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작가님이 잘하는 특색은 하나다. ‘공공기관 또는 그런 곳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절차와 매뉴얼에만 심취해서 벌어지는 웃지못할 사건들에 대한 풍자’. 요약하면 유연성 떨어지는 인간들의 웃긴 모습들.
[이것은 부조리극이 아니다]
태그에는 ‘부조리극’이 있다. 하지만 이 소설은 부조리극의 핵심 원리와 근본적으로 맞지 않는다.
부조리극이 결말에서도 아무것도 해결하지 않는 것은 무책임해서가 아니다. 부조리극이 가리키는 대상은 특정 사건이 아니라 “존재 조건 그 자체”이기 때문에, 애초에 닫힐 필요가 없는 구조다. <고도를 기다리며>에서 고도가 오지 않아도 되는 이유는, 애초에 “고도가 누구인가”라는 질문 자체가 서사의 목적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소설은 그렇게 할 수가 없다. 왜냐하면 처음부터 이 소설은 “체르노빌 원자로 하부에서 발견된 정체불명의 적층 구조물”이라는 아주 구체적인 사건을 깔아놓았기 때문이다. ‘존재’ 그 자체에 대한 알레고리가 아니라, 특정한 발견물에 대한 특정한 미스터리다. 이렇게 구체적인 떡밥을 던져놓고 정말로 “아무 일도 없었다”는 식으로 끝내면, 그것은 부조리극의 열린 결말이 아니라 그냥 답을 주지 않은 무책임한 소설이 되어버린다.
아마도 부조리극에 익숙하지 않았던 작가님은 어쩌면 본능적으로 이 지점을 감지했을 것이다. 그래서 (의식했든 안 했든) 다른 탈출구를 찾는다. 바로 염소다.
[이것은 나폴리탄 “괴담”도 아니다]
이 소설에는 애초에 공포를 유발하려는 장치도, 표면적 단어 아래 숨긴 이중적 해석도 없다. 여덟 명의 학자가 벌이는 소란은 발견물의 정체를 둘러싼 미스터리이되, 그것은 학계라는 시스템 — 명명 투쟁, 발언권 다툼, 국가별 이해관계, 데이터보다 앞서는 자아 — 에 대한 풍자가 목적이다.
[그런데 ‘나폴리탄 향’은 난다]
여기서 결정적인 지점이 나온다. 염소(이것도 마찬가지다. 왜 갑자기 장면이 확 바뀌고 염소??)가 ‘원고층’ 조각을 아무렇지 않게 뜯어먹는 장면은, 사실 “명확한 의미를 전달하는 결말”이다. “인간의 지적 소란은 결국 하찮다”는 메시지를 확실하게 전달한다. 이것은 부조리극의 열린 결말이라기보다, 오히려 우화 혹은 풍자에 가까운 마무리다. 아마도 작가님이 원했던 것은 “그딴 논쟁 다아아~~~ 의미 없다”라는 메시지로서의 ‘부조리극’을 의도했을 것 같긴 하다. (근데 그건 허무주의…)
소설의 결말은 진상이 완전히 안개 속에 남아 있는 나폴리탄 괴담의 결말과는 다르다. 나폴리탄 괴담이 “무슨 일이 있었는지 절대 알 수 없다”는 방식으로 독자를 불안하게 방치해서 공포를 유발한다면, 이 소설의 염소는 오히려 아주 확고한 냉소로 완결짓고 퇴장한다.
즉, 이 소설이 차용한 것은 나폴리탄 괴담의 엔딩 기법, 진상의 의도적 미공개라는 서사 전략이다. 학생이 “저는……”이라고 입을 여는 순간 서사를 끊어버리고, 원고층의 정체에 대한 어떤 학술적 결론도 내리지 않은 채 장면을 전환하는 방식은 나폴리탄 괴담의 방식을 닮아있다.
그러나 이 소설은 그 장르 특유의 언어적 트릭까지는 재현하지 않는다. 나폴리탄 계열 괴담의 무서움은 동음이의어나 이중적 의미의 단어(“とある”/”屠ある”, “人気”/”人の気配”)가 표면 서사 아래 숨어서, 독자가 그것을 뒤늦게 자의적으로 해석하면서, 또는 해석 자체가 되지 않는 것으로 공포가 완성되는 데 있다. 이 소설에는 그런 장치는 없다. 작가가 공포장르를 의도하지도 않았다. 염소가 원고를 씹어먹는 장면은 상징이자 우화적 메시지이지, 다시 읽었을 때 소름이 돋는 숨은 의미의 발견이 아니다.
[하이브리드 풍자 소설]
그래서 이 소설은 정확히 이렇게 규정할 수 있다. 부조리극이 되기엔 소재와 스토리가 너무 구체적이었고, 나폴리탄 괴담이 되기엔 결말이 너무 확실했다. 대신 그 사이 어딘가에서 진상을 의도적으로 감추고 맥거핀으로 남겨두는 “기법”만을 빌려와, 그 위에 우화적으로 완결된 풍자를 얹은 하이브리드가 만들어졌다.
그래서 다 읽고 나면 이상한 뒷맛이 남는다. 결말은 분명하게 닫혀 있는데도 그 닫힘의 방식이 왠지 낯익다는 느낌, “설명하지 않고 끝내버렸다”는 그 부분만은 묘하게… 나폴리탄 괴담 같은 ‘냄새’가 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