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심위원1
제7회 타임리프 소설 공모전은 다양한 장르의 작품들을 만날 수 있는 기회였다. 공포와 스릴러, SF와 판타지, 로맨스 등 다양한 장르가 ‘타임리프’라는 소재와 만나 각자의 매력을 뽐냈지만, 기존에 대중적으로 두루 알려진 작품의 한계를 뛰어넘거나 이전에 없던 기발한 상상력을 보인 작품은 상대적으로 적어 아쉬웠다. 또한 ‘타임리프’라는 소재 자체에 대해 깊게 고민하고 다루었다기보다는 하나의 서사적 도구로서만 접근한 작품이 많아 장르의 완성도 측면에서도 아쉬운 점이 다소 있었다.
「The Show Must Go On」이나 「키다리 저승사자」 등은 캐릭터의 매력에 많이 기대야 하는 소설인데, 정작 그 캐릭터의 매력이 부족하여 독자의 몰입을 유발하기에 부족함이 있다고 느꼈다. 「8월의 범인」은 소재가 이보다 더 완성된 스토리로 발전할 수 있었으리라 하는 아쉬움이 크게 남았다. 「미래의 칼날」과 「레인저 리브 포레버」는 기존에 대중적으로 성공한 작품들과 유사한 소재를 선택했으나, 그 소재들을 자신만의 것으로 소화하지 못해 흥미로움이 상대적으로 덜했다. 「유다의 마지막 선택」은 문체가 독보적인 소설이었으나, 유다라는 인물에 대한 깊이 있는 고민과 정해진 운명에 따른 선택 등의 주제 의식이 독자에게 다가가기 위한 구성적 고민이 부족하였다. 「모두의 하루」는 세계관 설정이 대단히 흥미로웠으나 등장인물의 스토리와 전혀 별개로 놀아, 차라리 거시적인 관점으로 세계를 설명하는 방식의 접근이 더 흥미로웠을 수 있었을 것 같다는 아쉬움이 남았다. 「청록의 시간」은 1부의 굵직한 문장들이 가지는 이야기의 힘이 있었으나 2부에서부터 이야기가 갈피를 잃었고, 결말부에는 설명조로 이야기가 마무리되어 독자의 몰입을 온전히 가져갈 수 없다는 아쉬움이 있었다. 「여전히 바닷물은 내게 너무 쓰다」는 초반부에 해광증 등 매혹적인 설정과 장면 묘사, 공포의 분위기 등이 큰 매력으로 작용하였고 후반부의 반전이 큰 장점으로 작용했으나, 이야기 중반부의 독자에게 다소 이질적일 수 있는 설정들이 몰입의 방해 요소로 작용했고, 설정 등이 다소 번잡하여 힘을 잃었다는 아쉬움이 남는다.
「이 하루의 끝」은 타임리프를 소재로 한 여러 청춘 로맨스가 떠오르는 작품으로, 소설적 사건 구성이 훌륭했고 캐릭터의 매력이 살아 있었다. 청춘 로맨스 특유의 풋풋한 분위기를 잘 살렸으나 결말부에서 다소 힘을 잃는 것이 아쉬웠다. 「언터쳐블」은 타임리프를 소재로 하드보일드 느와르를 쓴다면 이렇게 써야 한다는 것을 보여 주는 듯한 귀감이 되는 작품으로, 탄탄한 문체로 이야기를 지루함 없이 힘 있게 이어 갔다. 본선에는 이 두 작품을 올린다.
예심위원2
제7회 타임리프 공모전 심사를 하며, 매번 어떻게 이 동일한 주제로 매번 새로운 아이디어가 나오는지 경탄하곤 한다. 이번 응모작들도 저마다의 독특한 아이디어로 타임리프라는 소재를 잘 살렸다. 이 중 두 편을 본심에 올리는데, 단편소설 「데칼코마니」는 과거를 바꾸려는 두 인물이 교차되고 그 이야기가 하나로 합쳐지는 즐거움이 있다. 마지막에 이르러 다소 과한 설정이 아쉽긴 했으나, 본심에서 다시 평가받기를 바란다. 「바통」은 시간 여행을 디테일하게 그려내는 과정이 흥미롭고 흡인력이 있었다. 긴 이야기의 호흡을 끝까지 긴장감 있게 풀어 나가는지에 대해선 아쉬운 부분이 있지만, 장편소설 중에서 이 정도로 탄탄하게 작품을 그려내는 게 쉽지 않기에 본심에 올려 다시 심사받는 게 맞다고 생각되었다.
