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로부터 일주일 후.. // 팬픽은 아닙니다만.. 공모 브릿G추천

대상작품: 악마의 장난 (작가: , 작품정보)
리뷰어: 리컨, 19년 1월, 조회 100

(작가분의 의도와 상관없이 꽤나 재밌는 연상이 되서 “감상”대신 확장판 성격의 팬픽 형식으로 남깁니다. 내용상 오류나 허술한 부분은 모두 리뷰어에게 있음을 밝혀둡니다. 형사의 시점에서 전개됩니다. 혹시 본편과 설정상 혹은 내용상 오류가 발견되는 경우 알려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

간단하게 감상을 남기자면 작은 팩트들만으로 꽤 좋은 전개솜씨를 보여준 작품입니다. 좀 과하다 싶은 설정들도 보이지만 덕분에 팬픽(?)에서 그런 부분을 활용할 수 있었습니다. 작가분의 의도는 리뷰어의 상상과 확연히 다를 수 있으며, 리뷰어의 팬픽에 이의를 제기하신다면 삭제하겠습니다. 가급적 본편을 먼저 읽어주시기 바랍니다.

리뷰를 이런 식으로 남겨도 되는지 모르겠지만, 새로운 실험이라고 너그러이 이해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부작용은 알려주시면 조치하겠습니다.)

 

** 중요!! 본편 작품의 스포일러가 있으니 반드시 본편을 읽고 와주시기 바랍니다!!

 

 

 

 

 

 

 

살인마들의 시대였다. 텔레비전 뉴스마다 살인마가 판쳤다.

나는 색깔 없는 겨울 코트 속에 두 손을 찔러놓고 사건 현장에 도착했다. 1층에는 도끼로 잔인하게 살해당한 비디오 룸까페 주인이 있었고, 2층에서 권총으로 머리에 구멍이 난 덩치좋은 중년 사내의 시체를 확인했다. 사건현장에서 마주친 유일한 생존자인 대학교 복학생도 만났다. 얼빠진 모습으로 주저앉아 있던 대학생은 자살이었다고 말한 뒤 묵비권을 행사하고 있었다.

먼저 도착한 경관들이나 나나 도무지 무슨 상황인지 짐작도 가지 않았다. 경관들은 이것저것 캐묻고 추궁했었지만 별다른 의심이나 헛점을 찾지 못했다고 했다. 범행동기도 알 수 없었고, 범행수단이나 기회는 눈으로 확인할 수 있었지만 역시 개연성이 없었다. 중년사내는 왜 날도 환한 늦은 아침에 비디오 룸까페(?)의 2층에서 도끼살인마가 나오는 영화를 보고 있는 대학생에게 찾아와 권총으로 자살했을까? 도끼살인마는 시체에 도끼자국을 남기기는 했지만, 소방용 도끼를 들고다녔다는 근거는 없었다. 일단 범인인지 희생자인지 알 수 없는 수더분한 복학생을 서로 데려와 진술서를 작성하도록 시켰다.

 

 

진술서는 경찰이 관심있는 내용에 대해 사실과 의견을 짧고 명확하고 일관성있게 작성해야 하는데, 이 정신상태가 불안정보이는 대학생은 종이를 연거푸 달라며 아주 소설(?)을 쓰고 있었다. 뒤통수를 갈겨 주고 싶었지만 희생자인지 범인인지 알 수 없어 최대한의 정보를 들으려고 내버려 두었다. 사실은 동네 한가운데서 벌어진 일이라 벌써 매스컴에 나간 끔찍한 사건이어서 나중에 희생자로 확인됐을 때 폭행했다는 오명을 뒤집어쓰게 되면 감당할 수 없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대학생은 진짜(!) 소설을 썼다. 밍기적거리는 폼이 외상후 스트레스쯤 되는 충격을 받아서 주저리주저리 떠드는 건 줄 알았더니 나름 일관성을 가진 자기만의 기억과 생각을 남겼다. 문제는 남아있는 증거들이 이 친구의 진술과 그럴싸하게 어울린다는 점이었다. 진술내용 중 어설픈 부분들이 몇 군데 있긴 했지만, 현장에 있던 다른 두 사람은 모두 끔찍하게 죽어버렸으니 증거를 어떻게 의심할 수도 없었다.

