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게시판

[최은영,『내게 무해한 사람』] 우리는 왜 자꾸만 헤어지나.

분류: 책, 글쓴이: 구름사탕, 18년 8월, 읽음: 70

최은영은 전작 『쇼코의 미소』의 작가의 말에 이런 글을 남긴 적이 있다.

 

  자기 자신이라는 이유만으로 멸시와 혐오의 대상이 되는 사람들 쪽에서 세상과 사람을 바라보는 작가가 되고 싶다. 그 길에서 나 또한 두려움 없이, 온전한 나 자신이 되었으면 좋겠다.

 

이 말처럼, 『쇼코의 미소』는 사회의 약자들을 온전하고 다정한 시선으로 감싸주었다. 베트남 전쟁, 한국 근현대사, 그리고 세월호……, 최은영은 무겁고 위험하게 비춰질 수 있는 소재를, 그 약자들을 데려와 약자에게 목소리를 주었다. 그 목소리는 정당했고, 유의미했으며, 인간적이고, 다정했다. 그래서 많은 이들이 최은영, 최은영이 약자에게 선물한 목소리에 진정으로 감동받은 거라고 필자는 생각한다. 이러한 이유로 나는 최은영의 다음 책을 손꼽아 기다려왔다. 이 작가가 이 다음에 쓸 소설은, 목소리는 대체 무엇일까. 나는 그것을 내내 기대했다.

 

그리고 『내게 무해한 사람』이 출간되었다. 나는 단편 하나하나를 아껴가며 읽어내려갔고, 최은영에게 또 다시 매혹당할 수밖에 없었다. 작가는 인물을 만들어내는 사람이라는 말에 있는 힘껏 공감하게 되는 소설들이었다. 이경. 수이. 주영. 효진. 주희. 윤희. 공무. 모래. 나비. 미주. 진희. 주나. 혜인. 정희. 랄도. 그리고 하민. 모든 인물들이 저마다의 숨을 들이마시고 내쉬었다. 저마다의 목소리로 저마다의 이야기를 하거나, 혹은 입을 다물고 침묵을 택했다. 하지만 그들이 말하려 하지 않아도 그들의 삶이 목소리를 부여받아 그들의 초상화를 책을 읽는 나에게 내밀었고, 나는 그것을 기꺼이 받아들였다.

 

좋았던 단편 하나하나를 반추해보고자 한다.

(※스포일러가 함유되어 있으니, 책을 읽고 오심을 추천드립니다.)

 

  그들은 오래도록 키스했다. 혀와 입술의 맛, 가끔씩 부딪치는 치아의 느낌, 작은 코에서 나오는 달콤한 숨결에 빠져서 시간이 어떻게 흘러가는지조차 인지할 수 없었다. 자신의 몸이라는 것도, ‘나’라는 의식도, 너와 나의 구분도 그 순간에는 의미를 잃었다. 그럴 때 서로의 몸은 차라리 꽃잎과 물결에 가까웠다. 우리는 마시고 내쉬는 숨 그 자체일 뿐이라고 이경은 생각했다. 한없이 상승하면서도 동시에 깊이 추락하는 하나의 숨결이라고.ㅣ「그 여름」

 

「그 여름」은 다 읽고 나서도 수이가 오래오래 마음 속에 남아 내 마음을 쿡쿡 찔렀다. 너와 나의 구분조차 잃었던 그 수 차례의 여름을 지나 이경의 삶에서 퇴장해버린 수이. 이경만을 바라보고, 이경을 마음깊이 사랑하고, 아꼈으나, 이경에게 배신당하고, 배신당했다는 사실조차 모른 채(아니, 어쩌면 알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알면서도, 말하지 않았을 수도 있을 거라고 나는 생각한다. 수이라면, 그것을 알았더라도, 그것을 말하지 않았을 거라고.) 이경과 헤어진 수이. 남자의 “악의 없는 장난”으로 축구를 그만두고, 자동차 일을 하게 된 수이. 자기 이야기를 잘 하지 않았던 수이. 불평조차 하지 않고, 마지막 순간조차 이경덕분에 행복했다고 말하던 수이. 수이가 너무 사랑스러워서 마음 깊이 수이를 안아주고 싶었다. 고생했다고, 잘하고 있다고, 잘 사랑했다고 말해주고 싶었다.

