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설
* 단편소설의 제목 「손 안의 먼지」*
손안의 먼지보다 손 밖의 먼지가 훨씬 많은데, 왜 사람은 손안의 먼지에 주목할까?
희소성이다.
그래서 많이 움켜쥐면 실패다.
조금만, 아주 조금만, 가능하면 손가락으로 셀 수 있을 만큼만 움켜쥘 때 사람들은 본다. 얼마나 들어 있을까? 그리고 손을 펼친다. 먼지는 공기 중을 날며 틴들 현상을 일으킨다. 먼지가 보석처럼 반짝이는 것이다. 사람들은 비로소 먼지를 본 것이다.
리뷰도 그러해야 할 것이다. 주문을 외우자. 살라리 살라.
1. 인터뷰
「언론의 책무, 공정성, 사명감. 그런 단어들은 손안에 오래 남지 않는다.」
‘단어’가 틀린 건 아니다. 지면에 나열된 것은 ‘책무’, ‘공정성’, ‘사명감’이라는 낱낱의 단어가 맞다. 다만 앞에 ‘언론의’가 걸려 있어서, 읽는 사람 머릿속에서는 ‘언론의 책무’, ‘언론의 공정성’이라는 구(句)로 되살아난다. 단어와 구 사이에 어정쩡하게 걸터앉은 셈이다.
그렇다고 ‘어구’라고 쓰면 문장이 갑자기 국어 교과서 냄새를 풍긴다. 그래서 추천하는 말은 ‘말’이다. ‘말’은 단어도 구도 다 품는다. 어디에 갖다 붙여도 정답이고, 무엇보다 언론 이야기와 겹쳐 울린다.
그런 말들은 손안에 오래 남지 않는다.
‘여당 법사위 임구천’까지 갔으면
‘○○당’이라는 표기도 한 번 비켜가 주는 게 좋겠다. ‘민수당’ 정도면 어떨까. ‘국빈당’도 괜찮고, ‘정희당’도 괜찮다. 작가가 담고 싶은 당의 이미지를 단어로 만들어 ‘당’ 앞에 붙이면, 그게 곧 그 당의 성격이 된다. 어차피 허구의 세상이니, 뭔들 못할까?
호칭 문제
위원장을 만나면서 ‘선배님’, ‘후배님’을 주거니 받거니 하다가, 마지막에 ‘이현식 선배님’까지 등장한다. 선배에 또 선배가 나오니 일순 ‘그 선배가 누구였지?’ 하며 주춤하게 된다. 나야 리뷰를 쓰는 처지라 위로 거슬러 올라가 확인했지만, 일반 독자라면 ‘뭐, 별 중요한 것도 아닐 테니’ 하며 그냥 지나칠 수도 있겠다.
‘선배님’, ‘후배님’ 같은 뭉뚱그린 호칭 대신 ‘위원장님’, ‘현식 선배’처럼 인물을 구체적으로 지칭해야 매끄럽게 읽힌다. 선후배 관계를 드러내는 호칭은 사실 한 번이면 족하다. 현실에서도 이름이나 직위를 불러주는 쪽이 더 자연스럽지 않을까?
호칭 장면 예시
“○○○ 기자, 저번 기사 내용 좋던데.”
“하하, 감사합니다. 위원장님은 공사다망하실 텐데 그런 기사도 다 보고 다니세요?”
“우리 후배님 글발이 워낙 출중하니까 눈에 띄더라고.”
“하하, 선배님이 봐주시니 괜히 우쭐해지네요.”
“하하하.”
위원장은 호탕하게 웃으며 나의 어깨를 툭 쳤다.
‘아까 질문 받을 땐 더듬거리더니, 이럴 땐 청산유수네.’
“하하.”
나도 웃으면서 그의 웃음을 받아넘겼다.
‘○○컨트리클럽’도 마찬가지다
모든 ‘○○ 표시’는 독자에게 아무 이미지도 일으키지 않는다. 그냥 ‘광명 컨트리클럽’쯤 해주면 어땠을까.
