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장 사흘 만에 부활하시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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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을 뜰 수 없을 만큼 눈부신 빛이 쏟아졌다. 다진에게 종교는 없었지만 으레 천국이나 극락이 존재한다면 주위를 파악할 수 없을 만큼 눈부신 빛이 쏟아질 거라고 상상했다. 빛에 휩싸여 여러 사람(사람은 아니겠지만)에게 둘러싸여 높은 곳으로 옮겨지는 모습도 빼먹지 않았다.

 

땡그랑. 땡그랑.

 

이따금씩 쇠와 쇠가 부딪치는 파열음이 들렸다. 전혀 아름답지 않고 시끄러웠지만 내세의 타악기는 현세의 악기 소리와 다를지도 모를 일이다. 내세는 아무도 모른다. 체험해봤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만 전해질 뿐이다.

 

빛에 적응한 다진의 눈에 주위가 조금씩 들어왔다. 7개의 원형 빛 주위로 입이 파랗고 이마가 녹색인 무언가가 다진을 내려다보았다. 그(것)들은 자기들끼리 마주보다 다진을 내려다보길 반복했다.

 

업보의 해소가 천국행 티켓이라면 수지타산에 맞는 장사였다. 다진은 안심하며 눈을 감았다. 감은 눈 위로 쏟아지는 강렬한 빛에 눈이 부셨다. 사방이 빛나는 곳에서 생활하려면 적응 시간이 필요하겠다고 걱정이 되었지만 조급하게 생각하지 말자고 마음먹었다. 주어진 대로 살면 된다. 지금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다진이 다시 눈을 떴을 땐 강렬한 빛은 사라지고 녹색 무언가의 모습도 보이지 않았다. 격자 무늬가 새겨진 천장에 형광등처럼 보이는 길다란 원통 모양이 빛을 내며 공간을 밝히고 있었다.

 

다진은 몸을 일으키려 했으나 거미줄에 걸린 벌레처럼 옴짝달싹할 수 없었다. 다진은 하는 수 없이 눈알을 굴려 주위를 살펴보았다. 천장을 수놓은 격자 무늬를 따라 사다리를 탔다. 사다리 끝에는 아주 평범한 모양의 문이 있었다.

 

하얀 침대와 하얀 베개, 머리맡에는 복잡해 보이는 기계가 있었고 손목에는 여러 주사바늘이 꽂혀 있었다. 병실과 닮았다. 천국이라면 인간 세상과는 조금 달라야 하지 않을까 의구심이 들었지만 천국을 인간 사회와 비슷하게 묘사한 할리우드 영화를 떠올렸다. 천국으로 갓 올라온 사람들에게 충격을 주지 않기 위함이 분명하다. 역시 윗분들은 배려심이 넘쳐 흐른다. 아무리 신이라도 만신창이가 된 몸을 즉시 정상으로 돌리는 건 쉽지 않을 것이다. 단계를 거쳐 몸을 회복시키고 병실에서 적응시킨 다음, 내세를 겪게 하는 것이다. 다진은 눈을 감았다. 눈을 다시 떴을 때 강렬한 빛에 휩싸인 괴상한 무언가와 마주하게 될 거라는 기대를 하며.

 

미닫이 문이 고르지 않은 홈과 부딪쳐 드르륵, 소리를 냈다.

 

“아직 깨지 못한 것 같습니다.”

 

“그만한 사고를 겪었어. 서두를 필요는 없지. 깨어날 거야.”

 

다진은 눈을 번뜩 떴다. 놀란 표정의 남녀와 눈이 마주쳤다.

 

“깨, 깨어났어요.”

 

여자는 좀비라도 본 듯 놀랬다. 남자는 여자의 어깨를 잡고 뒤로 살짝 당겼다.

 

“기분은 어떠세요. 전다진 씨. 괜찮으신가요?”

 

“여기가 어디죠? 천국인가요?”

 

“천국이요? 하하하. 천국이든 지옥이든 다녀오셨죠. 하하하.”

 

남자는 실소를 터뜨렸다. 여자는 침대 모퉁이에 걸어 놓은 차트를 남자에게 건네 주었다. 그는 차트를 앞뒤로 살피며 환자에게 간간히 눈길을 주었다.

 

“눈 뜨기 전에 기억나는 게 있어요?”

 

“하얀 빛에 휩싸여서 이마가 녹색인 외계인들이 저를 내려 보았어요. 아, 천사요.”

 

남자는 황당한 표정을 지으며 옆에 있는 여자를 보았다. 여자는 어깨를 가볍게 들썩였다.

 

“다른 건 없나요? 천국에서 겪은 일은 빼고 부탁합니다.”