우선 몇 년전에 벌어진 도끼살인마의 공소시효는 이렇게 빨리 만료되지 않는다. 살인사건의 공소시효는 처음부터 10년 이상이었고, 법이 바뀌어 감에 따라 계속 늘어났다. 도끼살인마의 완전범죄를 모방해서 그를 이끌어낸다는 중년사내가 스스로 자살한 점 역시 미심쩍었다. 더구나 그 정신나간 ‘친구들’조차 과연 실존하는 인간들인지 믿을 수 없었다.

이런 의문투성이의 끔찍한 사건은 관료주의 덕분에 “자살사건”으로 정리되었다. 비디오 룸까페의 CCTV에는 중년사내가 스포츠백을 가지고 올라간 것이 확인되었기 때문이었다. 다만, 2층으로 올라가자마자 CCTV의 녹화는 중단되었다. 확인결과 카운터 근처에서 전기선이 뽑아져 있었다. 이 역시 의심스러운 부분이지만 골목에 있는 CCTV에는 그 시간에 비디오 룸까페 건물에 접근한 사람이 없었다.

진술서를 읽으면서 미심쩍은 부분들을 지나치지 못해 그 날의 기억을 곰곰이 더듬어 봤다. 사건 현장에 있던 집기들을 떠올려 보던 중 불현듯 방 안의 포스터 하나가 눈에 밟혔다. 한때 흥행했던 형사물 영화였는데, 포스터에는 다섯명의 용의자가 나란히 서 있었다. 형사물이 아니라 범죄물이었나? 생각해 보니 아무 상관없어 보였다. 그런데도 왠지 포스터는 뇌리에서 떠나질 않았다. “알고도 당할 것이다”라는 광고문구가 형사의 입장에서 거슬려서였을 수도 있겠다. 범인이 절름발이라는 게 왠지 조롱같았다.

형사의 직감으로는 어떤 사건이 너무 비현실적이거나 비논리적인 경우, 숨겨진 내막이 있는 경우가 많았는데, 그래도 이건 너무 황당무계해서 조사해 볼 엄두도 나지 않았다. 도끼살인마를 불러내기 위해 엄한 대학생을 찾아가 스무고개로 놀리면서 살인을 하다니.. 정말 살인마들의 시대였다.

의심스런 증거들은 부실했고, 업무상 자살사건으로 처리하면 많은 시간을 아낄 수 있었기에 이의를 제기하지 않고 마무리지었다.

 

 

그렇게 일주일이 지난 후, 형사가 피하고 싶어하는 가장 끔찍한 일이 찾아왔다.

‘친구들’이 찾아온 것이다. 

 

모닝커피를 마시며 책상에 앉자마자 몇 사람이 기다렸다는 듯이 일주일 전의 사건에 대해 정보가 있다며 다가왔다. 모하시는 분들이냐고 묻자 중년 사내의 친구들이라고 했다. 즉시 주변 동료들을 모아 ‘친구들’을 취조실로 데려갔다. 그들이 순순히 안내(?)에 따랐기에 굳이 나눠서 다른 방에 넣을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 우리는 그들의 말을 경청했다.

 

비디오 롬까페에서 권총으로 자살한 중년사내는 자신들과 모임에서 만나던 사이였으며 그 모임은 예상대로 도끼살인마에 희생된 유가족들의 모임이라고 했다. 이 유가족 모임은 법에 의한 심판이 요원한 도끼살인마를 잡기 위해 자신들의 전재산을 모아 은밀히 고액의 현상금을 걸었다고 했다. 작은 정보나 중요한 정보에 따라 가격이 달랐고, 가장 금액이 큰 건 역시 범인을 알려주는 것이었다고 한다.

