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장 작전 개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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탑승자는 호스트의 키를 빼앗았다. 지금부터는 미지의 바다로 향한 항해였다. 가슴 두근대는 모험에 설렐 틈도 없이 ‘MIRROR-ONE’은 침입자의 머리를 조였다. 다진은 닻이 단단히 박힌 배처럼 움직일 수 없었다. 심장은 거칠게 펌프질을 해댔고 통제를 잃은 땀구멍은 여름날 개처럼 땀을 침처럼 질질 흘렸다. 하지만 다진은 이 순간을 위해 훈련을 거듭했다. 중요한 건 할 수 있다는, 해내야 한다는 의지였다.

 

다진은 벌떡 일어나 빡빡 머리를 밀쳤다. 책상은 요란한 소리를 내며 넘어졌다. 빡빡 머리는 애드리브에 당황한 배우처럼 다진을 놀란 눈으로 쳐다보았다.

 

“이 새끼가!”

 

긴 머리가 빡빡 머리를 대신해 다진을 밀었지만 다진은 고목처럼 버티고 섰다. 빡빡 머리도 가세해 다진의 가슴팍을 거세게 밀었지만 다진은 꼼짝도 하지 않았다. 당황한 똘마니들은 방관하는 대장과 샌드백의 얼굴을 번갈아 보았다.

 

“아, 뭐해. 진짜. 너네 똑바….”

 

전면으로 나온 강태하도 샌드백가 이상하다는 걸 느꼈다. 샌드백의 얼굴은 용암처럼 새빨갰고 악령에 씐 사람처럼 얼굴 근육이 초 단위로 수축이완했다. 땡볕에서 전력 질주한 스프린터처럼 살갗과 닿은 교복은 진한 색으로 물들었다. 강태하마저 어찌하지 못하고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다른 윗선의 동의가 필요한 것처럼. 두 번째 공이 울렸다.

 

온몸을 쥐어짜는 경련에 다진은 움직이기 힘들었다. 들이마신 숨은 허파에 달라붙어 바깥으로 나가지 않았다. 호흡하지 못하면 쓰러진다. 다진은 자신의 목덜미를 노리는 들개들을 경계하며 의식의 일부분을 호흡으로 옮겼다. 들이마신 숨의 반의 반도 내쉬지 못했지만 다진에게 보통 동아줄 정도는 되었다.

 

다진은 목표의 위치를 확인했다. 다진과 목표 사이를 장애물 세 개가 가로 막고 있었다. 장애물들에게 방해받지 않으려면 장애물들이 반응할 틈을 주지 않도록 순식간에 움직여야 한다. 다진은 천천히 숨을 들이마시고 내쉬었다. 그리고 목표를 향해 내달렸다. 세 번째 공이 울렸다.

 

공 하나가 울릴 때까지 다진이 공들인 노력을 비웃듯 다진의 일격은 손쉽게 빗나갔다. 등지고 서있던 최석태는 청소 인원의 수상한 낌새에 눈치채고 몸을 돌려 피했다. 아주 간단하게. 다진이 목표를 향해 정확히 달려들지 못한 탓도 있었다. 다진은 걸레질이 마르지 않은 교실 바닥에 쓰러졌다. 최석태는 다진을 내려다보았다. 이 상황이 놀라우면서 믿을 수 없다는 얼굴이었다. 최석태는 지금까지 다진이 반격하는 상황을 상상한 적이 없었다. 결코 단 한 번도. 그가 알고 있는 다진이라면 반격하는 일이 절대로 없어야 했다.

 

“오, 왜? 이, 이러얼, 즐 멀, 라써?”

 

다진은 몸을 천천히 일으켰다. 땀방울이 콧방울을 타고 바닥에 떨어졌다. 작고 검은 꽃 수 십 송이가 피어났다.

 

“석태야, 나와봐. 이 새끼가 봐줬더니!”

 

강태하는 구부정하게 서있는 다진의 배를 걷어찼다. 다진은 다시 바닥에 엎어졌다. 강태하의 일격 탓인지 ‘MIRROR-ONE’의 경고 탓인지 알 수 없었지만 다진은 숨을 쉴 수 없었다. 다진은 배를 움켜잡고 온 신경을 호흡하는데 집중했다. 하지만 숨돌릴 여유를 허락할 강태하가 아니었다. 강태하는 쓰러진 상대의 배를 한 번 더 강하게 걷어찼다. 배를 움켜잡은 덕분에 첫 번째 일격보다 충격이 덜했지만 그것은 직전과 비교했을 경우에 덜하다는 의미다. 다진은 굼벵이처럼 몸을 데굴데굴 굴렀다. 주위는 강태하를 말리는 아이들과 그 아이들을 말리는 똘마니들로 소란스러워졌다. 다진은 눈을 감고 거친 파도에 휩쓸리지 않도록 키를 거세게 잡았다. 네 번째 공과 다섯 번째 공이 울렸다.

