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장 거스러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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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시 23분. 다진은 침구를 정리했다. 어느 때보다 깊고 편안하게 잠든 그를 허기가 깨우지 않았다면 더 자고 싶었다.

 

아침 식사를 하기엔 이른 시간이라 식당은 한산했다. 테이블을 차지한 사람들은 대부분 머리가 희끗희끗한 노인들이었다. 노인들 사이에 야채와 닭가슴살이 버무려진 샐러드를 먹는 젊은이가 보였다. 저것도 실험의 일종일까. 다진은 켜켜이 쌓인 식판탑에서 식판 하나를 들었다.

 

다진은 돼지고기와 감자가 섞인 간장 장조림과 적당히 익은 배추김치, 약간의 양상추 고구마 샐러드, 방울 토마토 4개를 식판에 담았다. 과하게 담은 감이 있었으나 지금의 다진이라면 5인분도 거뜬히 먹을 수 있었다. 어묵국을 마지막으로 아침 식사를 완성한 다진은 서둘러 빈 테이블에 앉았다. 다진은 들끓는 식욕에 사정없이 음식을 흡입했다.

 

“와, 정말 많이 먹네요.”

 

다진은 소리 나는 방향으로 고개를 들었다. 시야에 들어온 사내는 흥미롭다는 듯 방울토마토를 앞니로 깨물었다. 방울토마토는 과즙을 사방으로 터뜨리며 찌그러졌다. 다진은 사내를 무시하고 숟갈 가득 밥을 펐다. 하지만 누군가 바라보는 시선이 굉장히 신경 쓰였다. 다진은 다시 사내에게 눈길을 주었다.

 

“엄청 얌전한 분 같아 보였는데 터프하시네요.”

 

“우리, 어디서 봤었나요?”

 

“우리 팀메이트에요. 닥터 구효기 연구실. 기억 못하세요?”

 

사내는 서운함을 어김없이 드러냈다.

 

“미안합니다. 어제는 정신이 없어서.”

 

“하긴 닥터가 인사할 시간을 안 주긴 했어요. 닥터가 원래 그래요. 뭐든지 효율 중심이죠. 통제적이고. 저는 T에요.”

 

아, 하고 다진은 낮게 대답했다. 별명으로 자신을 소개한 사내는 다진의 정면에 앉았다. 사내의 식판은 방울토마토으로 가득했다.

 

“알아요. 외국인도 아니고 요원처럼 왜 T라고 불러 달라 하냐고요? 그래요. 제 이름은 오태구에요. 태구. 이름이 ‘개’같아서 사람들한테 T라고 불러 달라고 해요. 그쪽 이름은 전다진 맞죠? 딱 봐도 저보다 형 같으니까 그냥 형이라고 부를게. 다진 형도 편하게 T라고 불러. 태구라고 불러도 되는데 웬만하면 T라고 불러줘.”

 

다진은 고개를 끄덕였다. 학창시절에도 첩보 영화를 보고 와서는 이름을 영문 이니셜 중 하나로 불러 달라는 친구가 있었다. 친구들은 그 아이의 성인 ‘봉’을 따서 ‘B’라고 불렀는데 대부분 ‘병신’의 약자로 알고 있었다. 그 사실을 알게 된 친구는 이니셜 별명을 포기했다.

 

“어제 무사히 이착륙 했다면서?”

 

T는 방울토마토 꼭지를 떼서 꼭지는 식판에, 알맹이는 입에 넣었다.

 

“닥터가 그렇게 말하더군요. 첫 여행에서 무사히 이착륙을 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니라고. 그, 누구더라. T 이후 처음이라고… 아.”

 

다진의 앞에서 방울토마토를 우물거리는 사내는 거만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바로 제가 그 T입니다. 실험을 마치고 나오는데 닥터가 흥미롭게 혼잣말 하더라고. 이륙도 매끄럽게 하고 착륙도 매끄럽게 할 것 같다고. 그래서 궁금했어. 개인적으로 이야기도 하고 싶었고. 어제 식당에서 계속 기다렸는데 나타나질 않은 건 예상 외였지만. 분명 실험이 끝나면 배고플 텐데 말이야. 저녁을 안 먹었으면 아침은 일찍 먹을 거라 예상했지. 그리고 빙고.”

 

T는 방울토마토 꼭지를 떼면서 빳빳이 세운 검지로 다진을 가리켰다. T는 범인을 맞춘 탐정 같이 의기양양한 얼굴이었다.

 

다진은 식판을 내려보았다. 손대지 않은 음식이 많이 남아있었지만 누구 덕분에 식욕이 한풀 꺾였다. 다진은 방울토마토에 손을 뻗었다.

 

“어땠어? 이륙할 때. 이게 사람마다 다르거든. 나 같은 경우엔 머리를 쥐어뜯기는 기분이야. 그래서 머리를 빡빡 밀면 나아질까 싶었는데 저언혀 소용없어.”

 

T는 손가락 사이로 살짝 삐져 나온 머리카락을 쓰다듬었다.

 

“나는…. 빨려 들어가는 기분이었어요. 수채구멍으로 빨려 나가는 물길에 몸을 맡겨 빙글빙글 돌아가는 기분이라고 해야 할까요.”

 

T는 계속하라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눈을 뜨니 요람에 누워있었어요.”

 

T는 방울토마토의 꼭지를 떼다 말고 상체를 앞으로 숙였다.

