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넛이 도넛이 아니게 될 때 감상

대상작품: 폐곡선 (작가: 광원, 작품정보)
리뷰어: cedrus, 3시간 전, 조회 17

** 작품의 결말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폴과 데릴, 두 사람은 긴 복도를 걷고 있습니다. 매끄러운 금속 표면의 원통형 복도입니다. 일주일이 넘게 출구를 찾아 걸었지만 달라진 건 없어 보여요. 그렇게 걷다가 휴식하기를 반복하던 중, 폴과 데릴은 기이한 현상을 거듭 발견합니다. 그리고 믿을 수 없는 결론에 도달하지요. 도넛 형태의 구조물이라고 믿었던 곳이 사실 나선 형태였다는 것, 그리고 나선의 끝을 향할수록 시간이 느리게 흐른다는 것입니다. 존재하지 않는 출구를 찾아 걷고 있었다는 걸 깨달은 폴과 데릴은 각기 다른 선택을 내려요. 돌아가거나, 돌아가지 않기로 했지요.

 

— 도넛 

아름다운 결말이었어요. 그렇지 않나요? 새로 드러난 충격적인 진실 앞에서 자신이 믿는 길을 당당히 걸어가는 인물이라니요. 자신의 답을 고집하지도 않고, 상대를 비난하지도 않아요. 상대가 뜻을 바꾸기를 잠시 기다렸다가 그대로 보내주었어요. 서로의 앞날을 축복하면서요. 이 얼마나 성숙하고 의연한 탐험가들입니까.

그런데 이 결말보다도 먼저 저를 사로잡은 것은 폴과 데릴의 에너지가 역전되는 순간이었습니다. 지금껏 둘의 걸음을 이끈 것은 폴이었지요. 그러나 도넛이 나선이었단 걸 알고 나서는 오히려 데릴이 힘을 회복합니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요? 폴과 데릴의 행동을 만든 믿음은 무엇에 근거할까요?

 

— 사진사 폴 

폴은 그들이 갇힌 구조물이 도넛 형태라고 판단했습니다. 계속 걷다보면 출구=입구에 도달할 것이라고 생각했어요. 원통형 복도를 따라가기만 하면 됩니다. 그래서 더욱 변화에 민감하게 반응했어요. 음식이 나타나는 주기가 짧아졌다거나, 의미를 알 수 없는 전자음이 들려오기 시작했을 때 데릴은 크게 신경 쓰지 않았지요. 폴은 달랐습니다.

새로운 정보가 이 공간이 도넛 형태라는 가설에 어떤 영향을 줄까요? 폴이 생각하는 대로 출구에 도달하려면 가설이 유지되어야 합니다. 아무런 신호를 전달하지 않는 ‘단추’를 보았을 땐 아무래도 상관 없었지만, 뭔가 의미가 있을지도 모르는 요소에 대해서는 그럴 수 없었습니다. 폴은 점점 초조함을 드러냈어요. 그 정보가 가설에 영향을 주지 않는다는 걸 확신하려면, 신호에 의미가 없다는 것을 확인하려면 신호의 의미를 알아야 하니까요. 결국 폴은 전자음과 문자열의 의미를 알아내지 못했지만요.

그러나 새로운 정보에 촉각을 기울인 덕에 폴은 중요한 사실을 발견합니다. 그의 사고와 분석이 놀라운 결과를 도출했어요. 앞으로 나아가면 나아갈수록 시간이 느리게 흐른다는 것, 외부에서 전달된 음식의 시간은 원래의 속도로 흐른다는 것입니다. 여기에 더해 데릴은 통로의 크기가 변했다는 걸 입증했지요.

이곳이 도넛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자 폴은 무너집니다. 구조물이 도넛이어야, 아무것도 변하지 않아야 했습니다. 폴이 새로 발견한 것들에 특별한 의미가 없어야 가설이 유지되고 두 사람이 가는 방향에 출구=입구가 있을 테니까요. 도넛이 사실 나선이었다니, 이걸 깨닫는 순간부터 폴에게 신호는 중대한 의미가 되었습니다. GO BACK. 두 사람은 돌아가야 합니다. 나선의 끝에는 이들이 찾는 답이 없을 테니까요.

 

— 탐험가 데릴

똑같은 시간 동안 똑같은 공간을 지나왔지만 데릴의 반응은 언제나 폴과 정반대였어요. 애초에 탈출이 불가능한 구조라면, 누군가 출구를 메워버렸다면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여기가 도넛 형태라는 것도 완전히 수긍할 수 없었어요. 그래서 ‘단추’를 발견했을 때 처음으로 얻은 단서라고 생각했지요. 똑같은 복도만 이어지는 이 공간에서 유일하게 이질적인 것에 매달려야 했습니다. ‘단추’를 꿈에서 볼 정도로요.