 

다진은 아직 목적을 달성하지 못했다. 이대로 끝난다면 소년에게 가능성을 주고 말고 할 것없이 가시밭길 확정이다. 일단 몸을 일으켜야 한다. 다진은 자신을 걷어차려는 강태하의 다리를 붙잡았다.

 

“아직 할 만 하지? 새꺄!”

 

강태하는 말리는 아이들을 뿌리치고 잡히지 않은 다리로 다진을 걷어찼다. 다진은 그대로 품으로 들어온 다른 쪽 다리를 붙잡아 품속으로 끌어당겼다. 자세가 불안정해진 강태하는 균형을 잃고 뒤로 기울었다. 빡빡 머리와 긴 머리는 어어, 놀란 소리를 내며 대장을 받았다.

 

회심의 일격이 또다시 손쉽게 막혀버렸다. 다진은 어정쩡하게 선 강태하와 눈이 마주쳤다. 강태하는 약자에게 불의의 일격을 맞아 놀란 것보다 이 따위 하찮은 놈에게 한 방 먹은 것에 분노했다. 다진은 12살이나 어린 소년에게 위협을 느꼈다. 강태하가 자세를 잡기 전에 후속 조치를 취해야 한다. 여섯 번째 공이 울렸다. 남은 시간도 절반이 남지 않았다.

 

다진은 강태하가 심리적으로 주춤거리는 사이 벽을 집고 일어났다. ‘MIRROR-ONE’은 호스트가 어찌되든 상관없다는 듯 경고의 세기를 한층 더 올렸다. 다진은 머리가 쪼개질 것 같았다. 많이 움직일수록 ‘MIRROR-ONE’의 경고 세기도 강해진다. 하지만 다진은 견뎌야만 했다.

 

다진은 궁지에 몰린 쥐새끼마냥 벌벌 떨며 구석에서 지켜보는 최석태를 향해 비틀거리며 달려갔다. 다진의 등에 강태하가 내뱉는 욕지거리가 꽂혔지만 그것에 반응할 시간도 여력도 없었다. 다진의 상대는 현실에도 있다. ‘MIRROR-ONE’과 닥터. 여섯 번째 경고음이 울릴 때까지 닥터의 개입이 없었다는 건 다른 멤버들이 힘을 보탠 덕분이다. 만약 현재로 돌아간다면 멤버들에게 반드시 고맙다고 말할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작전을 성공해야 한다.

 

낯선 존재와 마주쳤을 때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취하는 행동은 대체로 두 가지다. 맞서거나 도망치거나. 교복이 땀으로 전부 젖고 경련으로 비틀거리는 사람을 마주했을 때 어떻게 행동할 것인가. 최석태는 후자를 선택했다. 최석태는 교탁 뒤로 몸을 숨겼다. 다진에게 멀리 떨어지고 싶었지만 교실 밖으로는 나갈 수 없었다. 다진이 최석태의 눈을 보고 공포에 질렸다는 걸 알았듯 최석태도 다진의 눈을 보고 알았다. 교실 밖으로 도망간다 해도 무슨 일이 있어도 다진은 끝까지 자신을 쫓아올 거라는 걸. 다진의 다리가 부러져도 기어서라도 어디까지고 쫓아올 거라고. 현실적으로 보면 복도에서 선생님과 다진이 마주쳤을 때 다진의 꼴을 설명할 수 없었다. 다진의 교복은 여기저기 신발자국이 남았고 교실 바닥에 구른 탓에 먼지가 얼룩덜룩 묻어 있었다. 누가 봐도 괴롭힘을 당한 피해자의 모습이었다. 최석태가 아무리 선생에게 절대적인 신뢰를 받는 반장이어도 선을 넘은 폭력을 얼버무릴 힘은 없었다. 다진은 교탁을 사이에 두고 최석태와 대치했다. 일곱 번째 공이 울렸다.

 

“나, 나, 나하ㄴ, 테 우애, 이, 이러케까지 하하느은, 거야?”

 

다진은 말하기를 처음 배운 갓난아이처럼 입을 더듬거렸다. 음절과 음절 사이 간격은 길었고 복합음을 또렷하게 발음하지 못했다. 공포로 가득 찬 최석태의 눈빛이 변했다. 남자들의 언어로 ‘이 새끼가 무슨 말을 하는 거야?’였다.

 

“나, 나! 하하ㄴ, 테, 우애, 이, 이, 이르, 는, 그냐, 고!”

 

다진은 최석태를 다그쳤 … (계속 읽으시려면 로그인해야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