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게시판

[4문 4답] 저도…

분류: 수다, 글쓴이: 뿡아, 2월 22일, 댓글14, 읽음: 111

어쩐지 쑥스럽긴 하지만,
다른 작가님들이 쓰신 글을 보고 저도 용기를 한번 내볼까 합니다.

 

1. 내 글에 영향을 준 창작물

1) 터미네이터

어린 시절 보았던 만화영화부터 시작해서 여러 소설과 드라마, 광고 그 외에도 여러 직간접적인 체험 모두가 소재가 되고 영향을 주는 것 같습니다. 그중에서도 작품에 직접 영향을 주었다고 할 만한 창작물을 하나 꼽아보자면, 영화 ‘터미네이터’라고 할 수 있겠네요. 유명한 작품이라 많이들 보셨겠지만, 이 영화는 저에게 여러모로 큰 충격을 준 작품이었습니다.

저는 작년 여름 ‘6월의 6시’라는 이름의 소일장에서, 폴 발레리의 원작 ‘위그든 씨의 사탕가게’ 를 패러디한 ‘위고돈 씨의 사탕가게’라는 엽편을 쓴 바 있습니다. 읽어보시면 아시겠지만 ‘위고돈 씨의 사탕가게’는 영화 ‘터미네이터’를 패러디한 소설이기도 합니다. 부족한 글이지만 몇몇 분들께서 재미있게 읽었다고 댓글을 남겨주셔서 감사하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뿌듯한 마음도 갖고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얼마 전, 브릿G 자유게시판에서 너드덕 님이 쓰신 4문 4답을 읽다가, 빈약한 상상력을 토대로 쓴 제 소설의 원래 내용보다 더 엽기적이며 창조적인 내용으로 재구성하여 다르게 기억하신 담장 님의 댓글을 보고, ‘아, 역시 진짜는 다르구나!’라고 감탄하며 이마를 탁,치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마냥 웃고 넘길 수만은 없었던 게, 양상은 다르지만 저 또한 오랜 세월 동안 잘못된 내용으로 기억한 작품이 있었으니, 그게 하필이면 바로 이 터미네이터였기 때문입니다.

어째서 터미네이터를 잘못된 내용으로 기억하고 있었는지와 영화를 보고 어떤 충격을 받은 지에 대한 자세한 이야기는, 영화의 스포일러도 일부 있고, 시시콜콜 자질구레한 TMI가 넘쳐나고, 부끄러운 한편 불건전한 내용도 포함하고 있으므로 접어두겠습니다. 좀 지루하고 별로 유쾌한 내용은 아닐 수도 있습니다.

웬만하면 보지 마세요.

 

2) Everything is a Remix

그리고 창작에 대한 제 기존 가치관을 완전히 뒤바꿔놓은 영상이 하나 있습니다. 바로 Kirby Ferguson 이 제작한 ’Everything is a Remix’라는 영상입니다.

Kirby는 세상의 모든 새로운 창작물(음악, 영화, 산업 제품, 심지어는 생명체의 발현까지도)은 ‘복사’, ‘변형,’ ‘결합’이라는 단순한 세 가지 원리에 의해 만들어진다고 하며, 이 세 가지 요소가 창의성의 근원이라고 설명합니다. 이 영상은 여러 시리즈로 제작되었으며, 매우 놀라운 통찰과 흥미로운 사례로 가득 차 있습니다.

제 창작물에서 패러디가 서슴없이 사용되는 데에는, 이 시리즈의 영향이 있었음을 부정하기 어려울 것 같습니다. 이 시리즈는 소설뿐만 아니라 장르 불문하고 창작을 하는 모든 사람에게 권하고 싶은 저의 강력한 추천작입니다.

웬만하면 꼭 보세요.

https://www.youtube.com/watch?v=MZ2GuvUWaP8

 

2. 내 글의 지향점

아직 잘 모르겠습니다. 어쩌면 그런 걸 찾아나가는 게 글쓰기의 여정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다른 분들이 재밌게 읽어주시면 물론 좋지만, 스스로가 만족하는 게 제일 중요한 것 같습니다. 그러니까, 자기 만족적인 글을 추구합니다. 세 글자로 ‘자만추’라고 할 수 있겠네요.

다만, 무심코 쓴 제 글이 누군가에게 상처가 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 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쓰고 싶은 이야기, 또는 써야 할 것 같은 이야기, 아니면 강렬하게 쓰고 싶지만 절대 쓰면 안 될 것 같은 이야기(…)를 쓰는 데 제약이 생기는 것도 좀 곤란하기 때문에, 이런 딜레마에 대해서는 항상 어려운 숙제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3. 내가 세운 목표에 어느 정도 도달했는지

대외적인 목표나 욕심은 별로 없습니다. 그저 가끔 소설을 쓰고, 누군가가 재미있게 읽어주면 그걸로 된 것이니 이미 목표에 도달했다고 할 수 있겠네요.

하지만 억지로 야망을 조금 품어보자면 그래도 역시, (그게 뭔지 모르겠지만) 조금 더 좋은 작품을 더 많이 쓰는 것 정도가 되려나 싶네요.

