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가 잘 마무리했어.”
김씨는 믹스커피를 홀짝이며 조용히 눈을 감았다. 그가 최후에 주마등처럼 떠올린 자녀와의 추억은…
가해자들에게 푸른 봄하늘이 오면 안된다.
나는 외국인들이 많이 오는 숙박업소에서 6개월 남짓 하우스키퍼로 근무한 경험이 있다. 손님들이 한국어를 할 줄 모르니 자연스레 번역기, 외국어, 보디랭귀지 사용 빈도가 늘었던 기억이 난다.
제일 인상 깊었던 손님은 중국 난징에서 온 손님이었는데, 내가 무심코 던진 ‘대도시’라는 말에 그가 “난징대학살을 아시는군요?”라고 되물어서 당황했던 기억이 난다. 한반도 역시 일본의 침략을 받은 흑역사가 있기에 묘하게 공감했다.
한국의 독립운동과 중국의 항일전쟁은 공통적으로 ‘복수’를 내포하고 있다. 복수란 참 아름다운 단어다.
본작 15-16편에서 아버지는 도입부에서 죽은 자식의 원수를 갚기 위해 괴이 처단에 나선다. 우리는 종종 괴담에서 일방적으로 당하는 가족의 모습만 상상하지, 그들이 복수할 것이라고 상상하지 못한다. 내가 쿠엔틴 타란티노의 영화를 좋아하는 이유도 전혀 예상치 못한 타이밍에 원수들에게 복수를 단행하고 달성하기 때문이다.
나폴리탄 특유의 규칙도 좋지만, 이 단편의 미학은 복수 그 자체에 있다. 인간은 당한 것을 그대로 되갚아 줄 때 비로소 살아있음을 느낀다.
복수의 과정과 그 결과는 아름답다. 복수물의 등장인물들은 궁극적인 복수를 갈망한다. 언제까지 피해자들이 현실의 삶에 만족하며 아무것도 하지 않은채 무력히 앉아있을거라고만 생각하는 가해자들의 안일함에 기대를 걸며.
계속 살아서 발버둥치기를.
헌데,
여기서부터 제2장이다.
복수를 끝냈다. 그게 전부인가? 복수가 끝나고 멋들어진 죽음? 존윅처럼? 당신이 정녕 불세출의 킬러인가?
당신 곁에 정녕 아무도 없던가? 남은 이들은 당신을 상실하고 아픈 추억을 강요당하며 살아야 하나? 이 또한 그대의 오만이다.
복수를 끝낸 뒤에도 살아야 한다. 그래서 필자는 본작에 새로운 시작을 제안한다.
그가 최후에 주마등처럼 떠올린 자녀와의 추억은.
“아빠 오래오래 살아.”
그에게 생의 의지를 부여했다.
쿠엔틴 타란티노 영화에서 복수자들은 공통적으로 복수를 끝내고 새로운 삶을 살아가기 시작한다. 복수는 끝이 아니다. 새로운 시작일 뿐이다.
당신이 계속 앞으로 나아가기를. 그대의 푸른 봄하늘은 그곳에 있다.
작가님이 호텔에 사전지식이 없는게 너무 티가 났던 것 같다. 거의 전개가 복도 위주로 이루어지고, 호텔주가 앞장서서 다 처리해버리니까 재미가 없었다. 차라리 호텔주의 수족으로 하우스키퍼, 매니저, 요리사, 하우스맨 등이 등장해서 빌드업을 차분히 쌓고 K가 레이드로 이들을 차례로 격파해서 최종보스로 호텔주를 등장시키는 왕도 전개도 충분히 재미가 있었을 것이다.
아울러 호텔에는 룸에서 지켜야 할 규체적인 수칙이니 룸 컨디션에 대한 내부 규정 등이 있는데, 이런 것까지 구체적으로 알긴 어려우나 유튜브 등의 호텔 교육영상 등에서 잘 찾으면 영감을 얻을 수 있다. 작가님께 권하고 싶은 작품으로는 영화 <존윅>, 특히 컨티넨탈 호텔을 유심히 보시면 좋겠다.