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환상문학 단편선 ‘라오상하이의 식인자들’ 작가들 인터뷰!

2021.11.25

한국 환상 문학 단편선 『라오상하이의 식인자들』이 출간되었습니다! 이번 작품집에는 어반 판타지 문학 공모전 당선작인 「유령 열차」부터 근대 상하이를 배경으로 ‘강시’라는 독특한 소재를 연쇄 살인과 연결하여 풀어낸 표제작 「라오상하이의 식인자들」까지 브릿G의 인기 판타지 단편소설을 한데 수록했습니다.

작품을 집필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지, 등장인물이나 사건은 어디에서 모티브를 얻어왔는지, 무엇을 기반으로 작품 내 관계성이 창조되고 발전되었는지, 결말 이후의 이야기나 차기작 계획은 있는지 등 작품만큼이나 환상적이고 멋진 답변들이 잔뜩 모였습니다. 작가님들의 차기작을 가장 빠르게 받아볼 방법은, 브릿G [작가 구독]이란 거 아시죠? 그럼 구독 버튼 누르기 전에 일단 인터뷰 먼저 읽어 보시죠!

 

※ 작품 수록 순으로 인터뷰 문답을 전합니다.

대학원생 구은진의 연구실에 사자탈을 쓴 이상한 사내가 찾아온다. 100년 전 초대 총장이 예외적으로 받아들인 탓에, 여전히 학적부에 올라 있던 진짜 용이 다시 수업에 나오게 된 것이다. 졸지에 용의 뒤치다꺼리를 하게 된 은진의 대학원 생활은 갈수록 꼬여만 가는데…….

Q. 용이 대학으로 돌아온다는 얘기는 어떻게 구상하시게 된 걸까요?

A. 예전부터 제 대학원 경험을 녹여낼 만한 이야기가 없나 생각하던 중이었습니다. 당시에 지인분들과 키워드 여러개를 뽑아 쓰고 그리는 스터디를 했는데 누워서 생각하다가 키워드 중 ‘변신’이 눈에 들어오더라고요. 그에 영감을 받아 대학원과 아주 거리가 먼 존재를 연구실에 등장시켜 보자는 아이디어가 떠올랐습니다.

앉은 자리에서 첫 두 단락을 써서 SNS에 스터디 제출을 했더니 지인분들께 계속 써 보라 격려를 받았죠. 한 지인분께서 용어와 연구실 상황 등 자문해 주신다 하셔서 끝까지 써낸 게 「용의 만화경」이었습니다. 은진의 학과 이름도 지인분 작품이었죠.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Q. 작품 속 은진의 이야기는 마치 저자 본인을 투영한다는 느낌도 들었어요, 실제 경험담이 많이 들어가 있을까요?

A. 은진 씨는 7년이나 대학원살이를 했는데도 열정적이죠. 전 그만 한 학기 만에 찌들어 버려서……(웃음)

여담이지만 전 학부 때 심리학을 전공했고 대학원을 인지공학으로 선택했습니다. HCI(Human Computer Interaction)를 공부하는 연구실로, 문과인 심리학과와 공과대 통합 랩이었죠. 문과 출신이 이공대 시스템에 적응하며 느꼈던 바를 많이 녹여냈습니다. 제 경우는 한 학기 만에 과로로 누워서 결국 휴학했지만요.

또 여담이지만 휴학하고 누운 동안 황금드래곤문학상 소식을 듣고는 컴퓨터도 새로 맞췄겠다(인터넷 연결 없는) 해서 써서 응모한 게 『영혼의 물고기』였습니다. 공대 랩을 나와 판타지를 쓰게 됐다는 그 갭이 이 이야기에서 연구실에 나타난 용으로 이어졌을지도 모르겠네요.

Q. 김용 씨의 외모가 사실 더 궁금해졌습니다. 도대체 어떤 모습이길래 금방 잊혀질까. 혹시 집필하시며 떠올린 인물이 있을까요?

A. 놀랄 만큼 아무 모델도, 상상한 모습도 없습니다(……) 그냥 막연하게 머리엔 TV를 얹고 몸은 구부정해서 너풀너풀하다는 이미지 정도? 읽어주시는 분들의 상상에 맡깁니다. 본래 모습도 가장 크고 가장 오래 되고 가장 위엄있는 모습으로 마음껏 상상해 주십시오.

Q. 김용 씨와 은진은 정말 어떤 관계인 걸까요?

A. 김용 씨에게 은진은 자신의 몸에 붙은 셀 수 없는 비늘 한 장 속에 담긴 수없는 데이터 속 하나의 조각에 지나지 않겠죠. 그럼에도 김용 씨에게 미래를 위해 은진은 필요한 존재였고, 은진 또한 진정한 자기발현을 위해 김용 씨와의 만남이 필요했습니다. 소매가 스쳐 바위가 닳아 없어지는 확률의 인연입니다. 세상만물은 그렇게 관계를 맺습니다. 가장 큰 존재와 가장 작은 존재가 사실 이어져 있고 서로 영향을 끼쳐서 그렇게 만들어지는 게 우주일 겁니다.

또다시 여담입니다만. 브릿G에 첫 공개했던 버전에서 조금 퇴고를 거쳤습니다. 처음에는 유머러스한 이야기를 목표로 했고, 당시에 농담처럼 일상에서 다들 가볍게 나누던 지구멸망과 탈출 소재를 반영했습니다. 백년 후 닥쳐온 종말을 앞두고 그래도 일상을 살며 유쾌하게 대비해 가는 풍경이었죠. 그러나 그 사이에 코비드19가 전세계에 도래했고 기후위기가 현실로 닥쳐왔습니다.

