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 상식의 책장들이 도미노처럼 와르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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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세인? 그럴리가!”

 

마고의 진단에 호랭이는 믿지 못하겠다는 듯이 깜짝 놀라며 뒤로 한 발짝 물러섰다.

 

“세인이 뭔데? 뭔지는 알려주고 놀래라고…”

 

기린은 본인도 모르는 자신의 정체가 왠지 두려웠다. 특별한 종족인 건가? 생각해보니 여기 온 이후로 거울을 한 번도 못 봤는데, 이마에 눈이 하나 더 생겼다거나 그런 건 아니겠지? 더듬더듬 손으로 이마를 만져 보았다.

 

“우선 소파에 얌전히 좀 앉아 줄래? 한 번 더 날뛰었다가는 집안을 다 때려 부수겠구나. 사과밭에 거름이니 어쩌니 하는 건 정말로 농담이었어. 우리와 지내다 보면 그런 실없는 농지거리에 익숙해질 거야.”

 

마고가 두 손바닥을 가볍게 위아래로 움직이며 진정하라는 투로 다독였다. 여차하면 기린을 다시 공중에 띄울 준비가 되어 있는 자세이기도 했다. ‘정말로 농담’이라는 표현이 대단히 모순적이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 문제는 일단 접어두기로 했다.

 

“그래. 사자를 죽이는 건 망나니들이나 하는 짓이지. 아니면 칸자들. 나는 산파인 거 이제 알잖아. 너를 죽일 생각이었으면 굳이 여기까지 데리고 왔겠니? 하지만 세인이라면 얘기가 좀 다른가?”

 

“봤지? 저렇게 실없는 소리를 안 하고는 못배기는 성격이라니까! 호랭이 넌 입 좀 닫고 있어.”

 

마고가 호랭이를 나무라며 기린을 슬쩍 끌어당겼다. 손도 안 대고 몸을 당기는 걸 보니 어차피 도망가긴 글렀다 싶어 기린은 다시 소파에 털썩 앉았다. 그런 기린을 신기하게 쳐다보며 호랭이도 옆에 앉았다.

 

“와아, 세인이라니. 처음 봐.”

 

“그러니까 세인이 뭔데?”

 

“너도 이제 알겠지만 이곳 비원은 너희가 저승이라고 부르는 세계, 그러니까 네가 살던 세계에서 죽은 자들이 오는 곳이야. 그 과정을 돕는 것이 바로 나나 태준이 같은 산파들이고. 우리는 모두 사자들이지.”

 

“라이온이 아니라 죽을 사에 놈 자. 거기까진 이해했어.”

 

기린의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났다. 생각해보니 아침부터 청장과 무당에게 붙들려서 하루 종일 아무것도 먹지 못했다. 꼬르르륵.

 

“우와! 마고, 이 소리 들려? 얘 배가 노래를 하고 있어! 세인이라서 그런 거야?”

 

“그러니까 대체 세인이…”

 

“죽지 않은 사람.”

 

마고가 빨간 사과 하나를 건네며 대답했다.

 

“우리 같은 사자가 아니라 살아 있는 사람을 말하는 거야. 원칙적으로는 여기 비원에 존재할 수 없지.”

 

기린은 받아 든 사과를 손 안에서 굴리며 당황한 마음을 감추려 노력했다. 산 사람이라는 게 들통났다. 겉보기에는 자신이나 사자들이나 크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했는데, 하루도 지나기 전에 들키고 말았다. 역시 경찰에 신고하려나. 설마 이건 독사과? 에이, 백설공주도 아니고. 꼬르륵.

 

“얼른 먹어. 세인은 음식을 먹어야 생명이 유지된다며?”

 

호랭이가 호기심어린 눈동자를 반짝였다. 기린은 될 대로 되라는 심정으로 사과를 크게 한 입 베어 물었다. 씹히는 과육의 느낌은 사과와 딱딱 복숭아 중간쯤이었는데, 맛은 홍옥 정도로 당도는 그리 높지 않고 신맛이 강했다. 그리고 수박 만큼이나 수분이 많아서 입술 사이로 과즙이 주륵 흘렀다. 맛있다! 모든 과일의 당도를 몇 브릭스니 하며 측정을 해대서, 이것도 저것도 달기만 한 과일들에 시큰둥하던 기린으로선 가히 저세상의 맛이었다. 실제로 저세상이기도 했고.

 

“그런데 어쩌다 비원에 오게 된 거야?”

 

“맞아. 기억은 또 왜 잃었고? 나는 네가 기억이 없어졌다길래 죽은지 일주일 넘은 사아인줄 알고 산파 인생 최악의 상황이라고 생각했다고.”

 

기린은 우적우적 사과를 씹으며 두 사람을 살폈다. 호랭이는 신기한 생명체를 만난 아이처럼 초롱초롱한 눈을 하고 두 손을 모으고 있었고, 마고는 머릿속을 꿰뚫어 보는 듯 날카로운 눈매로 지켜보고 있었다. 그래도 당장 자신을 해치지는 않을 것 같았고, 다짜고짜 경찰에 넘기지도 않을 사람들로 보였다. 아, 사람이 아니라 사자라고 해야 하나. 여기도 경찰이란 게 있긴 한가. 기린도 궁금한 것이 한 보따리였다.

 

무엇보다 궁금한 건, 이승의 사람들이 여기로 넘어와서 살 수 있나?

 

“왜 아무 말이 없어? 이제 말하는 법도 잊은 거야? 위에서 떨어져서 머리를 다쳤나?”

 

“위?”

 

“아, 말은 하네. 그래, 위. 네가 살던 곳이 위층이잖아. 여기가 아래층이고.”

 

호랭이의 말에 기린은 머릿속에 파도가 쏴아아, 하고 몰려와서 철썩, 하고는 다시 멀리로 밀려 나갔다.

 

“그게 진짜였어?”

 

“마고는 늘 그렇게 말하는걸. 세인들이 사는 세상은 비원의 위층에 있다고. 마고는 모르는 게 없거든. 2천년 넘게 산 할멈이라서.”

 

마지막은 소곤거리는 척 말했지만 마고가 들으라는 목소리 크기였다.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마. 사과 하나 더 줄까?”

 

기린은 다급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사과 열 개 정도는 가뿐히 먹을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사과만으론 부족했다. 배가 너무 고프고 기운이 없어서 단백질 생각이 간절했다. 염치도 모르는 질문이 입에서 흘러나왔다.

 

“고기… 고기는 없어?”

 

호랭이가 깔깔 웃음을 터트렸다. 시종일관 기린이 신기한 구경거리라도 되는 것처럼 굴고 있었다.

 

“기억을 잃은 게 아니라 그냥 기억력이 나쁜 건 아닌지? 내가 아까 비원에는 동 … (계속 읽으시려면 로그인해야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