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서 우리 연구실에 새로운 분이 오시게 됐는데요.”
이경안 교수님이 곤란한 표정으로 웃으면서 말을 꺼낼 때부터 알아차려야 했다.
“다 들었죠? 아직 못 들었다고? 아, 이걸 어디서부터 설명해야 하나… 여튼 일단 들어오셔서 인사부터 하세요.”
그 순간까지도 은진은 아무런 의심도 해 보지 못했다. 그 문이 열리며 은진의 고생문도 함께 열렸다는 것을. 문 쪽으로 한꺼번에 쏠린 원생들의 시선은 이내 경악으로 바뀌었다. 방심하고 있던 은진도 눈을 크게 떴다.
교수님의 부름에 머뭇머뭇하더니 거대한 사자탈이 불쑥 나타났던 것이다. 사자탈? 우리의 문화를 찾아서 같은 TV 프로그램에 가끔 나오는 사자탈춤의 그 사자탈? 눈이 부리부리하고 익살맞은 표정을 한 붉고 거대한 사자탈이, 그리고 그걸 뒤집어쓴 몸뚱어리가 더듬더듬 들어오다가 그만 꽝, 하고 문틀 윗부분에 부딪치고 말았다.
사자탈의 임자는 그 충격에 주춤주춤 뒤로 물러나더니 정신이 돌아온 듯 탈을 두 손으로 꽉 잡았다. 그리고 눈이 휘둥그레진 동료 원생들을 향해 타이밍 늦은 자기소개를 했다.
“안녕하십니까. 김용입니다.”
그리고 쑥스럽게 한마디를 덧붙였다.
“용입니다.”
사연인즉 이랬다. 어느날 총장님께 불려간 이교수님은 얼토당토 않은 이야기를 들었다.
“올해도 4월에 우리 학교 창립제를 했죠?”
“네, 103주년이라 했습니다.”
“그 백년 전에 등록한 원생이 아직도 학적부에 올라있다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심지어 최근 다시 등원을 원한다면?
에어컨 바람보다 더 차갑고 더 썰렁한 기운이 쓸고 지나갔다. 총장은 그대로 굳은 이교수의 얼굴을 보며 이마를 짚었다. 그러니까 이 학교 초대총장이 예외입교로 받아들인 인사가 있는데, 이분이 좀 특별한 양반이시다. 시간감각이 일반적인 사람들과 달라서 그게 좀… 아, 시간감각이 달라서 백년 후에 등교를 하신답니까? 두번만 달랐다면 오백살까지 사시겠습니다.
“용입니다.”
그 부분부터 이교수는 상식과 이해를 포기하기로 했다. 총장님, 조크가 고차원이시로군요. 그런데 사실이 그러하니 이 건에서는 총장도 피해자인 셈이었다.
그 분, 그 용은 무슨 사연인지 개교 초반부터 대학원 과정에 적을 두고는 종종 수업에 참여한 기록이 남아있다고 한다. 테이블 위에 쌓여있는, 손 닿으면 바스라질 것 같은 묵은 종이다발이 신경쓰였는데 그 기록인지 뭔가 보다. 그런데 이 양반이 말이지, 역시 인간하고는 살아가는 호흡 자체가 달라서 말입니다. 한동안 나오다가 사라지고, 한참 안 나타나다가 불쑥 돌아오는데 자기가 그렇게 오래 없었다는 것도 잘 모른다는 모양입디다. 돌아오면 자꾸 뭔가가 바뀌고 바뀌고 하니 본인… 아니 본룡이라 해야 하나, 여튼 스스로도 재미가 없었던 모양인지 한참을 떠나있다 나타나서, 이렇게 저도 놀라고 이교수님도 놀라고.
“그래서 교수님, 본론을 말씀해 주세요.”
불길한 예감을 느끼며 은진이 자꾸 늘어지는 이교수님의 설명을 잘랐다.
“지금 저한테 저분을 떠맡기시려는 거죠?”
“아니, 무슨 그런 섭섭한 소릴 해. 난 그냥 이번 학기 은진이가 우리 연구실 방장이니까 새로 오신 분 좀 잘 가르쳐 드리고, 소외감 안 들게끔….”
말을 하다말고 이교수는 주섬주섬 상의를 챙기더니 상큼하게 인사를 날리며 재빠른 뒷걸음질로 사라졌다.
“그럼 뒤를 잘 부탁해, 은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