더 이상 종말은 농담이나 상상이 아니라 피부에 느껴지는 미래에 가깝습니다. 가볍게 지구를 뜨자는 말은 우스개로 남겨 두고 지구에 살고 있는 우리는 지금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야만 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은진이 지구의 현 상황을 과거와 꿈을 통해 자각하고, 미래를 향해 자신이 해야 할 일 하고 싶은 일을 찾는 모습을 조금이라도 반영하려 했습니다. 앞으로도 계속 풀어가야 할 숙제겠죠.

Q. 작품 집필 계획이 있으시거나 구상 중이신 게 있으시다면?

A. 『영혼의 물고기』, 『고래뼈 요람』 이렇게 두 편을 썼으니 한 편 더 써서 아예 물에 대한 3연작을 해 보고 싶다 생각 중입니다. 계획은 예전부터 있었고 한두 권 짜리 장편이 되도록 조금씩 구체화 중입니다. 그외에는 정통판타지로 돌아간 글이나 드라마틱한 이야기도 쓰고 싶다고, 늘 누워서 생각은 많습니다. 그러니 앞으로도 잘 부탁드립니다.

 

김유정(작가 페이지↗)

겨울날 서울에서 태어났다. 대학에서 심리학을 공부했고 지금은 느릿느릿 글을 쓴다. 『영혼의 물고기』, 『고래뼈 요람』을 썼다. 하얗고 털이 북실한 고양이와 같이 사는 중. 인스타그램 @psyam76 트위터 @psyam_

 

 

 

1934년 상하이. 모던보이로 위장하였지만 실상은 서양 남자의 기를 빨아먹고 사는 프랑스 조계지의 강시인 나는, 우연한 기회에 한 여자에게 이끌려 이상한 차를 마시고 함정에 빠진다. 여자는 최근 연달아 살해당한 여자들에 관해 조사 중이었고, 그 유력한 연쇄 살인마로 ‘나’를 점찍은 것이었는데…….

Q. 최근 가장 왕성하게 활동하시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출간하신 작품과 집필하신 작품 소개를 좀 해주실 수 있을까요.

A. 올해 책이 세 권 나왔는데요. 『야운하시곡』, 『한성부, 달 밝은 밤에』 그리고 『라오상하이의 식인자들』입니다. 앤솔로지 두 권에 장편 소설 한 권인데, 앤솔로지에 수록된 단편들은 사실 몇 년 전에 쓴 거라서 진짜 최근 활동(?)은 장편인 『한성부, 달 밝은 밤에』라고 볼 수 있겠네요. 한성부 형방 검험 산파가 한성부와 성저십리에서 일어난 살인사건을 파헤치는 미스터리 팩션 사극이랍니다. 첫 장편으로 해외 판권도 팔아보고, 부산국제영화제 E-IP 마켓에도 가보게 되어서(제가 직접 간 건 아니지만요) 큰 용기를 얻었습니다. 앞으로 정말 왕성하게 활동하려고요.

Q. 강시를 주인공으로 한 작품은 흔치 않은데요, 강시를 소재로 하시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요?

A. 이 작품은 어반 판타지 공모전에 참가하기 위해 여러 고민을 하다가 나오게 된 글인데요. 근대화가 강요된 동아시아에 “어반”이 무슨 의미일까, 어떤 판타지가 있을까를 고민하다가 강시를 떠올렸답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강시”는 사실 제국주의와 무관하지 않거든요. 홍콩 영화를 전공했던 선배가 80~90년대 홍콩 영화에 보이는 강시 의상을 주제로 논문을 쓴 적이 있는데요. 타자인 “강시”에게 청나라 관복을 입혔다는 게 포인트였거든요. 그리고 당시 홍콩은 영국의 식민지였죠. 그때 좀 큰 충격(?)을 받았답니다. 어렸을 때 홍콩 강시 영화 참 좋아했는데, 그런 관점으로 생각해 본 적이 한 번도 없었거든요. 원래 강시는 어떤 이미지였는지, 어떤 존재로 해석될 수 있을지, 그런 고민 끝에 「라오상하이의 식인자들」을 쓰게 되었습니다. 우리에게 익숙한 “강시”와는 좀 다른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어요.

Q. 작품 속 묘한 연대감이 흥미로운데요, 이러한 구도를 구상하시게 된 이유가 있을까요?

A. 「라오상하이의 식인자들」은 판타지 소설이기도 하지만 중국 현대문학을 이야기하는 메타적 소설이기도 합니다. 예전에 중국 현대문학(한국에서는 근대문학) 수업을 들을 때 “근대란 무엇인가?”, “도시가 아닌 농촌에게/남성이 아닌 여성에게/이성애자가 아닌 퀴어에게/지식인이 아닌 민중에게/도 근대였던가?”라는 질문을 받은 적이 있거든요. 그때 제가 했던 생각들이 소설 속에 많이 반영되었습니다. “나”와 “싼니앙즈”의 연대에 관해서는 브릿G에 올라온 오세아니아기린님의 리뷰 ‹싼니앙즈의 식탁에서›를 읽어보시면 좋을 것 같아요!

Q. 배경 묘사 등이 무척 신선합니다. 참고가 된 책이나 영상이 있으시다면 소개해 주실 수 있을까요?

A. 3년 전에 쓴 소설이라 기억이 조금 가물가물한데요. 책으로는 리어우판 작가의 『상하이 모던-새로운 중국 도시 문화의 만개, 1930-1945』를 많이 참고했고요. 1930년대 상하이 사진과 신문 기사를 열심히 찾아봤던 것 같아요. 1930년대 중국 영화도 많이 참고했고요(당시 중국 영화 산업의 중심지가 상하이였거든요). 그중에서도 우용캉 감독의 『신녀』가 가장 큰 영향을 준 영화입니다. “싼니앙즈” 캐릭터와 연결되는 영화라 소설에서도 몇 번 언급이 된답니다.