 

이경과 수이는 모든 면에서 달랐다. “이경은 서울 한복판에 있는 대학 경제학과에 입학했고, 수이는 서울 외곽의 직업학교에서 자동차 정비 일을 배웠다.” 이경과 수이 둘 다 일을 했지만, 여분의 돈을 벌기 위해 일했던 이경과 달리, 수이는 수이의 부모가 자신을 위해 경제적 지원을 해주지 않았기에, 말 그대로 살기 위해 일했다. 이경과 수이의 삶은 명백히 모든 면에서 달랐다. 이경은 수이가 자기 얘기를 잘 안한다고 불평했지만, 수이가 무슨 말을 할 수가 있었을까. 수이가 원체 자기 얘기를 하지 않는 사람이라고 생각했지만, 그것을 차치하더라도, 자신과 전혀 다른 삶을, 전혀 다른 길을 걷고 있는 이경을 향해 수이가 무얼 말할 수 있었을까.

 

하지만 이러한 내 생각도 수이를 잘못 이해한 걸지도 모른다. 수이는 절대로 함부로 비교하지 않는 사람이었으니까. 이경에게 일말의 자격지심을 품었을지라도 수이는 그 마음보다 이경을 사랑하는 마음이 더 커서, 그것에게 오래 시달리지 않았으리라고 나는 생각하고 싶다.

 

이렇게 서로 사랑했던 이경과 수이도 결국은 헤어지고 만다. 헤어짐에 대해서는 조금 나중에 책 전체를 정리하면서 얘기하고 싶다. 헤어짐은 이 책을 관통하는 주제라고 생각하므로.

 

 

“남의 집 일에 나서는 거 아니야.”

“엄마.”

“네가 나선다고 뭐가 달라져?”

“그래도 엄마……”

“오늘 넌 그저 운이 좋았을 뿐이야.”

그 말을 하는 엄마의 입술이 일그러졌다.

“넌 여자애야.”ㅣ「601, 602」

 

「601, 602」는 보면서 너무나도 괴로웠다. 폭력이 허용된 집안에서 살아가는 일은 어떤 일일까. 폭력에 노출당하는 것이 정당한 사회에서 살아간다는 건. 주영은 효진에게 노출된 폭력에 대해 아무것도 하지 못한다. 기껏 할 수 있었던 것은 기준의 로봇을 바닥에 던져버리는 것뿐이었고, 그 행위조차 “남의 집 일에 나서는 거 아니”라며 엄마에게 타박받는다. “넌 여자애”일 뿐이라고. 이 말은 “여자애는 아무것도 할 수 없어.”라는 말로도 들리고, “여자애는 가치가 없어.” “여자애는 맞아도 싸.” “그게 여자애의 숙명이야.” 이런 말로도 들린다. 숙명. 숙명이라니. 도대체 세상의 어느 누구가 폭력에 노출되는 것이 부당하지 않단 말인가. 하지만 이 책은 말한다. 그러한 사람들이 있다고. 정당하게 폭력에 노출된 사람들이 있다고. 그리고 그건, 너무나 불행히도, 사실이다. 다만 사람들이 그것을 “남의 집 일”이라고 치부하고, 쉬쉬하고 있을 뿐이다. 폭력의 피해자인 효진조차 그 사실을 믿지 않는데, 누가 그것을 믿고 저항하겠는가. 효진이는 거짓으로 화목한 가족을 꾸미고, 화목한 가족에서 사는 척을 한다. 마치 폭력의 피해자가 된 것이 수치스러운 일이라는 듯이. 학교 앞에서 자신의 화목한 가정을 거짓으로 소개할 때, 효진은 마치 자기 자신이 그 거짓말에 속아 넘어간 듯 하다. 작가는 주영이와 효진이를 이 폭력적인 사회로부터 구해주지 않는다. 과연 누가 그들을 구해줄 수 있을까? 모두가 그것을 용인하고 있는 이 사회에서 과연 누가.

 

  왜 이해해야 하는 쪽은 언제나 정해져 있을까.

