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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의 소일장에서 브루노 야시엔스키의 <나는 파리를 불태운다>를 소개했어요. 흑사병이 창궐한 파리에서 부조리와 불평등을 심화시키던 체제가 붕괴하는 과정을 그린 소설이에요. 도시를 벗어날 수 없는 상황에서 죽음을 목전에 둔 인물들이 어떤 행동을 하는지, 사회 구석구석을 살펴보는 글이었어요. 이번에도 브릿G에서 만난 단편들을 함께 소개할까 합니다.
첫 번째는 창궁 작가님의 <달리 방법이 없었다>입니다. 은하연방의 항공우주센터에서 일하는 영우는 어느날 중요한 선택을 내리게 됩니다. 먼 훗날 은하연방을 멸망시킬 것으로 보이는 진공 거품을 조사하러 가느냐 하는 문제입니다. 영우는 제목처럼 ‘달리 방법이 없었다’고 말하지만, 동일한 대사로 인해 영우와 다른 인물들은 저마다의 선택을 내려야 해요. 죽을 게 뻔해 보이는 위험 속으로 뛰어들 것인가? 영우의 선택과 그 결과를 지켜보는 게 재밌는 글이에요.
두 번째는 이스트라이즈 작가님의 <멸망 앞에서 우리는>입니다. 암석 소행성이 한강공원에 떨어진다고 합니다. 예정된 끝 앞에서 우리는 어떤 행동을 할까요? 좋아하는 일을 하거나 사랑하는 사람들 곁에 머무를까요,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도망칠까요. 인생의 마지막 순간에 가고 싶은 장소가 있을까요. 다가오는 죽음을 정면으로 바라보려는 인물의 선택이 눈에 띄는 글이에요.
세 번째는 서울쥐 작가님의 <혼자 남은 도시>입니다. 전염병으로 통제된 도시에 혼자 남은 인물이 있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모두 도시를 떠났는데 말이지요. <나는 파리를 불태운다>에서도 파리 외곽으로 방역경계선이 생기고, 누군가는 도시에 머무르지만 누군가는 도시를 몰래 떠나려고 해요. 전염병이 도시를 무너뜨린 뒤에도 모든 것이 끝나지는 않습니다. 여전히 살아남은 사람들이 있고 그들은 새로운 도시를 만들어요. <혼자 남은 도시>는 전염병이 창궐한 도시에서 무력감을 느끼는 인물, 그리고 절망적인 순간에도 사라지지 않은 희망이 돋보이는 글이에요.
마지막은 박부용 v2 작가님의 <염라 2080도53-자80510 판결 [공용건조물 폭파 등]>입니다. 앞서 소개한 세 편의 글과 달리, 여기서는 인류가 위기에 직면하거나 전염병이 퍼지는 상황은 아니에요. 하지만 우리가 지금 살고 있는 사회와 전혀 다른 형태의 사회를 그리고 있다는 점에서 <나는 파리를 불태운다> 속 파리를 떠올리게 했어요. 사회의 여러 기반시설이 공공 질서를 강화한다는 점, 체제에 저항하는 인물들이 있다는 점에서도 그렇고요. 처음에는 형식이 다소 딱딱하게 느껴질 수 있지만 분명 멋진 경험이 될 글이에요.
도시와 전염병, 혁명을 다룬 글 중에 특별히 좋아하는 작품이 있으신가요? 글이 아니라 다른 매체여도 좋으니, 좋아하는 이야기가 있다면 들려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