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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문10답] 안녕하세요, 이일경입니다.

분류: 수다, 글쓴이: 랜돌프23, 23년 8월, 댓글6, 읽음: 101

1. 글을 쓰게 된 계기

중학생 때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소설을 접하게 되었는데, 특히 ‘나무’라는 단편집을 읽고 ‘나도 이런 세계를 만들어나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초반엔 SF를 많이 썼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SF를 쓰기 위해선 기본적인 과학지식이 많이 필요하더군요. 그래서 물리학을 공부하기 시작했는데, 물리학 자체의 매력에 빠져버려서 이젠 전공이 되어버렸습니다.

이야기가 조금 샜는데, 뭔가 세상을 만들어나간다는 것이 매력적으로 느껴져서 소설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호러로 장르를 굳히게 된 건 스티븐 킹의 작품을 접하고 나서부터였습니다. 호러가 영화뿐만 아니라 글로도 이렇게 연출해낼 수 있구나 하는 신선한 충격을 받았습니다.

 

2. 내가 쓰고 싶은 글에 관하여

어려운 질문이네요ㅎㅎ; 사실 이런 글을 쓰고 싶다 라는 생각은 많이 하긴 하는데, 굉장히 다양한 게 있어서 하나만 콕 집어 대답하기가 어려운 것 같습니다. 하지만 그 중에서도 제가 가장 신경 쓰고 있는 부분은, 마치 영화 한 편을 본 것 같은 인상을 줄 수 있는 그런 글을 쓰고 싶다는 것이었습니다. 그 뒤에는 조금 확장하여, 단순히 읽는 것이 아니라 일종의 체험이 될 수 있는 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에 굉장히 특이한 (종종 무리수인) 시도도 해보긴 합니다만, 애초에 공포라는 것 자체가 제3자의 이야기처럼 읽는 것과 직접 체험하는 것 간에 피부로 와닿는 정도가 굉장히 다르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여러가지로 소설을 쓰면서도 활자의 한계를 극복해보고 싶다는, 거창한 꿈을 꿔보고 있습니다.

 

3. 내가 자주 쓰는 장르나, 이야기. 작품을 통해 무엇을 말하고 싶은지.

주로 장르는 호러를 씁니다. 그 다음으로는 SF, 종종 둘을 섞은 SF 호러를 씁니다. 아주 간혹 서정적인 글도 쓰긴 하지만 (예를 들어 ‘별 스러진 밤’이나 ‘우주의 계절’… 따지고 보면 SF에 들어가긴 하네요.) 많지는 않습니다.

호러 중에서 주로 쓰는 이야기, 즉 소재는… 인간의 악의나 초자연적 현상, 그리고 저주가 있을 것 같습니다. 개인적으로 상당히 고전적인 호러 소재를 좋아하는 편입니다.

작품을 통해서는… 글쎄요, 일단 장르 문학인 만큼, 그 자체로 섬뜩하거나 무서운 감정을 느끼고 체험하게 하는 게 우선일 듯 합니다. 이게 쉽지 않아서 성공률이 높은지는 모르겠습니다. 한편으로는, 가장 비인간적인 상황을 제시함으로써, 오히려 인간성이란 무엇인가 에 관해 묻는 걸 좋아합니다. 투박하고 식상한 표현일 수 있지만, 밤이 되어야 별이 비로소 보이는 법이니까요. 이 부분은 ‘기예르모 델토로’ 감독의 작품 영향을 좀 받은 것 같습니다.

저는 현대인들이, 혹은 특정 시대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두려워하는 공포의 대상, 괴담, 도시전설 등이 단순한 오락에서 그치는 게 아니라, 대다수 사람들의 공통된 불안을 반영하기에 유의미한 자료라고 개인적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런 걸 분석해서 드러내보이고 싶다는 생각은 늘 하는데, 가끔 쓰다보면 소설이 아니라 논문처럼 변해서 고민입니다.

 

4. 가장 좋아하는 책과 그 이유

가장 좋아하는 책은… 호러 장르에선 스티븐 킹의 ‘캐리’를 들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스티븐 킹의 초창기 작품(사실상 그의 이름을 알린 첫 작품)으로, 실로 그 내용은 무시무시하고 파괴적이며 마지막 부분은 한동안 뇌리에서 떠나지 않는 후유증을 안겨다주지만, 한편으로는 호러에만 그치는 게 아니라, 학교 폭력과 가정폭력, 그 사이에서 마음 붙일 곳 없이 외로이 방황하는 슬픔과 서글픔, 재난을 대하는 사람들의 태도 등이 종합적으로 드러나서 뒷맛이 매우 씁쓸하고 생각이 많아지게 됩니다. 호러 장르에 이런 내용들이 담길 수 있구나, 하고 상당히 놀라고 감탄한 기억이 있습니다. 벌써 그 책만 10번은 읽은 것 같습니다.