데릴은 낯선 공간에 떨어졌고 언제나 돌아가야 할 곳, 지구를 의식했습니다. 꿈에서 그는 항상 지구에 있었고 폴의 사진첩에서 단 하나뿐인 ‘자연적인’ 것에 매달려 위안을 얻었어요. 나침반이 작동하지 않아 그는 불안했을 거예요. 지구가 아닌 곳에 오고 말았다는 의미일지도 모르니까요. 의미가 없다고 믿으며 추측하기를 멈추었지요.

데릴은 폴처럼 앞에 출구=입구가 있다고 믿지도 못했을 거예요. 폴이 도넛의 비밀을 밝혀낸 다음에 데릴은 문자열의 의미를 해독했지요. 이때는 또 다른 반응을 보여주었어요. 돌아가라는 메시지에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고 말하지요. 그는 돌아가지 않겠다고 해요. 안전한 현실로 돌아가기 위해 남극점을 밟지 못했던 것을 늘 후회했다는 것이지요.

 

— 상대성 

폴과 데릴의 선택을 논하기 전에 이들이 어떻게 나선을 확인했는지 잠시 짚어볼까요. 도넛 안에서 모든 것은 상대적이었습니다. 음식과 물이라는 지표를 통해 외부와 내부의 시간이 다르다는 것을 확인했어요. 사진과 레이저라는 지표를 통해 이틀 전과 현재의 복도 크기가 다르다는 것을 알았지요. 이들이 뭔가를 확인할 때는 기준이 되는 지표가 있었어요. 혼자서는 변화나 차이를 알 수 없습니다. 폴이 있어 데릴이, 데릴이 있어 폴이 상대와 다르다는 것을 우리는 알 수 있었어요. 한 사람이 의기소침해졌을 때 다른 한 사람이 태연했고, 한 사람이 절망할 때 다른 한 사람은 각오를 다졌지요.

결말에서 이들은 다른 길을 택했어요. 제가 두 사람의 미래를 낙관하지 못했던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이들이 무슨 일을 겪더라도 독립적으로 존재한다면 차이를 확인할 길이 없을 테니까요. 두 사람은 결국 어디에 도달할까요. 마지막 장면에서 두 사람이 헤어지자마자 전자음이 길고 낮아진 것을 떠올려 보세요. 폴과 데릴이 얼마나 멀리 걸었는지보다 이들이 상대적으로 어디에 위치하는지가 중요한 문제입니다.

 

— 시작과 끝, 혹은 반대 

폴은 나선의 끝에 아무것도 없다고, 나가기 위해서는 돌아가야 한다고 말했어요. 데릴은 뒤로 돌아서 안전한 현실로 돌아간 것을 후회한다고, 그러니 돌아가지 않겠다고 말했고요. 두 사람은 다른 선택을 했지만 결국 한 가지 사실을 전제하는 듯한데요. 나가는(살아남는) 길은 그들이 걸어온 길 뒤에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살려면 돌아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처음엔 이해가 가지 않았어요. 나선의 끝으로 갈수록 시간이 느리게 흐른다는 건 알겠습니다. 그런데 나선의 시작점을 향한다고 해서 무엇이 달라지나요? 결정적으로, 폴과 데릴은 그들이 어디에서 출발했는지 알지 못합니다. 처음 두 사람이 복도에서 눈을 떴을 때 출입구로 보이는 것은 없었을 겁니다. 길의 양쪽은 똑같아 보였겠지요. 그렇다면 이들은 단순히 운이 없었던 건가요? 생과 사를 결정하는 1/2 확률에서 지는 패를 뽑은 건가요?

저는 나선의 시작점에도 죽음이 기다리고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데릴이 향하는 곳에서 시간은 점점 느리게 흐르고 통로는 점점 넓어지겠죠. 음식은 더 자주 나타날 테고요. 그러나 마시기도 전에 물이 마를 것이고, 먹기도 전에 음식이 부패할 것입니다. 폴이 향하는 곳에서는요? 시간이 점점 빠르게 흐르고 통로는 점점 좁아질 겁니다. 아무리 걸어도 그가 기다리는 음식은 아직 도착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나선의 끝에는 무엇도 멈추지 않는 세계, 나선의 시작에는 무엇도 움직이지 않는 세계가 기다리고 있을 거예요. 데릴과 폴은 극점에 도달하지 못하거나, 도달하더라도 살아남지 못할 거예요.

만약 이들이 처음 향한 방향이 지금과 반대였다면 상황이 달랐을까요? 정반대의 상황 속에서 똑같은 일을 경험하지는 않았을까요? 시간은 점점 빠르게 흐르고 통로는 좁아지고, 음식은 드물게 나타났을 테지요. 이때 발견한 신호가 GO BACK이라면, 이들은 나선의 시작이 아닌 끝을 향해 방향을 틀어야 했을지도 몰라요.

