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장 첫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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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진은 아침을 먹는 둥 마는 둥 했다. 실험을 위해 속을 든든히 채우라는 닥터의 조언 때문에 음식을 입에 쑤셔 넣었지만 기계적인 움직임이었다. 지난 밤 흘린 땀이 혀 밑 한 구석에 고여 텁텁했다. 다진은 밥을 국에 말았다.

 

다진은 닥터와 함께 걸은 길을 되짚었다. 아무 표시가 없으니 이곳이 저곳 같고 저곳이 이곳 같았다. 물어볼 사람도 없었다. 다진은 길을 헤매다가 복도에 닥터 피쉬처럼 모여 있는 사람들을 발견했다.

 

“저기….”

 

“새로 온다는 사람 아니야?”

 

누군가가 뱉은 한마디에 사람들의 이목이 집중했다. 다진은 얼굴이 벌게져 그 자리에 멈춰버렸다.

 

“오늘 새로 오기로 한 분 맞죠?”

 

무리 중 한 명이 다가왔다.

 

“무슨 말씀이신지 모르겠는데요. 저는 그냥 길을 물어보려고….”

 

다진은 뒷걸음질 치며 거리를 벌렸다. 그러자 그 사람은 다진이 벌린 거리만큼 다가왔다. 멀어지면 다가가고 멀어지면 다가가고. 길을 물어보려고 한 것뿐인데 어쩌다가 이런 꼴이 되었을까. 첫 참가부터 지각하게 생겼다.

 

이상한 대치전이 길어지려는데 갑자기 복도에 네모난 구멍이 생겼다. 구멍에서 파란 가운을 입은 닥터가 등장했다.

 

“닥터, 9시 2분이라구요. 시간을 연구하시는 분이 시간을 중요하게 생각하셔야죠.”

 

“미안합니다. 준비할 게 있어서 좀 늦었습니다. 전다진 씨도 잘 찾아오셨네요.”

 

닥터는 다진에게 인사를 건넸다. 사람들은 다진을 쓱 쳐다보곤 열린 문으로 들어갔다.

 

“오늘 오기로 한 사람 맞네요. 들어가죠.”

 

다진과 대치했던 남자는 빙긋 웃어 보이고는 실험실 안으로 들어갔다. 다진은 그 사람을 쫓아 구멍 안으로 들어갔다.

 

장막이 걷힌 연구실은 어제보다 넓어 보였다. 드러난 공간에는 인원 수에 맞게 ‘MIRROR-ONE’이 설치되어 있었다.

 

사람들은 연구실 중앙에 일렬로 섰다. 눈치껏 그들 옆에 서려는 다진을 닥터가 앞으로 불렀다.

 

“어제 말했듯이 새로운 실험자가 있습니다. 얼굴은 이미 봤겠지만 제대로 소개하죠. 전다진 씨입니다. 어제 병동에서 연구동으로 왔습니다. 그리고… 아, 제가 다 설명하면 할 말이 없을 테니. 전다진 씨, 자기 소개 부탁합니다.”

 

다진은 닥터에게 떠밀려 반 걸음 앞으로 나왔다.

 

“안녕하세요. 전다진이라고 합니다. 어제 여기로 왔고요. 오늘부터 박사님 연구에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다진은 허리를 굽혀 사람들에게 인사했다. 사람들은 박수로 화답했다.

 

“나머지는 차차 알아가기로 하고. 여러분은 원래 하시던 대로 하면 됩니다.”

 

사람들은 각자 정해진 ‘MIRROR-ONE’을 찾아 정렬했다. ‘MIRROR-ONE’은 묘비처럼 일정한 거리를 두고 있었는데 모양은 관을 세워 놓은 것 같았다. 사람들은 뱀파이어처럼 선 채로 ‘MIRROR-ONE’에 입관했다. 숙면을 위해서인지 닥터와 다진이 서있는 곳을 제외한 공간을 비추던 녹색 조명이 어두워졌다. 장막은 내려오지 않았다.

 

“이쪽으로 오시죠.”

 

닥터는 어제 설명한 곳과 다른 곳으로 다진을 이끌었다. 그들이 지나간 조명이 차례차례 어두워졌다.

 

닥터는 가장 구석에 놓인 ‘MIRROR-ONE’ 앞에 섰다. 그것은 실험실에 내린 녹색 조명 탓에 물에 젖은 조약돌처럼 매끈해 보였다.

 

“이 ‘MIRROR-ONE’은 전다진 씨 전용 장치입니다.”

 

‘MIRROR-ONE’ 겉면에 ‘전다진’ 이름 석 자가 새겨져 있었다. 다진은 이제 돌이킬 수 없다는 생각에 머리가 띵했다. 하지만 다진은 그 생각을 털어냈다. 어차피 짊어져야 할 업보라면 긍정적으로 임하자. 부정적인 마음으로 다가가면 오히려 업보가 쌓인다.

 

“설명 시작하겠습니다. 장치에 들어가려면 오른쪽에 있는 스위치를 누릅니다.”

 

닥터는 설명에 맞춰 손을 움직였다. 장치의 매끈한 옆구리를 만지니 ‘MIRROR-ONE’이 핫도그 빵처럼 좌우로 길게 갈려지며 노란 빛이 새나왔다. 단조로운 8비트 알림음이 나고 실린더에서 공기가 빠지는 소리가 들렸다.

 

“그 다음은 탑승합니다. 어제도 들어가 보셨죠?”

 

다진은 머리를 주억이고 ‘MIRROR-ONE’에 몸을 뉘였다.