SF 장르로는 테드 창의 ‘네 인생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그렉 이건의 ‘쿼런틴’과 좀 고민을 많이 했는데요(양자역학을 소재로 한 SF 소설입니다. 기회 되시면 읽어보시는 걸 추천드리겠습니다.), 그래도 언어학과 해밀턴 원리를 이렇게 우아하게 융합시켜서 인간의 자유의지와 선택, 시간이라는 개념에 대한 고찰을 이런 식으로 풀어나갈 수 있다니, 하고 (긍정적인 의미로) 경악하였던 소설이었습니다.

 

5. 최근 글을 쓸 때 들었던 생각

이제 독백은 좀 그만하고 여러 등장인물을 등장시켜서 사람들간의 상호작용을 다뤄보자, 라고 생각하고 있지만, 생각보다 잘 안 되어서 고민입니다. 이 한계를 극복한다면 단편을 넘어서 장편을 통해 제가 전하고 싶은 이야기를 더 깊이 해나갈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습니다.

 

6. 글쓰기에 대한 고민, 혹은 글을 쓸 때 이것만은 지키겠다는 나만의 철칙

글쓰기에 대한 고민은 위에서 이미 언급해버렸네요 ㅎㅎ;

그래서 글을 쓸 때 이것만은 지키겠다는 철칙으로 바로 넘어가자면, 큰 건 아니고 ‘내가 어떤 작품을 보고 싶어했는가’라는 초심을 잃지 말자 였습니다. 제 취향이 보편적인 건지 매니악한 건지는 잘 모르겠지만, 아무튼 제가 재미없는 글은 남들도 재미없을 거라는 생각을 하며 글을 쓰고 있습니다. 제가 밤에 글을 쓰다가 좀 소름이 돋거나 섬뜩할 정도는 되어야 독자분들도 반응을 해주실 것이다, 라는 생각을 하며, 제가 읽었을 때 영 느낌이 안 오면 아예 다 뜯어 고치거나 버립니다.

 

7. 내 글을 한 문장으로 정의한다면

기이하고 기묘한, 불합리하고 부조리한, 인간혐오와 염세주의의 탈을 쓴 인간긍정의 발버둥.

 

8. 다른 작가님들과 독자님들께 하고 싶은 말

처음 시작할 때만 해도, 제 글을 많은 분께 공개한다는 셀렘 반 두려움 반의 마음이었습니다만, 그래도 계속 활동하다보니, 진심 어린 충고를 해주시는 분도 생기고 또 꾸준히 찾아와주시는 분도 생기게 되었습니다. 언제나 단 한 분이라도 제 글이 취향에 맞는다면, 그걸로 족하다는 마음을 가지고 글을 쓰고 있기에, 항상 그런 관심을 당연하게 여기지 않고 과분할 정도로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대학원 생활로 인해 조금 바빠지긴 했지만, 그래도 소설에 대한 열정은 여전하기에, 기다려주시는 만큼 변하지 않는 모습으로 (아니지, 발전된 모습으로) 찾아뵐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그리고 브릿G에서 장르문학 작가의 꿈을 키우고 계시는 모든 작가님들께 좋은 일 가득하시길 바랍니다.

 

9. 내가 쓴 글을 통틀어 가장 마음에 드는 한 문장 (어디에 나온 문장인지까지)

쉽지 않은 질문이네요 ㅠ

하지만 지금 퍼뜩 떠오른 문장이 있다면, Vanishing Entity의 ‘아마 그건 지구상에 존재하는 생명체들 중에서 유일하게 <스스로가 원해서 태어난 존재>일 것이다.’입니다. 지금도 이 문장이 드러내는 아이러니함이랄까, 탄생에 대한 불편한 역설이 쓰고나서도 뇌리에 강렬히 남더라고요.

 

10.내가 쓴 글 중 가장 잘 썼다고 생각하는 장편, 중단편 각각 하나씩. (장편 없으면 중단편 2개도 괜찮음. 선정 이유까지.)

가장 잘 썼다고 할까, 개인적으로 제 취향이 듬뿍 담긴 중단편 작품 2개를 SF와 호러에서 각각 뽑아보자면,

<SF 장르>

<호러 장르>

이 두 작품입니다. 정말 각 장르에서 제 개인적 취향을 꽉 집어넣은 글이었고, 독자님들로부터 선물 같은 글이었다, 감동적이었다 와 같은 말을 들을 수 있어서 더더욱 애착이 가는 글들입니다.

 

저의 10문10답은 여기까지입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랜돌프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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