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장 과부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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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진 씨, 금산 프로젝트는 어떻게 됐어?”

 

김 차장이 다진에게 다가왔다. 다진은 모니터에서 상사에게 시선을 옮겼다.

 

“거의 다 끝났습니다.”

 

“정확하게 얼마나 남았어. 다진 씨 페이스가 있는 건 알지만 다른 회사랑 협업할 때는 서둘러야 돼. 도면 빨리 넘기라고 아침부터 아우성이야.”

 

김 차장은 귀에 남아있는 거래처의 짜증을 지우려 두꺼운 새끼손가락으로 귓구멍을 후볐다.

 

“오늘 중으로 보고 드리겠습니다.”

 

“리미트 3시. 노력하는 거도 알고 바쁜 거도 아는데 어쩔 수가 없다. 우리가 을의 을인 입장이라서. 부탁 좀 할게.”

 

김 차장은 딸기 씨처럼 땀이 올라온 코를 문질렀다. 형광등에 비친 코가 반질반질 빛났다. 다진은 벌겋게 충혈된 눈을 모니터로 향했다.

 

저번 주부터 조짐이 안 좋더니 월요일이 되자마자 다진을 죽이려고 작정한 듯 그의 입김이 닿는 모든 프로젝트에서 문제가 발생했다. 다진이 맡은 프로젝트와 송 과장한테 넘겨받은 프로젝트를 포함한 크고 작은 프로젝트 4건 전부 일이 터졌다.

 

“다진 씨가 현장 감독들이랑 면을 익혔잖아. 내가 얘기했거든? 현장 가서 감독들이 요구하는 거 다 들어줘. 사이즈 안 나오는 건 딱 잘라 거부하고. 알지?”

 

송 과장은 급박한 상황에도 으레 그래왔던 것처럼 방관했다. 상황이 상황인지라 다진은 거절할 수 있었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다. 중간부터 맡은 일이긴 하지만 힘들다고 피하면 안 된다. ‘업보’에 반한다. 지금은 힘들어도 나중에 돌아올 보상을 생각하면 못 참을 일도 아니었다. 그리고 혼자서 해낼 수 있을 것처럼 보였다.

 

다진은 목을 한 바퀴 크게 돌렸다. 긴장한 채로 밤새 운전한 탓에 어깨가 뻐근했다. 힘내보자. 다진은 모니터에 얼굴을 박고 바쁘게 마우스를 움직였다. 급한 불부터 끄자.

 

“차장님, 보고 드리겠습니다.”

 

김 차장은 시계를 보았다. 오후 2시 46분. 보고를 마치고 자잘한 수정을 끝내면 아슬아슬하게 3시 전에는 도면을 넘길 수 있다.

 

“회의실로.”

 

김 차장은 앞장서 회의실로 향했다. 좌우로 스윙하는 김 차장의 펑퍼짐한 엉덩이가 시야에 꽉 들어찼다.

 

김 차장은 회의실에 불을 켜고 눈에 보이는 자리에 앉았다. 다진은 그 옆에 앉았다.

 

“설명해봐.”

 

“영길에서 요구하는 부분을 중점적으로 보완했습니다. 하부에 들어가는 비용을 줄여달라고 해서 강도가 크게 줄지 않을 선에서 절충했습니다. 영길에서는 자기네 이익이 적다고 수정 요청할 겁니다. 이대로 진행되면 저희야 좋겠지만 아마 하루 이틀 내로 요청이 들어올 겁니다. 그러면 담당자랑 상의해서 수정하고 보고하겠습니다.”

 

김 차장은 도면 끝을 손가락으로 말아올렸다. 발을 구르는 투우처럼 종이가 구부러졌다가 평평해졌다를 반복했다. 다진은 이번 도면을 끝으로 금산 프로젝트에 신경을 덜 쓰고 싶었지만 협업 프로젝트는 쉽게 넘어가는 법이 없다. 탄강 건설 입장에서 완벽한 도면이라도 영길 건설 입장에서는 불완전하게 보일 수 있다. 시간만 있다면 최대한 영길의 요청을 수용하면서 탄강의 이익을 최대화하는 결과를 내겠지만 시간이 부족하다. 그래도 이 정도면 거래처의 입을 당장은 막을 수 있다. 다음은 다음 상황에 맞춰 대응하면 된다.

 

“오케이. 시간은 벌겠어. 고생했다. 고생했어. 수정 요청 들어올 때까지 숨 좀 돌려. 얼굴이 말이 아니야.”

 

“걱정해 주셔서 감사합니다만 바로 현장 가야 됩니다.”

 

“현장? 지금 맡은 프로젝트에서 현장 들어간 거 있었나? 그 상태로 운전한다고? 절대 안 돼.”

 

“괜찮습니다.”

 

“다른 사람한테 부탁하는 건 어때? 아까 보니까 송 과장 노는 거 같던데.”

 

다진은 ‘띵가띵가 놀고 있는 송 과장이 넘긴 일을 처리하러 가는 겁니다’ 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튀어나왔지만 꾹꾹 눌렀다.

 

“현장 감독과 면이 있는 제가 움직이는 편이 일처리하기가 수월할 겁니다.”

