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많은 사람들이 감상을 적었고 늦은 감이 있어 망설였지만 지금까지 읽은 이영도 소설 중 손꼽히게 마음에 들었기 떄문에 짧게나마 감상을 적고 싶다. 내가 읽고 갔다고 흔적을 남기고 싶은 마음이다.
만약 이 소설에 대해 한 줄로 내 감상을 말하자면 이러할 것이다. 오버 더 초이스→사람 하기 힘든 시기.
이영도 10년만의 장편소설 신작, 오버 더 초이스. 출간되기 이전부터 본방사수하도록 노력하며 달렸다. 판타지 소설, 이 어감은 뭔가 상냥하고 낭만적이거나 때려 부수는 가슴까지 시원한 어떤 것이겠지만 안타깝게도 오버 더 초이스는 그렇지 않다. 작은 개척도시 보안관보 티르 스트라이크의 일상은 폐광의 환기공에 빠진 소녀 구출 작업을 벌이다 죽은 소녀를 꺼내면서 본격적으로 비틀린다. 오버 더 초이스는 작지만 커다란 비극으로 시작을 열었고, 이는 곧 계(系) 존속의 문제로 확대된다.
오버 더 초이스에서는 전작만큼은 아니지만, 이영도 특유의 관념의 물화가 드러나 있다. 분명 의식이 없어야 하지만 역동적으로 생기를 얻어 움직이는 식물은 소위 이 ‘동물 중심주의’적인 세계에서 식물의 관점으로 생소한 시각을 보여주는 것을 극대화한다. 가장 배경이자 기초이자 근본이 되며 생명 생산적인 식물계의 입장에서 식물을 태우거나 소비해서 돌려주지 않는 비생산적인 동물계은 얼마나 황당무계한 존재일까.
가장 인상 깊은 부분은 맨 처음 죽은 카닛 소녀 서니의 어머니 테나 포인도트가 남편 버샤드 포인도트와 딸을 ‘고르는’ 장면이었다. 식물들은, 동물을 위해서 살아오는 데 익숙해졌거나 각자의 목적 때문에, 죽은 자를 흉내낸다. 그렇게 열 명의 카닛 소녀가 부모 앞에 나타난다. 세 살, 여섯 살, 열 살, 열다섯 살… … . 처음 하나로 시작한 가짜 카닛 소녀는 부모가 진짜라고 받아들이지 못하자 하나 둘 씩 늘어난다. 마치 가장 비슷한, 마음에 드는 아이를 고르라는 것처럼. 그리고 부모는 열 명의 카닛 소녀들에게 둘러싸여 숲 속으로 사라진다. 슬프고도 비현실적으로 매혹적인 장면이었다.
그토록 그 장면이 와닿는 것은 사실적이기 때문일 것이다. 현대 사회에서 우리는 ‘나’의 정체성을 위협받고 있다. 개인정보는 유출되었으며, 고도로 발달된 생명과학의 위협은 성큼 다가왔다. 오버 더 초이스는 흔한 중세 배경 판타지지만 21세기 현대인들의 무의식 속에 잠재된 불안을 건드린다.
타자 이영도가 던지는 질문 앞에서 흔들리는 정체성, 가짜 나와 진짜 나를 구분짓는 것은 무엇일까? 가장 우리와 가까운 거리의 가짜 나는 과거의 나일 것이다. 허상이지만 실존하거나 했던 나. 3년전의 ‘나’가 지금의 ‘나’를 안다면 외모나 성격부터 취미 습관이나 가치관까지 너무 많이 변해버려서 아마 ‘저런 여자가 나일 리 없어’라고 하지 않을까. 연대기적인 관점의 자아에서 불과 3년전의 나와 지금의 나는 ‘아예 다른’ 사람이듯이 나를 증명하는 것은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일이다.
미래에 나타날 나와 지금의 이 나를 구분짓는 것은 오로지 사람이 두는 가치밖에 없다. 거기에 나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이 포함된다는 것이 가히 공포스럽다. ‘나’에게 진실되었다고 가치를 두지 않으면 ‘나’는 ‘나’가 아니게 될지도 모른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