아쉽게 본심에 올리지 못했지만 흥미로운 작품도 많았다. 「고증학자와의 인터뷰」는 흥미로운 설정에 모든 걸 다 쏟아부은 듯한데 이야기 자체의 매력에 조금 더 힘을 주었으면 어땠을까 싶었다. 「당신의 내일」은 초반까지 흥미진진하던 이야기가 갑자기 중반부터 장르적 변형이 급해서 이야기를 적응해서 읽기 어려웠다. 초반의 그 흥미진진한 설정이 마지막까지 이어졌으면 어땠을까? 「나는 너의 첫사랑」은 반전도 좋고 반복되는 설정 자체가 타임리프에 잘 어울리긴 하는데 강력한 한방이 없어 아쉬웠다. 「뮤즈를 만나다」는 밴드와 표절을 타임리프와 연결한 게 재밌는 부분이긴 한데 결말까지 가는 과정이 다소 설득력이 부족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아쉽지만 이 작품들은 좀더 다듬는다면 더 완성도 높게 다음 기회를 노려 볼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예심위원3
타임리프를 통해 과거, 현재, 미래를 바꾸려는 목적성이 뚜렷하게 드러나는 등 공모전의 취지에 맞는 작품이 매우 늘었다. 다만 그 목적성과 결말의 반전 등에만 집중하여 약자와 생명에 대한 윤리적 존중이 부재한 작품들도 있어 대단히 아쉬웠다. 더 나은 삶에 대한 동경으로 주인공이 타임리프를 한다면 그 주인공이 살아갈 세상 또한 어떤 모습이어야 할지 함께 고민한 작품이 더 많이 응모되길 바란다. 더불어 동일한 사건이 반복되는 타임루프 소설에서 이야기로서의 재미와 개연성을 놓치지 않는 작품 또한 기다린다.
「왔따! 풍선껌」은 과거의 아픔을 치유하는 낭만적인 이야기였으나 일부 과한 설정과 분절된 전개 호흡이 아쉬웠다. 「영원의 증명」은 시간 여행을 통해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는 로맨스 소설을 목표로 한 듯하나 로맨스 과정이 생략된 채 사랑의 결실만 본 듯한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추락의 이해」는 자식을 잃은 부모의 아픔이 점진적으로 고조되는 전개에만 힘을 주어 마무리가 갑작스러운 인상이었다. 「백한 번째 살인」은 이색적인 도입부가 흥미로웠으나 만화적인 캐릭터와 잔인한 묘사 등으로 이야기 자체에 몰입하기 어려웠다. 「회색빛 거베라와 개잠자리난초」는 인류의 식용화라는 설정이 눈길을 끌었으나 개연성이 부족하고 캐릭터에서 매력을 발견하기 어려웠다. 「시간의 테두리」는 로맨스에는 충실하나 독립운동과 해방이라는 예견된 사건을 향해 나아가는 이야기가 단조롭다는 인상이었다.
고민 끝에 아래 두 작품을 본심에 올린다. 「벚꽃은 물결에 흩어지네」는 과거의 악인을 죽여 미래의 비극을 막는 이야기로 전형적이지만 서사 구조가 안정적이었다. 「우리가 내일을 바란다면」은 결말의 당위성에 설득력이 부족하다는 인상이나 긴장감 있게 이야기를 끌어가는 힘과 뚜렷한 메시지가 있는 작품이었다.
예심위원4
거스를 수 없는 비가역성 때문인지 시간여행이라는 소재는 여전히 많은 이들의 호기심과 궁금증을 자극하는 것 같다. 이번 공모전에서도 다채로운 시대 배경과 소재를 결합해 흥미로운 아이디어가 돋보이는 작품들이 많았는데, 그중에서도 여전히 가족의 과거에 얽힌 서정적인 이야기들이 다수 눈에 띄었다. 나의 탄생과 결부된 과거로 돌아가 내가 사랑하는 가족의 미래를 바꿀 수 있을까 하는 가정은 대상에 대한 사랑의 깊이를 보여 주는 것만 같다. 뿐만 아니라 RPG 게임 세계관이나 옛 시대를 배경으로 삼거나 고전이나 역사, 성경의 내용을 비틀어 시간여행이라는 설정을 접목시킨 흥미로운 발상들도 돋보였다.
「어느 달밤, 그대는 함양의 옛일을 전하고」는 중국 역사의 입지전적 인물들을 주인공으로 한 가상 역사물로, 흥미로운 요소가 있었으나 시간여행이 밀접한 소재로 활용되었다고 보기는 어려웠다.
「당신이 나를 사랑하는 동안」은 시대 배경과 설정이 독특하고 아기자기한 로맨스가 돋보이는 이야기였는데, 전개 과정에서 비어 보이는 전개 요소가 많은 점이 아쉬웠다. 조금 더 촘촘하게 얼개를 보태면 훨씬 유려한 이야기가 될 수 있을 것 같다.
「나사렛의 나사렛」은 타임머신의 개발로 인해 로봇을 과거로 보내 예수를 만나는 과정을 다룬, 역발상이 무척 흥미로운 이야기였다. 성경을 재해석하는 과정에서 얻는 지적 재미, 곳곳에 포진된 유머, 결말의 반전까지 일련의 이야기가 매끄럽게 진행되었지만 시간여행이 핵심이라고 보기는 어렵고 원전의 서사를 따르다 보니 다소 지루하게 느껴지는 부분도 있었다.