Q. 작품 집필 계획이 있으시거나 구상 중이신 게 있으시다면?

A. 왕성한(?) 활동을 위해 계획과 구상만큼은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 장편으로는 세 작품을 구상 중인데요. 미스터리 사극 한 작품에 사회파 미스터리 두 작품이에요. 사회파 미스터리 중 하나는 소재가 사법 통역이거든요. 다행히 제가 번역을 업으로 삼은 사람이라 사법 통역사로 직접 일하면서 현장 경험을 해보려고요. 조금 다른 소재이긴 하지만, 황금가지에서 나온 법정의 수화 통역사 시리즈(『데프 보이스』, 『용의 귀를 너에게』, 『통곡은 들리지 않는다』)도 사회적 소수자를 이야기하는 사회파 미스터리거든요. 참고하려고 열심히 읽고 있답니다. 제 책은 아직 나오지 않았으니 이 시리즈를 먼저 읽어보시는 건 어떨까요? 추천합니다! 그리고 언젠가 제 책이 나오면, 그때 제 책도…….

 

김이삭(작가 페이지↗)

평범한 시민이자 번역가, 그리고 소설가. 제1회 어반 판타지 공모전에서 「라오상하이의 식인자들」로 우수상을 수상하면서 본격적으로 글을 쓰기 시작했다. 장편소설 『한성부, 달 밝은 밤에』를 발표하였고, 프랑스에도 수출되었다. 『감겨진 눈 아래에』, 『괴이, 도시_월영시』, 『야운하시곡』 등의 앤솔러지에 참여했다.

 

 

아침마다 만원 지하철이 유난히 힘든 소진은 출근 도중에 두어 번은 내려서 쉬는 게 어느덧 익숙한 일과다. 오늘도 어김없이 지하철역 벤치에 앉아 호흡을 진정시키던 그녀는 아침에 집에서 본 ‘그것’의 존재를 떠올린다. 사람의 상반신에 물고기의 하반신을 한, 그러니까 말 그대로 동화 속에서나 보던 인어가 자신의 가습기 물통에서 발견되었던 것인데…….

Q. 인어에 대한 묘사가 무척 흥미롭습니다. 어떤 연유로 이런 아이디어가 떠오르셨을까요?

A. 원래는 ‘멸치가 인어가 된다’는 아이디어만 가지고 코믹힐링물을 쓰려고 했는데 쓰다 보니 어쩌다 이런 이야기가 나왔는지 모르겠습니다. 인어가 멸치같이 비리비리한 건…… 제 취향이…… 작고 마른 사람을 좋아해서…… 인어가 머리카락을 땋는 모양으로 소통을 한다는 건 물 속에서 소리 없이 어떻게 대화할 수 있을까를 고민하다가 나온 설정입니다.(돌고래처럼 초음파로 소통하는 건…… 지상에선 너무 시끄러울 것 같았습니다.)

인어의 머리카락이 매생이 같다는 표현은…… 매생이국을 먹을 때마다 머리카락 같다고 느꼈던 걸 써 먹었습니다. 인어가 해초를 먹는 건 인어는 뭘 먹을까 고민하다가 ‘인어를 비건으로 설정하면 쉽잖아’라는 아이디어가 떠올라서 그대로 갔습니다. 인어에게 성별이나 나이 등을 부여하지 않은 건 신비로움을 더하고 인어가 사람보다는 동물에 가깝다는 걸 나타내려고 했습니다. 주인공이 인간에게 상처받았으니 인어는 인간과 반대쪽에 있어야 했지요.

Q. 현대 직장인의 애환이 그대로 드러난 작품이었습니다. 혹시 주변 이야기나 경험담에서 우러나오신 걸까요?

A. 일하던 팀이 천천히 해체되었던 건 경험담입니다. 소설과 이유는 다르지만, 하던 서비스를 접고 앞날을 알 수 없는 상태에서 제살길을 찾아서 나가야 하는 기나긴 과정에서 스트레스를 심하게 받았어요. 그때 저 자신을 위해 쓴 글이 「어느 날, 잔멸치」였습니다. 위로가 간절하게 필요했어요. 새로 옮긴 팀도 정상은 아닌(?) 것도 슬프지만 경험담입니다. 주인공의 술주정도 제 버릇을 ‘조금’ 베꼈습니다. 경기도에서 서울로 전철을 타고 통근하는 것은 이전 직장다닐 때 일입니다. 키 작은 저는 늘 남의 등만 보며 출퇴근을 해야 했습니다……(스마트폰 볼 공간도 없었어요.)

Q. 주인공이 주변의 기혼자들과 차별되는 이야기는 「탐정 전일도 사건집 – 나의 비혼식」과 닿아있는 부분이 있더라고요. 비교적 자주 이야기되는 이유가 있을까요?

A. 그게…… 경험담입니다. (이쯤되니 제가 쓴 게 소설인지 수필인지 헷갈릴 지경입니다.) 팀원들이 저 빼고 하나둘씩 다 결혼하고 아이를 낳더라고요. 회식을 하면 다들 육아 얘기를 해서 저는 혼자 조용히 마셨습니다. 임산부 야근 금지, 육아휴직 기간 준수하는 좋은 직장이긴 한데…… 기혼자 한 명이 임신출산육아를 하면 다른 사람들이 해당 업무를 분담해야만 했습니다. 암묵적으로 ‘팀원이 임신출산육아할 때 도와주면 내가 임신출산육아할 때 다른 팀원이 도와 준다.’는 전통이 있었는데 저는 해당이 안 되었죠. 돌려받지 못할 축의금 내는 것도 모자라 상부상조도 안 되는 추가근무를 할 때면 ‘억울하면 너도 결혼해서 애 낳아라’가 돌아오는 답이라서 기혼자 사이의 비혼자 얘기를 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물론 문제는 워킹맘이 아니라 인력충원 안 해주는 회사와 업무 배분을 제대로 하지 않는 윗사람들에게 있지요.)

