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학적 지배라는 코드로 GL을 재해석한 고딕호러 공모(비평)

대상작품: 탐식(貪食) (작가: 슬픈거북이, 작품정보)
리뷰어: K Rimmer, 1시간 전, 조회 8

해제

이 소설은 슬픈거북이 작가가 소재를 자유게시판에 공모하여 집필된 것이다. 소개글에도 나와 있듯이, 서울 소재의 한 여고가 배경이며 여고생 3명이 3학년생의 죽음의 비밀을 파헤치는 이야기이다. 처음 필자가 내건 조건은 대사와 행동, 눈빛으로 러브라인을 그릴 것(키스를 넘어가는 과한 씬은 금지)과, 여고생 3명 중 하나는 3학년생의 죽음에 엮여 있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키스 자체는 금지되지 않았다는 점을 미리 적어둔다. 작가는 이 소재와 제약조건들을 충실하게, 조금은 오버킬하면서 이행했다. 텔링을 주로 사용하던 작가의 작품이라고는 도저히 믿을 수 없을 정도로 텔링이 억제되었으며 서술자가 인물의 내면으로 들어가는 대목이 149매 전체에서 두어 곳에 불과할 만큼 극도로 절제되고 드라이하면서도 아름다운 묘사 위주로 전개하였다. 작가가 이 작품을 집필하는 동안 커피 10잔을 마시면서 어렵게 썼다고 후술하였는데, 과연 작품을 읽으면서 집착에 가까우리만치 철두철미함과 치열했던 노력과 정성들인 흔적들을 곳곳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미스터리가 들어갔지만 장르가 미스터리는 아님

작가는 작품의 태그에 #GL #EVENT #고딕호러 #로맨스릴러라고 적어놓았다. 이 작품은 최소 2회독을 요구하는데, 그 이유는 끝까지 다 읽어야만 흡혈귀가 누구인지를 질문하는 소설이란 걸 독자가 뒤늦게 알게 되기 때문이다. 독자는 그러면 흡혈귀가 누구지? 지혜? 혜영? 은서? 이 답을 찾기 위해 처음부터 다시 읽어야 한다. 그런 점에선 미스터리 소설 같아도, 정확하게 미스터리 장르는 아니다. 제이의 죽음의 비밀이 작품 중후반부부터 나오고, 셋 중 하나가 흡혈귀일 거라는 추측도 후반부에나 나온다무엇보다 중요한 차이점은, 작품 안에서 범인(흡혈귀)을 특정할 수 있게 소거법을 적용할 수 있는 단서가 거의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떡밥이 회수되지 않은 채 소설이 종결됐다. 죽은 제이가 캐비닛에 남겨두었던 금고 다이얼 번호가 그것이다. 세 등장인물들은 금고 비밀번호를 손에 넣었음에도, 금고를 열러 가지 않는다. 금고가 있는 지하실은 본관 계단 아래, 몇 걸음 거리에 있다고 작품이 직접 밝혀둔 곳이다. 열쇠를 쥐고 문 앞에 선 채로 끝난 셈이다. 금고 안에는 누가 흡혈귀인지에 대한 결정적 단서가 있었을지 모른다. 이 소설은 떡밥을 던져놓고, 회수하지 않은 채, 오픈엔딩으로 끝나버린다. 그리고 작가 코멘트에흡혈귀는 누구일까요?”라고 적어놓았다. 다시 읽으라는 얘기다. 아니, 이 정도면 여러 번 읽어주십사 하는 작가의 읍소라 해야 맞다. 아마도 작가는 이 작품을 많은 작가들과 독자들이 읽고서지혜가 흡혈귀야!”, “아니야, 은서가 범인이야!”하면서 치열하게 논쟁을 벌이길 원했는지도 모르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흡혈귀는 분명 있다

흡혈귀에 대한 단서를 아예 넣어두지 않은 건 아니다. 금고를 열지 않은 채 끝난 것은 앞서 적은 대로 분명한 결함이며, 다른 곳에 단서가 있다는 사실이 그 결함을 없애주지는 않는다. 다만 금고와 별개로, 본문 안에 흡혈귀를 특정할 만한 단서가 남아 있는 것도 사실이다. 이 소설은 미스터리 장르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해서 정답이 아예 존재하지 않게 설계하여 독자들이 막연한 공포나 찜찜함을 안고 끝나도록 고안된, 고약한 소설도 아니다. 지금부터 왜 그런지를 설명해보겠다.

