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장 고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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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이라 예정된 실험이 시작하고 3일이 지났다. 식당 테이블을 둘러앉은 멤버들의 얼굴색은 하나같이 잿빛이었다. 서로 도착지를 공유하지 않았지만 자신의 도착지를 보면 다들 녹록치 않은 곳에 떨어졌음을 짐작했다. 죽는 순간으로 떨어질 거라는 다진의 불길한 예상이 빗나간 것이 불행 중 다행이었다.

 

평소보다 짧은 티타임을 가졌다. 정신적인 피로는 육체로 드러나는 법이다. 그래도 기준이 올라간 때처럼 단절되지 않았다. 이제 멤버들도 서로가 소중한 존재라는 걸 알았다.

 

방으로 돌아온 다진은 침대에 벌렁 누웠다. 이대로 자고 싶었지만 감기라도 걸리면 큰일이다. 중요한 시기에 작은 꼬투리라도 닥터에게 내어주어서는 안된다. 다른 멤버들에게 피해를 주어서도 안된다. 그래도 오 분 정도 늦장 부려도 괜찮을 거다. 더도 말고 오 분만.

 

다진은 눈을 감았다. 3일 동안 다녀온 여행지가 파노라마처럼 펼쳐졌다. ‘MIRROR-ONE’이 아니라면 들추지 않았을 과거다. 이 시기를 거치면서 다진은 변했다. 좋은 쪽으로든 나쁜 쪽으로든. 만약 이 시기를 다르게 보낸다면 다른 삶의 방식을 가지게 되었을까. 신념이 더러워지지 않았을까. 다진은 생각했다. 하지만 생각뿐이다. 과거는 지나갔고 지금은 실험에 열중하면 된다. 업보 쌓을 짓은 하지 않아야 한다.

 

업보.

 

다진은 몸을 일으켰다. 다진은 ‘업보’에서 뿌리내린 신념이 틀렸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지금은 빛이 바랬지만 그 덕분에 견딜 수 있었던 시간도 분명 있었다.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해서 나쁜 일은 없다. 다만 이제는 보상을 먼저 고려하지 않으려 한다. 다진도 모르게 생각이 뻗어 나가지만 의식적으로 뻗어 나간 생각을 끌어당기고 있다. 그리고 태구가 남긴 ‘가능성’이란 씨앗에서 싹이 움텄다. 그것은 다진이 길을 선택하고 개척하는 눈이 되었다. 다진은 우연히 발에 닿은 길만을 걷는 어린 다진을 떠올렸다. 그 길이 틀려도 참고 견디는 게 맞다고 생각하며 묵묵하게 걷는 아이를.

 

다진은 책장에 꽂아 놓은 갈색 일기장을 찾았다. 고해 부분은 넘기고 계획 부분을 펼쳤다. 다진은 태구가 세운 계획을 꼼꼼하게 읽었다. 처음 태구에게서 계획을 들었을 때, 다진은 태구가 무작정 달려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태구가 남긴 기록을 읽으니 자신이 할 수 있는 최대한의 계획을 세운 것이었다. 과정이 어떻게 되었든 태구는 죽었고 진경의 현재도 바뀌지 않았으니 계획은 실패한 거나 다름없었다. 하지만 완전한 실패는 아니었다. 진경의 과거는 분명히 바뀌었다. 진경이 이 사실을 밝혔을 때 다진은 거짓말하지 말라며 믿지 않았지만 진경이 거짓말할 이유도, 다진이 이 사실을 믿지 않을 이유도 없었다. 태구는 성공했다. 태구는 과거를 바꾸었다. 다진은 갈색 일기를 덮고 눈을 감았다. 어쩌면 잊고 지냈던 과거와 마지막 끝자락에 마주한 이유가 있을지도 모른다. 다진은 안개가 자욱한 갈림길 앞에 서있었다. 다진은 무엇이 기다리고 있든 선택해야 했다.

 

다음날부터 다진은 훈련에 돌입했다. 미친 짓이냐 매도한 태구가 했던 훈련이다. 바로 ‘MIRROR-ONE’의 경고음을 들을 수 있는 횟수를 늘리는 훈련과 그 시간 동안 움직이는 훈련이다. 이 두 가지는 과거를 바꾸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훈련이다.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 닥터가 설정한 도착지는 마음껏 훈련할 수 있는 느긋한 분위기가 아니었고 호스트가 뿜어내는 부정한 마음이 다른 시간대보다 배는 많았다. 조건이 어떻든 다진은 서둘러야 했다. 시간은 3주 밖에 없었다.

 

다진은 자신이 저지를 계획을 멤버들에게 알려야 할지 고민했다. 태구가 어떤 마음으로 자신에게 계획을 밝혔는지 조금은 이해할 수 있었다. 성공한다면 그 자체로 상관없지만 실패했을 때를 배제할 수 없었다. 멤버들이 미리 알고 있으면 영문도 모르고 몹쓸 상황에 처하는 일은 피할 수 있을 것이다. 그것만으로도 고백하는 편이 여러모로 나았다. 다진은 진경에게 먼저 알리기로 했다. 티타임 때 모두에게 공개하는 방법도 있었지만 모두가 동시에 충격 받는 최악의 리스크를 줄이고 싶었다. 무엇보다 제3자의 의견도 듣고 싶었다. 티타임이 끝나고 다진은 진경을 방으로 초대했다.

 

“미쳤어? 절대 안 돼.”

 

“내 얘기 제대로 들은 거 맞지?”

 

“어, 태구가 했던 짓을 그대로 하겠다는 거잖아.”

 

다진은 고개를 주억였다. 진경은 고개를 가로로 저었다.

 

“태구한테 바보 바이러스라도 옮은 거야? 다진 씨. 이제 3주 남았어. 3주. 3주만 지나면 뭐든 할 수 있어. 다진 씨가 하고 싶은 일 전부 할 수 있어. 그건 알지?”

 

다진은 힘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아는 사람이 그렇게 하겠다고? 이거는 이야기할 가치가 없는 문제야. 다른 사람들한테 물어봐도 같은 반응일걸? 확실하게 보이는 걸 선택해.”

 

“진경 씨는 끝이라는 닥터가 한 약속 믿지 않는다며.”

 

“믿지 않지. 하지만 지금까지 닥터는 자기가 뱉은 약속은 전부 지켰어.”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닥터가 이번에만 약속을 지키지 않는다면? 항상 예외는 있잖아.”

 

진경은 입을 벌렸다가 닫았다. 믿기 싫은 미래였고 일어나지 않길 바라는 미래였다. 진경도 닥터가 약속을 지키지 않는 미래를 상상하지 않은 건 아니다. 하지만 일어나지 않는 일을 미리 걱정하는 건 시간 낭비다.

 

“실험이 끝나고 다른 연 … (계속 읽으시려면 로그인해야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