Q. 이 작품이 영상화된다면 배우로 캐스팅하고 싶은 사람이 있을까요?

A. 인어는 나이도 성별도 모호하니 CG로 구현할 수 밖에 없겠고요. ‘나’ 역은 제가 출연해서 슈퍼스타가 되어 직장 때려치우고 배우로 전업……하면 안 되겠고, 우울해 보이지만 호락호락하지는 않을 것 같은 전여빈 배우가 어울릴 듯합니다.

Q. 작품 집필 계획이 있으시거나 구상 중이신 게 있으시다면?

A. 아마 『전일도 사건집2』(가제)가 나올 것 같으니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전일도는 여전히 누구든 무엇이든 찾아드리고요, 탐정이자 한 명의 더 나은 ‘일하는 사람’이 되고자 탐정 사무소도 차리는 등 본격적으로 일을 벌이기 시작합니다.

일기 쓰듯이 꾸준히 장편 판타지를 쓰고 있습니다. 동양풍도 서양풍도 로판도 아닌 무국적이고요. 원래 쓰려고 했던 분량을 훨씬 뛰어 넘었는데 완결이 안 나서 그냥 폭탄 하나 터뜨려서 다 끝내고 엔딩을 볼까…… 고민하고 있습니다.

 

 

한켠(작가 페이지↗)

지은 책으로 『탐정 전일도 사건집』, 『까라!』가 있다. 『야운하시곡』에 「서왕」을, 『사건은 식후에 벌어진다』에 「과자로 지은 사람」을 수록하였다.

 

 

 

비염과 급체 등 잔병에 시달리지 않은 적이 없고 운동은 꿈도 꿀 수 없는 허약 체질의 ‘나’는 학기가 시작되자마자 응급실에 실려간 것을 계기로 시골 외할머니 댁에 요양을 가게 된다. 낡은 한옥에서 걱정 많은 할머니와 단둘이 지내다 잠시 바깥으로 나온 ‘나’는 한복 차림에 허리에는 호리병을 찬 기이한 소녀와 만나게 되는데…….

Q. 이야기를 보면서 문득 영화 「집으로」가 떠올랐습니다. 참고하시거나 영감이 된 작품이나 영상이 있을까요? 혹 개인 경험담에서 나온 것일지요.

A. 각종 신화와 전설, 기담을 좋아합니다. 자료를 찾다가 우연히 남극노인이라는 수명을 관장하는 신이 있다는 걸 알게 됐어요. 남극성 또는 노인성으로 불리는 ‘별’과 관련된 신이어서 더욱 매력을 느꼈고, 자연스럽게 허약하고 외로운 소년이 인적 드문 시골로 요양을 떠나 신을 만나는 이야기를 쓰게 됐습니다. 개인적으로 튼튼한 편이지만, 어릴 때 동생과 종종 할머니댁에서 지냈던 경험을 아주 작게 조각내어 담았어요.

Q. 누나의 묘사가 무척 흥미로웠습니다. 혹 모티브가 된 인물이 있을런지요.

A. 남극노인으로 전해지는 외형은 대체로 긴 수염과 작은 키, 이마가 길쭉한 노인인데요. 신의 모습이 나이를 가늠하기 어려운 신비로운 소녀여도 좋겠다는 마음을 담아 썼습니다. 모티브로 정해둔 인물은 따로 없네요.

Q. 할머니와 누나의 관계는 무엇이었을까요. 주인공과 똑같은 인연이었을까요? 할머니와의 이야기가 궁금합니다.

A. 사실 할머니와 ‘누나’의 이야기도 느슨한 얼개로 짜둔 게 있지만 자료조사가 부족해 파일을 닫아둔 상태입니다. 6.25 전쟁 후 남극노인을 만나게 된 젊은 시절 할머니의 이야기인데, 한참 더 공부해야 쓸 수 있을 것 같아요.

Q. 주인공은 이후에 다시 누나를 만날 기회가 생겼을까요? 할머니처럼.

A. 생전에 한 번쯤 스치듯이 만날 수도 있고 어쩌면 영영 만나지 못한 채 어른이 될 수도 있겠는데, 후일담이 여러 갈래로 나뉠 수 있으니 이만 줄일게요!

Q. 작품 집필 계획이 있으시거나 구상 중이신 게 있으시다면?

A. 악기를 만드는 장인과 그를 지켜보는 이의 성장소설을 준비 중이에요. 쓰다가 덮어둔 파일들 역시 천천히 열어보고 있습니다. 언젠가 또 뵙겠습니다.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

 

이필원(작가 페이지↗)

고양이 집사. 지은 책으로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나를 좋아하는』, 『푸른 머리카락』(공저) 등이 있다.