1)죽은 제이의 메시지를 배달하고 수신하는 자, 은서와 지혜

제이는 지난 해 여름, 2학년 때 봉사활동을 하러 소상록도에 갔었다. 그때 단짝친구 지혜도 같은 2학년이었고, 혜영은 1학년이었다. 제이의 일기에 보면 다음과 같은 대목이 나온다.

4 12그 아이가 말했다. 흡혈귀는 실존한다고. 그 말을 가만히 듣는데 자길 안 믿는다고 화를 내는 모습이 오히려 귀여웠다. (중략. . 섬으로 들어가고 싶다. 내 마지막 여름방학.

제이에게 3학년 여름방학은 졸업 전에 맞는 마지막 여름방학이었을 것이다. 일기는 4 12일 날짜로 기록돼 있고, 작품 내에서 절기상 가을인데, 무덥다고 되어 있으므로 현재 시기는 입추를 지난 8월 중순 이후로 추측된다. 제이의 일기에 나온 내용을 보면 다른 동아리 친구처럼 예쁘지도 않은데 왜 하필 자길 사랑한다고 하냐고 하는 내용이 있다. 제이는 외모가 예쁘지 않았지만, ‘그 아이먹잇감이 예쁜 게 무슨 의미가 있겠어?’라고 말했다고 적혀있다. 그 아이가 흡혈귀이며, 우리는 여기서 흡혈귀가먹잇감으로서 제이를 사랑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 흡혈귀는 오히려 제이가 위험해질까봐 흡혈 속도를 컨트롤하려 했지만 제이는 피학적 지배라는 말을 하며 자기 파괴의 욕구를 언급한다. 일기는 제이가 흡혈귀그 아이를 사랑했고, 피를 많이 빨려, 죽음에 이르고 싶었음을 암시한다. 흡혈귀에게 목을 내어주고 흡혈당하는 피해자가 매저키스트이고, 흡혈귀가 피해자를 걱정해서 오히려 만류하는 상황, 이것은 작가가 GL을 고딕호러로 나름대로 재해석한, 영리한 비틀기이다. 피를 빨기 위해 하얀 목덜미에 송곳니를 박아넣고 빨간 피를 빨아먹는 장면은 충분히 에로틱하다. 목숨을 잃을 수도 있는데, 빨리는 쪽은 빠는 쪽을 사랑하고 있고, 자기 파괴와 죽음을 용인한다. 피를 빠는 쪽도 흡혈당하는 인간을 사랑하기에, 한꺼번에 너무 많은 피를 잃게 되어 죽어버리는 건 원하지 않는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제이는 실혈로 죽게 된다. 컨디션이 좋지 않았음에도, 제이는 흡혈귀 아이를 찾아갔고, 그 아이에게 목을 내어줬을 것이다. 괜찮다며. 죽기 전에 제이는 섬 지하실 캐비닛에 유서를 남겨두었다. 미리 죽음을 준비했다는 얘기다

