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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비 문학상 심사를 마치면 일주일 정도는 피폐한 정신세계로 지내기 마련인데, 올해는 유난히 희망적이고 경쾌한 작품이 많아 뜻밖에 즐거운 예심을 볼 수 있었다. 단편 「사망死望」은 지금까지 본 중에 가장 서정적인 좀비 문학 작품이었다. 좀비를 소재로 로맨틱한 동화를 써 본다면 바로 이런 작품일까 싶었던 작품으로, 사람과 사람 사이에 흐르는 감정을 잔잔하고 담담하게 풀어낸 서술이 매력적이었다. 장편 『선데이 블러디 선데이』의 경우, ‘1989년 청소년 정치 캠프’를 배경으로 순수하고 정의로운 주인공들이 이야기를 경쾌하고 역동적으로 풀어내어 가독성이 무척 좋은 작품이었다.
『데드엔드』 역시 분량에도 불구하고 가독성이 좋은 작품이었는데, 좀비 사태 발발에 이르는 개요보다는 액션 쪽에 집중함으로써 이야기의 흐름이 좋았던 듯하다. 본심에 올리지는 못했지만 좀비라는 소재를 공포 소재로 활용하기 보다는 사랑하는 이를 잃는 상실감이라는 주제로 풀어낸 「장수」나 좀비 사태가 발발한 와중에 박력 넘치는 한 편의 퇴근 드라마를 본 듯한 「포도주」도 마지막까지 망설일 정도로 훌륭한 작품이었으나 초반 몰입감이 떨어지는 점이 조금 아쉬웠다. 「우리는 모두 아이를 싫어한다」나 「감염」의 경우, 중반에 살짝 흐름이 늘어지는 느낌이 있고 전형적인 좀비 문학이라 결말이 살짝 예측되는 면이 아쉬웠으나 둘 다 탄탄한 작품이었다. 전반적으로 질이 높은 작품이 많았던 터라 더욱 심사숙고할 수밖에 없던 한 해였다고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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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릿G 오픈베타 서비스 공개 시점에 맞춰 오랜만에 개최된 제6회 ZA 문학상은 응모된 작품 수만큼이나 다채로운 정조와 분위기를 앞세운 작품들이 많았다.
「나는 좀비로소이다」는 좀비 화자의 시선으로 이야기를 풀어내는 과정에서 소소한 유머가 돋보여 여러모로 읽는 재미가 있었지만 결말의 뒷심이 부족했다. 좀비가 된 아내의 현재와 과거를 교차하며 감성적인 심상을 남기는 「헬라」는 1951년 이후부터 무한 번식해 온 인간 배양 세포의 이야기를 끌어들여 비유하는 서사 특징이 돋보였으나 긴장감이 덜하고 익숙한 마무리가 아쉬웠다. 「집으로 가는 길」은 독자와 화자가 동시에 알아차리는 일격의 반전을 의도했으나 예상을 뛰어넘지는 못했고, 귀갓길의 여정 자체를 좀 더 극적으로 담아냈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스스로 만든 지옥도에서 응징을 맛보게 하는 서사 구조가 돋보였던 「에덴」은 사태의 원인이 된 매개의 설정이 거칠고 지나치게 잔인한 성향의 캐릭터 몰입이 힘들었던 점을 약점으로 꼽는다.
한편, 다음은 본심에 올린 작품들이다. 세계의 질서를 정의하는 소수가 존재하고 그 규칙에 따라 민간인의 생존이 철저하게 결정된다는 점에서 스티븐 킹의 『롱 워크』를 연상시켰던 「포식자들」은 정보부를 중심으로 한 좀비 사냥 게임의 이면에 감춰진 사회적 질서 재편의 진실과 음모를 담백하게 따라가는 작품이었다. 「아들에게」는 작품 첫 머리에 인용된 코맥 매카시의 『로드』처럼 온통 잔인하고 암울한 풍경으로 가득하면서도 장애를 앓는 아이를 둔 아버지의 비정한 사투를 이어나가는 서사가 인상적이었다. 지나치게 감상적인 부분이 있고 다소 억지스럽게 느껴지는 결말이 걸리지만, 남자의 심정적 변화를 따라가는 과정 자체에 서정적 흡인력이 있었다. 마지막으로 「죽고 싶다.」는 강렬한 임팩트는 없었지만 소위 ‘헬조선’에 재림한 좀비 아포칼립스 세계관의 정조를 직접적으로 담아내며 진실로 죽음을 갈망하는 자조 섞인 생존 독백이 돋보였다는 판단에, 고민 끝에 본심에 올린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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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공모전은 응모된 작품이 많았지만, 작품 완성도가 예년만 못해 아쉬웠다. 남성을 중심으로 한 서사가 대부분으로, 전반적으로 얼개와 마무리가 엉성하고 이야기가 충분히 풀리지 않은 채 끝을 맺었다. 참신한 소재지만 흡인력이 부족하거나 좀비문학의 기본적인 서사는 지키지만 스토리가 진부하거나, 플롯이 잘 짜여 있는데 비해서 이야기를 발전시키는 힘이 부족하거나 하는 등 작품마다 한두 가지 아쉬운 점들이 보여 선정에 난항을 겪었다. 「아내의 좀비」는 아내를 향한 감정선이 돋보였으나 1인칭 서술의 한계가 아쉬웠다. 『살인자는 좀비』와 『우리의 레스토랑에 어서 오세요!』는 발상은 신선했지만, 이야기의 호흡과 인물의 전형성이 아쉬웠다. 「드라마틱」은 전개가 흥미로웠으나 예상 가능한 반전이 아쉬웠다. 중편 「저울눈을 속이고」는 흡인력 있고 흐름은 좋았지만, 긴장감과 반전의 개연성이 부족하였다. 본심에 올린 작품은 단편 「베이컨을 구하라」 한 작품으로 묘사가 아쉽지만 빠른 호흡과 풍자, 그리고 이야기를 풀어가는 방식이 매력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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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루고 있는 내용이나 소재 면에서 예년과 다른 두드러지는 특색을 찾아보기는 어려웠지만, 플랫폼 연재 형식의 응모도 가능해진 덕인지 중편 내지 장편 응모작의 수가 다소 늘어난 듯하다.