물론 제가 쓴 소설들이 단행본으로 출간된다든가, 넷플릭스로 영상화되어 전 세계 160개국에 스트리밍이 되는 것도 기쁜 일일 겁니다. 휴고상 같은 걸 받아서 식탁에 올려두고 밥 먹을 때마다 쳐다보는 것도 제법 흐뭇한 일이 될 테고, 한겨레문학상이나 맨부커상 받았다고 아파트 경비 아저씨나 야구르트 아줌마에게 자랑한다든가, 노벨 문학상 받은 기념으로 저녁 회식 때 코다리찜이나 참치회 같은 거 한턱 쏘는 것도 분명 기분 좋은 일입니다.

아니면 생뚱맞게 일본의 아쿠타가와상 같은 걸 받으면 신기하기도 할 테고, 제 작품이 현진건 황순원 같은 작가들의 작품과 나란히 교과서에 실린다든가, 외계의 지적 생명체를 탐사하는 우주선에 실린 레코드판에 새겨지는 것도 영광스러운 일이긴 하겠습니다만, 아무래도 저는 그저 재미있는 작품을 써내는 것이 가장 보람 있을 것 같네요.

별개로, 올해는 다른 목표를 하나 갖고 있는데… 리뷰를 한번 써볼까 합니다. 그동안 제가 다른 작가님들의 글에 리뷰 쓰기엔 깜냥이 안된다 싶어서 엄두를 못 내고 있었는데, 없던 깜냥이 갑자기 생긴 건 아니고요, 아무래도 리뷰를 쓰는 것이야말로 ‘읽고, 쓰고, 생각하기’의 삼박자를 고루 갖춘 활동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요. (그러니까 이것도 자기만족을 위해 하는 겁니다) 언제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올해 안에는 꼭 도전해 보고 싶네요. 쓰면 많이들 읽어주세요.

 

 

4. 글이 안 써질 때 나만의 방법

아직 글을 쓴 지 얼마 되지도 않았고, ‘글이 안 써진다’라고 말할 수 있을 만큼 많이 써 본 게 아니라서, 이게 진짜로 글쓰기 장벽인지 그냥 경험 부족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사실 잘 안 써진다고 느낀 적이 많이 없긴 합니다. 쓴 게 별로 없으니까요.

어쨌거나 이런 저도 잘 안 써질 때가 있긴 한데요. 이야기가 막히거나 아이디어를 얻고 싶을 땐 저 역시 다른 작품을 읽기도 하고 유튜브에서 이런저런 영상을 보기도 합니다만, 뭐가 막히는 상황에서는 아무리 그런 걸 봐도 그 자리에서 바로 써먹어지지는 않더라구요. 대신, 그럴 때 봐둔 것들은 한참 나중에 소화가 되어서 그제야 좀 도움이 되는 것 같습니다. 응급책으로 갖다 쓸 수 있는 방법은, 적어도 글쓰기에서 저는 아직 찾지 못한 것 같아요. 저는 좋은 생각이 주로 심적으로 이완되었을 때 많이 생겨나는 편인데, 어깨에 힘주고 잘 쓰려고 하는 것 자체가 긴장의 상태라, 구하려면 안 구해지고, 가만히 있으면 좋은 생각이 떠오르는 아이러니를 겪곤 합니다.

그리고 쓰다가 좀 지루해지면 뒷부분을 당겨와서 쓰기도 합니다. 결과를 먼저 진술하고 원인을 서술하다 보면 좀 새로운 관점에서 보이기도 하구요. 뭐 그렇습니다.

그러다가 결국 안 되면, 그냥 접어둡니다. 어차피 연재작도 아니잖아? 하는 마음으로요. 쓰던 작품은 내려놓고, 스케치북 한 장 넘겨서 그림 새로 그리듯이, 다른 작품을 새로 씁니다. 그러다 보니, ‘아무래도 망친 것 같은 작품’을 얼마나 붙잡고 씨름하는 게 현명한 건지 고민이 되기도 합니다. 그만두는 건 쉽지만, 이게 습관이 되면 곤란하니까요. 다른 분들은 풀리지 않는 정도가 아니라 아예 망한 것 같은 소설을 어떻게 처분하는지 궁금하네요. 1. 꾸역꾸역 완성한다. 2. 일단 접어두고 다른 걸 쓴다. 3. 기왕 망친 거 더 망쳐서 괴작으로 만든다. 4. 기타

그리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고 싶긴 하지만 아직 이야기로 잘 빚어낼 자신이 없는 소재들’도 있긴 한데, 그런 건 무리하지 않고 이야기를 풀어낼 수 있는 소양이 쌓일 때까지 기다려볼까 합니다. 예전에 이문열 작가님이 대하소설 변경의 서문에서 ‘내가 산 시대의 거대한 벽화를 그리겠다’라는 야심을 품었다고 쓴 걸 본 적이 있는데, 그걸 실제로 시도하신 게 정말 대단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런 시도는 단순히 야심 같은 걸로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충분한 시간과 노력이 가해져야 가능한 일이겠죠.

아직 장편은 좀 더 기다려야 쓸 수 있을 것 같고요. 당분간 중단편과 엽편을 쓰면서 조금씩 경험을 다져볼까 합니다. 그러다 보면 언젠가는 좀 더 큰 이야기도 쓸 수 있지 않을까 싶네요.

 

여기까지입니다. 쓰다 보니 주절주절 말이 길어졌네요.
재미있는 이벤트 열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다들 건필하세요!

뿡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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