 

 

 

끊임없이 주절대지 않으면 안 되는 체질 때문에 아르바이트에서 잘린 ‘나’는 청계천에 위치한 한 헌책방에서 일자리를 구한다. 폐허에 가까운 책방에서 찾아볼 수 있는 사람이라곤 장사에는 관심 없어 보이는 주인과 가끔씩 찾아오는 괴짜 손님, 그리고 잠든 채로 마치 사물처럼 책방에 가만히 있는 기이한 여성이었다. 그리고 그 여성은 자신이 깨어나면 세상이 멸망한다고 말하는데…….

Q. 책방을 소재로 집필된 이야기가 흥미로운데요, 혹 경험담이나 모티브가 된 이야기가 있을까요?

A. 책방이라는 소재 자체는 런던 헌책방들을 학생 시절 자주 방문했던 경험에서 비롯되었습니다. 주기적으로 새롭게 헌책들이 들어오는 날엔 가게 앞에서 다양한 사람들이 여행가방 등을 들고서 가게가 열리기를 기다리기도 합니다. 거기서 낡은 헌책방의 이미지가 비롯되었고, 평소 『천일야화』 등 이야기에 대한 이야기들에 대한 관심이 더해져서 이야기하는 이야기에 대한 책방 이야기가 시작되었습니다. 세상이 곧 꿈이라는 모티브는 인도신화나 앨리스 등에서도 널리 쓰이는 모티브고 역시 좋아하던 소재이기에 더해지며 이야기를 하는 자와 이야기를 듣는 자 등에 대한 개인적 생각들까지, 다양한 생각들이 합쳐지며 최종적으로 완성이 되었습니다.

Q. 마치 다른 차원의 세계 같은 곳인데, 방문하는 사람들도 특이합니다. 전집주의자라는 작가님의 프로필이 투영된 인물도 있는 듯한데……

A. 다른 차원의 세계 같은 곳이라, 어느 정도 의도적으로 옛 고딕 소설과 같은 환상소설 풍으로, 동시에 뻔뻔스럽게 평범한 일상의 부분인 것처럼 여러 기괴한 인간군상들을 보여주려는 의도였습니다. 독서가들은 아무래도 특이할 수밖에 없기에 더더욱 그렇게 그려진 것 같습니다.

전집주의자는 반쯤 자전적인 인물이기도 하지만, 독서가들의 비틀린(?) 욕망의 표현이기도 합니다. 아마 한 작가를 너무나도 좋아하는 독서가라면 한 번쯤은 품을만한 생각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물론 어디까지나 합법적인 선에서지만요.

Q. 그 손님이 납치하고 싶었던 작가는 실제 누구였을까요?

A. 이 글을 쓸 때엔 특별히 생각해둔 작가는 없었습니다. 굳이 따지자면, 애초에 세상에 더는 존재하지 않는 죽은 작가들일 겁니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들은 더 이상 글을 쓰지 않아 전집은 완성되었지만, 동시에 그들이 더 쓸 수 있었을 글을 독자들은 결코 읽을 수 없습니다. 그렇기에 어떤 수단을 써서라도 그런 글을 읽을 수 있다면, 분명 납치까지 했을 겁니다.

Q. 잠들어 있는 여왕의 모습이 무척 궁금합니다. 떠올릴 만한 매체나 그림 등이 있을까요?

A. 특별히 염두에 둔 이미지는 없으나 질문을 받자마자 떠오르는 이미지는 워터하우스가 그린 ‘오필리어’입니다. 이야기 자체가 19세기풍 환상소설을 어느 정도 마음속으로 지향했기에 라파엘 전파 화가들이 묘사하는 그림들이 적절한 예시가 될 수 있을 듯합니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개인적인 이미지이므로 정답은 읽으시는 분의 해석에 맡기고자 합니다.

Q. 작품 집필 계획이 있으시거나 구상 중이신 게 있으시다면?

A. 해당 작품과 관련되어서는, 장편 형식으로 다시 써볼 계획이 있습니다. 실제로 어느 정도 초고를 쓰긴 했으나 어딘가 부족한 점을 느껴서 중단된 상태입니다. 그래서 조금 더 생각하고, 또 책을 더 읽은 후엔 언젠가는 장편으로 쓸 예정입니다. 그때엔 결말이나 이야기도 아마 조금 달라질 것이라 예상됩니다. 단편과 달리, 이야기를 하는 이야기에 대한 모티브가 조금 더 중점적으로 묘사될 예정입니다. 이야기를 하는 자나 이야기를 듣는 자, 그리고 이야기 자체에 대한 생각도 아마 곁들여질 것 같습니다.

 

 

전견(작가 페이지↗)

서울에서 태어났다. 영국에서 철학을 전공하였다. 전집주의자다.

 

 

 

옛 친구의 초대로 클락스빌이라는 도시를 방문한 나는, 그곳에서 시장 선거를 준비하며 모종의 연구를 하던 친구 아서를 만난다. 그는 유령 열차라는 의문의 실험을 통해 도시 각 가정에 물건을 가져다놓을 수 있다고 주장하는데, 놀랍게도 그의 주장은 현실이 되고 이내 알 수 없는 일이 도시에서 벌어진다.

Q. 클락스빌이라는 도시의 모습은 무척 흥미로운데요, 혹 참고하신 영상이나 그림, 아니면 작품이 있으실런지요.

A. 유령 열차는 제가 꿨던 꿈에서 비롯된 소설입니다. 작품 마지막 장면을 눈앞에서 보다가 깨어나니 새벽에 조용히 비만 내리고 있었습니다. 글 전반의 우중충한 분위기는 그때의 감상에 따른 것입니다. 여기에 제가 쓰고 싶었던 고딕의 분위기를 살리고자 했는데, 전통이나 고증과는 무관한, 말 그대로 ‘내가 상상하는 고딕 양식’의 총집합이 됐습니다. 상상의 대부분은 어릴 적 보았던 팀 버튼의 영화에서 왔네요. 특히 헨리 셀릭과 함께 만든, ‘크리스마스 악몽’의 인트로(할로윈 송)가 많이 반영되어 있습니다. 클락스빌의 시장인 아서의 모습도, 할로윈 타운의 시장이 모델이었습니다.