「회귀하지 않는 회귀」와 「용사와 두부김치 그리고 마왕」은 흥미를 돋우는 제목처럼 특정 세계관 속에서 회귀를 반복하며 진행되는 이야기가 나름의 재미와 감동을 선사하는 이야기였으나, 다소 소품에 그친 인상이다.
「오렌지」와 「삼 루트 엄마의 해」는 딸로서 엄마의 과거를 들여다보고 이해하고자 노력하는 화자의 애잔한 고군분투를 다룬 이야기였다. 각자 서정적인 여운을 남기지만, 시간여행에 대한 설정이 뭉뚱그려진 점이나 지나치게 감정 일변도로 치우쳐진 부분은 아쉬웠다.
본심에 올리는 두 작품은 다음과 같다.
「시간이동윤리학에 대한 소고」는 답장으로만 이루어진 서간문이 반복되는 구성이다 보니 다소 단조롭거나 해석의 차이에 따라 재미가 다를 수 있겠다는 우려는 있었으나, 시간여행이라는 범주와 근본적인 개념, 고민해야 하는 딜레마 등 작중에서 제시하는 질문 자체가 독자들에게도 많은 고민거리를 던지는 작품이었다. 창작자 입장에서도 뭉뚱그릴 수 있는 설정들의 포인트를 예리하게 짚어 내며, 작중 화자가 해제하는 시간여행의 철학적 개념들이 지적인 재미를 선사한다.
「어느 히치하이커에 대한 몽타주」는 시대 배경과 설정, 각종 소재가 다양하게 뒤섞여 조금은 어수선하게 느껴지는 이야기였는데, 나중에 밝혀지는 주인공의 목적 자체에도 감동이 있었지만 ‘내 귀에 도청 장치’ 같은 1998년의 전설적인 사건을 삽화로 자연스럽게 끼워 넣거나 영화 레퍼런스 활용 등을 통해 기묘한 흡인력을 선사하는 작품이었다. 운명에 충돌하면서 진짜 나만의 이야기가 시작된다는 ‘이야기에 대한 이야기’에는 언제나 거부할 수 없는 매혹이 있다.
예심위원5
이번 응모작들을 보면서 ‘회귀물’이란 서브 장르가 얼마나 대세가 되었는지를 새삼 실감했다. 많은 작품에서 시간여행이란 비일상적 현상의 충격은 짧고 수용은 빨라졌다. 예전이었다면 등장인물의 감정선 면에서 마이너스적 요인으로 비쳤겠지만, 이제는 작가도 독자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넘어가게 되지 않았나 싶다. 다만 그저 일회성 회귀나 우연적인 사건에 그쳐 이야기가 단조로워지는 등 정형화되는 경향도 없지 않은 듯한데, 시간여행이란 소재를 중점적으로 좀 더 폭넓게 살린 작품들을 계속 만나 볼 수 있으면 좋겠다.
하루가 반복되는 ‘시간 감옥’에 갇힌 운동부원들의 탈출기를 그린 「서든데스」와 비밀 실험에 의해 미래인과 동거하는 「도미노는 어디서 멈춰야 하는가?」는 반전이나 설정 면에서 다소 의문을 자아내는 부분이 있으나 소재를 흥미진진하고 충분히 살리되 이야기의 흡인력이 있는 작품들이었기에 본심에 올린다.
그 외에도 인상에 깊었던 몇 작품들은 다음과 같다. 순간의 실수로 쌓아 버린 흑역사를 바꾸려 한다는 내용의 「셀럽의 흑역사」는 소박하고 친숙한 소재를 흥미롭게 살렸으나 후반부가 다소 사건 요약식 전개로 흘러가는 점이 아쉬웠다. 「설탕이 말하기를,」은 타임루프 속에서 지역의 비극과 가족의 추억을 되짚어 나가는 과정이 잔잔한 감동을 자아내나, 전개가 거칠고 비일상적 현상과 상념 사이의 흐름이 매끄럽지 않았다. 「오퍼레이션 나이트캡」은 심문 현장 특유의 분위기가 매력적이고 호기심을 불러일으켰지만 이야기의 긴장감이 후반부까지 지속되지 못했다. 미래에 벌어진 대량 사망 사건의 전말을 파고드는 「카쉬리안 루프」는 설정이 무척 흥미로웠는데 배경과 인물에 대해서 더 자연스럽게 전달하였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있다. 「캐리 어」는 준수한 호러 묘사로 눈길을 끌었으나 시간여행을 비중 있게 다루었다고 보기는 어려웠다.
본심 진출작
이 하루의 끝
언터쳐블
데칼코마니
바통
벚꽃은 물결에 흩어지네
우리가 내일을 바란다면
시간이동윤리학에 대한 소고
어느 히치하이커에 대한 몽타주
서든데스
도미노는 어디서 멈춰야 하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