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의 눈으로만 보는 현실 의뢰 브릿G추천

대상작품: 아이스크림은 빨간색으로 (작가: 유권조, 작품정보)
리뷰어: stelo, 17년 3월, 조회 211

 추리 소설을 쓰기 시작한 Stelo입니다. 리뷰를 쉬려고 했는데, 의뢰가 들어왔습니다. 알아 보니 [성모 좀비 요양원]을 쓰신 작가님이셨습니다. 장르는 로맨스. 제가 잘 모르는 장르죠. 거절할까 고민하다가 의뢰를 받았습니다.

 

 그런데 이미 다른분들이 리뷰를 4개나 올렸습니다. 저는 누구나 할 수 있는 뻔한 이야기는 쓸 필요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각자의 시선으로, 남들이 보지 못한 부분을 찾아내야한다.”고 믿습니다. 고민이죠. 4개의 리뷰와 겹치지 않아야하니까요.

 하지만 이미 의뢰는 받아버렸습니다. 그래서 일단 써보려 합니다. 제 방식으로요.

 저는 매번 그 소설을 읽고 생각한 이미지를 적어봅니다. 이 리뷰 제목이 뭐죠?

남자의 / 눈으로 보는 / 현실

 그 뒤에는 이미지를 분석해나갑니다. 가설이 맞아떨어지는지 작품을 보면서 검증해보죠. 구체적으로 근거를 달아가면서요. 이번에도 그렇게 할 생각입니다.

 

남자의

  남자와 여자는 어떤 관계인가요? 서로 사랑합니다. 이 작품은 로맨스입니다. 로맨스를 주로 읽는 사람들은 여자죠. 저는 남자지만 순정 만화를 여럿 읽습니다. 좋아하기도 하고요. 추리 소설 독자도 여자가 많다고 하니 여성적 취향을 가졌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저는 몇몇 로맨스물을 보다가 불만이 생겼습니다. 남자가 마음에 안들어요. 분명 이건 여성들이 꿈꾸는 판타지이고, 여성이 주인공이어야 하는데… 결국 주도적인 역할은 남자들이 하더군요. 강한 여성으로 설정이 되어 있어도, 결국 약한 모습을 보이고요. 재벌2세도 남자, 숨겨진 왕자도 남자에요. 여자는 보통 가난하지만 씩씩하게 살아가는 민폐 녀로 납치 당하고 성폭행 미수를 당하는 역할만을 주더군요.

 이 작품은 여성들을 위한 로맨스는 아닌 것 같습니다. 주인공은 남자고, 남자의 감정을 이야기하니까요. 남자 독자들을 겨냥했다고 볼 수는 없더라도, 남자들이 더 이입하기 쉬울 것 같습니다.

 ‘로맨스’라는 장르를 떠나서 보면, 남자들도 사랑 이야기를 좋아합니다. 죽은 아내/여자친구/ 딸 같은 소재들을 생각해보세요. 히로인, 특히 고통 받는 히로인은 일본 만화에 단골 소재가 되었죠. 남자 주인공들은 다들 상냥하거나 정의롭습니다. 여자를 구원하거나, 여자를 구하지 못했다는 자책감이나 고통에 시달리죠.

 우리 주인공을 떠올려보세요. 역시 죄책감을 느끼고 있지 않나요? 말 장난을 하고, 아이스크림을 사주고, 전기 장판을 사주고 싶어하고, 응급처치를 해주고, 보너스로 고기도 사주려 하죠. 왜 죄책감을 느낄까요? 저에게는 낙태라는 단어가 떠오릅니다.

 제가 어떤 말을 하려는지 짐작하고 계실지도 모르겠네요. 다시 작품으로 돌아가볼까요?

 

남자의 눈으로 보는

 작가는 의식적으로, 또는 무의식적으로 어떤 효과를 노리고 시점을 선택합니다. 시점을 보면 그 작품이 어떤지 알 수 있죠.

 이 작품은 1인칭 시점입니다. 화자는 남자입니다. 결혼을 했는지, 애인인지는 모르지만 여자와 같이 살고 있죠. 남자는 일을 하고 밥을 먹고 다치고 병원에 가는 일상을 하나하나 이야기합니다. 그렇다고 사건이나 행동만을 묘사하진 않습니다. 어떻게 생각하고, 무엇을 느끼는지도 직접 말해주고 있죠.

 반면에 여자가 겪은 임신 중절이나, 미용실에서 잘리게 된 사연 등은 간략하게 한 두 문단으로 지나갑니다. 여자의 생각과 감정은 드러나지 않습니다. 단지 남자가 추측할 뿐이죠.

