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호러가 되려면 집중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왜냐면 독자에게 ‘공포’라는 감정을 전달해야하는 글이니까요. 몰입이 안 중요한 글이 어디 있겠습니까만, 호러는 집중하지 못하면 ‘어 그래서 뭐 어쩌라는 거지’ 같은 상태가 되니까 특히 중요한 것 같아요.
그렇다면 역시 독자가 무엇을 주목해서 봐야 하는지, 무엇을 무서워 해야 하는지가 가장 중요하겠죠. 전형적인 것 중 하나는 의문점을 던져주는 겁니다. 의문점에 주목해서 읽다보면 그 의문점이 심화되기도 하고, 해결되기도 하면서 긴장감이 점차 고조되어가죠. ‘아 이거 뭔가 낌새가 이상한데’ 그리고 긴장감이 최고로 고조되었을 때 공포의 실체가 완전히 드러나고, 모든 의문점이 해결되는 결말이 나오는 겁니다. 반전이 있으면 더 좋고요.
그런데 이 소설은 의문은 던져주는데 그걸 딱히 해소해주진 않네요. 오히려 의문점보다 고조되는 상황 전개가 더 중요한 생존 내지 서바이벌 호러의 영역으로 넘어가버립니다. 결국 작품 내에서 제시한 의문점이 이야기에 집중하게 만들지 못하고 작품에 완성도에 대한 근본적인 회의감으로 변해버렸습니다.
이 작품의 시작은 영재반에서 단 하나밖에 없는 추천 입학을 누가 할지에 대한 겁니다. 우수한 놈 여럿. 그 중 재수없는 놈도 하나 있고, 재수없는 놈한테 비아냥당하는 열등생. 그리고 자신이 추천 입학을 한다고 알고 있는 주인공. 추천 입학을 누가 하느냐? 라는 의문점을 가지고 심리 호러를 하기 딱 좋은 배경이네요.
그런데 어라. 갑자기 선생님이 와서 자기 인생 망했다고 너희들 다 죽이고 나도 자살할 거라고 말해버립니다. 옴매야. 일단 갑자기 장르가 변했다는 것에 당황. 그리고 선생이 친절하게 설명해주고 문 닫고 나가는 상황이 너무 작위적이라 또 당황. 그 뒤 애들이 보이는 태도도 부자연스러워서 또 당황. 그리고 그 와중 추천 입학을 누가 하는지에 대한 의문점이 싹 사라져서 또 당황.
당황의 연속이었습니다. 긴장이 아니라요. 선생은 하나고 학생은 다섯 명(뭐 최초의 희생자 합하면 여섯) 그리고 선생이 그냥 한탄 늘어놓은다음 조용히 나가서 불 지르겠다는데 왜 움직이는 애들이 없어요? 선생하고 싸울 생각을 하던가. 당황하던가 그럴 것이지 뭔 구조 신호를 보내겠다고 노트북을 켜지 않나 협상을 해볼 테니까 그냥 불에 타죽을 때까지 가만 있겠다고 하지 않나…….
등장인물들의 행동원리가 하나도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구조 신호는 무슨 구조 신호에요. 당장 불 지르고 동반자살한다는데. 협상은 뭔 놈의 협상입니까. 범인이 이 방에 다시 들어올지 안 들어올지도 모르고 그냥 문 잠그고 불 지른다는데. 그런데 애들이 그런 식으로 뜬구름 잡는 소리를 하다가, 에라 모르겠다 너 마음에 안 드니 죽인다. 나도 너 마음에 안 드니 죽인다 그러고 싸우고 죽입니다. 추천 입학 얘기는 그냥 지나가듯 넘어가고요.
그리고 정작 문 잠그고 불 지르겠다는 선생은 문을 잠그지도 않았고 불을 지르지도 않았고 안에 가둬놓은 분노조절장애들이 서로 치고받는 과정을 잠자코 지켜보다 대충 정리됐다 싶을 즈음에 들어와 진짜로 불을 지릅니다. 뭐야? 그리고 남은 학생들은 뭐 반항하는 것도 아니고 얌전~히 불에 타죽는 선택을 합니다. 이게 이렇게까지 체념할 일인지 잘 모르겠고 왜 반항을 안 한 건지, 도주는 왜 안 한 건지도 잘 모르겠어요. 사실 작가 본인도 상황을 설명할 방법을 찾지 못해서 대충 설명을 뭉갠 듯한 느낌입니다.
그리고 마지막에 주인공이 ‘이 전장의 이름은 컴퍼스 전투라 하자’하는 부분은, 솔직히 말하자면 웃었습니다. 아 그래서 작품 이름이 컴퍼스 전투에요? 사실 왜 컴퍼스 전투라고 이름 붙였는지도 잘 모르겠는데 작품 내에서 일관되게 전쟁 전장 병사 등등의 묘사를 했다는 걸 그제야 깨달았습니다. 솔직히 그 묘사들 하나도 안 와닿았거든요. 애들의 행동원리부터가 이해가 안 가니까요.
결과적으로, 재미없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