Q. 어반 판타지 문학 공모전 당선작이었습니다. 글쓸 때 특별히 신경을 쓰신 부분이 있을까요?

A. 공모전을 의식하고 쓴 점은 없고, 다만 완성도 있는 작품을 만들고자 했습니다. 유령 열차가 제 첫 오리지널 소설이나 마찬가지라서요. 그동안은 팬픽이나 패러디 소설 정도나 썼던 것 같은데, ‘이제 내 이름을 걸고 남한테 보여줄 만한 글을 써보자.’ 라는 야심으로 출발한 글이지요. 그래서 거의 모든 문장에 힘을 너무 줬다는 지적도 받았습니다. 확실히, 교정지를 읽어 보는데 작가인 제가 봐도 지치더군요. 시놉시스만으로 분량의 70%가 설명되는 소설인데, 뭘 이렇게 열심히 썼을까 생각도 했습니다. 그렇지만 쓰고 고치면서 몇 번이고 읽어보던 당시에는 피곤하다는 느낌이 전혀 없었거든요. 유령 열차는 그때의 열정을 아직도 생생히 기억나게 해주는 즐거운 작품입니다.

Q. 주인공이 늘상 불안한 어조로 서술하는 부분이 극의 전체 긴장감을 잡아주는 역할을 하는 듯합니다. 주인공의 모티브가 된 인물이 있는지요.

A. 아서의 모티브가 분명한 반면에 주인공의 모티브는 따로 없습니다. 제가 원래 나보코프처럼 ‘믿을 수 없는 화자’를 내세운 글을 좋아하기 때문에, 유령 열차에도 이런 요소가 조금 들어갔습니다. 주인공의 불안함은 오렌시아에 대한 집착에서 오는데요. 주정뱅이가 된 주인공은 끝에 오렌시아의 아이가 혹시 자기 아이는 아닌지 망상하는 지경에 이르게 된 것입니다(물론 전혀 아니지만요). 그렇지만 본인이 화자인 소설이기 때문에, 그런 수치스러운 이야기는 전혀 드러나지 않죠. 어차피 설정상으로만 존재하는 내용이기 때문에 이번 인터뷰를 기회로 이렇게 밝혀 보네요. 하여튼 이래저래 공이 많이 들어간 소설이긴 합니다.

Q. 결국 이 무시무시한 이야기의 종착역은 어디일까요? 전 우주적 공포로 확대되는 걸까요?

A. 우주적 공포라고 하니 기억나는데, 유령 열차의 소재와 구성은 러브크래프트가 쓴 「저 너머에서」라는 단편과 거의 흡사합니다. 작품을 쓸 당시에는 러브크래프트 소설은 한 편도 읽어본 적 없는데……. 이러나 저러나 역시 장르소설의 전형적인 구성이라는 걸까요. 아무튼 저로서는 이 이야기가 안전하게 종료됐으며, 다른 사건으로 확산되지 않을 거라는 결말을 맺었습니다. 이어질 사건이랄 게 있다면, 아기의 생사 여부쯤 될까요. 그 점은 확실히 ‘종착역’이라고 표현할 수 있겠군요. 먼 곳에서 돌아왔지만, 더 나아갈 선로는 없을 테니까요.

Q. 작품 집필 계획이 있으시거나 구상 중이신 게 있으시다면?

A. 7월쯤인가부터 선녀와 동자가 나오는 단편을 하나 쓰고 있는데요. 요즘은 직장으로 바쁘고 게을러져서 진도가 잘 안 나가고 있습니다. 70% 정도 썼을까요. 아마 올해 안엔 완성되겠죠. 조만간 브릿G에서 다시 뵙겠습니다.

 

 

박부용(작가 페이지↗)

주로 환상 소설을 쓴다. 온라인 소설 플랫폼 브릿G에서 「유령열차」로 제1회 어반 판타지 문학상을 수상했다.

 

 

 

건물 청소미화원 김 씨는 ‘장갑들’이라는 비밀조직의 우두머리인 ‘어머님’으로부터 큰 힘을 물려받는다. 어머님을 대신해 자신이 장갑들을 모아 사람을 부당하게 종속시키는 ‘구두들’에 대항해야 한다는 것. 커다란 임무 앞에 김 씨는 당황하게 되고, 그 사이 구두들의 급습으로 인해 장갑들은 위기에 처하는데…….

Q. 환경미화원을 주인공으로 등장시킨 소재가 독특합니다. 이런 구상을 하시게 된 계기가 있을까요?

A. 남자 화장실을 들어가면 여성미화원 분들께서 청소를 하고 계실 때가 있습니다. 미화원 분들께서는 청소를 열심히 하시고, 들어온 사람들은 볼일을 보고 나가는 모습을 보면서 같은 공간에 있지만 왠지 서로 다른 차원에 존재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에 착안하여 여성미화원이 경력이 쌓이면 자신의 존재가 지워지는 능력을 갖게 되는 소재로 글을 써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어 이런 내용을 구상하게 되었습니다.

