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사냥 가는 것을 다녀간다고 말하고, 사냥하는 것을 뵐 일이 있거나 뵀다고 말하며 돌아오는 것을 다녀왔다고 말하네.
이 소설은 설명이 아니라 언어로 세계관을 체감시키는, 즉 내 기준으로는 showing에 치중한 작품이다.
엘프 사냥꾼 엘보닐이 인간 친구 로버트에게 보내는 편지 형식을 빌려, 표면적으로는 사냥법을 ‘설명telling’하지만 실제로는 그 언어 하나하나를 통해 엘프 사회 전체의 가치관을 드러낸다.
가장 두드러지는 지점은 완곡어법이다. ‘사냥하다’를 ‘뵈다’로, 죽음을 ‘넘어뜨리다’로, 곰을 ‘선생’으로, 타락한 짐승을 ‘흉’으로 돌려 부르는 이 작품의 언어 체계는 ‘있어보이려는’ 설정용 조어가 아니라, 죽임을 부끄럽고 조심스러운 것으로 여기는 엘프의 윤리관 그 자체이기도 하다.
작가는 “엘프는 생명을 존중한다”라고 서술하지 않는다. 대신 화살 하나를 쏘기 전에도 신목과 아버지 나무, 어머니 숲에게 허락을 구하고, 사냥감의 뼈와 내장까지 정성껏 자연에 되돌리는 절차를 촘촘히 나열함으로써, 독자가 그 세계의 규범을 자연스럽게 체득하도록 만든다. 즉, 초보 판타지 작가들이 자주 범하는 실수 — 세계관을 프롤로그에 하나하나 설정집 만들듯 설명하는 것처럼 정보로 전달되는 게 아니라 그 세계에 사는 존재가 쓴 편지와 절차 그 자체로 존재한다.
이 작가의 장점이자 단점은 바로 여기에 있다. 설화와 언어학을 깊이 아는 작가라는 것. 그리고 그것을 통해 장르 변주의 수준을 넘어 하나의 독자적인 신화 문법을 구축한다는 것.
이 작가의 다른 작품 속 인물에 대해 다른 곳에 쓴 리뷰에서 나는 이렇게 적은 적이 있다.
힐데(망토)는 소설의 가장 인상적인 인물이다. 고어체에 가까운 말투(“아서라”, “~것다”, “~렷다”)와 능숙한 사냥 기술, 건조하면서도 따뜻한 태도의 조합이 독특한 캐릭터를 만들어낸다.
여기에서도 같은 특색이 반복된다. ‘뵈다’, ‘보태다’, ‘작은손’, ‘목’, ‘흉’ 같은 고유 어휘와 고어체 말투는 이 작가만의 트레이드 마크이며, 그것이 캐릭터의 개성뿐 아니라 세계관 전체의 질감을 만들어내는 방식은 여전히 탁월하다.
다만 바로 이 지점이 동시에 이 작가의 작품 전반에 대한 진입 허들이 된다는 것도 분명하다. 고어체와 조어의 밀도가 높고 문단 구분이 되어 있지 않아, 어떤 면에서는 해독(…)에 가까운 독서를 요구하고, 문장 하나하나가 완곡어법과 비유로 둘러싸여 있어 의미를 이해하는데 시간이 걸린다. 즉 이 작가 특유의 언어 구축 능력은 마니아에게는 최고의 장점이지만, 평균적인 독자에게는 상당한 벽으로 작용할 수 있다.
나는 자네가 까막눈이 아닐 것이라고는 단 한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네.
(인간을 너무 고평가 하시는듯)
서간문이라는 형식 선택은 그 벽을 낮추는 데 어느 정도 기여한다. 동일 세계관에 속하지만 엘프에 대해 잘 모르는 인간에게 설명하는 구도이기 때문에 독자는 로버트의 자리에서 자연스럽게 낯선 문화를 안내받는 입장이 되고, 동시에 편지라는 사적인 매체 덕분에 엘보닐의 개인적 목소리 — 진지하다가도 능청스럽고, 도리를 논하다가도 술과 소금을 챙기는 면모 — 가 살아난다.
특히 추신에서 드워프 술 계획이 틀어진 것을 투덜대며 마무리하는 대목은, 앞선 장중하고 경건한 서술 분위기를 유쾌하게 반전시키며 이 화자가 신성한 의식을 치르는 사제인 동시에 술과 친구도 좋아하는 생활인이라는 이중성을 완성시킨다.
결과적으로 이 작품은 이야기 자체보다 “세계관을 구축하는 언어 실험”에 방점이 찍힌 소설이다. 설화와 판타지 세계, 그리고 언어학에 대한 이 작가의 깊은 이해가 장르 변주를 넘어 독자적인 문법으로 나타난 결과물이며, 그 특유의 고어체와 조어법을 즐길 준비가 된 독자에게는 더없이 매력적이지만, 그렇지 않은 독자에게는 다소 인내심을 요구하는 작품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