‘데스크’로 보냈다
‘데스크’는 아무래도 ‘뉴스데스크’를 떠올리게 한다. 앵커 두 사람이 앉아 원고 뭉치를 책상에 톡톡 쳐서 정리하는 그림 말이다. 녹음 파일을 앵커에게 보낸다고? 아닌가. 앵커가 읽을 원고를 쓰는 작가에게 보낸다고? 아니면 뉴스데스크를 총괄하는 프로듀서에게?
구체적인 사람도 부서명도 아닌 ‘데스크’는 독자에게 선명한 그림을 만들어주지 못한다. 그냥 모호한 관념을 만드는 막연한 글자다. 설마 사람 이름이나 직위가 ‘데스크’는 아닐 테니 방송국 부서 이름인가 싶은데, 주인공은 신문 기자 아니었나? 위원장이 ‘전직 본지 편집국장’이라고 했으니, 그럼 주인공이 속한 신문사 편집부로 보낸 게 맞겠지.
이쯤 하자.
2. 사우나실
잠입 장면
“8월 삼복더위에 할 때에는 흐르는 땀과 독한 약품 때문에 대체 여기에 왜 이런 짓까지 해야 하는지 자괴감이 들었었다. (…) 성능 좋은 마스크까지 챙겨 왔다. 이것도 이틀 동안 몸살을 겪은 후의 교훈이지만 말이다.”
(‘여기에’ → ‘여기에서’가 자연스럽다.)
이 부분은 꽤나 리얼하다. 주인공에게 제대로 몰입해서 실감이 났다.
군살
“분실물은 즉시 보고할 것. 사진 촬영 금지.
좋은 문장들이었다.
대부분 이미 오늘 나에게는 의미가 없는 것들이었다.”
서기준이 잠입했다는 걸 독자는 이미 다 아는데, 굳이 다시 설명할 필요가 있을까. 작가는 너무 친절하면 실패다. ‘설명 덧붙이기’는 독자가 스스로 생각할 기회를 빼앗는다. 군살이다. 군살은 다이어트.
“빨리빨리 나눠서 후딱 하고 얼른 가자고.”
쯥.
마음에 드는 말이었다. (…) 잘못하면 방해까지도 될 사람이었다.
여기도 군살이 두둑하다. 복선은 드러날 듯 말 듯 은은하게 깔아두어야 한다. 그래야 독자가 의심을 품은 채, 그 의심이 사실로 확인되는 지점까지 걸어갈 동력을 얻는다. 그런데 너무 대놓고 천기누설을 해버렸다. 이제 독자는 저 사람이 주인공의 장애물이 되리라는 걸 훤히 안다. 궁금함이 사라졌으니 뒤 내용도 안 봐도 빤하다.
게다가 주인공은 조장의 특성을 지나치게 낱낱이 파악하고 있다. 이번 조장은 1년간 알고 지낸 사이가 아니다. 석 달에 두 번씩 바뀌는 조장 중 하나다. 그러니 길어야 한 달 반에서 두 달 남짓 본 사이라는 얘기다. 몇 번째 같이 나가는 현장인지는 몰라도, 그 짧은 사이에 ‘내 염탐질에 걸림돌이 될 위험인물’이라는 판정까지 끝냈다.
그렇다면 차라리, 주인공의 정체가 들킬 뻔했다가 아슬아슬하게 비껴간 장면을 앞에 하나 깔아두면 서스펜스가 배가 된다.
회상 장면 예시
“기준 씨, 사우나실에 너무 오래 있으면 건강에 해로우니까, 눈에 걸리적거리는 것만 들고 바로 나와요.”
조장은 사우나실을 나서는 나를 보고 그렇게 말했다.
“예, 챙겨주셔서 감사합니다.”
“그게 다 선배 짬밥이지.”
“옙.”
이 장면을 미리 깔아두면, 주인공이 사우나실에서 SD 카드를 손에 쥐고 ‘여기서 들여다보면 병신이다’ 같은 사족을 달지 않아도 된다. 사우나실 문을 미리 열어놓고 들어가는 서스펜스를 따로 만들 필요도 없다.