Q. 이전 작품 『파수꾼』에서도 비슷하게 다른 차원으로 가는 내용이 나오는데, 혹시 이전 작품과 연결성이 있을까요?

A. 맞습니다. 파수꾼들은 꿈속으로 들어가 이면세계 속에서 악몽들을 씻김으로서 사람들의 영혼을 구원하는데, 장갑들은 빨래터를 통해 이면세계로 들어가 세상에 흩어진 악의들을 씻기는 역할을 합니다. 파수꾼들은 개별적인 악몽을, 장갑들은 더 넓은 범위의 사회적 악몽을 감당하는 이들로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사실 파수꾼들 마지막에 나오는 노란 스웨터를 입은 할머니와 장갑들 속에 등장하는 성북동 임 할매는 같은 인물로 설정했습니다.

Q. 주인공이나 등장인물의 모티브가 된 작품이나 영상이 있을까요?

A. 순자 씨 이미지는 봉준호 감독의 마더에 나오는 김혜자 선생님의 이미지를 떠올렸습니다. 영화 속 내용 중에 김혜자 선생님이 지문을 남기지 않으려고 일회용 비닐 장갑을 손에 끼는 장면이 있는데 그 부분이 굉장히 인상적이었습니다. 순자 씨의 손에는 비닐 장갑 대신 빨간 고무장갑을 끼우고서 세상의 악의와 맞서는 숨겨진 영웅의 모습으로 형상화 하고 싶었습니다.

Q. 충청도 사투리를 사용하는 주인공이 나옵니다. 특별한 이유가 있을까요?

A. 처음에는 그냥 서울말로 했는데 느낌이 잘 살지 않아서 충청도 말을 넣어 봤습니다. 아버지가 충남 예산 출신이라서 벌초를 할 때면 항상 예산에 있는 선산으로 가는데 그곳에서 친지 분들을 보게 되면 충청도 사투리를 많이 듣게 됩니다. 여유로운 듯 하면서도 어딘가 뚱한 듯한 예산 사투리가 마음 속에 한이 있으면서도 태연한 태도를 고수하는 순자 씨와 어울린다 생각해서 붙여 봤습니다.

Q. 작품 집필 계획이 있으시거나 구상 중이신 게 있으시다면?

A. 전통 공포 장르의 작품을 써보고 싶습니다. 스릴러 장르의 작품들은 꽤 많이 출간이 되는 편인데 아무래도 장편 공포는 출간이 쉽지 않다보니 국내 작품 수가 많지 않은 것이 아쉽습니다. 현재는 ‘결코 건드려서는 안 되는 금기’를 다룬 전통 공포 장편 소설을 구상 중입니다. 기회가 된다면 꼭 출간해서 국내 공포 장르의 책이 하나 더 추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다른 계획은 짧은 괴담을 모아서 한국적 괴담집을 만들어보는 것입니다. 개인적으로는 괴담과 장편 공포 소설이 각기 다른 매력을 갖추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한국적 소재와 느낌이 담긴 괴담집을 만들어 보고 싶습니다.

 

김선민(작가 페이지↗)

장편소설 『파수꾼들』을 출간하며 장르문학 작가로 데뷔했다. 괴담, 호러 레이블 괴이학회에서 도시괴담 앤솔러지인 『괴이, 서울』, 『괴이, 도시』 등을 비롯해 다양한 작품집을 기획·제작했다.

 

 

우연히 참여했던 설문조사를 통해, 자신이 언제나 다수의 선택만을 해왔다는 걸 알게 된 남자는 대중적인 기호를 가졌다는 이유만으로 기업의 제품을 가장 다수가 좋아하는 방향으로 선택하는 비밀 알바를 맡게 된다. 쏠쏠한 가욋일 덕분에 평온한 삶을 누려온 그였지만, 늘 다수가 언제나 정답일 수 없기에 벌어진 하나의 사건이 결국 그의 삶을 뒤흔들고 만다.

Q. 언제나 다수의 선택을 하는 인물은 어떻게 구상하게 되었을까요?

A. 2010년쯤에 여러 사람을 대표해 무슨 결정을 내릴 일이 있었습니다. 10년이 지나서 질문을 받을 줄 알았으면 미리 메모라도 해둘 걸 그랬네요. 별로 대수롭지 않은 일이었을 거예요. 회식 메뉴를 고른다든가 하는.
저로 말하면 뭇 취향들을 두루 취합해서 결정하는 일에 아주 무척 대단히 취약한 편입니다. 어떤 결정이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일지 골몰하느라 제 자신이 피폐해지고야 마는 것입니다. 저부터가 그 지경이니 전원을 만족시킬 ‘신의 한 수’ 같은 것은 애초에 기대도 안 했습니다. 90%, 아니 80%만 돼도 좋겠어요. 그래도 저는 분수에 맞게 목표를 소박하게 잡았습니다. 만족한 인원이 절반만 넘어도 충분하다고요. 이는 동시에 나머지 절반의 불만족에 대해서는 수용하지 않겠다는 뜻이기도 했습니다.

문득 깨달았습니다.
‘헉 이건… 다수결이잖아.’
얼추 그렇습니다. 본말이 뒤죽박죽인 다수결이에요. 저라는 개인이 내린 결정이 과연 다수가 내리는 결정과 합치할지에 대한 시험이었습니다.
‘헉 이건… 단체 OX 서바이벌 퀴즈잖아.’
얼추 그렇습니다. 정답이 정해져 있지 않은 OX 퀴즈예요. 더 많은 선택을 받은 쪽이 정답으로 인정되는 서바이벌 퀴즈였습니다.
그렇다면 이러한 퀴즈에 유리한 사람은 누구일까요? 그때 비로소 언제나 다수가 고른 선택지에 포함돼 있는 인물이 떠오른 것입니다. 회식 메뉴 담당으로 제격인, 궁극의 보편적 인물. 그런 인물이 존재하면 어떤 사람일까요?
몽상가들이 으레 그렇듯 저는 당면한 과제는 뒷전으로 미루고 그 인물로 무슨 이야기를 쓸 수 있을까를 생각해 보았습니다. 주말 동안 모색한 끝에 내린 결론은… 이걸로는 아무 얘기도 안 되겠다, 하는 것이었어요.