 

“처음 도착지가 갓난 아기였어? 와, 대단한데? 그런데 착륙도 무사히 했단 말이지? 이 형 대단한 사람이었네. 어어? 뭐가 힘드냐는 표정이네. 그런 표정 절대 다른 사람한테 짓지 마. 갓난 아기는 사람들이 선호하지만 생각보다 견디기 어려운 곳이야. 아무래도 이해 못하는 거 같네. 형, 아기 때 어떻게 움직였는지 어떤 생각으로 움직였는지 기억해?”

 

다진은 고개를 저었다.

 

“맞아, 기억할 수 없어. 기억 나지 않지. 두 세 살 때를 기억하는 사람도 있다지만 정말 드물어. 기억한다고 해도 파편적이지. 그리고 그런 기억들은 상황에 대한 기억이지, 어떻게 움직였는지 같은 매커니즘에 대한 기억이 아니야. 그보다 더 아기일 때는 말할 것도 없어. 완전히 미지의 세계야.”

 

어제 ‘MIRROR-ONE’을 탑승하기 전까지 다진에게 가장 오래된 기억은 초등학생 때였다. ‘카르마’를 발표한 순간. 그것도 T의 말대로 그 장면에 대한 기억일 뿐 어떻게 움직였는지에 대한 기억은 아니었다.

 

“그래도 걸을 수 있는 나이면 힘들긴 하지만 도착지에 적응을 빨리 할 수 있어. 시야가 땅 위에 솟아 있어서 금방 익숙해지거든. 하지만 갓난아기는 그렇지 못해. 머리는 무게 때문에 가눌 수 없지. 별 거 아닌 거에 정신이 팔리지. 이해할 수 없는 행동투성이거든. 나도 몇 번 가봤는데 너무 지쳐. 마음이야 템플스테이 저리 가라 할 정도로 편안해지지만.”

 

T는 젓가락을 들고 허공에서 목탁 치는 흉내를 냈다. 다진은 T의 말을 알 것 같기도 모를 것 같기도 했다. 그는 고작 한 번 이착륙 했을 뿐이다.

 

T의 식판에 수북하게 쌓아 올린 방울토마토는 어느새 하나만 남았다. T는 마지막 방울토마토 꼭지를 떼고 입에 넣었다.

 

“어제 처음 이륙했으니까 내가 하는 말이 뭔 지 모를 수도 있겠다. 다양한 곳에 도착하면 내가 무슨 말을 하는지 이해할 수 있을 거야. 내 얘기 듣느라 밥도 못 먹었네. 마저 밥 먹어. 있다가 봐. 얼굴 보면 인사하고!”

 

T는 마른 토마토 꼭지로 산을 이룬 식판을 들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네, 그래요.”

 

“그리고 존댓말 하지 말고. 나보다 딱 봐도 형인데. 어차피 우리는 한 배를 탄 거야. 좋든 싫든 실험이 끝날 때까지는 말이야. 편하게 대해. 알았지?”

 

“네, 으응.”

 

“반말하니까 얼마나 친근하고 좋아. 그럼 실험실에서 봐.”

 

T는 검지와 중지를 붙인 두 손가락을 오른쪽 눈썹 끝에 가져갔다가 절도 있게 뗐다. 다진은 멍하니 작아지는 T를 보았다. 식판에 음식들이 많이 남아 있었지만 이미 뚝 떨어진 입맛은 음식을 거부했다. 다진은 눈치를 보며 잔반을 버렸다. 다진이 싫어하는 행동이다. 그래도 이정도 업보는 금방 해소할 수 있어. 다진은 스스로에게 변명하며 방으로 돌아갔다.

 

오늘은 헤매지 않고 시간에 맞춰 연구실 앞으로 갔다. 사람들은 어제처럼 모여 있었다. 다진은 무리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섰다.

 

“형!”

 

무리 중심에서 손 하나가 하늘로 올라왔다. T였다. 사람들의 시선이 다진에게 몰렸다. 다진의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형! 만나면 인사하기로 했잖아.”

 

T는 사람들 틈을 비집고 다진에게 다가왔다.

 

“어, 안녕.”

 

“왜 혼자 서있어. 이리 와.”

 

다진의 손목을 잡은 T는 다시 사람들 틈을 비집고 맨 앞으로 갔다.

 

“어제 다들 인사 제대로 못했지? 이 형 이름은 전다진이야.”

 

“안녕하세요….”

 

얼굴이 벌개진 다진과 다른 실험자들 사이에 어색한 눈인사가 오갔다.

 

“태구야. 우리도 어제 닥터한테 소개 받았거든?”

 

젊은 여자가 날이 선 목소리로 T를 나무랐다.

 

“진경 누나는 나를 너무 아낀다니까. 형은 우리들한테 인사를 제대로 못 했잖아. 연구실이 어두워서 우리들 얼굴이나 제대로 봤겠어? 그치, 형?”

 

T는 홍당무 같이 벌게진 다진에게 얼굴을 가까이 댔다.

 

“니 부담스런 상판이 가까이 가면 기분 좋겠다. 등신.”

 

진경은 T의 팔을 뒤로 잡아당겼다. T는 넘어질 듯 뒷걸음질 쳤다.

 

“원래 얘가 오지랖이 넓어요. 억지로 얘한테 맞춰 주실 필요 없어요. 오가면서 얼굴 익히면 … (계속 읽으시려면 로그인해야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