제이는 룸메이트였던 은서에게, 단짝 친구였던 지혜를 수신인으로 하는 유언을 남긴다. , 은서가 만약 그 흡혈귀였다면 제이가 과연 은서에게 유언을 남겼을까? 그럴 가능성도 완전히 배제할 순 없지만, 흡혈귀를 사랑해서, 너무 많은 피를 빨려 죽음에 이르도록 그걸 용인하고 의도했던 제이가, 자기 친구 지혜에게 전해달라고 흡혈귀에게 유언을 남기는 건 개연성이 낮다. 흡혈귀는 제이가 죽는 걸 원치 않았다. 그런데 제이는 죽음을 미리 준비했고, 그렇다면 유언을 맡기는 행위 자체가 죽을 작정임을 알리는 일이다. 흡혈귀에게 그걸 알렸다면 흡혈귀가 막았을 것이다. 그러므로 전달자, 은서는 흡혈귀가 아니다. 지하실 캐비닛에서 나온 금고 비번과 사진에 쓰여진 장난스러운 문구, 그것은 세 명 모두에게 남기는 장난이자 유언이기도 했다. 하지만 그것을 찾아달라고 은서에게 말했던 최종 수신인은 제이의 단짝 친구였던 지혜다. 그리고 필자가 보기에 제이의 일기 속 다음 대목이 가리키는 대상 역시 지혜다.

그 아이가 더 좋은 게배신은 아니다. 내가 아니라도 틀림없이 행복할 거다. 충분히 예쁘고 똑똑하니까. 좋은 남자. 부잣집. 너무 많아서 오히려 귀찮을지도 모른다. 슬플까? 어쩌면그럴지도.

인용은 원문 그대로다. 원문은 주어를 하나도 명시하지 않는데, 필자는그 아이를 혜영으로, 나머지 문장들의 생략된 주어를 지혜로 읽는다. 혜영에게 끌린 것이 지혜에 대한 배신은 아니며 자신이 없어도 지혜는 잘 살 것이라고 스스로를 달래는 대목이라는 독해다. 이것은 어디까지나 필자의 해석이고, 원문이 그 지시 대상을 확정해주지 않는다는 점은 밝혀둔다.

소설에선 지혜가 부잣집 딸인지, 좋은 남자 친구가 있는지에 대해 내용이 나오지 않는 듯하다. 그게 이 소설의 독해가 난해한 점이다. 하지만 단서가 0은 아니다. 지혜가 태풍이 오는 섬 숙소에서 선생님에게 전화하는 장면, 그게 단서다. 세 사람 중 지혜만 휴대전화를 가지고 있다.

많이 걱정하시나요?”

.”

지혜가 휴대전화를 접어 주머니에 넣었다.

기종도 연대도 특정할 수 없지만 부모 없는 무연고 학생들이 대부분인 학교에서 세 사람 중 지혜만 전화기를 가지고 있고, 교사와 직접 통화하는 위치에 있다는 사실만은 텍스트가 보여준다. 혜영과 은서가 전화를 쓰는 장면은 작품 어디에도 나오지 않는다. 지혜만 다른 조건에 놓여 있다는 것, 여기까지가 본문이 허락하는 범위다.

 

2) 혜영의 결정적인 발화들

두번째 증거는 2학년생 혜영이 독백으로 말하는 장면이 결정적인 스모킹 건이다. 자신을 짝사랑하는 후배 은서가 맏언니 지혜를 밖으로 유인하자, 혜영이 서랍을 열어 제이 언니의 일기장을 몰래 읽는 대목이다.

경찰은 일기장을 돌려줬어. 문제없어.”

(중략)

제이너도 사랑했구나.”

첫번째 발화는 혜영이 죽은 제이의 일기장을 읽고서 거기에 흡혈귀의 정체를 드러내는 내용이 없음을 두 눈으로 확인하고 나서도 조금은 불안해했다는 걸 드러낸다. 그렇다. 거기에 무슨 단서가 있었다면 경찰은 자신을 불러 조사했을 것이다. 문제없다는 범인(흡혈귀)의 안도감에 찬 독백이다. 작가는 이 지점에서 범인을 슬쩍 보여줬다. 죽은 친구(제이언니)의 일기를 처음 펼친 사람이 슬퍼하는 대신 수사 기록의 반환 여부를 복기한다는 것, 이것이 이 작품에서 가장 정직하게 노출된 단서다. 그런데도 독자는 지혜도, 은서도 흡혈귀일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는데, 헷갈리게 만드는 전통적인 트릭들(지혜가 혜영의 팔에 난 피를 보고 힘겹게 웃는다든지, 햇빛을 싫어하는 은서, 도자기같이 흰 피부 등)을 곳곳에 설치해두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헷갈릴 수밖에 없다. 전술한 바와 같이, 작가는 독자들이 트릭 때문에 여러 번 이 작품을 반복해서 읽기를 원했을 것으로 추정한다(사실, 이건 세상 모든 미스터리/호러 작가들이 바라는 바이기도 하다).

