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칙개체 피노키오’리뷰-사이뇌 부수는 흑백 저글링
“이 문장은 거짓이다.” 이 문장은 거짓일까 혹은 참일까? 우리는 참도 거짓도 아니라 답할 수 있다. 그렇기에 이것을 참이라 한다면 모순이 발생한다. 우리는 그 문장을 관측하는 관측자이고 참 거짓을 판명한다. 그렇다면 그 관측자가 존재하지 않을 때 참 거짓은 독립적으로 존재할까? 혹은 관측 없이는 참 거짓도 존재하지 않을까?
지금까지의 변칙개체 작품들과 다르게 이번 작품의 변칙개체는 우호적이다. 논리를 검증할 때마다 코가 터지는 피노키오를 관측하는 것도 좋지만, 이 작품은 담백한 논리놀이로 시작된다. 우리는 참 거짓의 절대성을 더 이상 믿지 않는다. 거짓말 탐지기의 원리와 리플리 증후군을 알고 있다. 서술트릭의 원리와 물리적인 값 또한 관측자에 따라 달라지는 것을 알고 있다. 그때 ‘거짓말’을 트리거로 폭발하는 피노키오가 나타난다. 그에게 거짓이란 어떻게 정의될까? 이런 의문을 대신 풀어주듯 우리가 한번 해 볼 법한, 하고 싶은 일들이 작품에서 일어난다. 작품 전체에서 반복해서 강조되는 건 참 거짓을 판별하는 존재이다. 그 존재를 나는 관측자라 부르겠다. 그렇다면 피노키오의 관측자는 누구일까?
첫 번째 후보는 ‘발언자’이다. 작 중 설명에 따르면 제페토 기관이 자신이 거짓말이라 생각했을 때 양심의 가책이 느껴진다 한다. 그렇다면 그 자신이 참 거짓을 판별하는 관측자라 유추할 수 있다. 그럼 다음과 같은 명제는 어떨까? 자신이 참인지도 거짓인지도 모르는 명제말이다.
“변칙개체 피노키오의 저자는 지금 검을 휘두르고 있다.”
처럼 이것은 피노키오가 알지 못하는 사실에 대한, 피노키오의 관측범위에선 참 거짓과는 무관한 문장이다. 그렇기에 피노키오가 그렇게 말해도 거짓말을 한 게 아니다. 이 명제가 거짓이라 할지라도, 작동원리가 본인의 인지에 기반하면 참 거짓과 무관하게 피노키오의 코는 달라지지 않아야 한다.
두 번째는 발언자와 무관한 관측자가 존재하는 경우이다. 독립된 관측자가 존재하며 발언자의 인식과 무관하게 참 거짓을 구별 가능한 존재가 있다는 뜻이다. 작중에서 나온 ‘고래의 입’이라는 방은 이런 관측자의 존재를 배제하기 위하여 존재한다. 낮은 기압으로 피노키오의 코폭발을 막는 용도도 있지만, 제삼자를 차단하는 기능이 더 중요하다. ‘모비딕 절차’를 통하여 현존하는 모든 상호작용을 차단할 수 있다면 전지한 3자의 관측도 차단이 가능하다. 그렇다면 이 두 가지 경우 중, 피노키오는 어디에 속할까?
우선 피노키오는 자신이 알 수 없는 명제에 대한 참 거짓을 이미 알고 있다. 첫 번째로 생각한 단어, 지금 생각하고 있는 수, 천국의 존재와 사막에서의 추락사. 이 모든 건 피노키오가 알 경로가 존재하지 않다. 제페토 기관이 눈앞사람의 표정이나 반응을 읽고 진실을 추론하는 능력이 있다 하더라도 특정 사건에 대한 진실, 시계와는 무관한 72시간의 경과 여부를 측정할 수 없다. 그렇다면 다시 두 가지다. 첫째는 고래의 입이라는 방이자 ‘모비딕 절차’는 완전하지 않았으며, 그렇기에 전지한 3자가 피노키오에게 정보를 보냈다는 가설, 두 번째는 절차는 완전했으나 피노키오의 내부에 별도의 전지한 관측자가 존재한다는 것이다.
