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하기 앞서서 먼저 말씀드리는 건, 이 소설은 고전적 독해방식으로 이루어졌다는 점입니다.
제가 나이가 좀 있어서 그런지, 현대 문학적 방법과는 거리가 있습니다.
(여담이지만, 전 사실 브릿 G에 와서 굉장히 놀랐습니다… 왜 사건과 인물의 부딪침을 통해 나오는 메세지가 아닌, 오로지 인물의 관점에서 서사를 이해하는가? 모더니즘 적인 소설만이 진리라는 건가? 그럼? 풍조가 그러지 못한 소설을 낮게 평가 하는 것 까지는 납득하는데, 아니 왜 읽지를 못하지? 이게 독해가… 안된다고?)
어떤 사건으로 배웠고, 참조했고, 소화 중 입니다만, 이 소설에 있어서는, 제 뜻을 관철하는게 더 낫겠다는 판단이 있습니다.
저는 영웅문이나 삼국지류의 소설을 연상하면 이해가 쉬울거라고 생각합니다.
영웅문, 1부 사조영웅전.
잘 알려진 소설이니 간략하게 말하겠습니다.
주인공 곽정은 몽골 황금씨족의 부마로 들어올 것을 권유받던 인물입니다.
깨달음이 좀 늦을 뿐, 의와 협은 출중한 사내로, 그 것을 눈여겨 본 몽골족에 의해 부와 명예는 보장받았던 인생이었지만, 그 모든 것을 뒤로 한 채, 송나라의 투쟁에 앞장 선 인물입니다.
이것을 단순한 무협지 혹은 대체역사로 본다면 올바른 독법이 아닐겁니다.
영웅문은 당시 몽고에게 무너진, 중화인의 자존심을 돌려놓기 위한 소설입니다.
양양성의 결전을 통해.
암울한 시대를 뒤로 하고 다시 일어설 것을 중국인들에게 말하는 메세지를 담은 소설입니다.
영웅문이 장르의 정전이자 고전으로 자리잡은 것은,
소설의 본 내용보다도 소설이 담은 메세지 때문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삼국지 연의 등이 이러한 주장의 추가적인 근거일 것입니다.
저는 역사를 그렇게 바라봤습니다.
시대를 나타내는 잘 알려진 상징 그리고 기호라고 말이죠.
우리가 역사를 배우는 이유가 그것입니다.
인간의 일들은 반복되고 이것을 통해 교훈을 얻으려는.
그러다보면 교훈과 구조 속에서 상징화된 기호 = 신화처럼 약속된 해석들이 나타나는 법이니까요.
이 비슷한 방식의 예로는
움베르토 에코의 소설 장미의 이름등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저는 소설의 이야기를 통해서, 맨 처음 Part1에서 이야기 한 것 처럼.
믿음을 이야기 하고 싶었습니다.
그 수단으로 저는 역사의 빈공간을 선택했습니다.
종교, 기적, 화폐, 경제, 체제처럼 우리가 현실이라고 믿고 살아가는 것들이 사실은 얼마나 기이한 믿음 위에 서 있는지를 보여주기 위해서입니다.
역사는 기록된 사실이면서 동시에 해석된 “기호”입니다.
그 기호 사이에는 언제나 빈공간이 있습니다.
『황금의 서사』는 바로 그 빈공간에 악마와 기적과 자본의 신화를 심은 이야기입니다.
물음할 수 있습니다. 역사는 진실의 집합이 아닌가? 허구가 삽입될 공간이 어디에 존재하느냐고 말이죠.
쉬운 반례를 몇개 집어보겠습니다.
동북공정, 그리고 일본의 역사인식. 한국의 근현대사.
동북공정. 고구려는 한국의 역사라고 말하던 것이 어느 순간 부터 바뀌었습니다.
중국의 새로운 세대는 이제 고구려는 중국의 역사라고 말합니다.
실존하는 사실이 바뀌었기 때문일까요? 아닙니다. 해석이 달라진겁니다.
일본의 교과서 2차세계대전 은폐 문제도 마찬가지입니다.
2차대전 이후 일본은 자기 이미지를 다시 구성하는 데 많은 힘을 쏟았습니다.
평화국가, 방어적 군대, 대동아공영권의 재해석 같은 방식으로 말이죠.
과거의 사건이 사라진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그 사건을 어떤 이름으로 부르고, 어떤 의미로 가르치느냐에 따라 다음 세대가 받아들이는 역사는 달라집니다.
동북공정처럼, 특정 국가 안에서는 그렇게 의미가 바뀐 역사 인식이 하나의 진실처럼 굳어지기도 합니다.
한국의 근현대사.
신정부 수립은 도대체 언제인가요?
우파는 이승만 정부 75년을 좌파는 임시 정부 125년을 이야기합니다.
대한민국 정부 수립을 어디서부터 볼 것인가.
이승만 정부 수립을 기준으로 볼 것인가, 임시정부의 법통을 기준으로 볼 것인가.
사건 자체는 사라지지 않았지만, 어느 지점을 ‘시작’으로 부르느냐에 따라 역사의 의미는 달라집니다.
그러나 교과서는 아직도 통일되지 않았고, 역사는 무엇이 진실인지 모르는 채로 흘러갑니다.
역사는 정말 사실일까요?
흔히들 승자의 기록이라고 합니다.
진실이 아니라는 주장보다는, 시간이 지나 기호화된 상징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환타지와 철학 그리고 현실을 이어주는 가교로 역사만한 상징은 없다고 생각했으며,
이러한 이야기를 읽기 위한 해석의 지침은 오로지 역사 밖에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대체역사에 가깝지만, 그렇다고 대체는 아닌 역사.
그것이 황금의 서사에서의 역사의 고증입니다.
1층에서 쓰인 환타지는 바로 이 2층의 역사를 흔들기 위함입니다.
역사가 어디까지 사실이고, 어디에서 가짜인지 헷갈려 해야.
역사가 기호로 읽히기 시작해야만이 3층의 철학으로 도달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인터루드 8
능력이란게 뭐냐고?
한마디로ㅡ “기적” 이라고 하지
세상에 직접 간섭할 수 없는 존재가 그걸 마주할 수 있는 어떤 소수를 만나
영혼이라는 연료를 매개로 짜잔ㅡ 마침내 현실에 간섭하는거야
가능하겠어ㅡ? 맞아 불가능이지ㅡ!
그러니까 “기적”인거야
말이 되냐고?
아 씨발 병신아! 안된다고ㅡ 몇 번 말해?!!!
지금, 니가 믿는 것 중 진짜인 게 있냐?
전부 말이 안되지만 현실이잖아?
바로 이 부분,
어디까지가 진실이고, 현실인지를 말이죠.
저는 여기서 독자의 인식에 전환이 일어나길 바란 겁니다.
겉으로 쓰인 서사와 역사가, 전부 “기호”로 치환되는 순간을.
소설 자체가 전환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