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철학 이야기를 해보겠습니다.
어렵게 말하면 보드리야르의 시뮬라크르, 조금 쉽게 말하면 “가짜가 진짜처럼 작동하는 세계”입니다.
다만 저는 이 소설에서 따로 철학을 설명하고 싶었던 것은 아닙니다.
제가 그런걸 늘어놓을만한 정도로 학식이 높은 것도 아니고요.
많은 분들이 말씀하시더군요.
저 따위가 무슨 철학이냐고, 미친놈이냐고 말이죠. 크크크.
그 과정에서 분리주의나 문학이론에 관한 이야기도 들었습니다.
솔직히 제게는 좀 낯선 개념들이었습니다.
아무튼 제가 하고 싶었던 것은, 이론을 정리해 강의하는 일이 아니었습니다.
철학 개념을 인물과 사건과 역사 속에서 실제로 작동하게 만드는 일이었습니다.
『황금의 서사』에서 아니 우리 현실에서
돈은 실물보다 믿음으로 움직입니다.
종교는 기적보다 믿음으로 유지됩니다.
역사는 사실보다 해석으로 전승됩니다.
기적은 불가능하지만, 믿는 순간 현실의 일부가 됩니다.
이 모든 것은 같은 ‘구조’입니다.
실체가 먼저 있고 믿음이 따라오는 것이 아니라,
믿음이 쌓이고 반복되고 제도화되면서 실체처럼 작동하게 되는 구조입니다.
저는 구조주의자는 아닙니다.
다만 세상에는 개인의 의지나 감정만으로 설명되지 않는 거대한 작동 방식들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들뢰즈의 욕망기계처럼, 욕망은 개인 안에만 머무르지 않고 제도와 자본, 종교와 역사 속에서 계속 생산되고 연결됩니다.
그것이 제가 말하고 싶었던 “믿음이 현실을 만든다”입니다.
제가 하려던 것은 철학 이론을 ‘새로 주장하는 일이 아니었습니다.’
‘이미 존재하는 개념들을 서사 안에서 작동하게’ 만드는 일이었습니다.
시뮬라크르 4단계.
보들리야르의 말을 이 ‘서사로 증빙한 것 뿐’이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쓰고 보니 이 말도 건방지다고 욕먹을 수 있겠군요. 크크크.
보드리야르의 말을 증빙했다기보다, 그 구조를 서사로 옮겨본 것에 가깝습니다.
철학이라고 말하는 부분은 그저 거인의 어깨에 올라.
현대 철학의 발달순서를, 가장 상징 가능한 연대 순으로 서사 안에 나열한 것에 불과합니다.
1부 플라톤과 시뮬라크르 – 2부는 훗날 실존주의로 정식화될 질문들 – 3부 탈자아 – 4부 욕망기계 순으로 말이죠.
왜 플라톤이냐. 기독교 신학으로 가려면 아우구스티누스의 플라톤주의나,
13세기 토마스 아퀴나스의 아리스토텔레스적 신학으로 빠질 수도 있겠지만…
플라톤의 이데아/모사 구조는 “현실은 완전한 실재의 불완전한 그림자”라는 틀을 줍니다.
보드리야르의 시뮬라크르는 그 구조를 현대적으로 뒤집어서 “이제는 원본보다 기호가 현실을 지배한다”는 틀을 줍니다.
『황금의 서사』 1부는 바로 그 사이에 있습니다.
금은 실물인데 동시에 기호입니다.
교회는 신앙인데 동시에 권력 시스템입니다.
은행은 실물이 없는데도 믿음으로 작동합니다.
기적은 불가능하지만, 믿는 순간 역사 속 사건이 됩니다.
오병이어처럼 말이죠.
직접 본 사람은 없어도, 믿음이 반복되고 전승되는 순간 그것은 현실이 됩니다.
그리고 이 소설처럼요.
많은 사람들이 실제로 종교를 그리고 초월적인 존재를 실재로 지금도 믿습니다.
저는 그 믿음과 기록 사이의 공백에 악마를 배열했습니다.
세상을 이루는 결과만 놓고 보면, 악마의 장난처럼 보이도록 말입니다.
시뮬라크르 4단계를 서사로 말하고 싶은 욕망이 있었습니다.
이제 여기에 대한 설명은 이제 두번 다시는 하지 않겠습니다.
이미 과잉된 해석이라고 한 번 뒤지게 두들겨 맞았기 때문에요.
솔직히 변명 같지만 해석을 말하는 걸 좋아하지도 않습니다.
레이어를 쌓아놓고, 다르게 해석될 여지를 스스로 줄이는 멍청이가 어딨을까요?
물어보는 분들이 계셔서 설명한거고,
작품은 어쨌거나 독자의 해석이 결합될때가 참이라고 믿는 입장입니다.
5부는… 당분간 안쓸겁니다. 어쩌면 영원히 일지도요.
스토리 라인 컨셉은 대강 정해두었습니다.
몇번 이야기 한대로 코인 이야기고, 이제는 악마와 천사들이 SNS등으로 늘어난 인간의 감정을 파생상품, 도박장마냥 취급합니다.
감정의 잉여가 만들어낸, 사념체들의 자본주의 세상.
그리고 결말에는, 마지막 반전 하나를 준비해두었습니다.
다만 여기에 정확히 맞물릴 현대철학을 아직 찾지 못했고, 더 시뮬라크르적인 배열이 가능하지 않을까 하는 아쉬움도 남아 있습니다.
제 개인적으로는 아쉬운터라 이 소설의 완성은 그냥 뒤로 미루기로 했습니다.
싸움을 불러오는 물건에 더 이상 심력을 기울이기는 싫더라고요.
그럴싸 한데? 라고 누가 동참을 한다고 해도, 제 스스로가 검열을 하는 판인데 그냥 포기했습니다.
제 인생이 늘 그래왔듯 그냥 이건 한 구석에 두면 됩니다. 실패는 새롭지도 않습니다.
제도권에 못 들어간 경험이 한두 번도 아니고, 제가 왜 안 되는지 역시 사실은 스스로 너무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니 순문학식 기준으로 이 작품을 재단하는 말은 솔직히 듣고 싶지 않습니다.
이 작품 역시 그 문법을 목표로 쓴 글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여기까지 읽어주셔서 너무나 감사합니다.
특히나, 소설을 다 읽어주신 분들께는 은혜라도 입은 기분입니다. 정말로.
생전 처음 받아보는 관심과 독려, 덕분에 다시 세상에 나아갈 힘을 얻었습니다.
좋은 작품인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세상이 다 똑같은 방향으로 흐를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적어도 독특한 작품이라고 말할 자신감은 있기에, 플랫폼에 게재를 해보았습니다.
읽어봤는데 쓰레기였다는 말도 좋습니다.
기획 의도랑 본문이 다르다는 말이라면 그 독자의 말이 옳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말한 의도가 실제 작품 안에서 제대로 구현되었는지는, 결국 읽은 분들이 판단할 문제일 테니까요.
본문과 이 후기까지 읽고 난 뒤의 말이라면, 그 어떤 의견이라도 환영합니다.
이 소설에 대한, 마지막 제 미련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