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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문10답] semi 숏터뷰

분류: 수다, 글쓴이: 담장, 23년 4월, 댓글3, 읽음: 112

10문10답 올려주신 분들 작품에 하나씩 댓글 달고 있어요 :)… 다들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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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글을 쓰게 된 계기

처음에는 도피성이었어요. SF에 빠져든지는 그리 오래되지 않았네요. 원래 생각이 되게 많고 꼬리에 꼬리까지 물고 들어가는 편이라 한 번 안 좋은 생각이 들면 깨어있는 내내 생각에 시달려야 했어요. 그러다가 우연히 도서관에 들려 시간 때우기 용도로 책을 한 권 집어들었는데, 그게 문목하 작가의 유령해마였고요.

책을 읽으면 읽는 동안에는 생각에서 벗어날 수 있어서 좋았어요. 너무 허황된 이야기가 아닌 현실에 기반을 둔 이야기를 읽다보면 은연 중에 위안을 받았어요. 그래서 정말 깨어 있는 시간 내내 책만 읽었고 그게 1년 쯤 됐을 때 박해울 작가의 기파를 읽고 글을 써야겠다고 다짐했어요. 그게 제 브릿g 첫 소설 ‘오온의 범위’예요. 유일한 장편이기도 하죠.

제가 작가 자아보다 독자 자아가 훨씬 큰 이유도 이 때문이에요. 더 읽고 싶은데 제 머릿속에 떠오르는 이야기를 누가 써주질 않아 결국 직접 쓰게 된 거고요.노말시티님(남세오) 소설을 전부 찾아 읽다가 우연히 브릿g라는 플랫폼을 알게 됐는데 로판 말고 다른 장르도 주력이 되는 플랫폼이라 너무 즐겁네요. 취향이 비슷한 분들이 여럿 계셔서 행복합니다.

 

2. 내가 쓰고 싶은 글에 관하여

인간을 이해하고 사랑하기 위해 글을 씁니다. 작가 소개란에 적힌 것처럼 무질서에서 패턴을 찾아내고 무생물에게까지 인격을 부여하는 행위 등등 인간만의 속성을 좋아합니다. 제가 쓰는 모든 글들은 인간에서 먼 존재를 빌려 말하지만 전부 인간에 관한 이야기예요.

원래 비관주의자에 가까웠지만 최근에는 인간의 좋은 점을 계속해서 곱씹고 있어요. 속되게 말하면 대가리 꽃밭인데, 요즘은 사랑하는 것이야말로 강한 것이라 생각하곤 합니다. 누굴 탓하고 비관하는 건 너무나 쉬운 일이지만 이해하기를 넘어 사랑하려면 큰 용기가 필요하니까요. 인간의 역겨운 면들을 직면하고 그것을 없애려 노력하기에 앞서 먼저 인간을 사랑하는 것이 선행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사랑하는 존재들을 위해 버티는 거니까요. 저는 특히 약자들의 연대를 가장 사랑합니다.

물론 제가 늘 인간을 예찬하는 이야기만 쓰는 건 아니에요. 술 먹고 썼던… ‘귀신동력가전제품판매’나 ‘신규기능이 추가된 트위터에 가입하세요’ 등등…도 있습니다. 도피성으로 읽고 쓰기 시작한 글인데, 결국에는 근원으로 돌아오는 걸 보니 신기하네요.

 

3. 내가 자주 쓰는 장르나, 이야기. 작품을 통해 무엇을 말하고 싶은지.

SF 여성서사를 주로 쓰고, 호러와 스릴러도 쓰고 있어요. 제 글을 처음 읽으시는 분들은 종종 헷갈려하시는데 저는 ‘그녀’라는 대명사를 사용 안 하고 성별 상관 없이 전부 ‘그’로 호칭을 통일하거든요. 그래서 남자로 등장인물을 헷갈려하시는 분들도 계시던데 제가 따로 성별을 언급하지 않는다면 전부 여자라고 생각해주세요.

 

4. 가장 좋아하는 책과 그 이유

유령해마… 진짜 미칠 것 같아요… 처음 읽은 지 2년 넘었는데 한 달에 4번씩 미친 사람처럼 영업하고 외치고 다녔더니 저한테 영업 당해서 읽고 평 남긴 사람이 30명이 넘습니다. 모든 사람을 사랑하고 관찰해야 하는 인공지능 해마가 오직 단 한 사람의 생을 전부 관측하다니… 아직도 심장이 뛰네요. 하도 중얼중얼대서 대사를 전부 외웠어요. 조선시대 문인들이 왜 뜬금없이 시를 읊었나 이제는 알 것 같기도 해요.

 

4천만 명의 인생은 인공위성에 두고 왔다. 나는 그 긴 시간을 너만을 생각하며 보냈다.

네가 두려워 할 것을 안다. 네가 두려워 하는 것은 숙명이고 너의 두려움을 이해하는 것은 나의 숙명이다.

 

5. 최근 글을 쓸 때 들었던 생각

굉장히 운이 좋다는 생각을 하곤 해요. 아무리 좋은 작품을 쓰더라도 내게 맞는 플랫폼과 독자들을 만나야 빛을 보는데, 브릿G 오자마자 생각보다 많은 관심을 받아서 너무 기뻐요. 아무런 반응이 없어도 자기 만족용이다, 하고 쓰려고 한 건데 저랑 취향 맞는 많은 분들이 찾아오셔서 응원도 해주시고 회차마다, 제가 쓰는 글마다 전부 감상을 달아주셔서 꾸준히 쓸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생각지도 못한 후원도 많이 받아서, 저도 받은만큼 다른 작가님들께 후원을 족족 하고 있습니다. 주로 sf 쓰시는 분들, 그리고 브릿g 막 오신 분들께요. 글을 쓰게 하는 원동력은 피드백이라는 것을 잘 알아서 요새는 댓글이나 리뷰도 열심히 남기려고 해요.

