아닌지? 같은 사람한테 너무하네!”

 

기린의 항의에 마고는 콧방귀를 뀌었다.

 

“정확히 말해서 같은 사람은 아니지. 난 사자고, 너는 세인이야.”

 

“뜬금없이 뭔 드라마 대사를 치고 있어! 아니 그 고전 드라마를 어떻게 알고 있는 거야?”

 

“그건 알 필요 없고. 나는 나무 그늘에서 좀 쉴 테니까, 지렁이 국수라도 끓여 먹어.”

 

“아오, 밥맛 떨어지는 소리 좀 하지마!”

 

기린은 진저리를 치고는 집을 향해 돌아섰다. 집까지는 대략 50미터 정도 거리였다. 걸음을 멈추고 목을 좌우로 꺾고는 양 손을 털었다. 들숨을 길게 들이마시고는 숨을 멈췄다. 무릎을 살짝 접었다가 그대로 땅을 박차고 앞으로 점프했다. 발을 디딘 자리는 괭이질이라도 한 듯 깊이 패였고, 완만한 포물선을 그리며 날아오른 기린은 10미터도 더 나아가 착지했다. 앞으로 나가던 관성을 이기지 못하고 몇 바퀴를 데굴데 … (계속 읽으시려면 로그인해야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