그러다 2014년에 생각이 바뀌었습니다. 그 인물이 제 속에서 자꾸만 꿈틀거렸습니다.
구체적으로 언제였냐면,
‘가만히 있으라는 방송이 나오면 보통은 가만히 있지 않아?’
또 언제였냐면,
‘정말로 이제 지겹다고 한다고? 그만 좀 했으면 한다고?’
그렇게 「다수파」를 쓰게 된 것입니다.

Q. 90년대부터 현재까지 약 20여 년을 관통하는 이야기인데, 집필하시면서 특별히 신경쓰신 부분이 있었는지요.

A. 참사를 어느 정도로 직접적・구체적으로 다룰지에 대해 망설였습니다.
소설이 다루고자 한 것은 사고 자체보다 그 이후의 양상이었으므로, 그날 있었던 일을 최대한 간결하고 꾸밈없이 서술했어요. (그보다는 거의 생략했습니다.)
사실 이국의 독자나 미래의 독자들에게는 저 부분이 어떻게 읽힐지 가늠이 안 됩니다. 생략한 내용이 많아서 전개가 느닷없다고 생각할 것 같아요.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아예 모를 수도 있겠고요.
하지만 우리 기억엔 또렷이 남아 있지요. 그래서 두 줄로 충분하다고 판단했습니다.

Q. 작품이 담고 있는 이야기가 무겁기 때문에 쉽지 않은 글쓰기였으리라 생각됩니다. 집필하면서 어려웠던 부분이 있을까요.

A. 결말을 어떻게 낼지를 두고 가장 오래 고민했습니다. 어떤 종류든 희망을 암시하며 이야기를 맺는 것은 월권이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렇다고 위악을 부리고 싶지도 않았어요.
결국 슬그머니 놔버리는 것이 당시로선 최선이었습니다. 그리고 지금에 이르러서도 더 나은 결말이 떠오르지 않아요. 조심스럽지만, 저는 근래 들어 부쩍 우리의 상식이 급변하고 있다고 느낍니다. 비정상으로 여겨지던 것들이 어느새 정상이 돼버린 세태라고요.

Q. 중간에 부모님이 만나게 되는 과정은 무척 흥미로운데, 특별히 주변에서 모티브로 한 에피소드나 인물이 있을까요?

A. 흥미로우셨다니 약간 황송하면서도 민망한 것이, 저것은 제가 ‘뭉개기’라고 부르는 부분이기 때문입니다.
아는 분들은 아시겠지만 (또 공감하는 분들은 공감하시겠지만) 저는 소설을 주먹구구식으로 씁니다. 주먹구구식 글쓰기란 체계적인 준비 과정을 거치는 대신 약간의 재료만 가지고 곧장 작업에 착수하는 것을 뜻합니다.
이러한 글쓰기는 저 스스로가 장차 무슨 일이 벌어질지 궁금해 이를 원동력으로 삼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그러다 망하기 십상이라는 치명적인 단점도 있고요. 스릴이 넘칩니다.

그렇다면 ‘뭉개기’는 무엇일까요? 예정된 이벤트가 벌어지기 전에 여기서부터 몇 매 정도 대충 뭉개자 할 때의 그 ‘뭉개기’로, 제가 만든 용어입니다. 「다수파」를 예로 들면 예정된 이벤트란 아빠의 가욋일이 종료되는 것인데 당장 그 얘기를 해버리면 이야기의 리듬이 너무 급작스러워지는 탓에 살짝 다른 이야기로 뭉개면서 시간을 버는 것입니다.
이때 ‘뭉개기’로 정한 것이 딸인 ‘나라’에 대한 이야기였습니다. 그런데 그 이야기를 하자니 아빠가 언제 결혼을 했는지 언급한 적이 없으니 다시 ‘뭉개기’의 ‘뭉개기’가 필요해졌고, 그래서 삽입한 것이 바로 약국 에피소드입니다.

중요한 것은 아빠가 엄마를 어떻게 만났는가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기 위해 결정한 것은 오직 분량뿐이었고요. 나머지는 그냥…… 뭉갰지요. 즉 약국이 아니라 만화방이나 지하철이었어도 무관했을 이야기입니다. 적당히 쓰다 보니 이야기가 술술 풀리길래 그대로 진행한 거예요.
휴, 이렇다 할 모티브조차 없어서 드릴 말씀이 없다는 설명을 과하게 길게 해버렸습니다.

Q. 작품 집필 계획이 있으시거나 구상 중이신 게 있으시다면?

A. 탐정소설의 도입부를 써놓고 궁리 중입니다. 아마 연작의 형태가 되지 않을까 막연히 기대하고 있습니다. 「오늘의 탐정」과 분위기가 비슷하면서도 다를 것 같아요.

하지만 상술했다시피 망하기 십상이라는 사실…….

하지만 이번엔 예감이 좋은걸요! (예감은 늘 좋습니다.)

 

이나경(작가 페이지↗)

단편 「다수파」가 2016년 독자우수단편 최우수작으로 선정되며 거울 필진에 합류했다. 앤솔러지 『꼬리가 없는 하얀 요호 설화』, 『공공연한 고양이』 등에 참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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