 

6. 글쓰기에 대한 고민, 혹은 글을 쓸 때 이것만은 지키겠다는 나만의 철칙

현생이 이공계 대학생인데 sf를 쓴다는 점? 사실 이것만 봐서는 문제가 안 되는데 이제 모든 전공 수업을 글을 쓰기 위한 소재로 듣는 불상사가 벌어져서 뇌를 부여잡고 있어요.

글 쓸 때 정해둔 철칙은… 전 주로 sf를 쓰지만 간혹 호러도 쓰고, 대부분의 글이 고발적인 행태를 가지기 때문에 늘 조심스럽게 접근하고 있어요. 특히 직접 언급은 되지 않더라도 실제 사건을 다루게 되는 경우에는 고민을 많이 합니다. 제 글이 누군가에게 상처가 되지 않길 바라요. 어떻게 하면 내가 이끌어내고자 하는 논제를 정확히 말하면서 소재를 다룰지, 애초에 내가 실제 일을 ‘소재로만’ 보며 가볍게 다루지 않는 건지 경계하고 있습니다.

또 호러 특성상 불쾌함을 일으키는 연출이 있을 수도 있는데요, 윤리적인 문제에 관해 주의하고 있어요. 일본의 어떤 만화 작가님께서 말하셨던 걸로 기억하는데, 얼굴이 일그러지거나 신체에 장애가 있는 사람을 기괴하다는 이유만으로 공포 소재로 다루지 마라고 하셨죠. 그 말에 정말 공감해요. 특히 성적인 장면, 장애를 비하하거나 편견을 심어줄 수 있는 부분이요.

그래서 이러한 장면 없이도 어떻게 서사만으로, 연출로, 짜임새와 반전으로 공포를 이끌어내고 뒤통수를 칠지 고민하고 있어요.

 

7. 내 글을 한 문장으로 정의한다면

인간 관찰 일지

 

8. 다른 작가님들과 독자님들께 하고 싶은 말

TO. 작가님들께

제발!!!!!!!!!! SF를 써주세요. SF 태그 달린 건 전부 읽고 있어요!!!! 저 정말 브릿G 지박령이에요. 브릿g에 올라온 sf 중에 제가 안 읽은 거 없을 걸요????? 여성 서사… SF… 그리고 SF 작품 중에 종이책 출간한 거 있으면 댓글로 달아주세요 저 사실 종이책 더 좋아하거든요 단편 장편 안 가리고 다 읽어요 저 리뷰도 열심히 쓰고 후원도 잘 해요… 지역 도서관이나 대학 도서관에도 책 전부 신청하고 영업도 잘해요. 저 영업 성공률 90퍼센트예요 많이… 많이 써주세요… 그리고 인공지능이나 안드로이드, 비인간 나온 소설 추천 받아요…

 

TO. 독자님들께

전하고 싶었던 이야기가 누군가에게 와닿을 수 있다는 일이 너무나 행복한 일이라는 걸 근래에 많이 느끼고 있어요. 글을 쓰면서 위로를 주고 받고 서로 공명할 수 있다는 점에서 정말 감사하고 있고요. 작품은 독자와 작가가 함께 만들어가는 거라는 생각이 드네요. 꾸준하게 쓰려고 노력 중이에요. 감사합니다.

 

9. 내가 쓴 글을 통틀어 가장 마음에 드는 한 문장 (어디에 나온 문장인지까지)

 

사람의 의식과 영혼이 뇌의 화학작용에 인한 기억으로 정의 내려질 수 있다면 당신의 기억을 먹은 나는 당신의 영혼을 가졌다고 할 수 있나요? – 오온의 범위

 

10.내가 쓴 글 중 가장 잘 썼다고 생각하는 장편, 중단편 각각 하나씩. (장편 없으면 중단편 2개도 괜찮음. 선정 이유까지.)

 

제 첫 소설이자 유일한 장편인 작품이에요. 물론 연재 형식으로 쓴 작품들이 꽤 있긴 하지만 연재 작품 특성을 이용하기 위함이었고 분량으로 따지자면 오온의 범위만 장편이에요.

로봇의 의식과 인간의 의식, 인간은 로봇을 사랑하고 로봇은 인간을 사랑하는데 왜 인간은 인간을 사랑하지 않느냐는 질문에 관한 답을 이야기 전반에 걸쳐서 하고 있어요. 꽉꽉 닫힌 결말로 썼고 원래는 완결이었는데 감사하게도 끝까지 읽고 오로지 선의로만 리뷰를 달아주신 분 덕에 피드백도 많이 받고 추가적인 외전을 쓰려고 해요. 트위터에 그냥 올린 혼잣말이 알티가 되어… 영업을 했는데 작품이 역주행이 되어 정말 기뻐요.

 

중단편으로는 이 작품을 뽑고 싶네요. ‘신규기능을 추가한 트위터에 가입하세요’와 비슷한 듯 다른 느낌의 소설이에요. 저는 임의로 ‘~하세요’ 시리즈라고 부르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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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아무도 안 해주실 줄 알고 뻘쭘했는데 몇 분이 해주셔서 정말 기뻐요 ㅋㅋㅋ 저도 덕분에 하고 싶은 말 다 하고 갑니다. 숏터뷰 같기도 하고 좋네요.

담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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