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열이라는 이름의 마우스로 정의(正義)를 클릭하려면 공모(감상)

대상작품: 정의로운 검열 (작가: opeamer, 작품정보)
리뷰어: Senrits, 2시간 전, 조회 8

국가디지털검열처 제4심의실에는, 여느 심의실과 같이 검열 업무를 수행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AI가 보조하기는 하지만, 어쨌든 사람이 하는 일입니다. 검열이라는 일을 오랫동안 해 온 사람도, 이제 막 시작한 사람도 있습니다. 하지만 문제없습니다. 검열관들에게는 공통된 검열 지침이 주어지고, 하나의 사건을 여러 명의 검열관이 검토해 다수의 의견대로 검열 여부가 결정됩니다. 결단코 검열처의 검열관들은 자의적인 판단을 하지 않습니다. 그저 상부의 지침에 따른 것이지요.

 

본 작품은 ‘국가에 의한 검열’이라는 디스토피아적 소재를 비교적 사실적으로 그려냈다고 생각합니다. 현실에서도 각 콘텐츠 제공자들에 의해 필터링되는 범죄 및 선정적인 콘텐츠들처럼 ‘검열해 마땅한’ 콘텐츠를 검열하는 모습에서는 ‘검열’이라는 두 글자가 가져올 무시무시한 가능성을 떠올리면서도 이런 건 그럴만 하지 하고 무심코 동조하게 되면서도, 이내 자의적이고 포괄적인 검열 지침에 인물들과 함께 고민하게 됩니다.

그러나 고민은 거기서 그치지 않습니다. 나름대로 성향이 명확하게 갈리는 인물들을 통해, 작품은 또다른 고민들을 제시합니다.

자의식을 가진 인간에게 정치적 중립이 가능한 것인지 묻고, 내부고발자를 대하는 사회의 태도를 바라보기도 하며, 욕망과 착취로 만들어진 금기의 데이터에 접근하는 모습으로 ‘너는 결백하냐’ 묻습니다. 사회는 개개인에게 체제의 부품이 되기를 요구하며, 그 ‘부품’이 어떻게 움직이고 어떻게 처리되는지 역시 보여줍니다.

언뜻 검열이라는 소재 하나로 너무 많은 것을 보여주려는 것이 아닌가 싶은 생각도 들었습니다만, 작품은 충분한 분량이 있고 읽다 보면 의식하지 못한 틈에 어느새 다른 모습들을 보여주는 흐름이 개인적으로는 매끄럽다고 느꼈습니다. 등장 인물들을 통해 보여주는 의도 자체는 거의 포장되지 않은 그대로여서 작가분의 의도가 조금은 노골적으로 드러난 인상을 받았습니다만 나름대로 몰입하며 읽고 있자면 작위적이라는 생각까지는 들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예상치 못한 인물들의 행동에 놀라지만 그 의도가 드러나면서 충분히 고개를 끄덕일 수 있는 전개였다고 생각합니다.

 

전체적으로 읽기 쉽게 적어주셔서 연재 작품임에도 그렇게 걸리는 것 없이 계속 다음회를 누르며 이어 읽을 수 있었습니다. 다만 개인적으로 살짝 걸리는 사소한 점이 있습니다.

국가공무원이라는 설정이라고 생각했는데, 실제 작품에서는 사기업에 가까운 인상이 들었던 점이 그나마 신경쓰이는 부분 중에는 가장 큽니다. 물론 제가 괜한 디테일에 쓸데없이 신경쓰는 경향이 강한 편이어서 그럴 수도 있겠습니다만, 직급의 호칭이나 내부 행정적 절차에서 사기업의 느낌을 다소 강하게 받았습니다. 뒤쪽에서 팀장에게 일어나는 일들을 보여주기 위해 일부러 이런 느낌의 조직을 설정하신 걸까요.

또한 ‘검열처’라는 설정에서, 하나의 심의에 대해 여러 심의처에서 다수가 합의한 방향으로 심의가 결정된다고 알고 있었는데, 마지막 에피소드에서 D가 ‘자신의 행동 때문에 일어난 일일 수도 있다’는 취지의 대사를 읽고 조금 고개를 갸웃거리게 되었습니다. D의 실적을 고려하면 D 혼자만의 심의로는 영향이 없지 않았을까요. 모르겠습니다, 어쩌면 D와 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같은 결정을 내렸을지도요. 물론 그렇게 생각하든 아니든 작품은 손에 쥔 검열을 휘둘러야 하는 사람의 고민을 느끼기에 충분했다고 생각합니다.

 

정의로운 검열이라는 작품명처럼, 검열이라는 소재로 정의에 대해 고민하게 만드는 작품이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다루고 있는 내용들이 참신하거나 새로운 내용들은 아니었지만, 검열이라는 이름의 마우스를 들고 클릭 한 번에 고심하는 인물들을 이해하기 쉬워서 나라면 어땠을까, 하는 고민을 자연스럽게 해 보는 계기가 되어줄 수 있다고 봅니다.

 

마지막으로, 작가님이 리뷰 공모를 하시면서 이상하거나 특이한 소설을 추천해 달라고 하셨는데… 저는 편식가인데다 스스로 재밌다고 생각한 작품이 이상하거나 특이한지 잘 구분하지 못한다는 걸 자각하고 있어서 어떤 작품을 입에 올려야 할지 잘 모르겠습니다(그래서 그냥 리뷰를 쓰지 말지 고민도 조금 했습니다). 안 쓰기는 좀 그러니 그냥 인상깊은 작품 제목을 하나 남겨봅니다. 아키야마 미즈히토라는 작가분이 쓴 ‘고양이의 지구의‘라는 작품입니다. 납작하게 말하면 우주에 사는 고양이가 지구(지구의)로 가려고 애쓰는 작품입니다. 분류는 라이트노벨인 데다 딱히 리뷰한 작품과 관계가 있는 것도 아니고, 발매된 지 20년이 넘어서 절판된 작품이라 본문을 찾으실 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습니다만 이런 요소도 이상하거나 특이한 작품이라는 설명을 붙일 수 있다면 한번 관심을 가져보시는 건 어떨까요(?).

목록
이전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