사실 사우나실 열기가 목욕탕으로 빠져나오도록 문을 열고 청소한다는 것부터가 그리 현실적이지 않다. 사우나실 안에서 주인공이 뭘 하든 그걸 의심할 사람은 없다. 들어갔다 나오는 시간만 적당하면 그만이다. 그런데 지금 장면은 마치 주인공이 이미 수상한 짓을 해서 신분 노출 직전에 몰린 사람처럼 보인다. 오히려 문을 열어둔 탓에 조장이 되돌아오기라도 하면 수상한 행동을 고스란히 들킬 판인데, 왜 열어놓았을까? 의심 많은 조장이라서? 그렇게 볼 만한 구체적인 장면은 앞에 없었는데.
‘잘못하면 방해도 될 사람이었다’라는 한 줄을 독자가 이미 캐치했으리라 전제하고 그냥 달려가는 것 같다. ‘서스펜스’도 ‘현실성’도 다 잃은 장면이다. 쌍피를 뺏겼다.
서술의 힘
“그 운명이 뒤바뀐 건 경찰이 송치하자마자 대구지검이 한 불기소 결정이었다. 이 반전의 연출자가 임구천이라는 (…) ‘경영책임자의 토끼몰이 사냥은 그만’이라는 장문의 글로 기자들 사이에서는 거의 굳어져 있었다.”
주인공의 서술로 이루어지는 대목들은 일일이 나열하지 않아도 하나같이 구체적이고 현실적이다.
3. 판독
“컴퓨터 팬 돌아가는 소리만 났다.
나는 그대로 잠들었다.”
의심스러운 지점을 단번에 찾아내지 못하고 한 박자 늦추는 이런 장면, 멋지다.
“뭔 일 있었대? 부장이 또 뭔 지랄을 했길래?”
여기서 주인공이 갑자기 급발진한다. “뭔 일로?” 정도면 충분하다. 후배 현영이 이미 부장의 지랄을 다 읊어주고 있으니까.
“알았어. 받으면 되지. 일단 나 소스 분석 들어가니까 집중해야 돼. 부장한테는 내일까지 잡고 있다고 잘 둘러대 줘. 끊는다.”
“아, 잠깐만요. 선배, 선…….”
현영과 서기준이 주고받는 대화는 꽤나 리얼하다. 이런 장면이 나오면 리뷰보다 읽기에 집중하게 된다. 뭐, 어차피 읽어야 리뷰가 되는 거긴 하지만.
앞의 ‘컨트리클럽 사우나실’ 장면보다 이 ‘전화 장면’—현영에게 전해 들은 부장의 독촉과, 418개 음성 파일 구간을 더듬는 서기준의 늘어진 시간—이 서스펜스 면에서 훨씬 우월하다.
“검색창에 그 이름을 넣었다.
상장사 사외이사, ○○○.
전형적인 주가 작전판이었다.”
주인공과 함께 녹음 파일을 뒤지는 느낌이었다. 마침내 카타르시스. 건졌다.
“부장에게 전화하면 임구천 기사가 죽는다.
금감원에 넘기면 내가 도청으로 죽는다.
그냥 두면 아무 일도 안 일어난다.”
(그냥 두면 국장에게 내가 죽는다. ^^)
마지막 장면에 큼직한 펀치를 날리시네요. 열린 결말인데, 그다음 이야기를 독자에게 맡겨서 맛있는 소설 한 편 읽었다는 느낌을 줍니다.
마무리
기자라는 직업을 가진 주인공 서기준의 시점으로, 대박 기사 하나를 건지기 위한 고군분투를 그린 단편소설 「손 안의 먼지」는 기자라는 직업을 살아내는 사람들의 삶을 다시 한번 돌아보게 하는 계기를 주었다. ‘직업이란 역시 쉬운 게 없구나’ 하는 생각을 해보면서, 이대로도 한 편의 소설로 만만치 않은 경쟁력을 지닌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일반 독자에게 일독을 권할 가치가 충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