 

  고등학생 공무는 천리안 동호회에 그렇게 썼었다. 그 문장은 며칠이고 내 안에서 구르면서 마음에 상처를 냈다. 나는 늘 이해하려 하는 사람이었으니까.ㅣ「모래로 지은 집」

 

「모래로 지은 집」은 이 책에서 내가 제일 좋아하는 단편이다. 모래, 공무, 나비. 천리안 동호회에서 알게 된 이 세 사람은 20대를 같이 견뎌낸다. 이 세 인물은 한 명 한 명이 너무나도 사랑스러워서 소설을 다 읽고 나서도 내 마음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세 명 모두 너무 좋았지만, 난 특히 모래가 견딜 수 없이 사랑스러웠다. 소설 초반에 모래는 “넉넉한 집안에서 자란 태가” 난다고 서술된다. “그애의 넉넉함은 물질이 아니라 표정과 태도에서 드러났다”고. 소설의 화자인 나비는 모래에 대해 이렇게 서술하기도 한다. “너처럼 부족함 없이 자란 애가 우리들을 어떻게 이해할 수 있겠느냐고, 네가 아무리 사려 깊은 사람이라고 하더라도 절대로 이해할 수 없는 영역이 있다고 말하고 싶었다. 네가 뭘 알아, 네가 뭘. 그건 마음이 구겨진 사람 특유의 과시였다.” 이렇듯, 모래는 공무와 나비와는 다른 사람으로 치부되지만, 소설이 진행될 수록 모래의 연약함이 드러난다. 억압적인 남자친구와의 관계를 끊지 못하는 모습으로 드러나기도 하고, 모래가 “솔직히 나 좀 외로웠어.”라고 토로하는 장면에서 드러나기도 한다. 모래는 토로한다. “나도 사람이야. 그것도 너무 불완전한 사람이야.”

 

  너희와 있을 때는 나의 좋은 부분이 자연스럽게 나왔어. 그래서 그런 착각도 했어. 나는 나아졌고, 예전의 나와는 전혀 다른 사람이 되었다고. 너희들에게는 너희가 좋아할 만한 내 모습만 보여주고 싶었어. 그리고 나에게도.

  그런 식으로 내가 나를 따돌렸던 것 같아. 너희에게 보여주지 못할 정도로 미워 보이고 창피했던 내 모습을 따돌렸어. 예전부터 그랬었어. 왜 내 모습이 그렇게 부끄러웠을까. 왜 나 스스로가 그렇게 못나보였을까. 저리 가. 나는 그애에게 말했어. 내 눈에도, 남들 눈에도 보이지 않는 곳에 숨어 있어. 왜 너는 죽지도 않아? 사라지지도 않고 그대로 내 안에 남아 있어? 그렇게 거칠게 나를 대하는 게 어른이 되는 것인 줄 알고서.

  예전 일들을 잊고, 지워버리고, 연연하지 않으려 하고, 내 안에 갇힌 그애가 추워하면 더 외면해서 얼어죽기를 바라고, 배고파하면 그대로 굶어 죽기를 바라면서 겉으로는 평온한 사람이 된 것처럼 연기했지. 그게 다 뭐였을까. 그애는 나였는데.ㅣ「모래로 지은 집」

 

모래의 마지막 편지에서 유추할 수 있듯이, 모래 또한 공무와 나비처럼 상처를 지닌 인물임을 알 수 있다. 하지만 우리는 모래의 예전 모습을, 모래가 감추고 싶어했던 그애를 알 수 없다. 공무와 나비 또한 마찬가지다. 모래는 그런 것들을 알려주지 않고 엘에이로 떠난다. 셋이 함께 했던 시간들, 서로 사진을 찍고, 농구 골대를 향해 농구공을 던지고, 직접 구운 쿠키를 나눠 먹었던 그 소중한 시간들이 무색하게 느껴질 정도로 그렇게 간단히, 관계는 끝이 난다. “너희가 내게 줬던 시간과 마음을, 나는 잊을 수 없고 앞으로도 잊지 않을 거야.”같은 말은 관계의 단절 앞에서 얼마나 무력하고 초라한가. 그 소중한 시절을 같이 보냈음에도 우리는 서로에 대해 얼마나 무지한가.

 

작가는 의도적으로 폭력을 암시하는 것에 그치고, 핵심적인 장면을 생략한다. 예를 들어 병원에서 공무의 아빠가 공무에게 했던 말이라든가, 모래의 과거같은 것들을 작가는 알려주지 않는다. 그 공백은 타인을 온전히 알 수 없는 무력함을 암시하는 한편, 책을 읽는 우리가 직접 우리의 상상력으로 그 공백을 채우게끔 한다. 동시에, 그 공백은 그것이 뭐가 중요하냐고 말하는 것 같기도 하다. 가해의 형태와 모양이 그렇게 중요하냐고. 상처입고, 피 흘리고, 아파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 자체가 중요한 것 아니냐고. 공무와 모래와 나비는 어김없이 가해당하고, 어김없이 피를 흘린다. 하지만 그들의 20대가 오로지 상처로만 이루어진 것은 아니기에, 반짝반짝 빛나던 순간 또한 어김없이, 그들의 삶을 예찬하듯이 존재하기에, 우리는 그들의 서툰 삶를 어김없이 축복해줄 수밖에 없는 것이다.