 

“얼굴 아는 사람이 가는 게 현장에서도 이해해주기가 쉽긴 하지. 어쩔 수 없네. 원래 막내일 때는 본사, 현장 따질 거 없이 무조건 발로 뛰는 거야. 그래도 혼자서 다 하려고 하지 마. 몸이 열 개여도 할 수 없는 일이 있는 거야. 도움을 청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니까 혼자서 다 끌어안고 있으려고 하지 마. 그런다고 누가 알아주나. 자기 몸은 자기가 챙겨야지.”

 

김 차장은 지친 막내의 어깨를 두드리고 회의실에서 나갔다. 회의실에 혼자 남은 다진은 의자 등받이가 부러질 정도로 기지개를 폈다. 바늘이 눈을 쑤시는 것 같았다. 뜨거운 탕에 들어가 여기저기 뭉친 근육을 풀고 싶었다. 잠도 자고 싶었다.

 

정신차려!

 

다진은 양 볼을 세게 때렸다. 오늘 용월 현장에 가지 않으면 밀릴 일이 한 두 가지가 아니다. 금산 프로젝트도 이틀 정도 시간을 번 것일 뿐 마무리된 게 아니다. 다진은 화장실로 달려가 찬물로 세수를 했다. 목으로 흐르는 물을 대충 닦고 현장 도면을 챙겼다.

 

맑았던 하늘에 금방이라도 비를 뿌릴 것처럼 구름이 잔뜩 꼈다.

 

“비 오면 안 되는데.”

 

다진은 앞유리창에 얼굴을 바싹 댔다. 가뜩이나 피곤한 탓에 앞이 잘 보이지 않는데 비까지 오면 시야가 좁아진다. 그렇게 되면 운전이 미숙한 다진은 소극적으로 운전할 수밖에 없다.

 

유리창에 새똥같은 빗방울이 하나 둘 떨어지기 시작했다. 다진은 노면이 더 젖기 전에 달려야 한다는 일념 하에 엑셀에 힘을 주었다. 도로는 점점 미끄러워졌지만 다진은 속도를 줄이지 않았다. 덕분에 예상 시간보다 빨리 현장에 도착했다.

 

현장은 마무리한 시간이었지만 사전에 양해를 구한 덕분에 감독은 퇴근하지 않고 기다려 주었다.

 

“죄송합니다.”

 

“아냐, 생각보다 빨리 왔어.”

 

감독은 다진이 오기 전까지 ‘내가 신입한테 시간을 맞춰야 하냐’고 짜증을 냈었지만 다진의 야윈 얼굴을 보니 말이 쏙 들어갔다.

 

“괜찮으시면 바로 이야기 진행할까요?”

 

“어, 어어. 사무실로 들어가자고.”

 

감독은 사무실로 개조한 컨테이너로 다진을 이끌었다. 비가 온 탓에 땅이 물러져 발을 딛을 때마다 진흙이 구두와 바지 밑단에 달라붙었다.

 

“발 털고 들어와.”

 

컨테이너 사무실은 겉모습과 다르게 안은 일반 사무실 같았다. 감독은 멍하니 서있는 다진에게 적당한 데 앉으라고 손짓했다.

 

“커피 마실거지?”

 

감독은 커피 포트에 담겨 있던 물을 버리고 새로 물을 받았다. 커피 포트의 스위치를 누르자 열선에 전기가 통하는 소리가 들렸다. 일 분도 지나지 않아 커피 포트는 수증기를 내뿜었다. 그 사이 감독은 종이컵에 믹스 커피 스틱을 두 개씩 뜯어 넣었다. 딸깍 소리가 나며 커피 포트가 꺼지자 감독은 나란히 세운 종이컵에 물을 부었다. 정확히 같은 높이에 물을 붓고 속이 빈 커피 스틱 봉지로 두 세번 휘휘 젓고 그것을 빼냈다. 인스턴트 커피 특유의 달콤한 냄새가 코를 자극했다.

 

“감사합니다.”

 

다진은 커피로 입을 적셨다. 강렬한 달콤함에 머리가 어지러웠지만 정신이 드는 것 같았다. 다진은 젖지 않게 품에 안은 도면을 테이블에 펼쳤다.

 

“젊은 친구가 뭐 이리 급해. 천천히 하자고. 오늘 늦게 현장에 왔으니까 내일은 늦게 출근해도 되잖아? 탄강 건설에 그 정도 유도리는 있어.”

 

감독은 소파에 깊숙이 엉덩이를 밀어 넣고 뒤로 기댔다. 소파가 힘을 준 대로 찌그러졌다.

 

“이번 주는 처리할 일이 많아서요. 이거 끝나면 바로 올라가야 합니다.”

 

“회사 일을 혼자서 다하는 거 같네. 누구한테 밉보였어? 자네 얼굴을 봐. 산송장이야. 밥은 제 때 먹고 하는 거야? 물 한 모금 마시길 했어?”

 

다진은 마른 손으로 얼굴을 쓱쓱 문질렀다. 사포를 긁은 것처럼 손이 얼얼했다.

 

“괜찮습니다.”

 

감독은 젊은이의 태도가 불만인듯 하마같이 짜리몽땅한 다리를 꼬았다.

 

“최선을 다하는 거 알겠지만 건강도 중요해. 송 과장 이 새끼는 왜 안 내 … (계속 읽으시려면 로그인해야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