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비거니즘의 대두와 함께 사람들은 그간의 육식에 관해 다시 한 번 생각해보기 시작했습니다. 공장식 축산, 비윤리적인 도축… 먹히기 위해 태어난 동물이란 있을까요? 동물권의 보장과 함께 ‘인간이 반드시 육식을 해야한다.’라는 믿음은 점차 깨지고 있습니다. 채식주의자, 혹은 엄격한 채식주의자인 비건으로 전향하는 사람들도 꾸준히 늘어나고 있죠.
SF 장르에서는 살아있는 동물 대신 동물의 배양육을 통해 단백질을 섭취하고, 더 나아가 인간은 인간에게서 나온 고기를 먹음으로서 다른 동물들을 착취하지 않는다는 기이하면서도 그럴듯한 플롯을 그려내기도 합니다.
복제, 배양육, 그리고 인육… 이번 큐레이션에서는 ‘고기’를 다루고 있는 작품들을 통해 동물권과 육식에 대한 기저 욕망 등에 관해 알아보고자 합니다.
뛰어 봤자 플랫폼
너에게 나를 보낸다.
사랑하는 이와 함께 당신의 얼굴을 먹어 보아요!
이달의 얼굴에 100만 코인 지급.
바야흐로 물리지구와 같은 리얼월드가 도태하고 사람들이 시물레이션 가상계에 편입된 시대. 인육을 먹는 것이 유행처럼 번져나가고 사람들은 실제보다 더 실제 같은 가상계 내에서 높아지는 리얼함의 수준에 맞춰 극단적으로 치닿은 쾌감을 좇습니다. 그중 가장 인기 있는 메뉴는 맞춤형 얼굴 케이크로 커넥터인 ‘나’는 사람들에게 얼굴 모양 단백질 덩어리들을 배달하며 먹고 삽니다. 그러던 어느날 ‘나’는 자신의 고객 ‘파찌’의 집에서 이상한 것을 발견합니다. 글 중간중간마다 줄글로 적힌 BGM과 함께 어딘가 뒤틀린 사이버 펑크의 느낌을 한껏 즐길 수 있는 소설입니다.
you are what you eat
나는 앞 베란다로 달려가 밖을 내다보았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평소 아이들이 뛰어노는 놀이터에 병아리와 새끼 돼지, 심지어 송아지들이 득시글했다.
원래는 내가 먹은 게 내가 돼야 하는데 이번에는 내가, 내가 먹은 것이 된 것이다.
‘나는 내가 먹은 것이다.’ 야심한 밤 맥반석을 먹은 ‘나’는 다음날 아침 닭이 되어있었습니다. 내가 먹은 게 내가 된다… 였어야 했지만 반대로 내가 내가 먹은 게 되어버린 기이한 상황에 마주한 ‘나’는 이내 자신을 비롯한 모든 사람들이 가장 최근에 먹은 음식이 되었다는 걸 깨닿습니다. 유일하게 인간으로 남은 존재들은 비건인 사람들, 그러나 그들마저 인간으로서 남지 못하고 무언가가 되어버립니다. 유쾌한 문체와 참신한 소재로 읽는 내내 입꼬리에 서린 웃음기를 지울 수 없는 소설입니다.
가장 윤리적인 식사
식용 인간 급구.
먹히고 싶은 사람을 급하게 구합니다.
치사량의 모르핀으로 안락사 후 작업을 진행하므로 안심.
아래 번호로 연락하면 지시된 장소에서 면접 후 해체 진행.
기이한 광고가 붙고 그야말로 기이한 살인 사건이 벌어집니다. 살인자 ‘렉터’는 죄책감 없이 고기를 먹기 위해 허락이라는 것을 필요로 했고, 그렇기 때문에 자발적으로 먹히고자 하는 인간을 구하게 됩니다. 렉터를 심문하는 장 형사는 그의 심리 상태를 분석하기 위해 질문을 던지지만, 돌아오는 건 어떤 목소리를 들었다는 이상한 말이었습니다.
존은 맛있다
누구나 금요일날 저녁에는 존의 허벅지살을 먹고 싶어한다.
심지어 존의 허벅지살은 ‘존A’도 좋아한다.
‘모두’가 우주선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그중 가장 맛있는 존A가 복사기에 들어가야 합니다. 복사기에서 복사된 존은 늘 살려달라고 말하고 케인은 늘 칼을 듭니다. 그러면 그날 우주선의 모든 사람들은 맛있는 존을 먹고 하루가 지납니다. 리사는 전리품이고, 케인은 모두를 지배한다. ‘나’는 똑똑하고 존은 맛있다. 이 공식의 전제 조건은 무엇이었을까요.
미트 더 리얼
“예전에는 말이다. 이게 다 진짜였어. 요즘 먹는 이런 것들은 말하자면 다 가짜란 말이지.”
배양육을 먹는 것이 보편화된 시대, 아직도 과거의 추억에 사로잡혀 ‘진짜’ 고기를 고집하는 황노인은 양로원 사람들과 함께 ‘리얼 축산’을 만들어 살아있는 돼지를 몇 달 뒤 있을 고기 박람회에서 도축하기로 합니다. 돼지를 키우는 데는 정화시설도, 온난화 가스 배출 쿼터도 필요해 생각만큼 쉽지 않았지만 우여곡절 끝에 그는 계획했던대로 많은 사람들 앞에서 쇼를 벌입니다. 황노인의 진짜 고기 되살리기 프로젝트는 성공할 수 있을까요.
가드너
청소. 청소는 좋은 일이다. 쓸고 닦고 버리고 분류하는 동안 잡생각은 사라지고, 무엇보다 사람을 상대하는 게 아니니까.
사건 현장 청소부 ‘나’는 불특정 다수를 살해해 분재로 만들어 버린 살인자 가드너의 집을 청소하게 됩니다. 청소부의 직업 특성상 그들은 집안 구석구석을 관찰할 필요성이 있고, 그로 인해 사건 현장을 더욱 적나라하게 체험합니다. 그러던 도중 ‘나’는 가드너와 자신의 어떠한 공통점을 발견하게 됩니다. 상담자와의 대화, 당시 사건 현장에서의 일이 교차 서술되면서 얽혀 있던 진실이 하나둘 풀어가는 기쁨을 느낄 수 있는 소설입니다.
달래고파닭은 왜 Y작가의 계정을 팔로우했나
당신의 페이스북이나 인스타그램 계정에, 당신의 비전에 역행하는 계정들이 팔로우 신청을 해 오고, ‘dadada’라는 인물로부터 ‘dadada’라는 메시지를 받았다면 당신이 ‘그’의 표적이 되었다는 뜻이다.
락토 베지터리언에서 1년 정도의 적응기를 거쳐 비건이 되겠다고 선언한 Y 작가는 자신이 인스타그램에 비건 관련 게시물을 올린 뒤 2시간 30분만에 치킨 프렌차이즈가 자신을 팔로우 한 것을 알게 됩니다. 그는 이 기이한 일의 원인을 밝히기 위해 검색을 하던 도중 의문의 글이 적힌 한 블로그를 찾게 됩니다. B급 특유의 가볍고 유쾌한, 한편으로 현기증 나는 소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