 

ㅡ착하게 말고 자유롭게 살아, 언니. 울어서 미안하다고 말하는 사람은 싫어.ㅣ「아치디에서」

 

「아치디에서」에 등장하는 하민과 랄도는 전혀 다른 사람이다. 하민은 누구보다 열심히 일하고 가족을 위해 희생하고, 아니, 가족에게 착취당하며 살아온 사람이고, 랄도는 반대로 가족에게 희생을 요구하고, 가족을 착취한 사람이다.(그 당시 그가 그 사실을 인지하고 있었는지의 여부와는 관계없이.) 이 두 사람이 만나 어떤 관계를 이룰 수 있을까.

 

하민은 랄도에게 자기 얘기를 털어놓는다. 가혹한 일에 치여, 자기도 모르게, 아니 어쩌면 알면서도 어쩔 수 없이 모두에게 가혹해지고, 가혹한 마음을 품고, 때로는 가시돋힌 말들을 입밖으로 내뱉으면서 살아온 자신에 대해. 항상 열심히 살아온, 그래서 항상 인생에게 열심히 가해당하고, 가끔은 타인을 가해한 자신에 대해. 고백을 마친 뒤 그녀는 붉어진 눈으로 말한다. “네가 나를 싫어하게 되더라도 나는 이해해.””사람은 누구나 실수를 한다”고 그녀를 변호하려는 랄도에게 그녀는 “아니, 모두가 그런 건 아니야.”라고 답한다. 그녀는 자기 자신을 용서하지 않는다. 그러한 하민의 모습은 랄도에게 자기 자신을 되돌아보는 계기가 된다. 랄도는 “삶이 자기가 원치 않았던 방식으로 흘러가버리고 말았”던 때를 회상하여 하민과 공감하고, 그러나 하민의 고통과 무관한 자신이 하민을 침묵 이외의 것으로 위로해 줄 수 없음을 자각한다.

 

랄도 또한 아픈 과거가 있다. 아버지에게 항상 강함을 요구받았으나 기대에 미치지 못하고, 학교에서 수없이 괴롭힘을 당하다가 병원에 실려갈 정도로 린치를 당했을 때, “네가 약해서 그렇다. 네가 여지를 줬다. 네가 수치스럽다.”는 말을 들어야 했던 과거에 대해.

 

시간이 지나 그들이 서로에게 품은 감정을 랄도는 “담백한 종류의 것”이라고 단정짓는다. 그것은 연인끼리 품는 감정과는 다른 종류의 감정이었다고. 서로를 위로하고, 지탱하지만, 연인으로서 사랑하지 않는(다고 믿는) 둘의 관계는 굉장히 인상적이다. 둘의 관계는 그 모습 자체로 사랑에 대해 자문하게 된다. 사랑은 대체 무엇이고, 어떻게 정의되는가? 「그 여름」에서 이경과 수이가 맺었던 연인으로서의 관계와 랄도와 하민의 관계는 어떻게 같고 어떻게 다른가?

 

『내게 무해한 사람』은 사랑에 대해 다시금 정의를 내리는 것 같다. 「모래로 지은 집」또한 그러하다. 모래는 나에게 “사랑해”라고 서슴없이 말하고, 나는 모래 앞에서는 말하지 못하지만, 모래의 편지를 읽고 조용히 속삭인다. “사랑해, 모래야, 사랑해.” 이들의 사랑은 연인끼리 품는 감정보다 더 근본적인 종류의 것이 아닐까? 서로의 마음 속 깊이 숨겨진 영혼과 영혼을 마주하고, 긍정하고, 인정하고, 서로에게 뻗은 손을 잡아주는 것. 그들은 젠더와 무관한, 영혼끼리의 사랑이라고 명명짓고 싶은 그러한 사랑을 열렬히 실천한다.

 

하지만 슬프게도 그들은 열렬히 사랑하는 동시에, 열렬히 실패하고, 열렬히 헤어진다. 전작인 『쇼코의 미소』에서도 그랬지만 『내게 무해한 사람』은 특히 더 이별을, 관계의 단절을 날카롭고 시리게 보여준다.