A

나는 추위에 벌겋게 달아오른 유리의 뺨이 우스워 웃음이 났다.

“아이스크림 사줘.”

그렇게 말하는 그녀의 잇몸에서는 피가 났다. 그걸 아는지 모르는지 태연하게 서있는 그녀가 못마땅해 나는 혀를 차고 말했다.

“너 또 피나. 그리고 추워서 안 돼. 감기 걸린단 말이야.”

“조금 전에 다 컸으니까 괜찮아.”

유리는 자신이 한 말이 스스로 뿌듯한지 웃으면서 편의점 안으로 들어갔다. 나는 그녀가 떼를 쓰는 어린이처럼 보였다. 내가 어쩌다저런 여자에게서 예쁜 구석을 찾아냈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었다. 잠시 후 유리가 편의점 문을 조금 열었다. 그녀의 커다랗고 동그란 눈에는 장난기가 잔뜩 서려보였다.

 그런데 여자가 딱 한 마디를 던지는 순간부터…남자는 감정들을 숨기기 시작합니다. 사랑스러운 여자를 비유를 동원하며 묘사할 때와 달리, 객관적이고 건조한 문체로 말합니다. 유리의 감정을 추측하지도 않고, 자기 감정도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B

그녀는 돌연 자세를 고쳐 앉더니 날 똑바로 보고 말했다.

“우리 헤어질까?”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얘기라 나는 곧장 반응하지 못했다. 머리를 긁적이고 난 후에 나는 내가 잘못 들었나 싶어 물었다.

“방금 헤어지자고 한 거야.”

“응 그냥 각자 집으로 돌아가서 싹싹 빌고 사는 게 어떨까 싶어서.”

“음… 그렇게 하는 게 좋겠어?”

뭔가 수상합니다.

 

남자의 눈으로 보는 현실

 이 작품은 현실적인가요? 디테일들은 확실히 익숙하고, 공감하기 쉽습니다. 남자는 자기가 겪은 현실을 자세히 묘사합니다. 월세집, 전기장판, 상하차 알바, 병원까지… 특히 전기 장판이라는 소재는 처음부터 끝까지 반복됩니다.

  굳이 말하자면 돈 걱정입니다. 남자는 돈을 벌지 못하거든요. 여기에는 불평등이나, 사회적인 현실의 문제가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이 모든 건 남자가 겪는 현실입니다. 여자가 겪은 낙태나 해고마저도, ‘남자의 시점’에서만 알 수 있습니다. 독자는 남자에게 이입하죠. 남자가 느끼는 죄책감이나 고통, 고민만 느낄 수 있습니다.

 우리는 여자가 어떤 사람인지 모릅니다. 여자가 왜 집을 나와 가난한 남자와 같이 사는지 모릅니다. 매일 밤 얼마나 아플지 모릅니다. 왜 미용실에서 잘렸는지도 모릅니다. 잘렸을 때 어떤 기분이 들었는지도 모릅니다. 낙태를 왜 했는지, 그걸 원하긴 했었는지, 그 이후로 어떤 고통을 겪었을지, 이 모든 게 편견일 뿐이라면 그래서 어떻게 살았는지 모릅니다.

  뭔가 빠져있습니다.

 

서술 트릭 : 유리의 현실은 어디로 갔는가?

 저는 이제 탐정처럼 진실을 밝히겠습니다. 이 이야기를 해결편이 빠진 추리 소설처럼 생각해보려 합니다. 저는 주인공 남자를 범인으로 지목합니다. 남자는 서술 트릭을 써서, ‘유리의 현실’을 은폐했습니다.

 

 추리는 작은 의문에서 시작했습니다.

 

 이 현실적이어야 하는 작품에는… 왠지 붕 떠있고 환상적으로 보이는 소재가 하나 있었습니다. 바로 그녀, 유리입니다. 유리는 사랑스럽고 수동적입니다. 다 큰 사람이 남자에게 어린이처럼 아이스크림을 사달라고 하거든요. 물론 현실에 그런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죠. 하지만 저는 유리가 남자들이 좋아하는 환상에 가깝다고 생각합니다. 개성보다는 전형입니다.

저는 “조금 전에 다 컸으니까”라는 대사라던가, 두 사람이 특별한 직업 없이 아르바이트를 전전한다는 것에서… 유리는 미성년자라고 추측하는 식으로 비약하진 않을 겁니다. 자비롭게 추리를 해보죠. 우리가 여자에 대해 확실히 알 수 있는 사실이 한 가지 있습니다.