좀비 바이러스 면역자와 보유자로 나뉜 한국 사회에서 보유자가 좀비로 변화하지 않도록 하는 약을 둘러싼 음모와 다양한 인간 군상을 다룬 「창백한 말」은 전반적으로 플롯이 안정적이며 완성도가 높은 작품으로 현실적인 사회 묘사가 인상적이었다. 종말 후 살아남은 로커가 한 소년을 만나 작은 희망을 찾는 「록앤롤 싱어」와 바이러스 확산의 진원지로 판명된 수상한 실버타운에서 벌어지는 전말을 그린 「좀비 타운」은 전개되는 내용이 예상의 범위를 크게 벗어나지 않는 단편들이었지만 가독성이 좋고 전반적으로 구성이 깔끔했다. 맞춤 유전자를 만들어내 인공자궁에 착상하는 과정을 통해 탄생한 아이들을 중심으로 바이러스가 번지는 이야기를 다룬 「오픈 소스 베이비」는 아이디어가 독특하고 도입부도 흥미로웠으나 중반부 이후로 흡인력이 떨어져서 아쉬웠다.
사우나에서 좀비들과 마주친 인물의 긴박한 탈출극을 시각적으로 잘 묘사한 「나를 물어줘」, 아버지가 아이에게 준 가상의 개를 둘러싼 소동을 그린 「투명 개」, 망가진 신체를 가리려는 열망을 가진 감염 생존자들이 등장하는 「좀비 신부를 위한 메이크업」도 특색 있는 단편들이었지만 얼개가 헐겁거나 다소 전개가 거칠어서 본심에는 올리지 못했다. 바이러스로 세상이 황폐해진 이후 서울로 이주한 환경미화원의 이야기가 담긴 「환경미화원」, ‘재생인’ 청년의 캠퍼스 나날을 다룬「시계초를 위하여」, 생각을 할 수 있는 좀비의 추억을 그린 「빈 도시에 남겨져」는 잔잔하고 관조적인 서술을 통해 황폐한 세계를 잘 포착했지만 시선을 잡아 둘 만한 사건이 부족하여 비교적 서사가 약하게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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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년보다 많은 작품이 응모했음에도, ZA 문학 공모전을 위해서라기보다는 기존에 있던 이야기에 단지 좀비만 끼워넣었다는 인상의 작품이 많은 편이었다. 「샌드위치」는 개성적인 배경을 함에도 이야기의 결말까지 이르는 전개가 다소 허술한 점이 아쉬웠다. 「좀비와 책방」 역시 색다른 소재와 전개가 흥미로웠지만 마무리까지 가는 과정에서 아쉬움이 있었다. 「좀비 래리」는 풀어가는 시점이나 내용이 개성적이나 흡인력이 떨어졌다. 「조선 좀비 남질갑」은 끝까지 고민했으나 독특한 소재에 비해 이야기의 완성도에 아쉬움이 있었다. 「성모 좀비 요양원」은 좀비물로서는 흔치 않게 잔잔한 진행이 오히려 돋보였던 작품이다. 고심 끝에 단 한 작품만을 본심에 올린다.
결선 진출작
-총 11편, 장편 3, 중단편 8편/브릿G 게재작 5편 업로드 6편
-본심은 다음주말 발표 예정.
아들에게
좀비타운
선데이블러드선데이
사망
성모좀비요양원
데드엔드
록앤롤싱어
베이컨을 구하라
죽고싶다
창백한 말
포식자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