 

  물질은 사라지지 않는다. 변형될 뿐. 산화되어 재만 남는다고 하더라도 보이지 않는 영역에서 물질은 아주 작은 부분도 사라지지 않고 여전히 존재한다. 그 과학적 사실은 어린 나에게 세상 어떤 위로의 말보다도 다정하게 다가왔었다.

  “그래도 사람은 사라져.” 내 말을 듣고 모래는 그렇게 대답했다. “사라지지 않는 사람은 없어. 사람의 물질성이 남아 있다고 하더라도.”ㅣ「모래로 지은 집」

 

사람은 왜 사라질까. 왜 사라지지 않는 사람은 없을까. 영원히 함께라는 말은 왜이리 무력하고 무색한가. 우리는 왜 자꾸만 헤어지나.

 

이경은 수이와 헤어지고 “수이가 살아 있는지 죽었는지조차도 모르게 된다.” 서로 영혼과 영혼을 맞대고 사랑을 나누었던 모래와 공무와 나비도 즐거운 시절을 끝마치고 어김없이 이별한다. 하민과 랄도도 마찬가지다. 하민은 헤어질 때 말한다. “꼭 계속되어야만 좋은 건 아니잖아.” 이 조악한 위로는 그러나 얼마나 진실한가. 계속되어야만 좋은 건 아닌 관계는 세상에 얼마나 많은가. 그렇지 않은 관계가 있나. 정말 있나.

 

  중력도 마찰력도 없는 조건에서 굴린 구는 영원히 굴러간다.

  언젠가 네가 한 말을 난 종종 떠올렸어. 영원히 천천히 굴러가는 공을 생각했어. 그 꾸준함을 상상했어. 이상하게도 눈을 감고 그 모습을 그려보면 쓸쓸해지더라. 데굴데굴 굴러가는 그 모습이 어쩐지 외로워 보여서. 그래도 우린 중력과 마찰력이 있는 세상에 살고 있어서 다행이구나. 가다가도 멈출 수 있고, 멈췄다가도 다시 갈 수 있는 거지. 영원할 순 없겠지만. 이게 더 나은 것 같아. 이렇게 사는 게.ㅣ「모래로 지은 집」

 

우리는 중력과 마찰력이 있는 세상에서 살고 있다. 우리의 삶은, 우리의 관계는 영원히 굴러가지 않는다. 하지만 오히려 그래서 다행일지도 모른다. 가다가도 멈출 수 있고, 멈췄다가도 다시 갈 수 있어서. 그래서 우리는 자꾸만 헤어지는 게 아닐까. 그래서 작가는 거듭해서 이별을, 관계의 단절을 그려내는 게 아닐까. 그것을 성장의 발판으로 삼지 않은 채, 그저 담담히, 이별 그 자체를 그려내는 게 아닐까.

 

책을 펼치고 생생하게 살아 숨쉬는 사랑스러운 사람들과 만나는 일은 정말이지 내게 축복이었다. 그리고 그들과 열렬히 이별하는 것 또한. 나는 그들을 잊지 않을 것이다, 라고 쓰고 싶지만, 솔직하게 말하자면, 나는 그들을 잊을 것이다. 그것도 그렇게 많은 시간이 흐르지 않고서도. 그들이 서로와 헤어지듯이 우리는 책을 덮고 그들과 헤어진다. 그들의 마음을 오래오래 간직하다가, 다시 책을 펼쳐 그 마음을 다시금 확인하고, 재발견하다가, 언젠가 잊는다. 망각과 이별. 우리는 그것들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하지만 그렇기에 더욱 소중하다. 우리에게 주어진 것들이, 사랑이, 이별이, 너무나도 소중하다. 이러한 것들을, 이별의 서늘한 슬픔과 아름다움을 나는 최은영 작가님에게 선물받은 것이라고 생각한다.

 

있는 힘껏 사랑하자. 영혼과 영혼을 맞대고. 그리고 자꾸만 자꾸만 헤어지자. 잊지 않으려고 노력하다가, 결국엔 잊는 것에 대해 죄책감을 가지지 말자. 그래도 되니까. 결국, 그렇게 되는 것이니까.

 

하지만 최은영의 다음 책을 손꼽아 기다리는 동안, 나는 자꾸만 다시 책을 펼쳐 그들을 다시 만날 것 같다. 그들의 영혼에 나의 영혼을 포개고 싶어할 것 같다. 그리고 기꺼이 헤어지겠지. 자꾸만 자꾸만 헤어지겠지. 결국 그렇게 되는 것이니까.

 

모두의 사랑과 이별을 진심으로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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