오랜 기다림 끝에 정황상 범인이 확실하다고 연락을 준 건 다름아닌 비디오 룸까페 주인이었다고 한다. 미디어에 나오지 않은 몇 가지 범인의 습관에 대해서도 알고 있었고, 문제의 인물이 어떤 시기에 자리를 비웠는지도 알려주었다. 잠시 비울때마다 입었던 옷차림과 돌아왔을 때 들려준 얘기들이 범행장소와 비슷한 부분이 많았다. 외모와 습성 역시 프로파일링 자료와 겹치는 부분이 많았다. 결정적으로 몇 년간 도끼살인마의 사건이 없던 이유가 군대라는 사실에 다들 납득했다고 했다. 연쇄살인마가 범행을 중단하는 이유의 대부분은 신상에 중요한 변화가 생겼기 때문이라는 걸 조사를 통해 아는 유가족들이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결정적인 물증이 없었기에 유가족들은 직접 미행을 하고 뒷조사를 진행했다고 한다. 그러다 범인이 돈을 모아 해외로 나가려는 낌새를 알게되서 조바심이 났다고 했다. 거기다 비디오 룸까페 주인 역시 돈이 급했는지 현상금을 독촉했기에 유가족 중 한 명이 각오를 하고 범인과 담판을 짓겠다고 나서게 되었다고 했다. 그가 직접 도끼, 빨간 등산점퍼 그리고 권총을 들고 비디오 룸까페를 찾아갔다는 얘기까지 듣고는 일단 그들을 제지했다. 대학생이 쓴 소설 못지 않게 이 정신나간 사람들의 이야기도 황당했다. 나는 이 모든 어처구니없는 얘기들을 결정지을 한 가지 질문을 던졌다.

“증거가 있습니까?”

그들은 품안에서 비디오테이프를 꺼냈다. 그날 로비에 찍힌 장면이 들어있다고 한다. 어떻게 이걸 녹화했냐고 묻자 자신들이 비디오 룸까페 주인과 짜고 몰래카메라를 설치했다고 한다. 그 대학생이 도끼살인마가 맞으면 로비로 데리고 내려와 직접 심판하기로 이미 약속되어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비디오 룸까페 주인은 중년 사내가 올라가자마자 CCTV의 전원을 내려 녹화를 중단했고, 아주 잘 숨겨둔 몰래카메라에만 찍어서 자신들의 복수의 증거물로 남겨둘 계획이었다고 한다. 원래는 중년사내의 자수와 묵비권으로 모든 일이 마무리 됐어야 했다고 한다.

왜 이제야 가져왔냐고 묻자 사건 후 며칠간은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모른 상태에서 현장에 접근할 수 없었고, 사건현장을 확인한 후에는 경찰에 신고할 경우, 중년사내 한 명이 아니라 유가족 모임 전원이 관련된 사실을 밝혀야 했기에 논의하느라고 시간이 지체됐다고 했다.

비디오 테이프를 틀자 그날 로비의 장면이 나왔다. 중년사내가 올라간 후, 시간이 제법 흘렀고, 비디오 룸까페 주인은 연신 2층과 골목을 번갈아 확인하고 있었다. 첫번째 총소리가 들리자 룸까페 주인은 어딘가로 전화를 건 후에 조심스레 2층 계단으로 올라갔다. 잠시 후, 주인은 구르듯 로비로 기어 내려왔고, 누군가 도끼를 들고 쫓아왔다. 왜소해 보이던 대학생은 익숙한 솜씨로 도끼를 휘둘렀다. 뭔가 굉장히 화가 난 듯 주인에게 도끼질을 하다가 사이렌 소리에 퍼득 정신을 차린 듯 주변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우리는 곧장 대학생의 핸드폰, 집, 일하는 곳 등등 사방으로 연락을 취했다.

도끼살인마는 중년사내의 등장에 많이 놀랐던 것 같았다. 도끼질 하는 얼굴 표정에서 그 독기와 광기를 숨기지 못했다. 대출업체에까지 전화를 한 걸 보면 아마 심하게 위기를 느꼈거나 중년사내의 주의를 다른 곳으로 돌리기 위해서였을 것이다. 그 방 안에서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는 둘 만 아는 일이겠지만 나는 방 안의 포스터 속 범인의 이름을 알게 됐다.

‘카이저 소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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