모비딕 절차가 온전하지 않았다면 콜로디 부장은 이미 죽을 것이니 다시 두 번째 가설이 더 합당하다. 피노키오 내부에 전지한 관측자가 답을 속삭여준다는 설이다. 그 전지한 관측자가 누구일까? 우리는 알 수 없다. 하지만 그 전지한 관측자- 작중 표현으로는 양자적 논파자의 눈에 거슬리지 않게 스스로를 필터링할 방법은 알고 있다. 선악과, 그리고 푸른 요정이다.
거짓말을 옳지 않다고 느끼게 하는 존재가 양심이라면 극단적으로 축약했을 때, 말을 하고 양심이 찔린다면 그건 거짓말이라는 거다. 그리고 그 옳고 그름은 선악을 구분하는 것에서 시작된다. 다시 말해 선악과란 내 양심을 관측자로 설정해 주는 존재이다. 그렇다면 무엇이 바뀔까? 거짓을 말하여도 코가 폭발하지 않게 된다. 더 정확히는 ‘진실로 거짓된 말’을 할 수 없게 된다. 피노키오가 “거짓말이란 진실이 아닌 말이 아닙니다.”라고 말했다. 내가 믿을 수 없는 거짓을 말하였으면 그건 거짓이 아니다. 거짓말을 하고 모든 말 끝에 “그리고 나는 이것이 진실이 아니라 믿습니다.”라고 덧붙이는 것처럼 말이다. 양심(선악과)이 발언자가 진짜로 거짓된 사실을 진심으로 발화하지 않았다는 걸 강조하는 거다. 전지한 관측자가 보기엔 양심이라는 놈이 계속해서 거짓의 인지를 강조하고 있다. 그렇기에 발화자는 참 거짓을 판별하코 코의 폭발 여부를 결정하는 관측자는 아니나, 동시에 그 관측자에게 양심이라는 변명을 할 수 있는 존재이다. 선악과와 파란 요정이라는 외부의 존재로 피노키오 문제를 해결 가능하단 장면이 이를 뒷받침한다.
정리하자면- 태초에 대부분의 인간은 거짓을 말하면 코가 터진다. 그중에서도 자신이 진심으로 거짓된 사실을 진실이라 믿고 말하면 코가 폭발한다. 그리고 그 인간들은 선악과를 먹음으로써 거짓된 사실을 진심으로 믿기 어려워졌다. 내가 거짓으로 생각하는 말을 하여도 속으로 거짓이라고 생각하고 있다면 코가 터지지 않는다. 하지만 결국 선악과의 효능이 떨어지면 피노키오 알파, 혹은 평범한 인간은 콜로디 부장처럼 죽는다. 하지만 피노키오 알파건 평범한 인간이건 거짓을 진실로 진실이라 믿고 말하면 코가 터진다. 즉 피노키오 알파의 치료법을 알고 있으니 약을 뿌리면 되는 문제다. 그러면 어떻게 될까? 모든 인류가 거짓을 거짓이라 믿고 진실을 진실이라 믿게 된다. 사이뇌가 수축하기 전, 피노키오 베타와 2000년 전 인간들과는 다르게 그리고 전지한 제3의 관측자이자 양자적 논파자에게 간섭받는 이들과는 다르게 말이다.
이 글은 종교적 요소와 참 거짓의 관측, 그리고 그 관측자의 인지에 대해 차력쇼를 보여주는 듯하다. 참 거짓이란 명확하지 않고 논쟁이 일어나기 좋은 소재를 가지고 “근데 거짓말이라 인지하고 말하면 사실 그건 믿지도 않으니 거짓을 거짓으로 말한 것이고 그럼 거짓을 참이라 말하는 거짓말과는 다르지 않나요?”라는 동어반목의 문장을 다시 던진 글이다. 나는 이 글이 단편으로 나온 것에 정말로 감사한다. 장편이었다면 이 문장과 단어의 저글링을 이해하지 못하고 머리가 깨졌을 태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