 

— 다시 한 번, 상대성 

두 사람은 처음 도넛에 갇힌 순간부터 예정된 죽음을 피할 수 없었던 건 아닐까요? 그야말로 인간의 이해를 벗어난 현상 속에 갇혀 무력하게 죽음을 향해 걸어간다니, 글 밖에 있는 제게는 너무나도 공포스러운 결말이었습니다.

그렇다면, 글 안에서는 어떨까요?

나선의 중심부와 끝에서 공간의 크기가 같지 않다면, 복도의 내부와 외부에서 시간이 다르게 흐른다면, 글의 밖과 안에서도 다른 현상이 나타날지 모릅니다.

폴은 처음부터 생존에 집중했지요. 출구가 정말 있다고 생각하느냐는 데릴의 불평에 이렇게 말했어요. “그럼 너는 여기에 앉아서 굶어 죽으면 되겠네. 그런 생각은 아무런 의미가 없어, 데릴.” 그들이 걷는 길 앞에 출구가 있다고 믿으면서 나아갔어요. 그런데 이 앞에 아무것도 없다는 걸 알게 되었죠. 그렇다면 더 나아가는 건 물론이고 주저앉아 버리는 것도 고려의 대상이 되지 않습니다. 적어도 이들이 아직 가보지 못한 반대편, 나선의 시작점에는 살아날 방법이 있을지도 몰라요. 폴은 재난 앞에서 삶을 향한 의지를 놓지 않고 최선을 다해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데릴은 처음부터 여기가 도넛이라고 믿지 않았어요. 보다 정확히는 도넛인지 아닌지가 크게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폴이 그랬던 것처럼 앞에 탈출구가 있기를 바랐겠지요. “나도 이 도넛이 진짜 ‘도넛’이길 바랐나봐”라고 말한 걸 보면요. 그러나 불가해한 현상을 앞에 두고 그의 반응은 의외로 침착했죠. 절망해야 맞는 것 아닌가 스스로 의문을 품을 정도로 덤덤했어요. 게다가 폴의 어깨에 손을 올렸을 때는 기묘한 반응을 보입니다. 폴의 신체가 살아있다고 느끼기 어려웠다고 말해요. 데릴은 직감했을 것입니다. 여기는 지구의, 자신의 상식을 완전히 벗어난 공간이라는 사실을요. 그리고 두 사람을 기다리는 건 죽음 뿐이라는 것을요.

죽음을 피할 수 없다면 적어도 늘 후회로 남았던 일을 되풀이하진 않겠다고 다짐합니다. 데릴은 이제 죽음이 두렵지 않아요. 그가 미련을 품었던 목함과 나침반도 주저없이 내려놓을 수 있어요. 미지 앞에서 익숙한 것들을 내려놓고 자신의 눈으로 직접 보겠다고 결심했으니까요. 그래서 그에게는 더이상 나침반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데릴은 폴을 끌어안아주며 각자가 ‘옳은 선택’을 했기를 기원해요. 여기서 ‘옳은’의 의미 역시 상대적입니다. 폴에게는 무엇보다도 살아남는 것, 데릴에게는 자신의 신념을 따라 미지를 탐험하는 것이지요. 데릴은 이미 서로가 ‘옳은 선택’을 했다는 걸 알았을 거예요.

 

— 과거에서 현재, 그리고 미래로 

도넛 내부의 아름다움에 감탄하던 것이 폴이고 지구를 그리워하던 게 데릴이었단 걸 떠올리면 결말이 한층 깊이있게 다가와요. 우리가 지켜온 믿음이 무너졌을 때, 우리는 그동안 걸어온 길을 되짚어 보겠죠. 그리고 선택할 것입니다. 나아갈 것인가, 다른 길로 갈 것인가. 어느 한쪽이 정답은 아닐 겁니다. 도넛 안에서 모든 것은 상대적이니까요.

폴과 데릴은 각자 기록하는 사람과 행동하는 사람이기도 합니다. 완전히 다른 두 사람이 함께 있어서 현실을 현실로 유지할 수 있었지요. 상대성만이 의미 있는 공간이었지만 두 사람에게는 공통점도 분명 있었습니다. 이들은 과거를 기억하는 사람입니다. 언젠가의 타임랩스와 강의를 떠올리며 두 사람은 정보를 해석했어요.

폴과 데릴은 결말에서 서로를 떠나며 상대방이라는 지표를 상실했지요. 이들이 정말로 어디에 도달할지는 알 수 없겠으나, 적어도 이들은 과거를 지나 현재를 통과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각자의 미래로 향할 것입니다. 내가 나라는 사실, 내가 걸어온 길이라는 지표는 여전히 남아있으니까요.

피할 수 없는 재난이라는 비극이 글 안에서는, 폴과 데릴에게는 생존의 서사가 될 수 있습니다. 숨막히는 공포의 서사이면서도 결연한 의지의 서사일 수 있는 것이지요. 저는 이 작품을 읽은 감상을 다음과 같은 질문으로 정리하고 싶어요.

도넛이 도넛이 아니게 될 때, 당신은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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