 

 임신 중절 수술입니다. 이 자극적인 소재는 독자의 편견을 자극합니다. 숨어 있는 폭탄과도 같습니다. 결말까지 읽어내려가면서 계속 불안하게 만듭니다. 여자의 죽음? 결별?…

 그런데 한국에서 낙태는 불법입니다. 그것을 허용하는 경우는 딱 5가지 뿐입니다.

  1. 본인이나 배우자가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우생학적(優生學的) 또는 유전학적 정신장애나 신체질환이 있는 경우
  2. 본인이나 배우자가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전염성 질환이 있는 경우
  3. 강간 또는 준강간(準强姦)에 의하여 임신된 경우
  4. 법률상 혼인할 수 없는 혈족 또는 인척 간에 임신된 경우
  5. 임신의 지속이 보건의학적 이유로 모체의 건강을 심각하게 해치고 있거나 해칠 우려가 있는 경우

 저는 자극적인 이야기를 원하지 않습니다. 3,4를 배제할 겁니다. 유리에게 우생학적인 장애가 있거나, 전염성 질환에 걸렸거나, 아이를 갖는 것이 유리를 죽음으로 몰고 갈지도 몰랐다…는 것이죠. 유리가 아파했던 이유도 아마 그래서겠죠.

 

 분명한 단서가 하나 더 있습니다. 유리가 이렇게 말했다는 거죠.  “우리 헤어질까?”

 왜 유리가 이렇게 말했는지는 드러나지도 않고, 추측하기도 어렵습니다. 자신이 고통스러워서? 남자를 위해서? 단지 시험하려 하려고? 사회심리학자 니컬러스 에플리는 [마음을 읽는다는 착각]에서 30년을 같이 산 사람들도 서로가 무얼 원하는지 알지 못한다는 연구 결과를 소개합니다. 상대의 마음을 읽을 수 있다는 건 오만입니다. 에플리는 대신 상대에게 직접적으로 질문을 하라고 말하죠. 서로 질문을 하지 않는 연인들은 이혼할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30분만 대화하는 모습을 지켜봐도 90% 확률로 3년 안에 이혼할 수 있을지를 예측할 수 있다는 연구도 있죠.

 

  하지만 남자는 질문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 이야기가 해피엔딩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두 사람의 사랑에는 문제가 있습니다. 언제 터질지 모르는 폭탄이죠. 그런데 남자는 그 폭탄을 계속 숨기려 합니다. 눈 앞에 있는데도, 안 보이는 척을 합니다. 대신 ‘사랑스러운’ 그녀만 생각하죠. 유리의 현실이 눈 앞에 닥치면 거리를 둬버립니다.

 남자는 과거에 대해서도 미래에 대해서도 이야기하려 하지 않아요. 유리는 과거를 끄집어내며 불평하지 않습니다. 앞으로 어떻게 하자고 계획을 세우지도 않아요. 남자만 제안을 합니다. “이러니까 전기장판 사자고 했잖아” 처음부터 끝까지 남자는 전기장판을 가지고 고민합니다.

 

 하지만 여자는 고민을 하지 않았을까요? 여자는 무엇을 원합니까? 정말 돈이 없어서 고통스러운가요? 낙태의 악몽 때문에, 집을 나와 가족들과 떨어져서 힘들어 하는 건 아닐까요.

 물론 이건 제 억측입니다. 하지만 남자는 이런 억측마저도 하지 않아요. 여자가 느끼는 감정을 마치 다 아는 것처럼 추측해버리고 결론을 내거든요. 그리고 또 고민하죠.

“돌아가는 길에 나는 머릿 속으로 몇 번이고 전기장판을 떠올렸다.”

 저는 전기 장판을 산다고 두 사람이 행복해질지 모르겠습니다. 유리는 무얼 원하는지 아무 것도 말하지 못하니까요. 남자는 관심도 없습니다. 남자가 상상하는 그녀는 씩씩하고 사랑스러우니까요. 독자 역시 그녀를 동정하거나 타인처럼 바라볼 뿐… 유리의 입장에서 생각해보진 못합니다.

 

유리는 딱 두 가지 밖에 말하지 못했습니다. 

“(빨간색) 아이스크림을 사줘” “우리 헤어질까?”

이게 전부입니다. 저는 여기서 소통의 단절을 느꼈습니다. 제가 남들에게 강한 사람처럼 보이려고 발버둥치면서 느꼈던 고독감을요. 빨간색은 상처에서 흘러나오는 피의 색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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