 

“좋습니다. 장치 안쪽 개폐 스위치가 있습니다. 문을 열 때처럼 터치하면 닫힙니다.”

 

다진은 어두운 ‘MIRROR-ONE’ 안을 더듬었다.

 

“잠깐만요, 전다진 씨. 주의 사항이 있습니다. 실험이 시작되면 무슨 일이 있더라도 절대로 움직이려고 해서는 안됩니다.”

 

다진은 행동을 멈추고 닥터를 바라보았다.

 

“지금은 움직여도 괜찮습니다.”

 

다진은 민망해 하며 ‘MIRROR-ONE’ 속을 열심히 더듬었다.

 

“이렇게 좁은 곳에서 어떻게 움직일 수 있죠?”

 

닥터는 눈썹이 위쪽으로 크게 움직였다.

 

“제 표현이 부족했습니다. 움직이려고 생각해서는 안됩니다.”

 

여전히 다진은 닥터의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

 

“움직이려는 생각은 움직이려는 의지로 이어집니다. 움직이지 않아도 움직이고 싶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M-ONE’이 구동하면 절대 하지 않아야 합니다.”

 

“만약 움직이려고 하면, 움직이고 싶다고 생각하면 어떻게 됩니까?”

 

“‘M-ONE’이 경고를 보냅니다. 가벼운 두통이 일고 시끄러운 소리가 들릴 겁니다. 천둥소리가 난다는 사람도 있고 꽹과리 소리가 난다는 사람도 있고 그건 사람마다 다릅니다. 이건 전다진 씨의 과거와 현재의 위상 차이 때문에 생기는 괴리감인데 결코 위험한 건 아닙니다. 내가 움직였구나 인지하고 바로 고치면 됩니다. 경고횟수는 사람마다 다르지만 평균 열 번의 경고를 줍니다. 그래도 계속해서 경고를 무시하면 시압(時壓)에 눌리게 됩니다.”

 

닥터는 청색 가운 안으로 손을 넣어 사진 한 장을 꺼냈다. 상하좌우로 불균형하게 찌그러진 콜라 캔이었다. 꽉 짠 빨랫감을 그대로 말린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이게 뭐죠?”

 

“규칙을 어긴 자의 말로입니다.”

 

닥터는 사진을 거두고 미소를 띄었다.

 

“관람차를 탄 것처럼 풍경을 즐기면 됩니다. 정겨운 풍경을 보고 그리운 냄새를 맡고 소리를 들어주십시오. 호스트가 하는 대로 따라가십시오. 전다진 씨가 해야 할 일은 그것 뿐입니다.”

 

“아무 것도 하지 않고 ‘과거의 나’에 탑승해서 지나간 풍경을 즐기면 된다는 거죠?”

 

“바로 그겁니다!”

 

닥터는 새로운 이론을 발견한 과학자처럼 손뼉을 쳤다.

 

“오늘은 처음이니까 도착지나 이런저런 세부 사항은 저희가 컨트롤하겠습니다.”

 

닥터는 ‘MIRROR-ONE’ 안으로 손을 집어넣어 스위치를 눌렀다. 기동음이 나며 문이 닫혔다. 문이 완전히 닫히기 전에 닥터는 시야에서 사라졌다. 문이 완전히 닫히자 발 밑에 푸른색 할로겐 조명이 들어왔다. 실린더에서 공기 빠지는 소리가 들렸다. 이제 시작이다. 다진은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 하지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어림잡아 십 분 정도 지났을 때 다진은 불안해졌다. 실험이 시작된 건지 착오가 생겨 늦어지는 건지 알 수 없었다. 혹시 최면에 걸리지 않는 사람처럼 자신이 특이 체질은 아닌가 하는 쓸데없는 생각까지 들었다.

 

“실험은 시작한 건가요!”

 

다진은 ‘MIRROR-ONE’을 두드렸다. 다진은 곡면 위에 길쭉한 자신과 손바닥을 마주했다. 반응이 없다. 몇 번 문을 두드리다 다진은 ‘MIRROR-ONE’의 뒤를 보았다. 새까맣다. 조명도 비치지 않는다. 끝이 보이지 않는 절벽 위에 누워있는 기분이었다. 다진은 앞을 보고 누웠다. 우스꽝스러운 제 얼굴을 보는 편이 덜 무섭기 때문이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실린더에서 공기가 빠지는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한기가 느껴졌다. 한기는 발목부터 천천히 그를 잠식했다. 아래를 쳐다보니 액체가 차오르고 있었다.

 

“뭔가 잘못된 거 같은데요?”

 

다진은 거세게 거울관을 두드렸다. 아무 반응이 없었다.

 

“이봐! 여기 사람 있다고! 이봐!”

 

다진은 필사적으로 관뚜껑을 두드렸다. 액체는 발목에서 무릎, 무릎에서 허리, 허리에서 어깨, 어깨에서 턱 밑까지 차올랐다. 다진은 폐 가득히 숨을 들이 마셨다.

 

‘힘들게 살렸는데 쉽게 죽이진 않습니다.’

 

이 박사의 가식적인 미소가 떠올랐다. 액체가 머리 끝까지 차올랐다. 다진은 공기 한 줌까지 아끼려 했지만 아가미가 없는 포유류가 가진 한계는 절대적이었다. 다진은 마지막 숨을 내뱉었다. 그의 마지막 숨을 담은 공기방울이 떠올랐다.

 

시간이 지날수록 괴로웠다. 다진은 이대로 … (계속 읽으시려면 로그인해야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