 

“사고… 말씀하시는 건가요?”

 

남자는 고개를 끄덕였다.

 

“서울로 올라가는 중이었는데 비가 앞을 못 볼 정도로 왔어요. 차가 빗길에 미끄러졌고 그대로….”

 

다진은 말끝을 흐렸다. 사고 장면이 되살아났다. 다진은 눈앞이 흐려지고 식은 땀이 났다. 어렴풋이 119를 불렀던 기억이 났지만 접수가 되었는지 확실하지 않았다.

 

“못 떠올리시는 거 같으니 제가 간단하게 설명해드리죠.”

 

남자는 침대 옆에 놓인 간이 의자에 앉았다.

 

“전다진 씨는 빗길에 미끄러져서 가드레일에 부딪치는 사고를 당했습니다. 다행인 건 다른 인명 피해는 없었습니다. 기록적인 폭우라고 특보를 알리는 덕분에 고속도로에는 사람이 한 명도 없었습니다. 전다진 씨만 빼고 말이에요. 전다진 씨는 팔과 다리, 머리, 전신에 복합골절상을 입었습니다.”

 

남자는 환자의 반응을 살폈다. 하지만 환자는 표정 변화 없이 남자를 바라보았다.

 

“소개가 늦었군요. 저는 전다진 씨 당담 의사인 이구영입니다.”

 

남자는 가운 포켓에 들어간 명찰을 바깥으로 빼냈다. 여자도 명찰을 환자에게 보여주었다. 다진은 목을 길게 빼 명찰을 읽었다.

 

‘TRAST 의학연구소 PhD 이구영’.

 

‘TRAST 병동 책임간호사 지하나’.

 

‘TRAST 의학연구소’라면 긱이 다니는 연구소다.

 

“전다진 씨가 동의한 서약서 덕분에 수술대에 오를 수 있었습니다. 서약서에 임의 수술에 대한 조항은 알고 계시죠?”

 

“서약서요?”

 

이 박사는 지 간호사에게 눈빛을 보냈다. 간호사는 바닥에 내려놓은 서류 가방에서 무엇인가를 꺼내 다진에게 보여주었다. 서류 뭉치였다. 형광펜이 칠해진 네모 박스 위에 성의 없는 V체크가 겹쳐 있었다. 다진은 서류를 넘기려 했지만 움직일 수 없었다.

 

“제가 넘겨드릴게요.”

 

다진은 괜한 도움을 받고 싶지 않았지만(스스로 할 수 있는 일을 도움 받아도 업보가 쌓인다) 지금 다진의 상태로는 하루 종일 걸릴 일이었다. 간호사는 환자에게 맞춰 서류를 천천히 한 장씩 넘겨주었지만 환자의 눈에 서류에 촘촘하게 새겨진 글자가 들어오지 않았다. 하얀 것은 종이고 검은 것은 글자라는 것만 구분할 수 있었다. 마지막 페이지에 겨우 도달했을 때 간호사는 서류의 최하단을 검지로 가리켰다. 검지 끝에는 멋지게 휘갈긴 다진의 사인이 있었다. 다진은 이것이 긱의 부탁으로 서명한 동의서라는 걸 기억해냈다.

 

“여기에 사인을 하셨기 때문에 수술대에 오를 수 있었습니다. 정말 위급한 상황이었어요. 119 구조대가 현장에 도착했을 때는 매우 위험한 상황이었죠. 결과는 지금 보시는 대로 살아계십니다만 당시에는 1분 1초가 정말 급했습니다.”

 

이 박사는 자랑스럽게 자신의 노고를 치하했다.

 

‘나는 죽은 게 아니었어.’

 

강렬한 빛을 쏟아냈던 것은 수술 등이었고 괴상한 모습의 무언가들은 수술복을 입은 의사와 간호사였다. 형태가 어찌되었든 다진이 바랬던 업보의 해소가 이루어졌다.

 

“저기, 수술비용은 어떻게…?”

 

“비용은 걱정하실 필요 없습니다. 대신 전다진 씨가 해주어야 할 일이 있습니다.”

 

간호사는 박사에게 서류 가방에서 종이 한 장을 꺼내 주었다. 그는 그것을 유심히 읽고 다시 간호사에게 돌려주었다. 그녀는 그것을 서류 가방으로 되돌렸다.

 

“전다진 씨는 회복이 끝나는 대로 실험에 참가해주셔야 합니다. 회복 기간은… 1달로 예상합니다. 외부였다면 언제 깨어날 지도 모르고 깨어난다고 해도 몸을 움직이기까지 10년은 걸리겠지만 저희 연구소 기술이라면 1달이면 충분합니 … (계속 읽으시려면 로그인해야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