 

 

그러면 아무도 경찰에 신고하지 않기로 걸까?

이 부분이 이 소설의 장르가 GL임을 보여주는 확실한 증거가 될 것이다. 지금까지의 분석으로 혜영이 흡혈귀라는 게 드러났으므로, 등장인물들의 관계를 다시 한번 복기해보자. 1학년 은서는 2학년 혜영을 짝사랑한다. 혜영은 자신이 사랑하는 이를 먹잇감으로 삼는 흡혈귀다. 혜영은 지혜와 제이 언니 둘 다 사랑했고, 자신을 사랑해줬던 제이를 먼저 먹잇감으로 삼았다. 제이는 자기파괴적인 충동에, 피학적 지배를 욕망했고 과다 실혈로 사망한다. 죽기 전에 룸메이트였던 은서에게, 단짝 친구인 지혜에게 전해달라고 유언을 남겼다. 그것은 혜영의 다음 먹잇감이 될 것이 확실한 지혜를 보호하고자 함이 아니라, 자신이 사랑했던 흡혈귀 혜영이 가장 사랑한 건 바로 자신이었음을 지혜에게 자랑하고자 남긴 일종의 장난편지였던 셈이다. 혜영은 지혜를 사랑하고, 지혜 역시 제이를 사랑했다. 제이도 지혜를 사랑했지만, 혜영에게 더 끌렸었다. 자기를 사랑한다고 고백하고 다가와준 혜영에게 기꺼이 자신의 목을 대주었다. 그리고 실혈로 죽을 수 있다고 혜영이 걱정하고 만류하자 먹잇감인 제이가 피를 더 빨아달라고 보채는 이 아이러니한 상황을 피학적 지배라고 자조까지 한다. 혜영은 제이의 일기장을 보면서 낮게 읊조린다. “제이너도 (지혜언니를) 사랑했구나.” 등장인물들 중 혜영이 너라고 공식적으로 부를 수 있는 건 1학년 은서뿐이다. 그런데, 한 학년 선배인 제이의 일기장을 보며 제이라고 부르고, 너라고 지칭하는 독백, 이것은 혜영이 제이와 연인 관계였다는 결정적 증거이며, “너도 사랑했구나.”라는 탄식은, 자신과 제이가 사실은 지혜를 같이 사랑하는 연적관계였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달은 것이다.

1학년 은서는 지혜언니에게 자기 말이 맞다면 졸업 때까지 동아리 방을 떠나라고 요구한다. 언니를 위해서라며. 사실 은서는 어느 정도 혜영이 흡혈귀일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있었다. 룸메였던 제이 언니를 통해서 흡혈귀가 실존한다는 얘길 듣고서 누가 흡혈귀일까 의심했었고, 소상록도에 가서 지혜와 혜영에게 그걸 확인하고 싶었다. 그리고 어느 정도 확신한다. 마지막 부분에 가서 혜영 언니였으면 좋겠다고 얘길 한다. 자기가 사랑하는 혜영언니가 자기 목에 입술을 대고 피를 빨아달라고 말하는 은서의 사랑 고백이다. 하지만 혜영은 은서의 피를 흡혈할 생각이 없다. 은서는 피학적 지배를 맛보고자 애원하지만 은서의 차례는 오지 않을 것이다. 다음 차례는 혜영이 사랑하는 지혜언니이기 때문이다. 은서가 건 요구가 질투인 동시에 지혜를 흡혈귀로부터 떼어놓는 유일한 방어책이었다는 점, 그리고 그 방어가 실패한다는 점은 이 작품에서 가장 서늘한 아이러니다. 지혜는 왜 경찰에 신고하는 것에 아니, 라고 말했을까? 지혜는 제이의 일기를 읽고 흡혈귀가 혜영이라는 걸 짐작했다. 그리고 혜영이 오랫동안 자기를 사랑해온 것도 안다. 지혜는 제이를 사랑했지만 그것을 적극적으로 표현하진 못했을 것이다. 제이는 혜영을 더 사랑했고, 결국 자길 떠났다. 지혜는 제이가 말했던 피학적 지배라는 감정의 달콤함이, 쾌락이 어떤 것일지 궁금했을 것이다. 후배 혜영이 자신의 목에 송곳니를 박고 자신의 피를 빠는 것, 그걸아니.”라는 말로 허락한 것이다. 혜영이 자신을 사랑하는 한, 그냥 죽게 내버려두진 않을 것이므로. 혜영이 지혜와 섬 마을회관에서 마을 노인들을 문진한 뒤에 둘이 나눴던 대화를 돌이켜보자.

그럼 간호사밖에 없네.”

안 한다면서.”

언니 따라가려고요.”

혜영이 웃었다. 지혜가 고개를 들었다. 혜영은 웃고 있었지만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

그래, 1년 더 남았으니까.”

사라지면 안 돼요.”

창가에 걸린 흰 커튼이 바닷바람에 크게 부풀었다가 천천히 가라앉았다. 지혜는 한동안 대답하지 않았다.

흡혈귀 혜영은 제이를 먹잇감으로 사랑했지만, 지혜는 먹잇감이 아닌, 진심으로 사랑하고 따르는 것이라 추측할 수 있다. 그럼에도 지혜가 피를 가진 인간이므로 흡혈귀 혜영은 지혜의 피를 탐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혜영은 아마도 오랫동안 지혜의 곁에서 맴돌면서 그녀를 탐할 것이다. 지혜언니가 흡혈을 허락한다면 아주 소량씩, 목숨에 지장없는 선에서 오래도록 그녀의 피를 탐식할 계획이었을 것이다. 결국 지혜는 경찰에 신고하지 않는 것에 동의함으로써, 혜영에게 사랑의 탐식을 수동적으로 허락한 것과 다름없다. 이 수동적인 허락, “아니.”라는 지혜와 혜영과 은서의 대답은피학적 지배라는 마조히즘적 GL 코드가 절정을 이루는 부분이다지혜는 혜영의 탐식을 허락했고, 혜영은 지혜의 허락을 구했으며, 은서는 혜영에게 이뤄지지 않을 소원을 말한 것이다.

 

 

피학적 지배라는 달콤쌉싸름한 얼굴을 사드마조히즘 계열의 GL

심리학에 스톡홀름 증후군이란 게 있다. 인질이나 피해자가 가해자(납치범 등)에게 심리적으로 동조하거나 감화되어, 그들을 옹호하고 변호하는 비이성적 심리 현상인데 1973년 스웨덴 스톡홀름의 은행 인질 사건에서 유래했다. 제이는 후배 혜영에게 흡혈을 허락하면서 쾌감을 느끼는 감정을피학적 지배라고 명명했다. 제이는 GL판 스톡홀름 증후군에 시달렸던 걸까? 작가는 여고생 이야기에 고딕호러적 소재인 흡혈귀를 도입하고, 사드마조히즘인피학적 지배를 중심 주제로 잘 말아서 훌륭한 GL 소설을 빚어내었다. 최초 제약조건은 키스까지 허용했으나 작가는 끝내 그 카드를 쓰지 않았다. 키스 한 번 나오지 않아도 소설 곳곳에 묘사된 인물들의 대사, 행동과 심리 묘사는 충분히 경이롭고 또 아름답다. 익숙하지 않은 장르와 익숙하지 않은 문체를 동시에 감당하며 149매를 멋지게 완성해낸 작가의 집념과 노력에 경의를 표한다.

 

목록
이전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